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부터의 수기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 민음사 펴냄

지하로부터의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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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26

페이지

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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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세계에서 전환점이 되었으며, 최초의 실존주의 소설이라 일컬어지는 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 자신은 누구보다 똑똑하다고 자부하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시대의 철학도 이념도 모두 경멸하고, 나아가 자기 자신을 가장 경멸하는 지식인인 주인공 '지하 인간'이 등장한다.

소설은 1부 '지하'와 2부 '진눈깨비에 관하여'로 구성되어 있다. '지하'는 "나는 아픈 인간이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라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그는 마흔 살가량의 남자로, 이십 년쯤 전에 하급 관리로 일했으나 약간의 유산을 물려받은 이후 줄곧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살아왔다. 이십 년간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지하에 틀어박혀 있었다.

'진눈깨비에 관하여'에서는 그가 이십 대에 겪었던 사건 두 가지를 들려준다. 하나는 초대받지도 않은 동창생들 모임에 굳이 참석해 그들에게 무시를 당했던 일이다. 다른 하나는 유곽에서 만난 매춘부 리자에게 온갖 잔인한 말을 늘어놓았다가 그녀가 집으로 찾아올까 노심초사했던 일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미학적, 시학적 실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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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경우 쾌감은 바로, 자신의 굴욕을 너무도 선명하게 의식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었다. 즉, 막다른 벽에 다다랐다는 것을, 이건 추악하기 짝이 없지만 달리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을, 더 이상 출구도 없고 절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없다는 것을, 설령 뭐든 다른 것으로 변할 수 있는 시간과 믿음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할지라도 분명히 자기 스스로 그 변화를 원하지 않을 것임을, 설령 원한다고 한들 사실상 마땅히 변할 대상이 전혀 없을 테니까 결국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느끼기 때문에 쾌감이 생기는 것이다.

📃 그나저나 여러분, 내 심술의 요점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겠는가? 문제의 핵심이, 그러니까 가장 지저분한 것이 뭐냐 하면, 나란 놈은 심술궂은 인간도 아닐뿐더러 심지어 악에 받친 인간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저 괜스레 참새들이나 놀래는 주제에 그걸 자기 위안거리로 삼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시시각각, 심지어 울화통이 터져 미칠 것 같은 순간에도 속으로 수치스럽게 의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 그렇다, 19세기의 현명한 인간은 정신적으로도 우선적으로 성격이 없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반면 성격이 있는 인간, 즉 활동가는 우선적으로 꽉 막힌 존재가 되어야 한다.

📃 물론 그래 본들 생쥐로선 한 손을 내젓고 그 자신도 믿지 않는 썰렁한 경멸의 미소를 지으며 창피스럽게 자신의 쥐구멍 속으로 기어 들어갈 도리밖에 없다. 그곳, 구린내 나고 추악한 자신의 지하에서 우리 생쥐는 모욕과 조롱에 짓이겨진 채로 그 즉시 싸늘한 독기를 품은, 무엇보다도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을 악의 속으로 침잠한다. 그러곤 사십 년을 내리 자신의 모욕을 가장 극악하고 수치스러운 세부 사항까지 죄다 기억해 내고 그때마다 자기 쪽에서 훨씬 더 수치스러운 세부 사항을 덧붙이면서 자신의 환상을 통해 표독스럽게 스스로를 약 올리고 짜증나게 만들 것이다.

📃 오, 만약 내가 오직 게을러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라면. 맙소사, 그렇다면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존경했을까. 비록 게으름일망정 뭐라도 나의 내부에 지닐 수 있다는 바로 그 이유만으로도 나 자신을 존경했을 것이다. 비록 하나라도 나 자신이 확신할 수 있는 긍정적인 성질이 나의 내부에 있다면 말이다.

📃 이성은 오직 이성일 뿐이어서 오직 인간의 이성적 판단력만을 만족시킬 뿐이지만, 욕망은 삶 전체, 즉 이성과 온갖 긁적임을 포함하는, 인간의 삶 전체의 발현이다.

📃 도무지 의식이 발달한 인간이 조금이라도 자기 자신을 존경할 수 있겠소?

