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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인 책
출간일
2013.3.28
페이지
256쪽
상세 정보
라 투레트 수도원은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롱샹 성당과 더불어 전 세계 건축학도들이 순례하는 ‘건축의 성지’이다. 대만의 사진작가 니콜라스 판은 라 투레트 수도원의 초청을 받아 수개월 간 머물면서, 종교와 예술을 찾아 떠난 영혼의 여정을 떠났다. 이 책은 그 영혼의 여정을 글과 사진으로 그려낸 건축 기행이자 사진 기행이다.
사진가이자 가톨릭 신자인 저자는 이 수도원을 몹시 불편하게 여겼고,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구나 르 코르뷔지에는 무신론자였다. 수도원은 전통적인 종교 건축물과는 겉모습과 공간 구조가 판이하게 다른, 괴짜 무신론자가 설계한 이상한 괴물처럼 보였던 것이다.
작가는 라 투레트 수도원을 이해하기 위해, 이미 역사 속의 전설이 된 르 코르뷔지에와 쿠 튀리에 신부를 찾아나섰고, 롱샹 성당과 아시 성당, 마티스 성당을 순례했으며, 도미니코회를 비롯해 유럽의 가톨릭 역사를 공부하며, 이를 소개하고 있다. 라투레트 수도원과 롱샹 성당을 담아낸 작품 100여 점을 포함해 총 160여 점의 사진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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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Ha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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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 언덕 위 수도원 = corbusier's last 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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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투레트 수도원은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롱샹 성당과 더불어 전 세계 건축학도들이 순례하는 ‘건축의 성지’이다. 대만의 사진작가 니콜라스 판은 라 투레트 수도원의 초청을 받아 수개월 간 머물면서, 종교와 예술을 찾아 떠난 영혼의 여정을 떠났다. 이 책은 그 영혼의 여정을 글과 사진으로 그려낸 건축 기행이자 사진 기행이다.
사진가이자 가톨릭 신자인 저자는 이 수도원을 몹시 불편하게 여겼고,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구나 르 코르뷔지에는 무신론자였다. 수도원은 전통적인 종교 건축물과는 겉모습과 공간 구조가 판이하게 다른, 괴짜 무신론자가 설계한 이상한 괴물처럼 보였던 것이다.
작가는 라 투레트 수도원을 이해하기 위해, 이미 역사 속의 전설이 된 르 코르뷔지에와 쿠 튀리에 신부를 찾아나섰고, 롱샹 성당과 아시 성당, 마티스 성당을 순례했으며, 도미니코회를 비롯해 유럽의 가톨릭 역사를 공부하며, 이를 소개하고 있다. 라투레트 수도원과 롱샹 성당을 담아낸 작품 100여 점을 포함해 총 160여 점의 사진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출판사 책 소개
종교와 예술을 찾아가는 영혼의 여정
라 투레트 수도원은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롱샹 성당과 더불어 전 세계 건축학도들이 순례하는 ‘건축의 성지’이다. 대만의 사진작가 니콜라스 판范懿舜은 라 투레트 수도원의 초청을 받아 수개월 간 머물면서, 종교와 예술을 찾아 떠난 영혼의 여정을 떠났다. 이 책은 그 영혼의 여정을 글과 사진으로 그려낸 건축 기행이자 사진 기행이다. 사진가이자 가톨릭 신자인 저자는 이 수도원을 몹시 불편하게 여겼고,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구나 르 코르뷔지에는 무신론자였다. 수도원은 전통적인 종교 건축물과는 겉모습과 공간 구조가 판이하게 다른, 괴짜 무신론자가 설계한 이상한 괴물처럼 보였던 것이다. 작가는 라 투레트 수도원을 이해하기 위해, 이미 역사 속의 전설이 된 르 코르뷔지에와 쿠튀리에 신부를 찾아나섰고, 롱샹 성당과 아시 성당, 마티스 성당을 순례했으며, 도미니코회를 비롯해 유럽의 가톨릭 역사를 공부하며, 이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과 건축, 빛으로 만나는 황홀한 교감!
