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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재난 국가 (한국인은 어떻게 불평등해졌는가)의 표지 이미지

쌀 재난 국가

이철승 (지은이)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사회학에 역사학과 지리학과 통계학이 버무려진 무척 흥미롭고 멋진 책이다. 이철승 교수의 전작 <불평등의 세대>는 대학교 수업 교재였는데, 그때는 열심이 없어 읽어보지는 못했다. 여튼 <쌀 재난 국가>는 전작에 이은 불평등 프로젝트의 두 번째 작품이고, 곧 트릴로지trilogy가 완성될 예정이라고 하니 더욱 기대된다.

책은 무척 많은 내용을 다룬다. 쌀을 먹는 우리들이 어떻게 쌀에 갇히게 되었는지, 재난(자연재해)은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하게 했는지, 마을 단위 협업 시스템이 우리의 일상에 어떻게 침투했는지 하는 방대한 내용이 잘 정련된 통계 자료와 함께 제시된다. 흐름을 이해하며 읽어나가면 어렵지는 않다. 저자는 마치 수업을 하는 것처럼 이전 챕터의 내용을 요약·반복하기도 하는데, 읽는 독자로서 길을 잃지 않고 흐름을 따라갈 수 있어 좋았다.

쌀, 재난, 국가라는 키워드가 작금의 불평등 사회에 미친 영향에 관해 논하는 책이고, 그 일관성 있는 사유의 흐름을 여행하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었지만, 역시 '연공제'에 관한 부분에서 오래 멈춰 생각해보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테다. '연공제를 틀어쥔 중장년층과 청년층이 기업의 제한된 예산과 일자리를 두고 제로섬 게임을 벌이고 있고, 이 게임의 희생자는 청년 세대의 신규 진입자, 그중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자들이다(p.314).'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자들 중에 나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책을 읽는 청년들의 마음을 가볍게 움켜쥔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뭘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을지를.

'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라는 말이 엄청난 자료와 사유 속에서 이렇게나 힘 있는 명제가 되었다.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오늘 먹은 밥 한 숟갈이 이렇게나 많은 것을 좌지우지했다는 것이. 더불어 지리의 힘 같은 것도 느낀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만약 대한민국의 위치가 달랐고, 그래서 지형과 기후가 달랐다면 우리가 어떤 다른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은 뭐랄까, 태고에 가닿는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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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간 우연이 독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았고, 공공기관에서 근로 장학생을 하며 '연공제와 청년 실업 문제'(우리 기관 신입사원은 700: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다. 2명 뽑는 자리를 두고 1400명이 경쟁한 것이다.)에 관해 몸소 체험하고 있는 나는 2주 전 '연공제와 더불어 정규직·비정규직의 이중 구조'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미생>을 읽었다. 마침 사내에서 독후감 대회가 열렸고 대상 도서는 '직장 내 세대 간 갈등과 연공제에 회의'를 느끼는 청년 세대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90년생 공무원이 온다>였다. 그리고 마침내 <쌀 재난 국가>가 내게 왔고, 우연은 이제 필연으로 그 모습을 바꾸었다.
2021년 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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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보러 다대포 가는 1호선 안에서 박솔뫼의 「여름의 끝으로」를 읽다가 이런 부분이,

“차미를 안고 등에 코를 묻으면 땅콩 냄새 같은 고소한 냄새가 났다. 일정한 소리로 코를 골며 자는 차미의 등에 코를 대고 고소한 냄새를 맡았다. 잠이 올 것 같은 냄새였다.” (33쪽)

어젠 요가원에 좀 빨리 갔고, 한참 동안 나와 선생님 그리고 고양이 샨티밖에 없었는데, 샨티는 내 요가 매트 위에 올라와, 내게 등을 돌린 채로 앉아 있고, 바즈라아사나로 요가를 준비하려던 나는, 금세 샨티의 집사가 되어, 샨티의 등을 주물주물, 코를 대고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어느덧 서늘해진 바람과 따듯한 샨티의 등을 동시에 만졌다. 여름의 끝이구나.

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

박솔뫼 지음
스위밍꿀 펴냄

2023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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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부산 가는데 『미래 산책 연습』 진짜 안 챙기려 했거든? 방금 후루룩 훑었는데 도무지 안 들고 갈 수가 없네··· 이를테면 이런 장면,

"된장찌개를 시켰는데 비빔밥을 시킬걸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제 하루가 지났고 남은 휴일은 무얼 하지 머릿속으로 일정을 정리하려 했지만 때마침 테이블에 커다란 보리차 주전자가 탕 소리를 내며 놓였고 커다랗고 따뜻한 주전자를 보자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졌고 보리차를 마시자 반찬이 나오고 상추가 나오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할 틈도 없이 테이블 위에 빠짐없이 차려진 밥을 먹기 시작했다." (47쪽)

나도 정말 제발 진실로 진정 이렇게 여행하고 싶다···
2023년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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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문학평론가가 주고받은 열두 편의 서신을 모아 놓은 책. ‘지금-여기’의 책들에 관해 나누는 이야기라 무척 재미있다. 두 분이 함께 읽은 책 중에는 내가 살펴보았거나 읽었던 책이 왕왕 있었고. 김대성, 김봉곤, 김지연, 김혜진, 서이제, 알렉세이 유르착, 유성원, 임솔아, 임현, 장류진, 조지 오웰, 한병철의 작품. 3분의 1 이상은 알고 있어서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그러나 내가 모르는 작품에 관해 나누는 서간을 읽을 때도 역시 즐거웠다. 온종일 한국문학 이야기 정말로 자신 있는 나로서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 가지고 양껏 수다 떠는 걸 지켜보는 게 못내 좋았다. 문학이 수다를 떨게 만드는 순간은 정말로 좋다!

*

“차이에 대한 기만적인 인정으로 무언가를 봉합해버리려는 편의적인 행태에 대해, 저 역시 선생님과 똑같이 못마땅해하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서로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 그 다름 속에서 한껏 부대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계기를 촉발하지 않는 타자는, 아무리 ' 차이'라는 명분으로 세련되게 포장하더라도 결국 동일성의 반복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 선생님과의 대화 혹은 열띤 논쟁이 즐거웠던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대화에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합의와 존중의 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67쪽)

이 부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년에 친구들과 (독서모임)을 시작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역시나 서로의 생각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서로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 그 다름 속에서 한껏 부대”꼈을 때. 올해도 앞으로도 마음껏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 가는군요

장정일 외 1명 지음
안온북스 펴냄

2023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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