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M.셀리 지음 | 문학동네 펴냄

프랑켄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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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6.18

페이지

3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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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권. 19세기 천재 작가 메리 셸리가 열아홉의 나이에 놀라운 상상력으로 탄생시킨 과학소설의 고전.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물리학자 프랑켄슈타인이 시체로 만든 괴물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인간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괴물은 추악한 자신을 만든 창조주에 대한 증오심에서 복수를 꾀한다.

과학기술이 야기하는 사회, 윤리적 문제를 다룬 최초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 카렐 차페크의 <R. U. R.> 등의 과학소설은 물론, [블레이드 러너] [터미네이터] 등 널리 알려진 과학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나사못이 관자놀이에 박힌 괴물의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는 20세기 대중문화사에서 무한히 재생산되며 <프랑켄슈타인>을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포소설 중 하나로 만들었다.

생명의 원리에 대한 호기심으로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실험을 시작한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사람의 시체로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킨다. 그러나 성공의 흥분이 가라앉기도 전에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만든 피조물의 괴기스러운 형상에 경악해 도피해버리고, 버려진 괴물은 무방비 상태로 세상에 나타난다.

흉물스러운 모습 때문에 인간들의 혐오와 분노, 폭력에 맞닥뜨리며 근근이 생명을 이어가던 괴물은 어느 허름한 집의 축사에 숨어 살며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관찰하고, 또 언어를 익혀 사유를 하고 독서 능력까지 습득한다. 지독한 외로움에서 벗어나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삶을 열망했던 괴물은 가족에게 다가가지만 돌아오는 것은 역시 엄청난 혐오감과 인간 사회에서의 추방뿐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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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빛님의 프로필 이미지

새벽빛

@saebyeokbit

자기가 심혈을 기울여 창조하고나서는 피조물이 생명을 얻어 움직이기 시작하자 생김새가 끔찍하다며 도망가버린 프랑켄슈타인을 보면서, 책임져야 할 누군가를 방임하고 유기하는 나쁜 어른들이 떠올랐다.

특히나 그 중에서도 어떤 부모들이 떠오른다. 마땅히 받아야 할 따뜻한 보살핌과 교육없이 긴 시간을 보낸 그 피조물은 괴물이 된다. 선하고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던 누군가가 어른의 무책임함으로 버려졌다는 이야기. 우리 주변의 많은 괴물들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렇다고 해서 프랑켄슈타인의 주변인물을 몽땅 살해하는 이 괴물의 행동은 이해받을 수 있는가?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들고 그에게서 도망다니면서 과학의 힘은 함부로 탐구할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고 한다.

프랑켄슈타인의 주변 사람들을 연쇄적으로 살해하는 이 괴물 역시 매우 괴롭다. 죄책감으로 인한 괴로움을 느끼면서도프랑켄슈타인에게 한 협박의 약속을 지키려고 계속해서 살인해 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언제부탄가 이 악을 자신의 것으로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리고, 2025년 발표한 영화 <프랑켄슈타인>은 소설에 비해 모성을 매우 부각시킨다. 소설과 달리 괴물의 옆에 엘리자베스라는 여인이 정을 주는 장면이 나온다. 엘리자베스와 살던 때의 이 피조물은 선하다. 반면 이 가련한 피조물의 창조자는 피조물에게 자기 이름만 알려주고 피조물을 죄수 다루듯 수갑을 채우고 폭압적으로 대한다.

생각할 점들이 매우 많은 소설이다
직접 서술되는 심리묘사도 탁월하다.

프랑켄슈타인

M.셀리 지음
문학동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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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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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민(상태:카뮈)님의 프로필 이미지

이수민(상태:카뮈)

@smlee682

“나는 당신의 아담이 되었어야 했는데, 오히려 타락한 천사가 되어버렸습니다.”

