조선의 싱어송라이터

이미경 지음 | 북극곰 펴냄

조선의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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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9

페이지

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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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싱어송라이터

우리 기억 속 고전시가는 영 낯설고 불편한 존재였다. 한자와 옛한글로 쓰인 텍스트는 아무리 읽고 되뇌어도 도무지 해석되지 않았다. 여기에 작품을 둘러싼 시대적 난맥상까지 곁들어지면 그야말로 미궁에 빠진 느낌이었다. 저자는 여기에 한 가지 이유를 덧붙인다.

고전시가는 원래 시(詩)와 가(歌)로 이루어진 작품이었다. 한마디로 노래였다는 얘기다. 우리가 알고 있는 향가, 고려가요, 한시, 시조, 판소리 같은 고전시가는 모두 노래였다. 그런데 근대의 지식 체계는 문학과 음악을 강제로 분리했고, 그 덕분에 고전시가는 음률을 잃어버렸다. 우리 기억 속 고전시가가 그처럼 어려웠던 이유는 악보를 잃어버린 반쪽짜리 노랫말에 밑줄을 쳐가며 분석하려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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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곳곳에는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내는 화자의 애절함이 가득하다. 지금은 해어졌지만 인연의 끈을 반드시 이어가고 싶다는 간절함이 절절히 전해진다. 산버들을 가려 꺾어 건네주며 눈물짓는 홍랑을 떠올리며 최경창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P.66)


요즘 검색창을 켜면 온통 아이유다. 드라마가 무척 재미있다고 하던데, 나에게 있어 아이유는 『밤편지』를 부른 서정적인 가수인 편이 훨씬 익숙하다. 『밤편지』는 사실 처음 들을 때, 황진이의 시가 떠올랐고, 곱씹어 들을 수록 홍랑의 시가 떠오르더라. 그렇게 오래도록 곱씹으며 듣고 있었는데, 최근 애타게 기다리던 책, 『조선의 싱어송라이터』에서도 그의 노래를 홍랑의 시와 연결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막연히 느끼기만 했던 것을 속 시원히 짚어두었더라.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작고 조용한 신호들은 그 자체로 누군가의 밤을 견디게 한다. (P.81)”
그렇게 나는 홍랑이, 아이유가 소소히 건넨 신호를 시대를 건너, 공간을 넘어 느끼고 있었던 거다.

사실 저 한 문장만으로도 『조선의 싱어송라이터』는 “읽어야 할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저토록 섬세하고 정확한 문장을 쓸 수 있는 사람의 글을 읽지 않을 도리가 있나. 이렇듯 이미경 작가는 『조선의 싱어송라이터』를 통해 고전시가를 “노래”로 살려내고, 현대의 감성과 연결하며 한국 음악문화를, 그 안에 담긴 마음들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사실 우리는 고전음악이나 문학을 그리 쉽게 느끼지 않는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의 골이 깊은 탓도 있겠지만, 빠르게 바뀌는 세상, 매일같이 쏟아지는 가요도 채 소비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의 홍수 속에서도 우리가 오래도록 사랑하는 음악들에는 분명 우리만의 정서가 있고, 마음이 있기 때문 아닐까. 작가는 그런 “무엇인가”를 탁탁 짚어낸다. 대중가요 속에서 숨어있던 고전시가의 정서와 미학을 마치 유전자를 연구하듯 꺼내어주고, 느끼게 하더라.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황진이의 기나긴 동지 밤을 만나기도 하고, 추월 아래에 서보기도 했다. 그렇게 난 이 책을 긴 시간 동안 야금야금 아껴 읽으며 많은 문장과 노래를 온전히 즐겼던 것 같다.

『조선의 싱어송라이터』를 읽을 때, 각 장에 등장하는 고전시가를 검색해서 읽고, 대중가요를 찾아 들었다. 이 의식(?)은 『조선의 싱어송라이터』 각각의 장을 읽기 전에 한번, 읽고 난 후에 한 번 행해졌는데, 읽은 후의 몇몇 노래는 나를 울게 했다. 임재범의 『내가 견뎌온 날들』을 듣다가는 뭔가 알 수 없는 설움에 엉엉 울었고, 아이유의 『밤편지』는 벚꽃이 날리는 느낌에서, 버들이 바람에 이는 모습까지 더해지게 되더라. 이런 감정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해 이어지는 '감성의 연속성'이구나, 하고 새삼 깨달았다.

