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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미래 양장

김연수 지음
문학동네 펴냄

34p.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 1999년에 내게는 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이 있었다. 미래를 기억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과 일어날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44p.
그러므로 자연이 무섭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자신의 내부에 두려움이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지금 이 눈보라의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까? 어둠이 내린 밤, 보이는 거라고는 그저 자신의 모습뿐인 칠흑 같은 창을 바라보며 그는 생각했다. 아마도, 그 의미 없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리라. 의미 없는 것들의 무자비함을. 이 무자비함의 그물에서 벗어나려면 사람은 자기 내면에 의미를 세워 자연을 해석해야만 한다.(…)아무런 의미가 없어 무자비할 수 밖에 없는 자연에 맞서기 위해 상징을 부여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정현이 평생 몰두해온 일이었다.

45p.
세컨드 윈드
요약: 운동하는 중에 고통이 줄어들고 운동을 계속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는 상태.
제 2차 정상상태라고도 한다. 운동 초반에는 호흡곤란, 가슴 통증, 두통 등 고통으로 인해 운동을 중지하고 싶은 느낌이 드는데 이 시점을 사점(dead point)이라고 한다. 이 사점이 지나면 고통이 줄어들고 호흡이 순조로우면 운동을 계속할 의욕이 생기는데, 이 상태를 세컨드 윈드라고 한다.

73p.
우리가 달까지 갈 수는 없지만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어갈 수는 있다. 달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만 있다면. 마찬가지로 우리는 달까지 걸어가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 희망의 방향만 찾을 수 있다면.

85p.
사람의 마음을 연구한다는 선생님도 저를 이해하려고 애썼을 뿐이지 이해하진 못하셨잖아요. 누군가를 이해하려 한다고 말할 때 선생님은 정말로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그동안 제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를 ㄹ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면서 그게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20p.
“글쎄. 난 세상은 점점 좋아진다고 생각해. 지금 슬퍼서 우는 사람에게도. 우리는 모든 걸 이야기로 만들 수 있으니까. 이야기 덕분에 만물은 끝없이 진화하고 있어. 하지만 난 비관주의자야.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비관주의가 도움이 돼. 비관적이지 않으면 굳이 그걸 이야기로 남길 필요가 없을 테니까. 이야기로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인생도 바꿀 수 있지 않겠어? 누가 도와주는 게 아니야. 이걸 다 우리가 할 수 있어. 우리에게는 충분히 그럴 만한 힘이 있어. 그게 나의 믿음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순간은 찾아와. 그것도 자주. 모든 믿음이 시들해지는 순간이 있어. 인간에 대한 신뢰도 접어두고 싶고,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때가. 그럴 때가 바로 어쩔 수 없이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할 순간이지. 아무리 세찬 모래 폭풍이라고 할지라도 지나간다는 거승ㄹ 믿는, 버스 안의 고개 숙인 인도 사람들처럼. 그건 그 책을 읽기 전부터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였어.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에게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하고, 지금도 책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 그분들은 왜 그렇게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할까? 나는 왜 같은 이야기를 읽고 또 읽을까? 그러다가 문득 알게 된 거야. 그 이유를.”
“이유가 뭔데?”
“언젠가 그 이야기는 우리의 삶이 되기 때문이지.”

181p.
“우리에게는 아직도 지켜볼 꽃잎이 많이 남아 있다. 나는 그 꽃잎 하나하나를 벌써부터 기억하고 있다는 걸 네게 말하고 싶었던 것일 뿐.”

187p.
애써.
사전에는 ‘몸과 마음이 다하여 무엇을 이루려고 힘쓰다’라고 나와 있었다. 그러니까 이제는 무엇도 이룰 것이 없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다하지 않는 사이.

196p.
“언제나 마음이 유죄지.”
영원한 여름이란 환상이었고, 모든 것에는 끝이 있었다. 사랑이 저물기 시작하자, 한창 사랑할 때는 잘 보이지도 않았던 마음이 점점 길어졌다. 실어진 마음은 사랑한다고도 말하고, 미워한다고도 말하고. 알겠다고도 말하고, 모르겠다고도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고, 말만 하고.
마음은 언제나 늦되기 때문에 유죄다.