괴물이 빅터에게 이 말을 건네는 대목에서 오래 머물렀다. 그는 자신을 처음부터 악마였다고 말하지 않는다. 자신은 원래 아담이어야 했다고, 창조자의 손에서 막 태어나 아무것도 미워할 줄 몰랐던 최초의 인간이어야 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담에게는 자신을 바라봐주는 신이 있었고, 그에게는 눈을 뜨는 순간 등을 돌린 창조자만 있었다. 그래서 이 문장은 자신의 악을 변명하는 말이라기보다, 자신이 어떻게 악에 도달했는지를 되묻는 문장처럼 읽혔다. <프랑켄슈타인>이 끝내 묻는 것도 괴물은 왜 악한가가 아니라, 한 존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에 더 가까운 것인지 모른다.

빅터의 가장 큰 죄는 생명을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생명이 눈을 뜬 이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그는 생명을 탄생시키는 순간까지 자신의 모든 지성과 열정을 쏟지만, 정작 자신이 만든 존재가 첫 숨을 내쉬자 공포에 질려 달아난다. 그 장면을 읽으며 나는 창조에는 언제나 그림자처럼 책임이 따라붙는다는 생각을 했다. 무언가를 세상에 존재하게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시작의 원인이 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이 자신의 손을 떠난 뒤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지까지 어느 정도 감당하겠다는 약속에 가깝다. 그러나 빅터는 창조의 황홀만 원했을 뿐, 그 뒤에 따라오는 시간은 원하지 않았다. 씨앗을 땅에 묻고 싹이 트는 순간 땅을 버린 셈이다. 그리고 그 버려진 자리에서 자란 것이 결국 괴물의 분노였다.

그래서 숲속 오두막에서 인간 가족을 몰래 바라보며 말과 감정을 배우는 괴물의 모습은 더욱 처연하다. 그는 처음부터 증오를 배운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추위에 떨면 장작을 가져다놓고, 가족이 서로를 위로하면 그 모습을 보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익힌다. 그는 인간에게서 인간다움을 배웠고, 자신도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가 오랜 시간 익혀온 언어와 선의와 다정함은 얼굴 하나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의 내면에 쌓인 모든 것은 외모라는 한 장의 문 앞에서 멈춰 선다.

나는 이 장면에서 괴물이 태어나는 두 번째 순간을 본 것 같았다. 첫 번째 탄생이 빅터의 실험실에서 육체를 얻은 순간이었다면, 두 번째 탄생은 인간들의 눈 속에서 자신이 ‘괴물’이라는 사실을 배운 순간이었다. 사람은 혼자서만 자신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배운다. 아무리 사랑받고 싶어 하는 존재라 해도 세상이 계속해서 너는 사랑받을 수 없는 모습이라고 대답한다면, 어느 순간 그는 그 대답을 자기 안으로 들여놓을지도 모른다. 괴물의 흉측한 얼굴보다 더 끔찍한 것은 어쩌면 그 얼굴을 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되돌려준 공포였을 것이다. 거울은 얼굴을 비출 뿐이지만, 타인의 시선은 때때로 한 존재의 운명까지 비춘다.

그렇다고 그의 살인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소설은 악을 이해하는 일과 악을 용서하는 일이 서로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집요하게 보여준다. 괴물의 폭력은 분명 그의 것이지만, 그 폭력이 자라날 수 있었던 토양까지 온전히 그의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버려짐과 모욕, 외로움과 거절이 켜켜이 쌓이면서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은 조금씩 사랑할 수 없다면 두려움이라도 주겠다는 욕망으로 뒤집힌다. 처음에는 누군가 자신의 손을 잡아주기를 바라던 존재가, 끝내 그 손으로 누군가의 목을 조르게 되는 것이다. 그 변화를 지켜보고 있으면 악이란 처음부터 심장 속에 박혀 있는 검은 돌이라기보다, 오래 방치된 상처 위에 서서히 자라나는 딱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빅터와 괴물이 서로를 쫓아 얼어붙은 극지까지 가는 후반부는 두 사람이 점점 서로를 닮아가는 과정처럼 보였다. 창조자는 자신이 만든 생명을 없애기 위해 삶 전체를 걸고, 피조물은 자신을 버린 창조자를 파괴하는 데 자신의 존재 전체를 건다. 한 사람은 괴물을 만들었고, 다른 하나는 괴물이 되었지만, 마지막에는 누가 누구의 삶을 만들어낸 것인지조차 흐릿해진다. 그들은 서로를 가장 증오하면서도 서로 없이는 자신을 설명할 수 없는 관계가 된다. 마치 서로 등을 돌린 채 같은 사슬의 양 끝을 잡고 있는 것처럼, 멀어지기 위해 달릴수록 오히려 더 단단하게 묶인다.