『조선의 싱어송라이터』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치부 당하던 고전시가를, 보다 친근한 감정으로 이끌어준다. 그 덕분에 나는 고전시가도, 우리 가요도 더욱 좋아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고전시가의 감성이 이어지지 않았더라면, 지금 케이팝은 지금과 같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고전시가가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문학과 감정의 연속성을 온전히 배울 수 있던 『조선의 싱어송라이터』. 부디 이 책이 더 많은 이들에게 읽혀서 우리 문장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특히 학생들이 고전시가를 배울 때, 더욱 제대로 이해하고 깊이 이해하는 데에 이 책이 큰 역할을 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의 싱어송라이터

이미경 지음
북극곰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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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억 속 고전시가는 영 낯설고 불편한 존재였다. 한자와 옛한글로 쓰인 텍스트는 아무리 읽고 되뇌어도 도무지 해석되지 않았다. 여기에 작품을 둘러싼 시대적 난맥상까지 곁들어지면 그야말로 미궁에 빠진 느낌이었다. 저자는 여기에 한 가지 이유를 덧붙인다.

고전시가는 원래 시(詩)와 가(歌)로 이루어진 작품이었다. 한마디로 노래였다는 얘기다. 우리가 알고 있는 향가, 고려가요, 한시, 시조, 판소리 같은 고전시가는 모두 노래였다. 그런데 근대의 지식 체계는 문학과 음악을 강제로 분리했고, 그 덕분에 고전시가는 음률을 잃어버렸다. 우리 기억 속 고전시가가 그처럼 어려웠던 이유는 악보를 잃어버린 반쪽짜리 노랫말에 밑줄을 쳐가며 분석하려 했기 때문이다.

출판사 책 소개

고전시가가 없었다면 케이팝도 없다
우리 기억 속 고전시가는 영 낯설고 불편한 존재였다. 한자와 옛한글로 쓰인 텍스트는 아무리 읽고 되뇌어도 도무지 해석되지 않았다. 여기에 작품을 둘러싼 시대적 난맥상까지 곁들어지면 그야말로 미궁에 빠진 느낌이었다. 저자는 여기에 한 가지 이유를 덧붙인다. 고전시가는 원래 시(詩)와 가(歌)로 이루어진 작품이었다. 한마디로 노래였다는 얘기다. 우리가 알고 있는 향가, 고려가요, 한시, 시조, 판소리 같은 고전시가는 모두 노래였다. 그런데 근대의 지식 체계는 문학과 음악을 강제로 분리했고, 그 덕분에 고전시가는 음률을 잃어버렸다. 우리 기억 속 고전시가가 그처럼 어려웠던 이유는 악보를 잃어버린 반쪽짜리 노랫말에 밑줄을 쳐가며 분석하려 했기 때문이다.
요즘 유행하는 대중가요를 생각해보자. 노랫말은 그저 리듬을 따라 흥얼거리면 그만이다. 그 누구도 노랫말을 이해하거나 외우기 위해 악보를 없애고 텍스트만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저자의 논리에 따르면 고전시가가 따분하고 고루하다는 생각도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 편견이다. 우리는 고전시가의 진면목, 완전체 모습을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악보를 잃어버린 고전시가와 우리 사이에 놓인 간극은 도저히 메울 수 없는 걸까? 웬걸, 저자는 이 질문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고전시가는 이미 오늘날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시가에 내재한 정서와 미학은 우리 민족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오늘날 대중문화로 찬란하게 꽃을 피워 올린다. 문화의 연속성, 유전자-문화 공진화성(Gene-Culture Coevolution)은 고전시가와 대중가요를 둘러싼 담론에서도 이견의 여지 없이 유효하다. 저자는 고전시가가 없었다면 케이팝도 없다고 단언한다. 따라서 우리 안에 깊이 잠들어 있는 고전시가를 깨워 함께 즐기면 될 일이다.
저자는 잃어버린 악보를 대체할 방편으로 스토리텔링에 주목한다. 어차피 수백 년 전 사람들의 내밀한 일상과 속마음을 모두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럴 때는 허풍선이나 거짓말쟁이가 되어도 좋다. 작품의 의도를 거스르거나 공인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온갖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잠시, 저자가 꾸며 놓은 유쾌하고 발칙한 고전시가 세계관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고전시가와 현대 대중가요의 매혹적인 앙상블