209p.
내 안에는 당신이 아니라면 누구에게도 하지 못하는 말들, 아무런 쓸모도 없는 말들이 가득하네요. 끝내 부치지 못할 이 편지에 적힌 단어들처럼. 그중에서도 가장 쓸모없는 말은, 그때는 말할 필요조차 없었던, 하지만 이제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게된 그말, 한 때 나를 사랑했던 너에게는 말할 수 있었으나 이제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당신에게는 말할 수 없는 그 말,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나를 사랑했던 너에게, 그리고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당신에게.
부디 잘 지내고, 잘 지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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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p.
이 음악회에서는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연주했습니다. 1952년 데이비드 튜더가 우드스톡에서 초연한 <4분 33초>는 악보에 ’휴지TACET’라는 지시밖에 없기 때문에 악기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연주회장을 가득 채우는 기침소리나 팸플릿을 넘기는 소리 등으로 의식이 향합니다.
<4분 33초>는 실로 ’듣다’의 정의가 무엇인지 묻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들리지 않기‘때문에 ‘들린다‘는 것…… 연주회가 끝나고 정담을 나눌 때 청각장애가 있는 여자아이가 “지금 들은 음악은 복잡하네요” 하는 말을 듣고, 오치아이 요이치는 “맙소사, 저 아이가 존 케이지의 의도를 딱 꿰뚫었군!”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154p.
구라사와 씨 손의 환지는 손가락뿐 아니라 손의 위치 자체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습ㄴ디ㅏ. 손을 움직일 수 없는 이유는 손이 ’몸통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손이 주머니에 들어가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에 가깝다고 할까요. “손 부분이 몸에서 빠져나오지 않아요.” (…) “파묻혀 있는 것일까요? 내 몸의 느낌으로 보면… 아, 역시 파묻혀 있어요.”
게다가 구라사와 씨가 느끼는 손의 위치는 그날그날 미묘하게 다르다고 합ㄴ디ㅏ. 자신의 의지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매일 어디에 가 있는지 찾아보게 된다고 하네요. “아침마다 눈을 뜨면 손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내 손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 일이 즐거워요. ‘어머, 오늘은 여기에 있네‘ 하고 확인한답니다.” (…) 환지가 자유롭게 움직이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엎드려서 자고 있으면 환지가 방바닥을 뚫고 나가 방바닥 밑을 더듬고 있어요.“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234p.
한 18세 선천성 무통증자 소년의 언어를 참조했습니다. 두 사람의 보고에 따르면 그 소년은 자기 몸을 ’아무나 타도 상관없는 자동차’ 같다고 느꼈습니다. 자기의 팔다리는 ‘도구‘같을 뿐 자신의 일부러 생각할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하시모토는 이렇게 논합니다. ”통증이 있기 때문에 몸은 내 일부가 되는 것이다. 통증이 없다면 내 몸은 ’자동차’나 ‘도구‘같은 소유물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통증이 ’어디론가 끌려간’ 듯 느낍니다. 그렇지만 애초부터 몸이란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조정하거나 구사할 수 있는 것은 몸이 아닙니다. 몸이란 본래적으로 자기 자신이 전부 알 수 없습니다. 나는 몸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것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239p.
체념을 통해 구원받을 수도 있습니다. 정현환 씨는 병이 난 직후에 부인이 한 말이 좋은 의미에서 인상 깊었다고 회고합니다. 부인은 ‘병에 걸려서 다행이야’ 하고 말했던 것입니다. 웬만해서는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말이지만, 그 한마디는 정현환씨가 겪어온 시간을 알기 때문에 나온 말이었습니다.
정현환 씨는 제일조선인 3세로서 고생하며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와 차별 문제에 관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해왔습니다. 그런 경력이 있기 때문에 부인은 ’다행이야’라고 말했던 거지요. 정현환씨는 이렇게 이해햅니다. “나라면 이런 일쯤은 극복해내야 하지 않겠는냐는 뜻이지요. 관록이 붙어서 다행이야.”