이 관계를 보고 있으면 나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말까지 떠올리게 된다. 물론 빅터와 괴물의 관계를 단순히 부모와 자식으로 환원할 수는 없지만, 피조물이 창조자에게 처음 요구한 것이 거창한 구원이나 권력이 아니라 자신을 인정해달라는 것이었다는 점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자신도 이 세계에 있어도 되는 존재라고 단 한 번만 말해달라는 요구. 그러나 빅터는 끝내 그 말을 해주지 못한다. 사랑의 반대말이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처럼, 괴물을 가장 깊게 망가뜨린 것은 빅터의 증오보다도 처음부터 그를 자신의 책임 밖으로 밀어내려 했던 태도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빅터가 죽은 뒤, 괴물이 그의 시신 앞에서 울며 자신 역시 사라지겠다고 말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이 비극은 이상할 만큼 조용해진다. 복수는 끝났지만 아무것도 회복되지 않는다. 오히려 복수의 대상이 사라지고 나서야 괴물은 자신이 그토록 미워했던 존재가 자기 삶을 붙들고 있던 마지막 끈이었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미움조차 관계의 한 형태였다. 빅터는 괴물을 통해 자신의 죄를 보았고, 괴물은 빅터를 통해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확인했다. 서로를 없애려 했던 두 존재가 실은 서로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소설에서 가장 잔인한 역설처럼 느껴졌다.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 남은 것은 결국 책임이라는 단어였다. 우리는 무언가를 시작하는 순간에는 쉽게 사랑을 말한다. 아이를 낳고, 작품을 만들고, 관계를 시작하고, 어떤 생각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러나 창조보다 훨씬 긴 것은 그 이후의 시간이다. 시작은 한순간이지만 책임은 그 시작이 만들어낸 시간이 끝날 때까지 따라온다. 어쩌면 빅터가 감당하지 못한 것도 바로 그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문득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을 생각한다. 오늘날 그 이름은 흔히 괴물을 가리키는 말처럼 쓰이지만, 정작 소설 속에서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 그를 만들어낸 사람의 이름이다. 나는 이 오래된 착각이 이상할 만큼 이 작품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눈앞에 나타난 흉측한 결과에는 쉽게 이름을 붙이면서, 그 결과를 낳은 원인은 자주 잊는다. 괴물이 나타나면 괴물을 손가락질하지만, 그를 만들고 버린 손이 누구의 것이었는지는 좀처럼 묻지 않는다.

그래서 <프랑켄슈타인>을 다 읽고 나면 괴물의 얼굴보다 빅터의 등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자신이 만들어낸 생명이 처음 눈을 뜨던 순간, 그 생명을 향하지 않고 반대편으로 달아나던 한 인간의 등을. 어쩌면 괴물은 그 순간 이미 완성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실험대 위에서가 아니라, 창조자가 뒤돌아선 바로 그 자리에서.

프랑켄슈타인

M.셀리 지음
문학동네 펴냄

4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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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

@hanw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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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M.셀리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읽었어요
6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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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권. 19세기 천재 작가 메리 셸리가 열아홉의 나이에 놀라운 상상력으로 탄생시킨 과학소설의 고전.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물리학자 프랑켄슈타인이 시체로 만든 괴물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인간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괴물은 추악한 자신을 만든 창조주에 대한 증오심에서 복수를 꾀한다.