고려가요 〈서경별곡〉 속 여성 화자는 최선을 다해 사내를 붙들고, 기어이 떠나는 사내와 사공을 향해 “네 아내가 바람난지 몰라서 (…) 떠나는 배에 얹었느냐 사공아” 하며 악담을 퍼붓는다. 저자는 이 여성 화자를 우리가 배워온 전통적 여성상, 즉 운명 앞에 순응하고 체념하는 여성의 모습과 다르다고 해석한다. 나아가 전문직 여성 화자는 이별 앞에 깊이 슬퍼하다가 결국에 다시 일상을 살아내고 새로운 사랑을 찾을 거라고 장담한다. 떠나는 남자를 객관화하며 이별의 주체로 나서는 여성상은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에서 되살아난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별 앞에서 처연하고 비루해진다. 하지만 그녀는 슬픔을 딛고 일어나 이별의 주체로 나선다. “눈앞의 바다를 핑계로” 이별하려는 남자에게, 여자는 “뱃고동 소리도 울리지” 말라고 냉정하게 경고한다. 은유적인 표현을 벗겨내고 보면, 떠날 거면 구구절절 변명하지 말고 닥치라는 뜻이다. 심수봉식 냉소 속에는 체념이 아닌 각성이 있다. 현실을 직시하지만, 그에 굴복하지 않는다.
신윤복의 〈월하정인〉에 쓰여 있는 표제시의 두 번째 행 “兩人心事兩人知(양인심사양인지, 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만 알지)”는 조선 중기 문신 김명원의 칠언절구 한시 〈별리〉의 한 구절과 일치한다. 신윤복은 왜 김명원의 시구를 자신의 그림에 써 넣었을까? 저자에 따르면, 신윤복은 인간은 사랑의 감정 앞에 솔직해져야 하며, 이를 숨기거나 억압할 수 없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신윤복의 그림에는 성적 욕망에 대한 관음증적 시선과 남녀 간의 사랑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이 화풍의 정점에 선 작품이 〈월하정인〉이다. 신윤복이 보기에 양반들은 도덕과 체면을 앞세우며 사람들의 행위와 감정까지 구속하려 했다. 그러면서 정작 자기네들은 뒤에서 기생들과 노닥거렸다. 신윤복은 그런 양반들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하지만 김명인은 〈별리〉에서 양반으로서는 드물게 사랑의 감정을 솔직하게 내보였다. 양반이라는 외피를 벗고 보통의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드러낸 것이다. 신윤복은 그 〈별리〉를 자기 그림에 넣음으로써 우리네 보통의 정서가 얼마나 소중하고 위대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김명원 캐릭터는 현대 대중가요의 윤종신과 겹친다. 윤종신은 슬픔의 정서가 희석되지 않는 선에서 자질구레한 일상의 소회를 늘어놓으며, 그게 우리네 현실 속 이별 이야기라고 말한다. 더불어 윤종신은 오늘날 남성 일반의 평균치에 수렴하는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별 앞에서 고상한 척 덤덤한 척 폼 잡지 않고, 오히려 질척대고 휘청거린다. 그게 밉지 않은 이유는 우리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사랑과 이별 앞에 선 보통 사람들의 속내를 이토록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기회는 흔치 않다.
조선 중후기 문신 이정보는 고위 관료를 두루 거친 사대부다. 그런데 이 지체 높은 양반이 “밋붓터 끗까지 죠굠도 뷘틈업시, 찬찬 굽의 나게 휘휘 감겨 주야장상 듸트러져 감겨 잇셔” 하며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행위를 연상케 하는 사설시조를 천연덕스럽게 읊는다. 사설시조는 조선 후기 사회 변화에 맞물려 발화한 서민 문화의 한 갈래다. 이정보는 고리타분한 양반 문화에서 벗어나 스스로 조선 후기 르네상스의 마중물이 된다. 저자는 이정보가 눈부시게 탈피한 이유를 그이 안에 잠자고 있던 예인 기질에서 찾는다. 예인을 오늘날 대중문화 언어로 바꾸자면 ‘딴따라’이다. 딴따라 하면 박진영을 빼놓을 수 없다. 박진영은 저속하고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금기시되던 농밀한 사랑의 언어를 노래와 춤으로 스스럼없이 보여준다. 박진영은 예술을 고상하게 포장하여 극소수 사람들만 향유하던 시대가 저물고, 더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생산자이자 소비자로서 활약하는 대중문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린 신호탄이다. 이정보와 박진영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얼마나 자유롭게 노래하고 있는가.”
이 밖에도 《조선의 싱어송라이터》에서 홍랑이 꺾어 보낸 묏버들은 아이유가 띄워 보낸 반딧불로 되살아나고, 황진이의 당당한 에로티시즘은 이효리가 그 계보를 이어받고, 달팽이 집처럼 자그마한 초가집에서 사는 〈누항사〉의 몰락 양반은 발바닥이 쩍쩍 달라붙는 비닐장판 깔린 좁은 방에 사는 〈싸구려 커피〉의 백수 청년으로 환생하고, 판소리를 예술적 차원으로 끌어올린 신재효와 트로트를 대중가요의 주요 장르로 끌어올린 임영웅은 시대를 뛰어넘은 광대이자 영웅으로 등극한다.