기억하는 몸

이토 아사 지음
현암사 펴냄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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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p.
이기주의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이라면, 개인주의는 다른 사람들 역시 자신과 동등한 존재, 똑같은 욕구를 지니고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는 한 명의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러한 까닭으로 개인주의자는 많은 이들의 오해와는 다르게 오히려 공동체를 소중히 여긴다. 공동체를 개인의 대립항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오럿이 개인인 상태로 머물게 하는 일종의 보호막으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는 집단과는 다르며, 개인주의자는 연대의 중요성을 안다. 집단의 규칙이기에 억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개인으로서 다른 개인과 연대한다. 타인도 자신처럼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고, 타인의 욕구와 감정 또한 자신의 것만큼 중요시 여긴다. 자신의 권리가 소중하기에 그만큼 타인의 권리도 존중한다.

12p.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그리하여 자신이 누군지 알고자 끊임없이 애쓴다. 반면 타인에 대해서는 쉽게 규정짓는다. 성별, 학벌, 출신지, 결혼 여부 등으로 뭉뚱그려서 파악한다. 자신은 너무나 복잡한 반면, 타인은 너무나 단순한 대상으로 취급하곤 한다. 각각의 정보마다 특정한 값을 설정해둔 다음, 해당 값에 인물을 가져다 맞춘다. 물론 어떤 의미엣 ㅓ매우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사람들은 바쁘고, 시간은 부족하니 말이다. 정보마다 특정 값을 설정하여 해당 값을 모두 더하는 것은 사람을 파악하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일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 정보 값이 편견과 선입견에 근거하여 틀린 경우가 매우 많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가장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그러한 방법이 과연 옳은가 하면, 그렇게. 도출해낸 결과값이 누군가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묻는다면, 그 또한 아니라는 것이다.

57p.
우리 사회에서 주류 혹은 다수의 관념에서 어긋나는 많은 영역에는 이러한 요구가 존재한다. “본인들이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내가 궁금한 건 왜 굳이 거리에서 남들 다 보는 곳에서 저런 행동을 하느냐는 거지.” “자기가 성폭력 피해자면 피해자지 왜 굳이 저런 이야기를 만날 하고 다니지?” “이혼했다고 난 특별히 편견 없어. 근데 왜 굳이 저런 말을 해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해?” “여성 인권이 더 열악한 거 잘 알겠는데, 그걸 왜 티를 못 내서 안들이야?”
이와 같이 소수자, 마이너적인 정체성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되, 티 내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을 ‘커버링’이라고 부른다.(…) 요약하자면 “어떤 낙인이 찍힌 사람들이 그 낙인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행위”를 이야기한다.

98p.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언행이나 인식이 특별히 더 나쁘거나 무지한 것이 아니라, 굉장히 보편적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아이랑 놀아줄 바에 차라리 회사에 나가는 것이 나을 정도로 육아가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집에 머물고 있거나 실질적인 ‘돈‘을 생산하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쉬고 있다‘는 말을 무신경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주부를 백수의 동의어로 생각하는 사람이 상당수라는 사실을.
또한 내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속으로 발끈하며 굉장히 화를 냈던 것은 실은 나 자신이 어느 정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 역시 알게 되었다. 스스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나 역시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타이틀과 직함을 중요시 하고 있었던 것이다. (…) “집에서 쉬고 계시는 거네요?” 라는 질문을 통해 나는 비로소 그것을 알게 된 것이다.

101p.
책 속에서 그는 “남의 시선을 어떻게 이기나요?”라는 질문에 “이겼다기보단 견뎠어요”라고 대답한다. 마음으로는 이기고 싶었지만 사실은 이기질 못했다고. 그래서 신경은 쓰였지만 그냥 견뎠다고. 그러나, 그럼에도 자신은 그림을 그리고 싶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동시에 생계도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소일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밥벌이‘수단이기 때문에 견디는 것이라고. 그 말에 왠지 묘하게 위로를 받았다. 그 말에 기대어 이후의 많은 순간을 견뎌왔던 것 같다.
실은 견디는 것이 결국 이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116p.
딸들은 지금의 젊은 여성들처럼 키우면 된다. 좋은 것은 좋다고, 싫은 것은 싫다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여성이라는 이름에 따라오는 부당한 압력에 순응하지 않도록. 욕망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설사 성폭력을 겪더라도 그것을 자신의 잘못이라 여기며 수치스러워하지 않도록. 누군가 밀쳐서 넘어지면 울지만 말고 일어나서 싸우도록.

