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내 사랑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 민음사 펴냄

히로시마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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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6.23

페이지

208쪽

상세 정보

독특한 작법과 문체로 공쿠르 상을 수상하고, 『연인』, 『모데라토 칸타빌레』 등 영화의 원작으로 대중의 인기와 프랑스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얻은 작가, 그리고 말년에 35세 연하 청년 얀과의 뜨거운 사랑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마르그리트 뒤라스. 그녀가 1959년 집필한 시나리오 『히로시마 내 사랑』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9번으로 출간되었다.

뒤라스는 1958년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알랭 레네의 제안으로 ‘히로시마’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한다. 낭독하는 듯한 어조, 독특한 문장의 리듬감, 단순한 이미지 위에 덧입힌 복잡한 내면 같은 뒤라스만의 문체가 오롯이 드러난 이 작품에서 뒤라스가 그리는 것은, 원자폭탄 투하라는 참상이 벌어진 히로시마라는 공간의 이미지와 평행선으로 그려지는 한 프랑스 여자의 비극적 기억이다.

뒤라스의 목소리가 생생히 투영되어 제작된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의 시나리오가 출판된 것은 영화 개봉 다음 해인 1960년이다. 여기에는 영화에서 생략되었던 대사와 지문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고, 시나리오에 이어 부록, 비망록, 주인공들의 초상이 덧붙여져 있다. 이 책은 영화의 토대가 되는 시나리오이면서 동시에 소설적인 요소를 포함한 여러 장르의 글쓰기가 혼합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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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민(상태:카뮈)

@smlee682

“당신은 히로시마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요.”
“나는 모든 걸 봤어요.”

<히로시마 내 사랑>을 펼치자마자 마주하는 이 대화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두 사람은 같은 도시를 걷고, 같은 잔해를 바라보고, 같은 상처의 흔적 앞에 서 있었을 텐데 한 사람은 상대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단언하고 다른 사람은 자신이 모든 것을 봤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말다툼처럼 보였던 이 어긋남이, 읽을수록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어디까지 볼 수 있을까. 그리고 눈앞에 놓인 것을 보았다는 이유만으로 정말 그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자는 프랑스인이고 남자는 일본인이다. 히로시마에서 우연히 만나 짧은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 사이에는 처음부터 쉽게 건널 수 없는 거리가 놓여 있다. 여자는 병원과 박물관을 찾고 원폭의 흔적을 바라보며 자신이 히로시마를 보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남자는 거듭 말한다.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그 말을 따라가다 보니 목격이라는 것이 반드시 눈으로 보는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고통은 아무리 가까이서 바라봐도 그 안까지 들어갈 수 없다. 폐허를 볼 수는 있어도 그 폐허가 되기 전의 세계를 함께 잃을 수는 없고, 상처를 바라볼 수는 있어도 그 상처가 처음 새겨지던 순간을 대신 살아낼 수는 없다. 결국 몸으로 그 시간을 통과한 사람과 그 이후에 도착한 사람 사이에는 아무리 애써도 메워지지 않는 간격이 남는다.

그런데 작품은 바로 그 지점에서 여자의 과거를 꺼내놓는다. 히로시마를 이해할 수 없었던 여자에게도 자신만의 폐허가 있었다. 전쟁 중 느베르에서 독일군 병사를 사랑했고, 그가 죽은 뒤에는 적군을 사랑했다는 이유로 머리를 깎인 채 거리를 끌려다녔으며 지하실에 갇혀 지냈다.

하나는 수많은 사람이 죽은 역사적 재난이고, 다른 하나는 한 사람의 삶 속에만 남은 사적인 파국이다. 처음에는 이 두 고통을 나란히 놓는 일이 조금 불편했다. 히로시마라는 거대한 비극과 한 개인의 사랑과 상실을 같은 자리에 놓아도 되는 걸까.

하지만 이 작품은 둘을 같은 사건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고통에는 서로를 환산할 수 있는 단위가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보았는지, 역사책에 얼마나 크게 기록되었는지와 별개로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이전과 이후로 갈라놓는 사건이 있다. 느베르는 히로시마가 아니지만 여자에게 느베르는 자신의 세계가 한 번 끝난 장소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고, 자신이 속했던 공동체에서 밀려났으며, 그 이전의 자신까지 잃어버렸다. 세계의 지도에서는 작은 도시 하나일 뿐이지만 그녀의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폐허로 남아 있는 곳이었다.

