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 3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은이), 김연경 (옮긴이) 지음 | 민음사 펴냄

악령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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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21.6.25

페이지

4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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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등의 걸작을 남기며 20세기 지성사의 흐름을 바꿔 놓은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 그의 5대 장편 소설 중 하나이자 최고의 정치 소설로 꼽히는『악령』이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을 맞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삶과 죽음, 신과 종교, 사랑과 욕정 등 인간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문제를 고찰해 내는 대작들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가 1869년 모스크바에서 비밀 혁명 조직의 내분으로 일어난 ‘네차예프 사건’에 충격을 받아 집필한 『악령』은 서구의 허무주의와 자유주의에 심취하여 혁명을 일으키고자 하는 당대 젊은이들을 비판하기 위한 정치 소설이다. ‘네차예프 사건’은 스물한 살의 청년 네차예프가 5인조 무정부주의 비밀 결사에 소속되었다가 탈퇴한 이바노프가 밀고할 것을 우려하여 동지들과 함께 이바노프를 살해한 후 호수의 구멍에 유기한 사건이다.

작품의 제목인 ‘악령’은 성경 구절 중 돼지 떼에 씌인 ‘악령’에서 차용했다. 작품 속 비밀 혁명 모임인 ‘우리 편’은 물론 악행에 휘말리는 러시아 전체가 ‘악령’에 들린 ‘돼지 떼’라고 규정한 것이다. 말년에 극우 보수주의자가 된 도스토옙스키는 당시 러시아에 유행하던 혁명의 움직임을 직접적으로 겨냥해 광기와 폭력, 악으로 점철된 그들의 행동과 사상을 비판하고 있다. 동시에 젊은 시절 허무주의와 사회주의에 심취해 페트라솁스키 모임에 출입하다 사형 선고까지 받은 이력이 있는 사상범인 도스토옙스키 스스로를 향한 통렬한 자기반성의 산물이자 ‘참회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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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민(상태:카뮈)

@smlee682

“예수께서 마귀들에게 명하사 그 사람에게서 나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락하시니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그 돼지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

<악령>의 문 앞에 놓인 이 누가복음의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것을 무신론적 혁명사상을 악령에 빗댄 비교적 분명한 비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설을 다 읽은 뒤 다시 이 구절로 돌아오자 이상하게도 ‘귀신’보다 ‘돼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악령은 혼자서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것은 반드시 누군가의 몸 안으로 들어가야 했고, 자신을 대신해 달리고 추락하고 죽어줄 육체가 필요했다. 악령에게는 언제나 숙주가 필요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스타브로긴이라는 인물이 전혀 다르게 보였다.

처음의 스타브로긴은 이상할 만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붙잡는 외모와 거의 폭력적일 정도의 매력을 지녔지만, 정작 그의 내부에는 무엇 하나 확실하게 붙들린 것이 없다. 사랑도 신념도 죄책감도 혁명도 그를 끝까지 점유하지 못한다. 그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채 모든 것의 한가운데 서 있지만, 어느 것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다. 그런데 <악령>에서 가장 많은 것을 움직이는 것은 역설적으로 바로 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다.

샤토프는 한때 그에게서 민족과 신앙의 진리를 보았고, 키릴로프는 그와 나눈 사유를 자기 존재의 끝까지 밀어붙인다. 표트르 베르호벤스키는 아예 스타브로긴을 자신이 만들 혁명의 얼굴로 세우려 한다. 모두가 같은 사람을 바라보지만, 각자가 보는 스타브로긴은 서로 다르다. 누군가는 그에게서 신을 보고, 누군가는 혁명을 보고, 누군가는 구원을 보고, 누군가는 자기 파멸을 정당화할 논리를 본다.

그래서 나는 스타브로긴이 악령을 퍼뜨리는 사람이라기보다, 악령들이 번갈아 깃들 수 있는 텅 빈 성소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중심을 어떤 믿음으로도 채우지 않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타인의 욕망을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안에서 스타브로긴 자신을 본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결핍을 보았다. 그리고 그 결핍에 그의 얼굴을 붙여 신념이라 부르고, 사랑이라 부르고, 혁명이라 부르며 매달렸다.

