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 후 코멘트]
# 한의 이중적 의미
'한가할 한(閑)'을 쓴 한중록은 표면적으로 '한가한 중에 쓴 기록'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평생 왕실에서 온갖 풍파를 겪어야 했던 혜경궁의 일생과 책 안에 담긴 파란만장한 내용을 생각하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역설적 제목이다. 그래서 후대는 원통할 한(恨)을 대신 넣은 한중록(恨中錄), 혹은 피를 토하고 눈물을 흘리며 쓴 글이라는 뜻의 읍혈록(泣血錄)이라 불렀다. 실제로 후자가 저자의 심경에 더 가깝다. 담담한 회고의 겉 아래 원통함이 끓고 있다.
# 한중록은 연대기였다
『한중록』은 한 번에 쓴 한 권의 책이 아니다. 네 차례에 걸쳐 쓰였고, 각각의 집필 동기가 다르다. 평온한 시기에 작성해 담담하게 삶을 되돌아본 1편과 달리, 순조 즉위 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통해 자신의 친정을 몰락시키던 시기에 쓴 2~4편에는 벽파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다. 정조 시대에 조카의 청으로 쓴 첫 회고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두루뭉술하게 비껴간다. 아들 정조가 죽고 남동생 홍낙임이 사사된 뒤의 글들은 친정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정순왕후 사후에 쓴 마지막 부분에서야 임오화변의 경위가 상세히 풀린다.
같은 사건에 관한 서술의 온도가 편마다 달라지는 것, 앞부분에서 회피한 것을 뒷부분에서 폭로하는 것, 책의 후반부에서 앞의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이 '한 저자의 일관된 서술'이 아니라 '십수 년에 걸쳐 달라진 처지에서 쓴 네 개의 텍스트'인 책의 성격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변화가 책의 사료로서 성격을 드러낸다. 혜경궁이 무엇을 언제 말할 수 있었고 없었는가는, 그녀의 처지가 어떻게 변했는가의 지표이기 때문이다.
# 역사서로서 책의 가치
이 책의 역사적 가치는 사도세자 관련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1차 사료임에 있다. 한중록을 제외하면 상세한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뒤주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이전 십수 년간 부자 사이에 무엇이 쌓였는지를 곁에서 본 사람의 증언은 이것뿐이다. 관련 정신의학적 연구에 따르면, 한중록의 정신 증상 기술은 상당히 상세하고 구체적이다. 그 때문에 저자가 순전히 상상력으로 허구를 기록했다고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
# 친정을 변호하기 위한 책
하지만 저자의 집필 의도에 또 다른 면이 있다, 책은 친정을 신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다는 것이 주된 평가다. 저자는 홍봉한이 뒤주를 바쳤다는 혐의를 부인하고 아버지의 결백과 친정의 신원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소망을 담았다. "사도세자의 광증은 안타깝지만 죽음은 어쩔 수 없었으며 홍씨 가문은 책임이 없다"라는 관점이 책에 들어 있다.
# 사도 세자의 정신병 기록은 위증이 아니다
때문에 책을 '친정 옹호를 위한 위작'으로 몰아 사도세자의 광증 자체를 부정하고 그를 노론 음모의 희생양으로만 보는 극단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사도세자의 정신병 기록은 한중록 외에도 영조의 묘지문, 사도세자의 편지, 정조의 발언 등 다수의 사료에서 확인된다. 학계 주류는 영조-사도세자의 부자 갈등과 사도세자의 병증을 기본 전제로 하되, 일부 당파 인물들의 정치적 개입을 복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 정신병리학서로서의 책
책을 역사서나 문학서로 읽다가 영조의 학대와 사도세자의 비행을 읽으며 마음이 피폐해짐을 느낄 수 있다. 아이가 태어나 아버지에게 방치되고, 열 살에 신하처럼 엎드리고,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하고, 죄인 심문장에 끌려다니고, 결국 아버지가 칼을 두드리는 앞에서 뒤주로 들어감으로 생을 마감한다. 혜경궁은 이 서사를 곁에서 본 사람의 경험으로 써 내렸다. "그 모습을 내 어찌 기록할 수 있으리오"(178쪽)라며 붓을 멈춘 것은 저자의 한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때문에 이 책은 정신병리학서로서도, 양육 관련 서적으로도 읽어봐야 할 책이다. 한중록은 한 인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부서지는가에 대한, 조선이 남긴 가장 정밀한 기록이다.
[발췌한 책 속 문장]
p24 그 날부터 부모님께서는 내게 말씀을 고쳐 존대를 하시고, 일가 어른들도 공강하며 대해 주시므로 나의 마음은 불안하고 편치 않았으며 슬픔을 형용할 수 없었다. 아버지께서는 근심 걱정을 하시며 훈계의 말씀이 많으셨다. 내가 무슨 죄를 진 것처럼 몸 둘 곳을 몰라 하면서도 부모님 곁을 떠날 일이 서러워 어린 마음에 애가 타고 만사에 아무런 흥미도 없었다.