133p.
“내가 한 것이라곤 살아남은 것뿐인데 나는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허스킨즈 역시 죽지 않았기 때문에, 단지 살아남았기 때문에 모든 사건이 밝혀진 이후에도 끊임없이 진실성을 의심받았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완벽한’ 피해자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악마‘나 ’괴물‘처럼 철저하게 악의로 똘똘뭉친 ’완벽한‘ 가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완벽한‘ 피해자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피해자는 없다.

159p.
그래도 나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늘 웃기만 했다. 예민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화를 내면 그드이 비웃고 농담의 대상으로 삼는 다른 많은 여성 중 하나가 되는 것만 같았다. 그러기는 싫었다. 계속해서 쿨한 사람이고 싶었다. 너무도 격하게 남성 커뮤니티의 일부에 속하고 싶었다.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웃고, 같은 방식의 농담을 하면 그들이 가진 권력을 나누어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같이 웃었다.

162p.
눈치는 약자의 언어라고 한다. 본인들도 인지하지 못했겠지만 그토록 무신경하면서 무례하기 짝이 없는 용감한 시도를 하 수 있는 이유는 그렇게 해도 되기 때문이다. 줄곧 그렇게 지내왔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그러나 듣는 입장에서는 자신이 너무 예민한 것은 아닌가 하는 검열에 시달리며 제대로 된 대응을 하는 것조차 힘들다. 또한 부류편함을 표현하는 순간마저 침착함과 상냥함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가 어떤 해코지를 할지 몰라 두려우니까.

173p.
나는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다시금 깨달았다. 내가 사는 세상과 그가 사는 세상이 같지 않다는 것을. 돈을 번다는 것과 ’살 만하다‘는 것의 의미가 꼭 같지는 않다는 것을. 하루 종일 노동을 해서 돈을 벌 수는 있지만, 그 삶이 반드시 인간답다고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295p.
별것도 아닌 말을 듣고 왜 그렇게까지 화가 났는가에 대해서 오래도록 생각했는데, 아마도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알고 있어서 용서할 수 없었다. 그가 했던 말이 내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싫어하는 게 너무나 많은 나. 비뚤어진 나. 부정적인 나. 그런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나 자신.

296p.
그러고 보니 무언가가 괜히 마음에 들지 않거나 거슬리던 때는 늘 비슷했던 것 같다. 타인에게서 내 안의 어떤 거슬리는 지점을 찾아냈을 때. 어떻게든 인정받고 싶어 발버둥치는 사람이 보기 싫게 느껴지던 순간은 내 안에 인정욕구가 갈급한 상황이었고, 타인의 비위를 맞추려 무리하는 사람이 괜히 눈에 밟히던 때는 내 안에 비굴함이 넘치던 시기였다. ‘쿨한 척‘하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고 우스워 보일 때는 나 지신이 냉소로 가득할 때였다. 누군가의 속내를 간파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은 내가 그와 같은 속내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세상이 악의와 음모로 가득해 보이던 때는 나의 내면이 황폐하던 시점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불만이 극대화되었을 때,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을 때 분노는 늘 밖으로 뻗어나갔다. 그렇게 뻗어나간 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나의 어떤 지점을 타인에게서 정확히 찾아냈다. 그리고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나’를 잊기 위해, 내가 싫어하는 나의 단점을 지닌 상대방을 맹렬히 미워하곤 했다. 내가 현재 미워하는 상대방의 속성이 분명 내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했다.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다정한 무관심

한승혜 (지은이) 지음
사우 펴냄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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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p.
염라왕은 곧 그사람을 불러 앞에 두고 말한다. “너는 사람으로서 세상에 있으면서 부모가 너를 기를 때에, 마른데나 진 데를 가리고 젖을 먹여 기른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너는 어찌하여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았는가?” 그 사람은 염라왕에게 대답하였다. … “저는 진실로 어리석고 교만하였습니다. ” 염라왕은 말한다. “너를 죄짓게 한 이는 부모도 아니고 하늘도 아니고 제왕도 아니요, 사문이나 도인도 아니다. 네 자신이 지은 것이니 마땅히 스스로 벌을 받아야 한다.”