“나는 끔찍한 망각을 생각하듯 이 이야기를 생각할 거예요. 벌써 그걸 알아요.”

이 문장은 이상할 만큼 슬펐다. 기억하고 있다는 말 속에 이미 언젠가는 잊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기억과 망각을 서로 반대편에 놓는다. 하나는 붙잡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놓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기억은 처음부터 망각을 품고 있다.

아무리 간절했던 사랑도, 아무리 견딜 수 없었던 고통도 시간 속에서 조금씩 윤곽을 잃는다. 목소리를 잊고, 얼굴을 잊고, 어느 순간에는 자신을 그 사람에게 묶어두었던 감정의 이름조차 정확히 부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사랑과 재난은 자꾸 서로를 닮아간다. 둘 다 일어나는 순간에는 세계 전체를 차지하고, 다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삶을 갈라놓는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그 절대적이었던 순간조차 서서히 닳아간다.

어쩌면 이 작품이 두려워하는 것은 망각 자체보다, 그렇게 망각해가는 자신을 어느 날 발견하게 되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한때 세상의 전부였던 것을 더 이상 온전히 떠올릴 수 없다는 사실.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사람의 얼굴이 조금씩 흐려지고,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던 감정마저 희미해지는 일.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배반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마지막에 두 사람이 서로를 본명이 아닌 도시의 이름으로 부르는 장면이 더욱 오래 남았다.

“히로시마.”
“느베르, 프랑스.”

여자는 남자를 히로시마라고 부르고 남자는 여자를 느베르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사랑의 은유처럼 느껴졌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꽤 냉정한 장면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결국 서로의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남자는 그녀가 잃어버린 독일군 연인이 될 수 없고, 여자는 히로시마를 살아낸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들이 끝내 알아낸 것은 서로의 모든 것이 아니라, 서로가 어떤 장소를 짊어진 채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어쩌면 그것이면 충분했는지도 모른다.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고통을 전부 대신 느끼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결코 지나가버리지 않는 장소가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일일 수도 있으니까. 이름보다 먼저 떠오르는 도시,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버린 과거의 장소. 두 사람은 서로의 고통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 고통이 머무는 곳의 이름만큼은 불러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 마지막 장면이 사랑의 완성이라기보다, 이해의 한계를 받아들인 뒤에야 가능한 가장 깊은 형태의 호명처럼 느껴졌다.

<히로시마 내 사랑>을 덮고 나서 나는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을 조금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장소에 서 있어도 우리는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있을 수 있다. 같은 이야기를 듣고도 한 사람에게는 이미 지나간 사건이, 다른 사람에게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현재일 수도 있다.

여자와 남자는 끝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실패를 비극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워버리지 않고 그대로 바라보는 데서 더 깊은 관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나는 당신이 본 것을 보지 못했다. 당신이 잃은 것을 내가 똑같이 잃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당신에게 그런 장소가 있다는 것만은 안다.

어쩌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상처를 전부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끝내 들어갈 수 없는 장소가 그 사람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곁에 머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히로시마 내 사랑>이 마지막까지 남긴 것은 그래서 완전한 이해가 아니라, 이해할 수 없음에도 서로의 이름을, 아니 서로의 상처가 머무는 장소의 이름을 불러주는 두 사람의 목소리였다.

히로시마 내 사랑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민음사 펴냄

1주 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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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선

@ysll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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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내 사랑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민음사 펴냄

읽었어요
1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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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xky8mbg391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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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내 사랑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민음사 펴냄

읽었어요
2025년 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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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독특한 작법과 문체로 공쿠르 상을 수상하고, 『연인』, 『모데라토 칸타빌레』 등 영화의 원작으로 대중의 인기와 프랑스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얻은 작가, 그리고 말년에 35세 연하 청년 얀과의 뜨거운 사랑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마르그리트 뒤라스. 그녀가 1959년 집필한 시나리오 『히로시마 내 사랑』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9번으로 출간되었다.