고전시가의 르네상스를 꿈꾸다

저자는 적지 않은 분량의 이 책 곳곳에서 쉴 새 없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폭죽처럼 터지는 상상력은 때로는 난데없고 어지럽게 보이지만, 사실 매우 일관된 하나의 목적성을 지닌다. 바로 고전시가에 대한 기존 해석의 틀을 비틀고 전복하기이다. 예컨대 정지상의 한시 〈송인〉의 진짜 주인공은 비운의 도시 서경이고, 김민기는 고등학생 때 지은 〈친구〉가 사회상과 맞물려 공명하기를 바라며 앨범 《김민기》에 의도적으로 삽입했고, 김부용은 18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스스로 꾸민 무대에 올라 메소드 연기를 펼쳤고, 민요 〈천안삼거리〉는 원형 부재를 본질적인 특징으로 장착한 작품이고, 인순이는 안티 오리지널리티 전사로 거듭난다.
이러한 글쓰기 전략은 저자가 입시학원에서 고전문학 강사로 지내면서 느낀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앞서 확인했듯이, 오늘날 고전시가는 반쪽으로 나뉘고 박제되어 박물관에 진열되었다. 치열한 대학입시 교육 현장에서는 박제된 유물의 해설서를 들이밀며 한 자도 빠짐없이 외우라고 강요한다. 고전시가를 가르칠수록 고전시가의 진면목과 멀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저자는 고전시가의 르네상스를 간절히 꿈꿨을 것이다. 저자가 이 책 곳곳에서 보여준 파격적 상상력이 그 고민의 결과물이다. 저자는 수백 수천 년 시공간을 오가며 고전시가와 현대의 대중가요를 해체하고 재구성하고 접붙인다. 놀랍게도 저자의 스토리텔링을 거친 고전시가는 본디 모습이 훼손되지 않으며 오히려 무척이나 풍성하고 다채롭고 사랑스럽게 변모한다. 케이팝의 생동력과 확장성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확연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한편, 저자는 존중할 만한 기존 해석의 틀은 받아들이되, 고전시가를 다룬 기존 책에서 사용하던 고색창연한 표현법을 따르지 않는다. 그 대신 교육 현장에서 갈고닦은 생생한 언어로 대체한다. 덕분에 이 책은 후천적 고전문학 기피 증후군에 시달리는 일반인과 학생들을 위한 치유서로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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