다시 두 번째로 묻는다. “너는 병이 심할 때 몹시 쇠약해져서 손발을 마음대로 노릴 수 없었던 일이 있었는가?” 그 사람은 대답하였다. “저는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염라왕은 말한다. “너는 어찌하여 스스로 회개하여 착각하게 되지 않았는가?”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진실로 어리석고 교만하였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자연 현상인 생로병사를 심문하는 대목이 의아할 수도 있다. 태어나는 것과 늙는 것, 아픈 것, 죽는 것이 어찌 죄가 되는지 말이다. 불교에서 생로병사란 인간이 살면서 겪어야 하는 네 가지 고통을 의미하며 전생에 지은 업으로 인한 것이다. 그리고 네 가지 고통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해를 끼치니, 염라는 바로 이 점을 심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74p.
용서받지 못한 자여, 오랜 동안 지옥에 머문 자여, 이제 다 왔다. 마침내 마지막 판결을 담당하는 열 번째 오도전륜대왕을 대면한다. 염라와 함께 최초로 지옥을 다스린 제왕 오도전륜대왕은 오토와 전륜, 즉 다섯 개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다섯 개의 수레바퀴란 육도윤회 중 지옥을 제외한 다섯 세계를 말한다. 시왕 중 오도전륜대왕의 역할이 제일 중요한데 그는 다시 태어날 모습을 결정하는 최종판결을 내리기 때문이다.

194p.
저 청년은 무슨 죄가 있다고 고통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가? 측은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 흥균노조가 온 힘을 다하여 주문을 외자 줄줄 흘러내리던 살과 피는 다시 머리로 들어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 보습과는 다르게 정수리가 얼굴보다 더 길어지고 대머리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신체까지 늙은이로 변해버렸으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주문을 외운 홍균노조는 예상치 못한 모습에 당황하여 몸이 굳어버렸고 스승인 원시천존 역시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당사자인 수성의 반응은 어땠을까? 처음에는 자신의 모습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곧바로 이제야 신선의 모습과 어울린다고 껄껄 웃어넘겼다. 이 모습을 본 두 신선은 대인배의 면모를 지닌 수성에게 감동하였고 인간의 수명을 주관하는 커다란 임무를 맡겼다고 한다.

222p.
뱀은 겨울에는 동면에 들었다가 봄이 오면 깨어나고 주기적으로 허물을 벗어 새로운 몸을 엇는다. 봄은 탄생과 출발점을, 겨울은 죽음과 종착점을 상징하니 겨울잠에서 깨어난 뱀은 새로운 탄생을, 허물을 벗는 모습은 불명을 상징하는 것이다. 즉 조사신이 뱀을 지니고 다니는 이유는 뱀의 원초적인 생명력을 소지하거나 과시하면서 불사의 생명력, 혹은 강력한 힘을 얻기 위함인 것이다.

294p.
서양에서 인어를 뜻하는 ’머메이드Mermaid’는 고대 이집트에서 물을 의미하는 ’메르Mer’에서 유래되었으며 이 단어는 바다와 관련된 수많은 물체와 현상을 지칭하는 폭넓은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유구한 역사를 가진 인어는 처음부터 가녀리고 아름다운 공주의 이미지였을까? 물론 아니다.(…)초기 서양의 인어는 그로테스크라는 단어가 연상될 만큼 이미지가 괴이하다. 대표적인 사례는 스킬라라는 괴물 인어인데, 스킬라는 고대 그리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며 원래 아름다운 요정이었지만 마녀는 저주로 끔찍한 괴몰이 된다. 이 존재는 하반신이 물고기고 허리 주변에 들개 머리와 뱀이 달린 오싹한 모습이었는데, 이 괴수드은 항상 날카로운 송곳니르 드러내면서 굶주림에 울부짖었다고 한다.

나는 신이로소이다

김용덕 지음
미술문화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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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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