그런 의미에서 스타브로긴의 카리스마는 빛이라기보다 거울에 가깝다. 스스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의 욕망을 되비춘다. 그러나 거울은 그 어떤 상도 책임지지 않는다.

표트르 베르호벤스키가 스타브로긴에게 자신들의 ‘신’이 되어달라고 매달리는 장면은 이 기묘한 구조를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표트르에게 필요한 것은 진짜 신념을 가진 지도자가 아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확신하지 않기에 무엇으로든 꾸밀 수 있는 얼굴이다. 그는 스타브로긴의 공허를 자신의 야심으로 채운 뒤, 그 공허에 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이려 한다.

그 장면을 읽으면서 나는 <악령>이 사상의 위험보다 더 근원적인 것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파멸시키는 것은 언제나 지나치게 강한 신념만은 아니다. 때로는 신념이 사라진 자리가 더 위험하다. 확고한 사상은 적어도 무엇을 믿는지 말할 수 있고, 그렇기에 논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중심에는 반박할 문장조차 없다. 사람들은 그 빈자리에 저마다 원하는 것을 집어넣고, 자신이 집어넣은 것을 진실이라고 믿기 시작한다.

그렇게 보면 <악령>속 혁명은 하나의 사상이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되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중심을 잃은 사람들이 서로의 공허 속으로 자기 결핍을 던지는 과정에 가깝다. 한 사람의 허무는 다른 사람의 야심을 깨우고, 누군가의 상처는 타인의 이론을 만나며, 이론은 다시 폭력의 명분이 된다. 악령은 하나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사람마다 다른 얼굴을 쓰면서도, 빈 곳을 찾아 이동한다는 점에서만 서로 닮아 있다.

키릴로프의 사유도 그 연장선에서 보였다. 그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스스로 신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인간이 자기 신성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행위를 자살에서 찾는다. 죽음마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면 인간은 더 이상 어떤 초월적 존재에도 종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게 가장 섬뜩했던 것은 키릴로프의 이론 자체보다 그 이론의 마지막이었다. 그는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는 절대적인 자유를 증명하기 위해 죽으려 했지만, 정작 그의 죽음은 표트르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된다. 자기 의지의 절대성을 증명하려던 죽음이 타인의 계획 속 한 조각으로 편입되는 순간, 그의 자유는 처참한 역설이 된다.

나는 여기서 인간이 신의 자리를 비워둔 채 견디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각했다. 신을 밀어낸다고 해서 그 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비어 있는 왕좌는 오히려 끊임없이 새로운 주인을 요구한다. 키릴로프는 그 자리에 인간의 자유의지를 앉혔고, 표트르는 혁명을 앉혔으며, 샤토프는 민족과 신앙을 되돌려 놓으려 했다. 그리고 스타브로긴은 끝내 아무것도 그 자리에 앉히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면 이 소설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잘못된 신을 믿는 일이 아니라, 아무것도 믿지 않은 채 그 자리를 비워두는 일인지도 모른다. 비어 있는 신전에는 언젠가 누군가가 들어온다.

그런 점에서 스테판 트로피모비치가 “아름다움 없이는 인류가 단 1분도 살아갈 수 없다”고 외치는 장면은 이상하리만큼 오래 남았다. 처음에는 시대에 뒤처진 지식인의 낭만적인 탄식처럼 보였지만, 소설의 끝에 가까워질수록 그 말이 오히려 <악령> 전체에 대한 반론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을 효용과 이념, 목적과 수단으로만 나누려는 세계에서 그는 끝내 아무 쓸모도 없어 보이는 아름다움을 붙잡는다.

왜 하필 아름다움이어야 했을까.

아마 아름다움은 인간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을 인간으로 남게 하는 몇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과 연민과 아름다움은 혁명처럼 역사를 바꾸겠다고 약속하지 않는다. 세계를 구원할 계획도 내놓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쓸모없는 것들’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의외로 자유가 아니라 계산이고, 계산이 끝난 자리에는 가장 쉽게 폭력이 들어선다. 인간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는 순간, 살인은 어느새 논리의 결론이 된다.