📃 나는 밤마다 고립 속에서 남몰래 두려움에 떨며 더러운 방탕에 빠지곤 했는데, 가장 역겨운 순간에도 수치심은 나를 떠나지 않았으며 그런 순간이면 심지어 나 자신을 저주하기에 이르렀다. 그 무렵에 이미 나는 내 영혼 속에 지하를 담고 다녔다.

📃 천하기 짝이 없는 학우들이 박수갈채를 보내는 와중에 나만 그놈과 한판 붙었는데, 이건 절대 그 처자들이나 그 아버지들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그냥 저런 버러지 같은 놈이 박수갈채를 받았기 때문이다.

지하로부터의 수기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민음사 펴냄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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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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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부터의 수기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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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부터의 수기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민음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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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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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세계에서 전환점이 되었으며, 최초의 실존주의 소설이라 일컬어지는 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 자신은 누구보다 똑똑하다고 자부하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시대의 철학도 이념도 모두 경멸하고, 나아가 자기 자신을 가장 경멸하는 지식인인 주인공 '지하 인간'이 등장한다.

소설은 1부 '지하'와 2부 '진눈깨비에 관하여'로 구성되어 있다. '지하'는 "나는 아픈 인간이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라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그는 마흔 살가량의 남자로, 이십 년쯤 전에 하급 관리로 일했으나 약간의 유산을 물려받은 이후 줄곧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살아왔다. 이십 년간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지하에 틀어박혀 있었다.

'진눈깨비에 관하여'에서는 그가 이십 대에 겪었던 사건 두 가지를 들려준다. 하나는 초대받지도 않은 동창생들 모임에 굳이 참석해 그들에게 무시를 당했던 일이다. 다른 하나는 유곽에서 만난 매춘부 리자에게 온갖 잔인한 말을 늘어놓았다가 그녀가 집으로 찾아올까 노심초사했던 일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미학적, 시학적 실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출판사 책 소개

“구린내 나고 추악한 지하”에서 뿜어내는 싸늘한 독기,
세상에 대한 경멸과 증오가 자신을 향한 저주로 뒤바뀐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1부 「지하」와 2부 「진눈깨비에 관하여」로 구성되어 있다. 「지하」는 “나는 아픈 인간이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라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그는 마흔 살가량의 남자로, 이십 년쯤 전에 하급 관리로 일했으나 약간의 유산을 물려받은 이후 줄곧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살아왔다. 학창 시절의 친구도 없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친분을 쌓지 못해 인간관계라 할 만한 것은 전혀 없다. 그는 이런 상황에 거의 아무런 불만이 없고 오히려 모든 이들을 혐오할 뿐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들의 작은 행동에도 심한 모욕을 느끼며 온갖 방법으로 복수할 궁리를 한다. 그러나 그뿐, 실제로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그렇게 이십 년간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지하에 틀어박혀 있었다.

「진눈깨비에 관하여」에서는 그가 이십 대에 경험했던 일들을 들려준다. 한 장교와 당구장에서 우연히 마주치는데, 장교는 길을 막고 있는 그를 물건처럼 집어 들어 옆에다 내려놓은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제 갈 길을 간다. 주인공은 이 일로 크나큰 치욕을 느끼고 장교에게 복수할 궁리를 시작한다. 그를 비방하는 소설도 쓰고 결투를 신청하는 편지도 쓰지만, 둘 다 거기서 그친다. 또 다른 일화는 초대받지 않은 동창생들 모임에 참석했던 이야기이다. 학교에 다닐 때는 물론이고 그 후에도 교류가 없었던 동창생들이 환송회를 연다고 하자 돈까지 빌려 가며 부득부득 그 자리에 낀다. 그러나 막상 모임에서는 같이 어울리지도 못하고 엉뚱한 행동만 할 뿐이다. 주인공은 그들을 쫓아 유곽에까지 따라가는데, 거기서 리자라는 매춘부를 만난다. 무슨 말을 해도 뚱한 반응을 보이는 리자의 태도에 약이 올라, 그녀의 미래에 대해 온갖 잔인한 말을 퍼부어 그녀를 울리고 만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며칠 동안이나 리자가 찾아올까 봐 노심초사하다가 하인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는데, 바로 그 순간에 리자가 그를 방문한다. 그녀가 그런 모습을 목격한 것에 수치심을 느끼고 그녀를 증오하게 된다.