뒤라스는 1958년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알랭 레네의 제안으로 ‘히로시마’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한다. 낭독하는 듯한 어조, 독특한 문장의 리듬감, 단순한 이미지 위에 덧입힌 복잡한 내면 같은 뒤라스만의 문체가 오롯이 드러난 이 작품에서 뒤라스가 그리는 것은, 원자폭탄 투하라는 참상이 벌어진 히로시마라는 공간의 이미지와 평행선으로 그려지는 한 프랑스 여자의 비극적 기억이다.

뒤라스의 목소리가 생생히 투영되어 제작된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의 시나리오가 출판된 것은 영화 개봉 다음 해인 1960년이다. 여기에는 영화에서 생략되었던 대사와 지문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고, 시나리오에 이어 부록, 비망록, 주인공들의 초상이 덧붙여져 있다. 이 책은 영화의 토대가 되는 시나리오이면서 동시에 소설적인 요소를 포함한 여러 장르의 글쓰기가 혼합된 작품이다.

출판사 책 소개

프랑스 현대 문학의 거장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시나리오를 집필한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영상과 문학이 한데 어우러져 이뤄 낸 독특한 미학적 성취

▶ 예술성과 장인 정신을 섬세하게 융합시킨 작품.《뉴욕 타임스》

▶ 히로시마에서 시작된 이 러브 스토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최초의 현대적 로맨스 영화이다.《텔레그래프》

공쿠르 상 수상 작가이자 프랑스 현대 문학의 거장 마르그리트 뒤라스
알랭 레네 감독과 협업으로 완성한 아름다운 언어-영상 작품


독특한 작법과 문체로 공쿠르 상을 수상하고, 『연인』, 『모데라토 칸타빌레』 등 영화의 원작으로 대중의 인기와 프랑스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얻은 작가, 그리고 말년에 35세 연하 청년 얀과의 뜨거운 사랑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마르그리트 뒤라스. 그녀가 1959년 집필한 시나리오 『히로시마 내 사랑』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9번으로 출간되었다.
뒤라스는 1958년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알랭 레네의 제안으로 ‘히로시마’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한다. 낭독하는 듯한 어조, 독특한 문장의 리듬감, 단순한 이미지 위에 덧입힌 복잡한 내면 같은 뒤라스만의 문체가 오롯이 드러난 이 작품에서 뒤라스가 그리는 것은, 원자폭탄 투하라는 참상이 벌어진 히로시마라는 공간의 이미지와 평행선으로 그려지는 한 프랑스 여자의 비극적 기억이다.
뒤라스의 목소리가 생생히 투영되어 제작된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의 시나리오가 출판된 것은 영화 개봉 다음 해인 1960년이다. 여기에는 영화에서 생략되었던 대사와 지문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고, 시나리오에 이어 부록, 비망록, 주인공들의 초상이 덧붙여져 있다. 이 책은 영화의 토대가 되는 시나리오이면서 동시에 소설적인 요소를 포함한 여러 장르의 글쓰기가 혼합된 작품이다. 레네와 뒤라스는 원자폭탄 투하 이후의 처참한 이미지 위에, 낭독하는 듯한 메마른 목소리의 시적 내레이션을 싣고, 과거와 현재, 평온한 풍경과 폐허의 이미지를 교차 편집하여 보는 이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당대의 규범을 거침없이 뛰어넘는 글쓰기를 고집한 소설가과 새로운 영상 미학의 선두 주자인 영화감독이 만나 시적인 영상과 대사를 담은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도시는 사랑에 꼭 맞게 만들어져 있네요.”
히로시마에서 생겨난 사랑과 기억의 이중주


