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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 구운몽

최인훈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광장은 문체가 매우 독특하다.

주인공의 내면을 세밀하게 묘사하며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방식이 왠지 모르게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시대적 배경은 정치적 혼란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절정에 달했던 1940년대 후반에서 6.25전쟁을 끝맺는 시기 까지이다.

제목으로도 쓰인 ‘광장’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나는 그것을 주로 하버마스가 말한 공론장의 측면에서 바라봤다.

주인공 이명준은 철학을 전공으로 하는 대학생으로 부유한 아버지의 친구 집에서 기거한다.

그러던 와중 북에서 대남방송을 주관하는 아버지로 인해 경찰서에 잡혀가 극심한 고충을 겪는다.

남한의 정치, 경제, 문화 예술의 광장에 대해 극심한 경멸을 토로한 그는 우연한 기회에 밀항선을 타고 아버지가 있는 북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부푼 꿈을 안고 도착한 북녘 땅에서 조차 그가 찾던 광장은 없었다.

자유는 매몰되고, 인민들은 무기력증에 빠졌으며, 오로지 당의 뜻대로를 외치는 꼭두각시가 지배하는 비상식적인 사회였다.

남과 북 어디에서도 광장을 찾지 못해 괴로워 하던 그는 사랑에서 도피처를 찾지만, 그 사랑도 오래가지는 못 한다.

전쟁 중에 애인은 죽고 자신은 전쟁포로가 되어 종전을 맞게 된 것이다.

명준은 남과 북이 아닌 제 3국으로 향한다.

그곳엔 광장이 있을까?

3국으로 가는 배에서 극심한 혼란을 느끼던 그는 바다에 몸을 던진다.

그가 마지막으로 택한 것은 광장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2025년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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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od님의 기억한다는 착각 게시물 이미지

기억한다는 착각

차란 란가나스 지음
김영사 펴냄

읽었어요
3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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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d

도발적인 제목에 이끌려 책을 뽑아들게 되었다.

‘기억이 착각이라고…?’

물론 기억이 왜곡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생생하게 느끼는 이 기억이 과연 얼마만큼 왜곡될 수 있는지 궁금해져 책을 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글은 쉽고 재미있어 매우 잘 넘어가는 편이다.

하지만 기억을 담당하는 특정 부위의 기능과 명칭, 그리고 연구에 관한 전문적인 어휘들이 많이 나오는 까닭에 종종 집중력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곤 했다.

아무튼 이 책의 요지는 이렇다.

기억은 사진이나 동영상 파일처럼 뇌의 특정 부위에 한 뭉텅이로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뇌의 여러 부위가 상호 협동하여 만들어 내는 복합물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해마는 특정 사건의 기록들을 보관하거나 재구성하는 역할을 맡고, 신피질에 있는 DMN(Default Mode Network,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은 건물의 설계도처럼 여러 사건에 공통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기억의 도면을 보관하는 역할을 맡는다.

예컨대 일상생활의 배경이 되는 학교, 회사, 카페, 버스나 지하철 등의 세부 사항을 전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레고처럼 설계도만 있으면 언제든지 목적물을 만들 수 있도록 일련의 도면만을 간직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기억할 때와 상상할 때 뇌의 동일한 부위의 활동성이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보아, 양자는 동일한 원리로 재구성되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기억 역시 상상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같은 절차로 이루어지기에 무조건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기억은 해마와 DMN이 함께 만든 결과물이면서, 현재의 상황과 가치관, 신념에 따라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는 '나만의 기록'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실수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뇌과학 책을 읽을 때면 언제나 ‘인간은 생명체가 아닌 컴퓨터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감각 정보에 의해 호르몬이 분비되고, 그 호르몬이 뇌를 자극하며, 호르몬에 자극받은 뇌가 근육 세포에 명령을 내리는 체계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스템 안에 과연 인간의 자유의지가 설 자리가 있을까?