과학기술이 야기하는 사회, 윤리적 문제를 다룬 최초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 카렐 차페크의 <R. U. R.> 등의 과학소설은 물론, [블레이드 러너] [터미네이터] 등 널리 알려진 과학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나사못이 관자놀이에 박힌 괴물의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는 20세기 대중문화사에서 무한히 재생산되며 <프랑켄슈타인>을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포소설 중 하나로 만들었다.

생명의 원리에 대한 호기심으로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실험을 시작한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사람의 시체로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킨다. 그러나 성공의 흥분이 가라앉기도 전에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만든 피조물의 괴기스러운 형상에 경악해 도피해버리고, 버려진 괴물은 무방비 상태로 세상에 나타난다.

흉물스러운 모습 때문에 인간들의 혐오와 분노, 폭력에 맞닥뜨리며 근근이 생명을 이어가던 괴물은 어느 허름한 집의 축사에 숨어 살며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관찰하고, 또 언어를 익혀 사유를 하고 독서 능력까지 습득한다. 지독한 외로움에서 벗어나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삶을 열망했던 괴물은 가족에게 다가가지만 돌아오는 것은 역시 엄청난 혐오감과 인간 사회에서의 추방뿐이었는데…

출판사 책 소개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프랑켄슈타인이
과학기술로 자멸해가는 인류에 던지는 최초의 경고


19세기 천재 여성 작가 메리 셸리가 열아홉의 나이에 놀라운 상상력으로 탄생시킨 과학소설의 고전.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물리학자 프랑켄슈타인이 시체로 만든 괴물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인간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괴물은 추악한 자신을 만든 창조주에 대한 증오심에서 복수를 꾀한다. 과학기술이 야기하는 사회, 윤리적 문제를 다룬 최초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 카렐 차페크의 『R. U. R.』 등의 과학소설은 물론, <블레이드 러너> <터미네이터> 등 널리 알려진 과학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나사못이 관자놀이에 박힌 괴물의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는 20세기 대중문화사에서 무한히 재생산되며 『프랑켄슈타인』을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포소설 중 하나로 만들었다.

2009년 뉴스 위크 선정 ‘역대 세계 최고의 명저 100’
2003년 옵서버 선정 ‘역대 최고의 소설 100’

19세기 천재 여성 작가 메리 셸리가
열아홉 살의 놀라운 상상력으로 탄생시킨 과학소설의 고전


‘프랑켄슈타인’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거대한 머리에 툭 튀어나온 이마, 꿰매어 붙인 것 같은 섬뜩한 긴 흉터, 관자놀이에 비죽 튀어나온 나사못. 그런데 사실 ‘프랑켄슈타인’은 이 끔찍한 형상의 괴물을 창조한 사람의 이름이고, 괴물은 이름이 없다. 그럼에도 흉측하고 괴기스러운 모습을 비유할 때‘프랑켄슈타인’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1931년 발표된 영화 <프랑켄슈타인>에서 보리스 칼로프가 분한 괴물의 강렬한 이미지 덕분일 것이다.
『프랑켄슈타인』만큼 20세기 대중문화사에서 무한 재생산된 원작소설도 드물다. 영화, 연극, 만화, 텔레비전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에서 그 소재가 무수히 차용되었고,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 카렐 차페크의 『R. U. R.』 등의 과학소설은 물론, <블레이드 러너> <터미네이터> 등 유명 영화 역시 『프랑켄슈타인』의 영향을 받았다. 불경한 기술을 빌려 창조주를 사칭함으로써 멸절의 위기를 자초하는 인류를 일찌감치 예견하고 이에 대해 경고를 보내는 『프랑켄슈타인』은 분명 ‘과학소설의 고전’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우리 본성의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일깨워 소름 돋게 만드는 이야기, 읽는 이가 겁에 질려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피가 얼어붙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_메리 셸리