사진은 빛의 예술이다. 어느 장르의 예술보다 빛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사진가인 저자는 ‘빛의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가 창조한 건축물의 빛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작가에 따르면, 롱샹 성당은‘건축의 창세기’라고 부를 만하다. 창세기에 빛이 생긴 것처럼, 건축에 빛을 탄생시켰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라 투레트 수도원의 지하 성당은 빛과 색이 향연을 펼치는 마술과 같은 공간이다. 건축에 있어서 빛과 공간의 중요성이 강조된 이 두 건축물을 담아낸 작품들이 100여 점 포함해 총 160여 점의 사진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무신론자 르 코르뷔지에와 쿠튀리에 신부
건축 거장 르 코르뷔지에의 종교 건축물들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오늘날 유럽에서는 전통적 종교는 쇠락하고, 건축가가 설계한 수도원과 성당이 그 세속적 명성을 잇고 있다.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을 보기 위해 수많은 건축학도와 애호가들이 몰려들고 있지만, 그 건축을 가능하게 한 종교와 문화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런데 르 코르뷔지에의 걸작들은 쿠 튀리에 신부의 종교적 신념과 예술적 안목이 없었더라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회의 반대를 설득하고, 무신론자 르 코르뷔지에의 천재성을 끌어내 걸작품들을 탄생시킨 이가 바로 쿠튀리에 신부이다. 저자는 이런 과정을 추적하여 밝혀내며, 종교와 예술의 새로운 만남과 성취에 주목하고 있다.
쿠 튀리에 신부, 1867~1954
쿠 튀리에 신부는 남다른 예술적 재능과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젊은 시절 화가를 꿈꾸었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다리에 부상을 입고 일찍 전역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전쟁이 끝난 후 쿠튀리에는 파리의 크고 작은 성당을 찾아다녔고, 도미니코회 소속으로 신부가 되었다. 쿠튀리에 신부는 예술가에게 종교가 있건 없건 모두 하느님의 자손이므로 하느님을 위해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생각이었다.
“예술가도 인간이므로 당연히 죄인이다. 그들의 죄가 보통 사람들보다 더 두드러진다면 그것은 그들이 남들보다 훨씬 충만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은 문화이며 종교의 연장선상에 있다. 어떤 예술가가 공산당원을 자처한다면 그는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는 공산예술가일 것이다. 그들이 자유롭게 우리를 위해 일하고, 우리 교회의 벽화를 그리도록 해 주어야 한다. 예술가들은 창작을 통해 오백 년 동안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놀라운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다. 심한 배척을 받는 추상파 예술가들에게도 바흐의 오르간음악처럼 교회에 그들의 작품이 끼어들 곳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본문 75페이지)
“모두 다 생명력이 없고 퀴퀴한 먼지를 뒤집어 쓴 아카데미즘일 뿐입니다. 모방 속의 모방은 현대인들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마네, 세잔, 르누아르, 고흐, 마티스, 피카소, 브라크 같은 현대 화가들은 모두 성당 밖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과거의 예술가들처럼 교회를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전도한들 중세교회에 있는 예술 거장들의 작품만큼 직접적이고 강한 설득력을 발휘할 수는 없습니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이 현대 미술의 거장들이 르네상스 시대의 관능주의 예술가들보다 더 재능이 뛰어나다는 사실입니다!”(본문 73페이지)
시대를 훨씬 앞선 그의 이런 생각은 많은 사람들(특히 보수적인 교회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지만, 피카소·마티스·샤갈·레제·루오 같은 동시대 예술 거장들의 지지와 환호를 얻었다. 쿠튀리에 신부가 이런 개인적인 신념을 처음으다. 쿠 투리에 신부는 이후에 롱샹 성당, 라 투레트 수도원, 마티스 성당 등의 건축에도 간여해 예술가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한다.