그래서 <악령>의 수많은 죽음은 단순히 과격한 정치사상이 불러온 비극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 안에서 사랑과 아름다움, 책임과 신앙이 조금씩 빠져나간 뒤 남은 빈 공간이 무엇으로 채워지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공허는 오래 비어 있지 않는다. 우리가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 결정하지 않으면, 언젠가 다른 무언가가 들어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책을 덮고 나서 나는 우리가 흔히 ‘카리스마’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오래 생각했다. 우리는 강한 확신을 가진 사람에게 끌린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더 위험한 매혹은 아무것도 확신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생길지도 모른다. 확신을 가진 사람은 자기 모습을 보여주지만, 공허한 사람은 바라보는 사람의 모습을 돌려준다. 우리는 그 안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스타브로긴이 그토록 많은 사람에게 서로 다른 의미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는 태양이 아니라 검은 구멍에 가까웠다. 스스로 빛을 내지 않으면서도 주변의 모든 것을 자기 쪽으로 휘게 만드는 존재. 사람들은 그에게서 무언가를 받았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자기 안에 있던 것을 그에게 던지고 있었고, 마침내 자신이 던진 것에 이끌려 그의 주위를 돌다가 하나씩 추락했다.

그러고 나니 소설 첫머리의 돼지 떼가 다시 떠올랐다.

악령이 돼지들을 호수로 몰아넣었다는 사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악령이 들어갈 몸을 끝내 찾아냈다는 사실이었다. 사람은 자기 안을 완전히 비워둔 채 살아갈 수 없다. 무엇도 믿지 않겠다는 결심조차 결국 하나의 믿음이 되고, 신을 몰아낸 자리에는 자유든 혁명이든 자아든 또 다른 절대자가 들어선다.

그래서 <악령>을 읽고 내가 두려워하게 된 것은 광신 그 자체보다 공허였다. 뜨겁게 무언가를 믿는 사람보다, 아무것도 믿지 않는 채 모든 것을 비추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매혹적인 빈자리. 악령은 어쩌면 우리를 설득해서 들어오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비워둔 자리를 발견하고, 그곳을 자기 자리로 삼는 것인지도 모른다.

악령 3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은이), 김연경 (옮긴이) 지음
민음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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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등의 걸작을 남기며 20세기 지성사의 흐름을 바꿔 놓은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 그의 5대 장편 소설 중 하나이자 최고의 정치 소설로 꼽히는『악령』이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을 맞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삶과 죽음, 신과 종교, 사랑과 욕정 등 인간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문제를 고찰해 내는 대작들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가 1869년 모스크바에서 비밀 혁명 조직의 내분으로 일어난 ‘네차예프 사건’에 충격을 받아 집필한 『악령』은 서구의 허무주의와 자유주의에 심취하여 혁명을 일으키고자 하는 당대 젊은이들을 비판하기 위한 정치 소설이다. ‘네차예프 사건’은 스물한 살의 청년 네차예프가 5인조 무정부주의 비밀 결사에 소속되었다가 탈퇴한 이바노프가 밀고할 것을 우려하여 동지들과 함께 이바노프를 살해한 후 호수의 구멍에 유기한 사건이다.

작품의 제목인 ‘악령’은 성경 구절 중 돼지 떼에 씌인 ‘악령’에서 차용했다. 작품 속 비밀 혁명 모임인 ‘우리 편’은 물론 악행에 휘말리는 러시아 전체가 ‘악령’에 들린 ‘돼지 떼’라고 규정한 것이다. 말년에 극우 보수주의자가 된 도스토옙스키는 당시 러시아에 유행하던 혁명의 움직임을 직접적으로 겨냥해 광기와 폭력, 악으로 점철된 그들의 행동과 사상을 비판하고 있다. 동시에 젊은 시절 허무주의와 사회주의에 심취해 페트라솁스키 모임에 출입하다 사형 선고까지 받은 이력이 있는 사상범인 도스토옙스키 스스로를 향한 통렬한 자기반성의 산물이자 ‘참회록’이기도 하다.

