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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칸트

아민 말루프 지음
교양인 펴냄

읽지 않아도 걸작임을 아는 몇 권이 있다. 값진 무엇을 잃고 상심에 빠질 때에만 나는 그를 하나씩 꺼내어 펼친다. 책이 심어낼 작은 빛이 위안이 되기를 소망하며.

어리석은 이들은 세상이 편의적으로 갈라 놓은 대로 모든 걸 이해한다. 말루프는 그 꽉 막힌 구분 너머 연결을 추구한다. 그러면 그 속에서 중동이라 불리던 건 아랍과 페르시아와 튀르크의 세계로, 다시 그보다 복잡한 것들로 갈라지고 이어진다. 힘과 사랑과 우정과 돈과 명예를 좇는 이들이 서로 뭉치고 멀어지고 살았다가는 죽어간다. 그 속에서 의롭고 눈 밝은 자는 친구를 알아보고 턱밑에 겨눠진 칼날 앞에서도 마땅한 곳으로만 향한다. 이쯤되면 내 곁의 어리석은 이보다 서방의 현자를, 내 앞의 불의한 자보다도 동방의 의로운 이를 가깝게 느낄밖에. 이는 말루프가 내게 미치는 백 한 가지 이로움 중 하나다. 어둡고 비좁은 나의 세계가 비로소 트이고 밝아지니 독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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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는 라디오를 밀어냈다. 무선통신은 유선전화를 사멸시켰다. 디지털은 아날로그를 대체했다. 사라진 건 도구만이 아니다. 직업이었고 삶의 형태며 사고방식이었다.

한탸는 고아하다. 사고한다는 게 인간 아닌 신에 닿는 일이란 걸 이해한다. 폐기될 것 가운데 가치를 탐색하고, 죽음의 문턱에서 아름다움을 구한다. 칸트의 용도폐기 앞에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는 이, 그가 있다면 폐지 쌓인 지하실도 보물창고다.

그는 안다. 라디오가, 아날로그가, 팩스가 사라졌듯 제 일 또한 달라지리란 걸. 일자리의 소멸만이 아니다. 편지 없는 시대가 기다림과 추억과 사색과 온건한 정서마저 앗아갔듯이 보물창고도 폐허가 될 테다.

지혜 앞에 어리석음을 택하는 건 자유가 아니다. 지혜에의 모욕이다. 불행히도 시대가 지혜를 모욕하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단 이를 나는 말릴 도리가 없다.

한탸 없는 이 세상은 너무 시시하고 번잡하구나.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문학동네 펴냄

3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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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에 표준은 없다. 문명 또한 정답은 없다. 땅에 발 딛고 사는 나는 자주 그 사실을 잊는다. 내가 사는 꼴이, 내가 뻗치는 사고의 가지가 표준이고 정답이라 여긴다. 한심하게도.

저자는 나고 자란 한국과 배우고 겪은 독일 사회를 비교한다. 교육과 주거, 의료를 공공재로 다루고, 정치 뿐 아니라 사회민주화까지 이룬 독일의 모습이 한국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 차이를 68혁명의 영향유무라 진단한 해석이 신선하다.

마침내 통일을 이룬 독일과 합의는 커녕 연락망 하나 지켜내지 못하고 대립하는 남북의 상황 또한 대비된다. 이번 세기 들어 구조개혁이랄 것을 거의 해내지 못한 한국의 민망한 현실을 보자면 희망을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는 건지 아연해지기도 한다.

그럴수록 중요한 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지키는 일. 빡대가리의 낙천이 아니라 현자의 낙관을 가진 강인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어보자.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지음
해냄 펴냄

5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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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큐멘터리가 뭔지는 안다. 그러나 이달 본 다큐라면 십중팔구 '인간극장' 같은 TV편성물, 아니면 그조차도 없게 마련. 방송국 바깥에서 독자적으로 제작한 다큐영화를 보는 사람은 길가에 심긴 포플러나무만큼 마주하기 힘든 존재가 된 지 오래다.

영화연구자인 저자가 27명의 다큐인에게 현실적 물음을 던졌다. 대다수가 한국 다큐계 중추라 해도 좋을 인터뷰이들이 다큐를 지속하는 이유, 지향하는 목표, 현실적 어려움을 솔직하게 풀어낸다. 방송다큐와 독립다큐란 전통적 구분과 사회참여적 다큐와 팝다큐라 불리는 새로운 흐름의 대비 가운데 좁아져만 가는 다큐의 영역에서 희망을 모색하는 움작거림을 읽어본다.

세상을 바꾸려는 열망과 분출하는 창작욕구, 스러지는 것들의 곁을 지키려는 책임감 사이에서 분투하는 이들. 이들이 각자의 현장에서 카메라 안에 담아낸 풍경이 궁금하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가 있다.

다큐멘터리, 현장을 말한다

형대조 (지은이)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6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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