무신론자 르 코르뷔지에, 쿠 튀리에 신부의 설득으로 롱샹 성당을 설계하다
쿠튀리에 신부가 르 코르뷔지에에게 롱샹 성당 설계를 의뢰했을 때, 르 코르뷔지에는 “빌어먹을 수도회가 의뢰하는 일은 절대로 맡지 않겠다며, 가톨릭을 믿는 건축가에게 의뢰하라며“ 단박에 거절했다고 한다. 일전에 다른 프로젝트에서 거절을 당했던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대답을 들은 쿠튀리에 신부는 화가 잔뜩 난 어조로 “나는 당신이 가톨릭 신자인지 아닌지는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라며 설득을 계속했고, 마침내 르 코르뷔지에는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처음 롱샹 성당 설계 의뢰를 받았을 때 단호하게 거절했던 르 코르뷔지에는 롱샹 성당 헌당식이 열린 지 이틀 뒤인 1955년 6월 25일, 예순여덟 살의 르 코르뷔지에가 아흔다섯 살 노모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당시 그의 흥분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어머니의 ‘코르비’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아주 우쭐했답니다.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로 성당 헌당식에 참석했어요.…… 그 성당은 근대 건축의 가장 혁명적인 대표작이 될 거예요…….”(본문 101~105페이지)
르 코르뷔지에는 보수 세력의 비난에 대응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도 해놓았다고 말했다. 바티칸에서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이 성당을 폄하하기 위해호시탐탐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이 전위적인 양식의 성당은 곧 이단을 의미했다. 현지 주민들의 반응도 이 성당이 건축사에서 누린 명성과는 상반된 것이었다. 오랜 전통에 익숙한 신자들이 보기에 르 코르뷔지에의 설계는 지나치게 전위적이었다. 이 작은 마을 주민들은 표고버섯을 닮은 불규칙한 형상의 이 건축물이, 그들이 생각하는 성당과 너무도 동떨어진 모습이라고 여겼다. 게다가 독일, 스위스 등에서 이 성당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돈 많은 이방인들은 마을 주민들에게 배척과 질시의 대상이었다. 그들의 눈에 이 성당은 이웃나라 부르주아 계급의 입맛에 맞추어 지어진 현대 건축물일 뿐이었다. 그들이 이 성당에서 좋아하고 정신적인 위안을 얻는 것은 성당 북쪽 벽에 있는 성모상뿐이었다. 이 성모상은 유일하게 남아 있는 중세의 유물이자, 이곳이 성모를 받드는 성당임을 알려주는 하나뿐인 상징물이었다. 하지만 건축 거장의 창의적인 설계 앞에서는 성모의 기품마저도 그 빛을 잃었다. 롱샹 성당은 르 코르뷔지에 성당이라고 불려도 과언이 아니었다.(본문 107페이지)
르 코르뷔지에, 새로운 ‘진실의 건축’, 라 투레트 수도원을 설계하다
라 투레트 수도원은 착공되기 한참 전에 이미 건축가가 정해져 있었고, 사전 준비도 거의 끝나 착공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런데 착공 직전에 쿠튀리에 신부가 갑자기 계획에 개입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처음 설계한 건축가 노바리나는 나중에야 르 코르뷔지에가 수도원 건축가로 최종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밀려난 것은 도미니코회 수사 한두 명이 은밀히 음모를 꾸몄기 때문이라며, 자신을 떨어뜨린 건축가를 찾아내 자기 손으로 죽여 버리겠노라고 맹세했다. 하지만 그의 상대가 그보다 뛰어난 르 코르뷔지에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어쩔 수 없이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쉽게도 당사자인 르 코르뷔지에는 이런 모든 과정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게 해 준 롱샹 성당의 설계 역시 처음에는 노바리나로 결정되었다가 자기 차지가 되었다는 사실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역사의 평가는 언제나 냉정하다. 이 사건으로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사에 또 하나의 걸작을 탄생시킬 기회를 얻었지만, 노바리나는 이름을 떨칠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 이런 우여곡절과 풍파를 겪는 동안 쿠튀리에 신부가 르 코르뷔지에에게 걸었던 기대는 아주 단순했다.
“조용하며, 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1953년 5월 4일, 르 코르뷔지에는 처음으로 수도원 건축 부지를 방문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전망이 탁 트인 아름다운 언덕 위에 서서 “이런 곳에 아무런 목적도, 의의도 없는 수도원을 짓는다면 그건 죄악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 바퀴 둘러본 후 그는 무심코 끼적이듯 수도원의 외관 초안을 그렸다. 들판 위에 기둥을 세워 언덕의 경사를 그대로 살리는 형태로 그려진 이 초안은 훗날 실제로 완공된 수도원과 거의 일치했다고 한다.(본문 134~137페이지)
라 투레트 수도원, 빛과 색의 향연, 마술 같은 지하 소성당!
