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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세계사 펴냄

낭만과 현실이 수시로 엇갈리는 가운데 변치 않는 순수를 간직한 현보가 어느 순간 철없는 아이처럼 보이게 되기까지 나는 봄 같은 소녀에서 여름 같은 처녀를 지나 깊은 가을 낙엽 떨어지는 시절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 제가 자리를 마련해준 옆집 아이는 미군 병사들의 애를 여러 차례 뗀 양공주가 되어버리고, 가혹한 시선을 견디다가 마침내는 미국으로 훌쩍 떠난 뒤 또 악착같이 제 조카들을 한국인과만 결혼시켜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할머니가 되어버린다.

소설 속 집은 사대문 안 기풍 있는 기와집과 신발을 벗지 않고 부엌으로 갈 수 있는 일본식 적산가옥, 공간이 비할 바 없이 넓게 빠진 신형 양옥들로 변화한다. 재산은 막힘없이 불어나고 돈보다도 다른 무엇들이 훨씬 빨리 몸집을 불리는 풍요의 시대가 이어진다. 급변하는 시대상 가운데 사람을 대하는 인간들의 태도며 마음가짐 또한 변해간다. 보는 위치가, 관점이 달라지고 그로부터 태도며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것이다.

박완서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은 그녀의 작품이 인간과 삶의 본질을 슬며시 건든다고 이야기한다. 본질이란 시간이 지난다 해도 변치 않는 무엇이고, 바로 그것이 이 소설이 쏜살같이 흘러가는 시간 가운데 한 여자와 한 남자의 관계를 특별하게 담아낸 이유일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빨리 변한다 해도 결코 변치 않는 것이 몇 개쯤은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물음, 그에 대한 답을 독자들은 이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2024년 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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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브라운 최고 걸작. 어찌 이리도 정교한 작품을 써낼 수가 있었을까.

천사와 악마 1,2권 세트

댄 브라운 지음
베텔스만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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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영화협회 '독립영화 쇼케이스' 행사 관련 책자다. 시 예산이 완전 삭감되며 폐지를 알렸던 이 행사가 기적적으로 되살아났다. 개봉 및 배급에 어려움을 겪는 독립영화를 관객에 선보이는 드문 자리, 그마저도 큰폭으로 예산이 삭감된 지난해엔 겨우 6차례 진행된 게 전부였는데 그마저도 사라질 뻔했다. 내가 서울을 애정하는 이유 중 하나인 이 행사가 마침내 살아난 것을, 거기에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았던 시민들의 수고가 있었음을 나는 다행하다 여긴다.

책은 상영된 작품의 제작일지와 비평, 행사서 진행된 GV까지의 기록이다. 다른 곳에선 접하기 어려운 영화 뒷얘기를 찾아볼 수 있는 건 흥미로운 대목. 창작자들이 작품을 만들기까지 겪어낸 결코 만만찮은 지점들을 돌아보자면 그 존재조차 몰랐을 작은 영화들을 달리 보게 될지 모를 일이다.

응원한다 말할 수 있는 일이 당신에겐 몇이나 있는가. 내겐 독쇼케가 그중 하나다.

2025 독립영화 쇼케이스

한국독립영화협회 편집부 지음
한국독립영화협회 펴냄

3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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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starsky

상식의 기준이 후퇴하는 세상이다만 그래도 지켜져야 하는 울타리는 있다. 국가가 노동을 규율하는 방식도 그중 하나다. 노동이 당연한 세상을 살면서도 노동 관계 법령에 무지한 건 꼴불견이다.

노동자가 꼭 챙겨야 할 법률들이 알기 쉽게 들어찼다. 딱딱한 법규와 해석이 아니라 다채로운 사례학습으로 구성한 실전적 가이드북이다. 한국 최초로 세대별 노동조합을 이룬 청년유니온의 경험이 담겼다. 근로계약, 취업규칙, 단체협약, 법령까지 개별 노동의 형태를 이루는 네 층위부터 포괄임금제며 산재, 임금체불, 퇴직금 등 알아두어야 하는 개념을 훑어나가는 과정이 유익하다.

오늘 당연한 모든 게 한때는 당연하지 않았다. 전태일이 분신했던 당시에도 법은 있었다. 아는 이들이 외면하고, 모르는 이들은 알려 하지 않아서 그는 제 몸에 불을 당겼다. 역사를 아는 이들은 법이 피로 쓰였음을 이해한다. 상식의 울타리를 보수해야 하는 이유다.

나를 지키는 노동법

청년유니온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4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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