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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달자

로이스 로리 지음
비룡소 펴냄

📃 그러나 동시에 두려움이 가득 차는 것도 느꼈다. 조너스는 기억 보유자로 선출되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알지 못했다. 자신이 무엇이 될지 알 수 없었다. 아니면 무엇이 자신이 될지 알지 못했다.

📃 “모든 게 똑같으니까 선택할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아침에 일어나 옷을 입을 때 제가 옷을 고르고 싶어요! 파란 옷을 입을까, 빨간 옷을 입을까 하고 말이에요.”

📃 “하지만 저도 가끔씩 색깔을 볼 수 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가브리엘도 색깔을 볼 수 있어서 우리 가족이 빨간색, 노란색 물건을 양손에 들고 가브리엘이 그중 더 마음에 드는 걸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고요. 똑같은 색깔의 물건 대신 말이에요.”

“잘못 선택할 수도 있겠지.”

조너스가 잠시 숨을 들이쉬었다가 다시 말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사실 아기 장난감은 별 문제가 아닐지도 몰라요. 하지만 나중에는 아주 큰 문제로 나타나겠죠? 우리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선택도 할 수 없게 되어 있어요.”

기억 전달자가 물었다.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조너스가 확신에 차서 말했다.

“안전하지 않은 것은 확실해요. 사람들이 배우자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배우자를 잘못 선택한다면요?”

계속해서 조너스는 마치 자기 말의 어리석음을 비웃듯이 말했다.

“아니면 이럼 어떨까요? 사람들이 자기 직위를 스스로 선택한다면 말이에요?”

📃 그런데 지금 조너스는 굶어 죽어 가고 있었다. 계속 마을에 머물렀다면 아마도 굶어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간단명료한 사실이었다. 한때 조너스는 선택을 갈망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잘못이었다. 떠나기를 선택한 것 말이다. 그 결과 지금 자신은 굶어 죽으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그곳에 머물렀다면…….’ 

조너스는 계속 생각했다. 

만약 계속 마을에 머물렀다면 다른 것에 굶주렸을 것이다. 감정, 색깔, 사랑 등에 굶주리면서 평생 살았을 것이다. 게다가 가브리엘은? 가브리엘은 마을에서는 절대로 생명을 보장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셈이다.

📃 이제 조너스는 자신이 어쩌면 가브리엘을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울었다. 더 이상 자신을 걱정할 수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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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체님의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게시물 이미지
https://m.blog.naver.com/typeface_/224225905762

📃 시간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왜 항상 바보 같은 연속만 있고, 들끓어 오르는, 충족된 ‘동시’는 없는 것일까? 왜 그는 홀아비처럼, 노인처럼, 이제 다시 홀로 침대에 누워 있는가? 짧은 생애 전체를 통하여 우리는 즐길 수 있고 창작할 수 있지만, 언제나 노래를 연속으로 부를 수 있을 뿐, 결코 수백 가지의 음성과 악기들이 동시에 울리는 완전한 교향곡처럼 소리 낼 수는 없었다.

📃 여보게나, 루이지. 나도 종종 자네처럼 생각한다네, 우리가 하는 예술 행위 전체가 보상일 뿐이라고. 놓쳐 버린 삶, 놓쳐 버린 동물성, 놓쳐 버린 사랑에 대해 힘들고도 열 배나 더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는 보상이라고 말일세. 하지만 그렇지 않아. 전혀 달라. 우리가 정신적인 것을 감각적인 것의 결핍에 대한 임시 보상책이라고 간주한다면, 그건 감각적인 것을 과대평가하는 것일세. 감각적인 것이 정신적인 것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양자는 하나이고, 모두 똑같이 좋은 것이야.

📃 클링조어는 다시 한번 청춘의 가장 달콤한 술잔에서 우정이란 음료를 빨아들였다. 클링조어에게는 친구가 많았고, 많은 친구들이 그를 사랑했으며, 그도 여러 친구들에게 많은 것을 주고 자신의 성급한 가슴을 열어 보이기도 했다.

📃 내 말은, 오늘은 결코 다시 오지 않으며 오늘을 먹고 마시고 맛보고 냄새 맡지 않는 사람에게 영원히 절대로 두 번 다시 주어지지 않는다는 거야. 태양은 두 번 다시 오늘처럼 빛나지 않을 거야.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헤르만 헤세 지음
민음사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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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체님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게시물 이미지
https://m.blog.naver.com/typeface_/224218910743

📃 ‘어쩌겠어, 죽었는걸. 하지만 나는 아니잖아.’ 그들은 저마다 이렇게 생각하거나 느꼈다. 가까운 지인들, 이른바 이반 일리치의 친구들은 이와 더불어 이제 예의상 몹시 따분한 의무를 다해야 하고 추도식에 참석하여 남편을 잃은 부인에게 조의를 표해야 한다는 떨떠름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 이반 일리치는 자기가 죽어 가고 있음을 깨닫자 계속 절망에 빠져 있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자신이 죽어 가고 있음을 알았지만 그것에 익숙해지기는커녕, 그저 이해되지 않았고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었다.

📃 키제베터 논리학에서 배운 삼단 논법의 예를 따르자면 카이사르는 인간이다, 인간은 죽는다, 고로 카이사르도 죽는다, 라고 했다. 그는 평생 이것이 카이사르에게만 해당하는 말이지 절대 자기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리라고 여겨 왔다. 카이사르는 보편적 인간이므로 이것은 완벽히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카이사르 같은 보편적 인간이 아니라, 항상 모든 사람들과 다른, 완전히 특별한 존재였다.

📃 그가 보기에 자기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은, 죽어 간다는 이 무섭고 끔찍한 사건을 어쩌다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로, 일정 부분 점잖지 못한 일의 수준으로(마치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거실로 들어오는 사람을 대하듯) 격하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그가 한평생 모셔 온 ‘품위’라는 것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민음사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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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체님의 13.67 게시물 이미지
https://m.blog.naver.com/typeface_/224215657380

📃 경찰의 사명은 진실을 밝히고 범죄자를 체포함으로써 무고한 시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가 악당을 법으로 다스리지 못하고 진실을 덮으려 한다면 관전둬는 자기 자신을 시커먼 늪에 던져 넣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의 방식 그대로 그들을 상대할 것이다.

어쩌면 관전둬의 방식은 검은색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목적은 흰색이다.

📃 어쩌면 세상일이란 전부 정해진 운명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닐까. 시작과 끝이 모두 보통 사람은 꿰뚫어볼 수 없는 우연의 일치로 이뤄진다면, 시간의 도도한 물줄기 속에서 인간은 작디작은 모래알과 같은 존재로 무력하게 시대의 흐름을 따라 흘러갈 뿐이다.

📃 지금 우리는 광기와 이성의 경계선에 위태롭게 서 있다.

그리고 그 경계선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우리는 갈수록 무엇이 이성이고 무엇이 광기인지,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죄악인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명하게 나눌 수 없어졌다.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의 안락함만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존은 삶의 유일한 이유이자 목적으로 변해버렸다.

📃 “당신은 ‘경찰의 가치’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1호차의 폭탄을 해체했어. 그런데 어제는 아무 죄 없는 아이들이 당신 때문에 목숨을 잃었지. 당신이 보호해야 하는 건 경찰이야, 시민이야? 당신이 충성하는 건 홍콩 정부야, 홍콩 시민이야?” 나는 조용히 물었다. “당신, 도대체 왜 경찰이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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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호께이 지음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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