실제로는 없다 해도 나는 있다고 믿고 싶다.

왜냐하면 이는 나의 독서습관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보면 아주 가끔, 전기에 감전된 듯 몸서리칠 때가 있다.

무언가 아주 강렬한 깨달음을 얻은 순간인데,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뇌가 새로운 정보를 기억하기 위해 도파민을 마구 뿜어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

내가 책을 읽는 것은 자유의지가 아닌, 그저 도파민이라는 호르몬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생각하면 삶이 너무 서글퍼진다.

그보다는 책을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과 새로운 지식을 갈구하는 나의 자유의지 덕분이라고 믿고 싶을 뿐이다.

기억한다는 착각

차란 란가나스 지음
김영사 펴냄

읽고있어요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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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d

매우 독특한 형식의 추리소설이다.

빨강이라는 색채뿐만 아니라 나무, 개, 동전, 죽음 등이 마치 사람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가 하면, 작품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화자 또한 이미 목숨을 잃은 시체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배경은 16세기 오스만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이고, 등장인물 대부분은 궁정 화원에서 그림을 그리는 세밀화가들이다.

첫 장면은 죽은 시체가 자신을 죽인 살인범을 꼭 잡아달라며 절규하는 모습으로 시작되는데, 현실과 괴리된 설정치고 몰입감이 상당한 것이 특징이다.

살인 사건이 발생하게 된 계기는 동양의 미술 전통을 고수해야 한다는 쪽과 서양의 미술 기법을 모방해야 한다는 쪽의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인종과 문화, 이슬람과 기독교, 동양과 서양이라는 양립 불가능한 개념 속에 갈등은 이미 내포되어 있었다.

이슬람의 전통을 고수하는 보수파의 수장은 궁정 화원장 ‘오스만’이고, 서양의 선진 미술 기법을 받아들이자는 개혁파의 수장은 ‘에니시테’라 불리는 원로 화가이다.

에니시테는 오스만 몰래 술탄으로부터 서양식 화첩 제작을 허락받고 비밀리에 팀을 꾸려 일을 진행한다.

그러던 와중 앞서 언급한 살인 사건이 발생하며 화첩 제작이 위기에 빠지자, 에니시테는 자신이 내쫓았던 조카 ‘카라’를 이스탄불로 부랴부랴 불러들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에니시테마저 살해당하고 만다.

분노한 술탄은 화원장 오스만과 카라를 불러들여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흘 이내에 범인을 색출해 내라는 명령을 내린다.

오스만은 기회를 틈타 살인자가 남긴 단서를 추적해야 한다는 핑계로 술탄의 개인 서고 출입을 승낙받고, 그곳에 틀어박혀 수많은 화첩과 그림들을 분석하며 살인자를 추적해 나간다.

범인은 궁정 화가인 나비, 올리브, 황새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아주 교묘하게 숨겨져 있어 결말을 읽기 전까지는 누가 살인범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이게 끝이 아니다.

결말 부분에 저자가 숨겨놓은 또 다른 반전 요소가 등장하는데, 그 부분을 읽고 나서 눈이 휘둥그레진 기억이 난다.

돌이켜 보면 당시의 느낌은 라슬로 크라스나호르카이의 [사탄탱고]에서 느꼈던 충격적인 결말과 상당히 유사하다.

[내 이름은 빨강]과 [사탄탱고]는 모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대표작이다.

혹시 서사의 마지막에 숨겨놓은 그 교묘한 장치가 노벨상을 향한 비기가 아니었을까?

아무튼 이번 작품을 통해 소설이라는 장르의 경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함과 동시에, 인간이 가진 창의력은 무한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이렇듯 위대한 작가들이 존재하는 한, 인간이 이미 창조해낸 데이터들을 재조합할 뿐인 AI에 대해 지나치게 경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 이름은 빨강 2

오르한 파묵 지음
민음사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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