자신은 누구보다 똑똑하다고 자부하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시대의 철학도 이념도 모두 경멸하고, 나아가 자기 자신을 가장 경멸하는 주인공. 언제나 조롱과 경멸을 자초해 놓고는 그들에 대한 증오로 어쩔 줄을 몰라 하다 결국에는 스스로를 괴롭히고 저주하는 지경에까지 자신을 몰고 간다.

구린내 나고 추악한 자신의 지하에서 우리 생쥐는 모욕과 조롱에 짓이겨진 채로 그 즉시 싸늘한 독기를 품은, 무엇보다도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을 악의 속으로 침잠한다. 그러곤 사십 년을 내리 자신의 모욕을 가장 극악하고 수치스러운 세부 사항까지 죄다 기억해 내고 그때마다 자기 쪽에서 훨씬 더 수치스러운 세부 사항을 덧붙이면서 자신의 환상을 통해 표독스럽게 스스로를 약 올리고 짜증나게 만들 것이다. 그놈 스스로 자신의 공상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어쨌거나 모든 것을 기억해 내고 모든 것을 곱씹고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있었다는 구실을 대며 자신에게 불리한 얼토당토않은 것만 잔뜩 지어내고 어느 것 하나 곱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본문 중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미학적, 시학적 실험
19세기 리얼리즘 소설의 문법을 비켜 나간 의식과 실존의 새로운 지평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가로서 주목받기 시작하던 스물여덟 살부터 팔 년 동안 유형 생활을 한다. 사 년을 감옥에서 보냈으며 사 년 동안은 시베리아에서 복무했는데, 특히 감옥 생활을 하는 중에 허락됐던 책은 ‘성경’이 유일했다고 한다. 이 공백기가 지난 후 그의 작품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을 띠게 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특히 퇴역한 지 오 년이 지난 1864년에 발표한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는 “그동안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소설 형식을 선보였다. 기존의 소설 문법뿐 아니라 세계 인식의 틀마저 배반하면서 소설 장르에 대한 실험을 감행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런 결과 때문이다. 또한 『죄와 벌』이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과 같은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의 대작과 비교했을 때 이 작품은 중편소설에 가까운 분량이지만, 평론가들은 그의 다른 작품보다도 훨씬 난해하고 모던하며 문제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나는 쓴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게다가 이 ‘나’는 주인공-영웅이 되기는커녕 ‘반(半)주인공’, 심지어 ‘반(反)주인공’에, 그야말로 무위도식하는 백수에 불과하지만 오직 쓰는 행위를 통해 세계를 내 안에 담은 주인공으로 등극한다. 바로 이것이 발자크적 리얼리즘에 지배되던 19세기 소설 문법을 비켜나가 『지하로부터의 수기』만이 보여 준, 심지어 발견한 우리 의식과 실존의 새로운 지평이기도 하다.(「작품 해설」 중에서)


젊고 감각적인 번역으로 다시 읽는 『지하로부터의 수기』

이 책의 번역자인 김연경은 서울대학교와 모스크바 국립사범대학교에서 도스토예프스키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젊은 학자이다. 또한 21세에 등단해 소설집 『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소설』, 『내 아내의 모든 것』, 장편소설 『고양이의 이중생활』 등의 작품을 발표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젊은 학자이자 소설가로서, 김연경은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감각적으로 번역해 냈다.

또한 고심 끝에 기존에 흔히 쓰이던 ‘지하 생활자의 수기’라는 제목 대신 ‘지하로부터의 수기’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작품의 원제목은 ‘Записки из подполья(Notes from (the) Underground)’로, ‘지하 생활자의 수기’는 일본어 번역(‘地下生活者の手記’)을 그대로 차용한 제목이다. 일견 자연스럽고 익숙한 듯한 이 제목 대신 ‘지하로부터의 수기’라는 제목을 택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우선은 작품의 원제의 의미를 최대한 가깝게 전달하려 했다. 그리고 이 작품의 주인공인 ‘지하 인간’에게는 건강하고 활기찬 느낌을 주는 ‘생활’이라는 것이 결여되어 있다. 그의 수기는 그저 그의 ‘실존’, 그리고 그의 ‘지하’에서 흘러나온 고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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