출판사 책 소개

2021년,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악령> 출간

20세기 문학과 철학의 지형도를 바꿔 놓은 러시아 문학의 거장 도스토옙스키
종교와 국가의 전복을 꾀하는 ‘악령’을 그려 낸 혁명과 광기의 묵시록
급진주의와 허무주의에 침잠한 젊은이들을 향해 던지는 도스토옙스키의 경고


▶ 『악령』은 인간이 써낸 가장 충격적인 소설이자 가장 위대한 정치 소설이다. - 오르한 파묵

▶ 도스토옙스키는 근대 작가 그 누구보다 위대하다. 그는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을 창조해 냈다. -제임스 조이스

▶ 20세기의 진정한 예언자는 마르크스가 아니라 도스토옙스키다. ─ 알베르 카뮈

소설가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소설가, 도스토옙스키
러시아의 정치적 혼란을 형이상학적으로 고찰하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등의 걸작을 남기며 20세기 지성사의 흐름을 바꿔 놓은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 그의 5대 장편 소설 중 하나이자 최고의 정치 소설로 꼽히는『악령』이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을 맞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삶과 죽음, 신과 종교, 사랑과 욕정 등 인간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문제를 고찰해 내는 대작들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작품과 사상은 카뮈, 카프카, 울프 등 작가들뿐 아니라 니체, 프로이트, 사르트르와 같은 철학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소설가 중의 소설가’ 도스토옙스키는 20세기 문학과 철학의 지형도를 바꿔 놓았다.

그가 1869년 모스크바에서 비밀 혁명 조직의 내분으로 일어난 ‘네차예프 사건’에 충격을 받아 집필한 『악령』은 서구의 허무주의와 자유주의에 심취하여 혁명을 일으키고자 하는 당대 젊은이들을 비판하기 위한 정치 소설이다. ‘네차예프 사건’은 스물한 살의 청년 네차예프가 5인조 무정부주의 비밀 결사에 소속되었다가 탈퇴한 이바노프가 밀고할 것을 우려하여 동지들과 함께 이바노프를 살해한 후 호수의 구멍에 유기한 사건이다.

작품의 제목인 ‘악령’은 성경 구절 중 돼지 떼에 씌인 ‘악령’에서 차용했다. 작품 속 비밀 혁명 모임인 ‘우리 편’은 물론 악행에 휘말리는 러시아 전체가 ‘악령’에 들린 ‘돼지 떼’라고 규정한 것이다. 말년에 극우 보수주의자가 된 도스토옙스키는 당시 러시아에 유행하던 혁명의 움직임을 직접적으로 겨냥해 광기와 폭력, 악으로 점철된 그들의 행동과 사상을 비판하고 있다. 동시에 젊은 시절 허무주의와 사회주의에 심취해 페트라솁스키 모임에 출입하다 사형 선고까지 받은 이력이 있는 사상범인 도스토옙스키 스스로를 향한 통렬한 자기반성의 산물이자 ‘참회록’이기도 하다.

마침 그곳 산기슭에는 놓아기르는 돼지 떼가 우글거리고 있었는데 마귀들은 자기들을 그 돼지들 속으로나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허락하시자 마귀들은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는 비탈을 내리 달려 모두가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돼지 치던 사람들이 이 일을 보고 읍내와 촌락으로 도망쳐 가서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고 보러 나왔다가 예수께서 계신 곳에 이르러 마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멀쩡한 정신으로 예수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이 일을 처음부터 지켜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사람이 낫게 된 경위를 알려 주었다.
- 제사(題詞) 중에서