르 코르뷔지에는 마치 화가처럼, 백색을 기조로 한 수도원 건축물의 실내에 빨강, 파랑, 초록, 노랑, 검정의 대담한 색채를 사용해 화룡점정의 효과를 냈다. 라 투레트 수도원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거대한 조각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멀리서 보면 사각형 구조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삼면이 ㄷ자 형태를 띠고 있으며, 언덕의 비탈 속으로 파고들어간 듯 서 있는 북쪽의 성당은 ㄷ자 형태에서 독립된 독채 구조다. 이 건물은 맨 위층의 육교와 아래층의 중앙 복도를 통해 다른 삼면의 건물과 이어져 있다. 다른 삼면의 건물들은 각기 다른 형태의 기둥으로 지탱되어 땅 위에 붕 떠 있다. 기존의 수도원들과 달리 라 투레트 수도원은 외관상으로는 종교 건축물임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 사면의 건물을 연결한 중앙 복도를 걷다 보면 장엄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몸으로 전해지고, 그제야 그것이 종교적 색채를 물씬 풍기는 수도원임을 깨닫게 된다.(본문 182~183페이지) 고용한 성당 내부에는 정말로 반지르르한 사면의 벽이 평평한 쿠튀리에 신부는 성당을 “빛이 떠다닐 수 있는 텅 빈 상자”처럼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쿠튀리에 신부의 이 생각을 더 없이 충실하게 반영했다. 이 ‘텅 빈 상자’ 속에 잠시라도 머물면, 복잡한 일상의 잡념을 훌훌 털고 자신의 영혼을 만날 수 있다. 종교를 상징하는 장식품들로 가득 차 있는 여느 성당들과 달리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성당은 그저 속이 텅 빈 시멘트 상자일뿐이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없지만 성당 내부에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깔의 빛이 곳곳에서 새어 들어와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한다. 절기에 따라 변하는 빛은 마치 신이 만들어 내는 기적처럼 신비하고 눈부시게 찬연하다.(본문 208페이지) 특히 투명한 빛의 바다를 이룬 지하 성당은 마술과 같은 공간이다. 벽에 물결 무늬가 나 있는 지하 성당은 라 투레트 수도원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곳 중 하나다. 빨간색, 초록색, 크롬 황색의 강렬한 벽 위의 천창을 통해 자연의 빛이 들어와 시시각각 변하면서 향연을 펼친다. 이곳은 형언할 수 없는 궁극의 아름다움을 실현한 예술의 전당이다. (본문 219페이지)
르 코르뷔지에, 세상 떠나기 전에 라 투레트 수도원에서 하룻밤 머물다!
르 코르뷔지에는 1965년 8월 27일 프랑스 지중해 연안에서 수영하던 중 심장마비로 급사했다. 프랑스 정부는 그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러 건축 거장에 경의를 표했다. 그런데 그의 국장을 준비하는 동안 사람들은 그가 생전에 써놓은 메모를 발견했다. 코르뷔가 자신이 죽은 뒤 시신을 라 투레트 수도원의 성당에 하룻밤 안치해 달라고 한 것이다. 무신론자를 자처했던 건축의 거장이, 인간 세상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낼 곳으로 라 투레트 수도원을 선택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뜻에 따라 시신을 담은 관이 이곳 수도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수도원 당국은 그가 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 어떤 종교적 의식도 치르지 않았다. 프랑스 국기와 도미니코회의 깃발이 덮인 거장의 영구靈柩만 성당에 외롭게 놓여졌다. 성당에는 꽃과 촛불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의 곁을 지키는 이도 없었다. 르 코르뷔지에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날, 롱샹 성당의 모든 촛불도 밤새도록 꺼지지 않았다. 그의 창의성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신자들도 위대한 건축가가 자신들을 위해 하늘과 땅이 서로 감응할 수 있는 불멸의 성당을 지어 주었음을 진심으로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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