메리 셸리는 1816년 제네바에 머무르던 시절, 시인 바이런 경, 그리고 바이런의 주치의였던 존 폴리도리 박사와 함께 지루한 우기의 밤을 흥미롭게 해줄 괴담을 하나씩 짓기로 약속하고 작품을 구상했다. 한밤중 머리맡에 출몰하는 악몽처럼 소름 끼치는 공포를 표현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열아홉의 나이에 엄청난 상상력으로 인간이 창조한 괴물의 이야기 『프랑켄슈타인』을 탄생시킨 메리 셸리는 그야말로 천재적인 여성 작가였다.
메리 셸리는 1831년에 기존 1818년 판본을 대대적으로 개정해 새로운 『프랑켄슈타인』을 출간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1831년 판본이 연구와 번역의 원전으로 쓰이는 일이 많았으나, 이 판본이 원래의 작품 구상과 심정적으로 거리를 두게 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된 『프랑켄슈타인』은 1818년 초판을 번역 대본으로 삼았다.

‘다르다’는 이유로 절대 고독에 빠진 괴물의 무수한 얼굴들

생명의 원리에 대한 호기심으로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실험을 시작한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사람의 시체로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킨다. 그러나 성공의 흥분이 가라앉기도 전에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만든 피조물의 괴기스러운 형상에 경악해 도피해버리고, 버려진 괴물은 무방비 상태로 세상에 나타난다. 흉물스러운 모습 때문에 인간들의 혐오와 분노, 폭력에 맞닥뜨리며 근근이 생명을 이어가던 괴물은 어느 허름한 집의 축사에 숨어 살며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관찰하고, 또 언어를 익혀 사유를 하고 독서 능력까지 습득한다. 지독한 외로움에서 벗어나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삶을 열망했던 괴물은 가족에게 다가가지만 돌아오는 것은 역시 엄청난 혐오감과 인간 사회에서의 추방뿐이었다.
자신을 이토록 흉측한 존재로 만든 창조주에 대한 복수심으로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의 가족을 조금씩 파괴해나간다. 프랑켄슈타인을 대면한 자리에서 괴물은 자신과 똑같은 ‘이성(異性)’의 존재를 만들어달라고 창조주에게 요청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은 끝내 괴물의 간청을 들어주지 않는다. 극에 달한 괴물의 분노는 엄청난 비극을 불러일으킨다.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이 육성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실로 절절하다.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 사회에서 내쳐져 절대 고독 상태에 빠진 괴물, 자신과 닮은 존재와 더불어 단란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자 했던 괴물의 절규는 그가 저지르는 살육 행위를 정당화해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납득시키기에는 충분하다.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을 향유하면서도 인간과 어울리지 못했던 괴물의 분노는 창조주인 프랑켄슈타인을 희생자로만 볼 수 없게 하며, 인간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독특한 구조를 취한다. 새빌 부인에게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를 전하는 로버트 월턴의 편지, 프랑켄슈타인의 가족이 보내는 여러 서한들, 괴물이 육성으로 직접 전하는 자신의 이야기 등, 여러 겹의 액자 형식과 다양한 구성으로 깊이 있는 서사 구조를 취하며 텍스트의 깊이를 더한다.
『프랑켄슈타인』은 사랑과 결속이 결핍된 가정에서 자라난 메리 셸리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메리 셸리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은 후 자신을 질시하는 계모와 이복형제로 인해 가족의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며 자랐다. 그러한 가정에서 교육의 기회마저 박탈당해 독학으로 지적 허기를 채워나가야 했다. 메리 셸리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속에서 빅토르 프랑켄슈타인과 엘리자베트가 자유분방하게 수학하는 모습이나, 괴물이 우연히 얻게 된 책들을 독파해나가는 모습을 그려내며 ‘교육’의 중요성을 제기한다. 또한 서로를 극진히 아끼며 더없이 화목했던 프랑켄슈타인의 가족, 자신을 닮은 존재와 함께하는 삶을 꿈꾸었던 괴물의 절규에서 ‘행복한 가정’에 대한 작가의 열망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프랑켄슈타인』은 단순한 과학소설을 넘어 19세기 유럽 문화의 화두를 나타내는 중요한 작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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