삶과 죽음, 종교와 사상을 망라하는 도스토옙스키의 무대 위에서 날뛰는 인물들,
자신만의 ‘혁명’을 추구하며 묵시록으로 내달리다


『악령』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현실 층위와 사상적 질문을 다루는 관념 층위가 절묘하게 조화된 철학 소설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자신만의 사상을 추구하며 현실 세계를 바꾸기 위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광기 어린 인물들을 창조해 냈다. 『악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뚜렷한 개성을 가진 각각의 인물들을 이해하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긴장 관계와 갈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인공 니콜라이 스타브로긴은 형이상학적 관념이 피와 살로 형상화되어 작품의 핵심이 되는 인물이다. 막강한 영향력으로 등장인물 전체를 장악하지만, 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연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인물인 니콜라이는 선과 악, 고해와 악행이 교차하는 언행과 행동으로 끊임없이 극단 사이를 조율하며 작품 전체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3부 9장 「티혼의 암자에서」에서 니콜라이의 내적 분열이 비로소 밝혀지며 작품이 끝난다. ‘니콜라이의 신비로운 정체성을 보존해야 한다.’는 출판 당시 편집자의 의견으로 인해 초판에서 빠졌다가 1922년에서야 비로소 실리게 되었다. 그의 내면에서 공존하는 진실과 거짓, 선과 악이 “사상과 종교가 인간의 삶을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의식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니콜라이는 “나는 그를 나의 심장에서 꺼냈다.”라는 도스토옙스키의 고백에 충분히 부합하는 인물로, 작가 자신의 십자가로 남는다. 이는 『악령』의 숙명이기도 한데, 이 소설은 묵시록적 파토스의 균열과 희화를 고스란히 품은 채 새로운 신화의 영역을 연다.
-「작품 해설」중에서

니콜라이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은 각각 지향점과 사상적 토대를 선명하게 드러내며 긴장감을 더한다. 샤토프는 해방된 농노이자 한때 혁명을 꿈꾸던 대학생이었으나, 메시아의 도래를 꿈꾸는 슬라브주의자로 전향한다.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다 기나긴 복역과 유형 생활을 겪은 후 종교에 깊게 심취하고 보수주의자가 된 도스토옙스키 본인의 분신과도 같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키릴로프는 이와 반대로, 허무주의와 무신론에 심취하여 자살로써 신의 부재를 증명하고자 한다. (“신이 있다면, 모든 것이 그의 의지이고 나는 그의 의지에서 벗어날 수 없어. 없다면, 모든 것이 나의 의지이고 나는 자유 의지를 천명할 의무가 있어.” -3권, 278쪽.) 이후 20세기 실존주의의 철학적 토대를 완성시킨 알베르 카뮈는 이 키릴로프라는 인물과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가 자살과 실존에 관해 쓴 저작 『시지프 신화』 에도 키릴로프가 주요하게 언급된다. ‘우리 편’을 꾸리고 쉴 새 없이 협잡과 모략을 일삼는 표트르 베르호벤스키는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인 ‘네차예프 사건’의 네차예프를 형상화한 인물이다. 표트르는 주변 사람을 모두 자신이 추구하는 결말에 도달하기 위해 장기판 위의 말처럼 이용하며 그 실체조차 명확하지 않은 혁명을 추구하기 위해 온갖 악행을 일삼는다. 도스토옙스키가 비판하고자 했던 서구 급진주의에 휘말린 젊은이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단순한 정치 비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군가 품은 자유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누군가의 삶을 지옥 같은 구속으로 몰아가기도 하는가?”라는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자유와 구속, 사상과 종교로 고뇌하는 입체적인 인물들을 창조해 내 작품의 층위를 한층 더 높였다. 처음에 정치 팸플릿으로 구상된 소설은 집필 과정에서 입체적인 인물들이 상징하는 사상과 철학이 더해져 20세기는 물론 지금까지도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걸작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악령』에서 출발한 종교와 사상에 대한 문제의식은 이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며 도스토옙스키 문학 세계를 완성하게 된다. 『악령』은 도스토옙스키의 마지막 소설이자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되는 작품이다.

전반적으로 『악령』이 위대한 것은 정치적 층위와 더불어 형이상학적 층위, 종교-신학적 층위를 아우르기 때문이다. 정치 혁명을 통한 지상 낙원이, 참으로 역설인데, 지상에서 불가능 하다면, 또 다른 가능성은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들의 몽상 속에서 점쳐 볼 수밖에 없다. -「작품 해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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