평화에 관한 영화를 촬영하러 히로시마에 온 프랑스 여성이 우연히 일본인 건축가를 만나 짧은 사랑을 하게 된다. 소설은 원자 폭탄 투하라는 참상을 겪고 복구에 나선 히로시마의 풍경과 함께 이들의 덧없는 사랑이 교차되며 진행된다. 미래에 대해 말하지 않는 사랑, 그러나 그만큼 절대적으로 순수한 그 사랑에 남자와 여자 모두 깊이 빠져든다. 그리고 일본 남자를 보며 그녀는 가혹했던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린다. 세계 대전 시기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군과 사랑에 빠져 몰래 만나 왔던 그녀는, 함께 도망치기로 한 날 총탄에 남자를 잃고 조국을 배신했다는 이유로 삭발당하고 지하실에 갇히는 엄청난 치욕과 불행을 겪는다. 사랑하던 상대의 죽음과 자기 존재를 부정당하는 경험을 동시에 한 그녀는, 죽은 남자를 잊고자 고향 느베르를 떠나 남몰래 파리로 도피한다. 그러나 결국 잊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그녀 앞에 나타난 일본 남자로 인해 고통스러웠던 첫사랑의 기억이 희미해짐을 깨닫고 새로운 사랑을 ‘히-로-시-마’라고 새로이 명명하며 사랑과 기억의 이중주를 끝내게 된다.

“내가 어떻게 당신을 잊는지 지켜봐. 내가 어떻게 당신을 잊었는지 지켜봐.”
기억하는 힘과 잊는 힘, 그 사이를 통과하는 시간


『히로시마 내 사랑』의 첫 장면은 원자 폭탄 투하로 생긴 버섯구름으로 시작되고, 이어서 두 벗은 어깨가 모습을 드러낸다. 서로 끌어안은 두 어깨는 사랑의 행위에 몰두한 몸인지 죽음으로 향하는 고통에 사로잡힌 몸인지 분간되지 않는다. 중의적인 의미를 담은 이 장면은 작품 내내 독자의 판단을 좌우한다. 우연히 만나 하룻밤을 함께 보낸 그들은 새로 시작되는 사랑과 바로 눈앞에 다가온 이별 사이에서 갈등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고통스러운 개인의 과거와 비극적인 시대의 역사가 중첩되어 나타난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일본과 프랑스, 히로시마와 느베르, 현재와 과거, 가해자와 피해자, 사랑과 죽음, 기억과 망각의 중첩과 병치가 일어난다.
여자에게 히로시마는 단지 잠시 머물다 갈 곳,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정작 평화가 존재하지 않는 곳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예기치 않은 사랑을 하게 되고, 또 그 사랑을 통해 과거를 다시 만나고 고통스러웠던 그 과거와 영원히 결별할 힘을 얻는다. 시간이 흐르는 대로 사랑이 찾아오고, 사랑을 하는 동안 기억하고, 사랑이 지나가면서 시간과 함께 잊을 힘을 얻는다. 히로시마라는 상실의 공간에서 찾아온 짧고 충만한 사랑은 이들에게 흘러가는 시간을 인지하고 유한한 인간의 삶을 깨닫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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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나간 그 옛날을 마음을 다해 애통해할 거예요.
지나간 그 옛날을 애통해하는 것 외에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을 거예요.
시간이 흘러갈 거예요. 오직 시간만이.(본문 135~136쪽)

누벨바그 영화와 문학 텍스트의 강렬한 조우!

일반적으로 시나리오는 영화 촬영 전에 영화의 전반적인 얼개와 대사를 짜놓은 텍스트로, 종합 예술의 완결판인 영화의 미완성 버전이라 받아들여진다. 시나리오 텍스트인 『히로시마 내 사랑』역시 영화 제작을 위한 지문과 영상에서 실제로 발화될 대사가 공존한다. 그러나 『히로시마 내 사랑』은 준비용 텍스트가 아닌 독립적인 하나의 ‘작품’으로서 영화 개봉 일 년 뒤에 출간까지 이어졌다. 영화의 대중적 성공 덕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텍스트 자체가 충실하게 ‘문학’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의 대사와 등장인물의 태도를 지시하는 지문뿐만 아니라, 시놉시스와 서문, 그리고 부록은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아름답고 특별한 형태의 문학 작품으로 독자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후 뒤라스의 다른 소설들이 연이어 영화화되어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뒤라스에게 ‘영화적 글쓰기’라는 평가를 안겨 준 데에 『히로시마 내 사랑』의 성공이 큰 영향을 미쳤음을 생각해 볼 때, 이 작품은 뒤라스 작품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는 데 열쇠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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