=> 아동의 관점에서 부모님이 갑자기 자신에게 존대하며 여러 훈계를 할 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부모의 존대는 아동에겐 또 다른 벌이 아니었을까.
p32 “신하의 집이 임금의 외숙이 되면 은총이 따르고, 임금의 은총이 따르면 문벌이 성하고, 문벌이 성하면 불행을 부르는 법입니다. 내 집이 도위 자손으로 나라의 은혜를 대대로 끝없이 입었으니 나라를 위해 끓는 물, 타는 불 속을 어찌 사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백면서생이 하루아침에 왕실의 친척이 되니, 이는 복의 징조라기보다는 화의 근원입니다. 그러니 오늘부터 근심과 두려움으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주의를 주시면서 평상시의 모든 예의범절을 가르쳐 주셨다.
=> 홍씨 일가의 잘잘못을 떠나서, 여러 정쟁과 풍파를 겪은 역사를 돌이켜 보면, 혜경궁의 입궁은 비극이지 않았을까.
p74 만일 부모님 곁을 떠나지 않게 하여 모든 일을 자애와 가르치심으로 병행하였더라면, 너그럽고 어진 도량과 재능의 성취가 놀라웠을 것이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되지 못하고 일찍 멀리 떠나 계신 것으로 인하여 작은 일이 크게 되어, 마침내 말하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 사도세자의 비극은 어느 하루의 사건이 아니라 유아기부터 축적된 결핍과 학대의 누적에서 비롯되었다.
p76 저승전으로 말하면, 어대비께서 계시던 집인데 안 계신지 얼마되지 않았고, 저승전 저편의 취선당이라는 집은 희빈이 갑술년(1694) 후에 머물리 인현황후를 저주하던 집이다. 그런데도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이런 황량한 전각에 혼자 두시고 희빈의 처소는 소주방을 만들어, 잡수시는 음식을 만드는 곳으로 삼으니 어찌 이상한 일이 아니리오.
=> 풍수지리가 21세기까지 살아남은 이유.
p78 그 뒤로 영조께서는 마음이 몹시 분하여 동궁에 가고 싶으시나 그 내인들이 보기 싫어 동궁 처소에 가시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 내인들을 모두 내쫓지 못하시고 도리어 동궁을 그런 괴이한 내인들이 미워 동궁을 드물게 보러 다니시니 어찌 갑갑한 일이 아니겠는가!
=> 영조는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문제가 있는 곳을 방치했다.
p80 막 배우실 시기에 괴이한 내인이 그 불길한 장난감을 노시게 인도하니, 본래 선천적으로는 영웅의 기상이신데 그런 놀음을 좋아하시다가 그 놀음으로 말미암아 나중에 차마 말 못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 남편의 본성은 훌륭했으나 환경이 그를 망쳤다는 저자의 변호는 그 환경을 만든 영조에 대한 우회적 고발이다.
p81 경모궁의 도량과 재능은 훌륭하시나 모든 일에 영조의 성품과는 달랐다. 보통 때 물으시는 말씀이라도 즉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대답하시고, 당신의 소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대답하면 어떨까 하시어 즉시 대답하지 못하셨다. 그래서 늘 영조께서 갑갑해 하셨으니, 이 일도 화변의 큰 실마리가 되었다.
=> 사도세자는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버지 앞에서 어떤 답이 맞을지 재느라 늦은 것인데, 영조는 그를 우둔함으로 읽었다. 기질의 불일치가 화변의 큰 실마리가 된 것이다.
p81 하지만 갑갑하고 애달프게도 영조를 모시고는 두렵고 어려워 대답을 재빠르게 못하셨다. 영조대왕께서 한 번 갑갑해 하시고 두 번 갑갑해 하셔서, 이로 인해 몹시 화를 내시고 근심도 하셨다. 영조께서는 이럴수록 가까이 두시고 친히 가르쳐서 서로간의 인정과 도리가 친하게 될 방법은 생각지 않으신 채, 항상 멀리 두시고 동궁 스스로 잘하여 당신의 뜻에 맞으시길 기대하시니, 이럴 때 어찌 탈이 나지않으리오.
=>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사랑을 주지 않으면서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기를 요구했다.
p82 그렇게 점점 서먹하게 지내시다가 서로 보실 때는 여조께서는 꾸중이 사랑보다 앞서시고, 아드님은 한 번 뵙는 것도 조심하시고 매우 두려워하심이 무슨 큰일이나 치르시는 듯싶었다.
=>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 의례가 되고, 의례는 곧 공포가 되었다.
p82 경모궁께서도 아버지인 영조께 친근함보다는 위엄이 많아 10살 된 어린애인데도 감히 마주 앉지 못하고 신하들처럼 몸을 굽히고 엎드려 뵈었으니 어찌 그리도 지나치셨던가 싶다.
=> 왕실 가족의 관점에서도 사도 세자의 엎드림은 과해 보였던 것일까.
p85 한 가지 일만 생각해도 지극히 서러운데, 영조께서는 어찌된 생각이신지 그 아드님을 조용한 때에 친근히 앉히시고 진정으로 교훈하시는 일은 없고, 멋대로 내버려두어 아는 체도 않으시다가, 늘 남들이 모인 때에 흉을 보시는 듯 말씀하셨다.
=> 아버지에게 주목받는 유일한 순간이 망신당하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사도세자는 영조의 시선을 공포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p85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도 여러 신하들이 많이 모인 때 굳이 아드님을 부르셔서 글 뜻을 물으시니, 세자가 자세히 대답하지 못할 것이라도 야속하게 물으시곤 하셨다. 본래 부왕 앞에서는 분명히 아시는 것도 주뼛주뼛 하시는데, 여러 사람이 모인 가운데서 어려운 것을 일부러 물어보시니, 더욱 두렵고 겁이 나서 대답을 못하면 남이 보는 데서 꾸중도 하시고 흉도 보셨다.
=> 공포로 인해 제대로 된 대답을 못하는 것은, 학습된 무기력의 후유증이 아니었을까.
p86 화평 옹주가 살아 계셨더라면 부자간에 자애와 효도가 있게 하셨을 텐데, 착하신 옹주가 요절하신 것이 어찌 나라의 운명에 관계치 않으리오. 지금 생각해도 애석하고 마음이 아프다.
p87 화협 옹주는 계축년(영조 9년) 생인데 태어날 때 영조께서 또 딸인 것이 애달파서 그러셨는지, 그 용모가 빼어나고 효성도 있어 아름다우나 부왕의 사랑을 받지 못하였다. 영조께서는 그때 아들이 아닌 것을 애달파하여 심지어 화평 옹주와 형제를 서로 한 집에 있지 못하게 하셨다. 화평 옹주는 혼자 사랑을 받는 것이 마음속에 은근히 고통스러워, 부왕께 그러지 마시라고 아무리 여쭈어도 듣지 않으셔서 어쩔 수 없었는데, 화협으로 인해 그 남편인 영성위까지 사랑을 못 받았다.
=> 영조의 편애가 세자만이 아니라 딸들 사이에도 있었다. 편애받은 화평옹주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영조의 편애는 받는 자에게도 못 받는 자에게도 상처였다.
p88 불길한 말을 주고받거나 들으시면 들어오실 때 양치질을 하시고 귀를 씻으신 다음, 먼저 사람을 부르시고 한 마디라도 처음 말씀을 하신 후에야 안으로 들어오셨다. 좋은 일과 좋지 않은 일을 하실 때는 출입하시는 문이 다르시고, 사랑하는 사람의 집에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지 못하게 하셨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다니는 길에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다니지 못하게 하시니, 몹시 두려우나 애정과 증오의 뚜렷함이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일이었다.
=> 영조의 편집증적인 세계관에서 세자는 불길한 쪽으로 가까워졌다.
p89 영조께서는 대리 전이라도 사형수를 다시 심리하거나 형조(刑曹)의 일 또는 죄인을 다스리는 대궐에서 말하는 불길한 일에는 자주 세자를 불러 옆에 있게 하셨다.
=> 사람이 죽는 것을 일상적으로 보는 것이 아버지와 동행이 유일하게 허락된 어린 사도세자의 시간이었다.
p91 이처럼 저렇게 한 일은 이렇게 안 했다고 꾸중하시고, 이렇게 한 일은 저렇게 안 하셨다고 꾸중하시어, 이 일 저 일 모두 심하게 화를 내시며 마땅치 않게 여기셨다. 심지어 백성이 춤고 배고프거나 가뭄이 들거나 천재지변이 있어도 꾸중하셨다. “소조의 덕이 없어서 그렇다.” 그러므로 소조꼐서는 날이 흐리거나 겨울에 천둥이 치면 또 무슨 꾸중이나 나실까 근심하시고 염려하여 일마다 두렵고 겁을 내셨다. 그러다 마침내 사악하고 망령된 생각이 다시 들어 병이 점점 깊어지는 징조가 나타났다.
=> 통제 불가능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우는 것만큼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어떻게 해도 틀린 상태에 있던 사도 세자의 광증은 이중구속의 누적에서 자랐다.
p95 그 해 9월 12월 온양에 거동하시는데, 11일에 영조와 선희궁께서 안색이 한편 슬프고 한편 기쁘신 모양을 하고 옷서 갑자기 자는 아기의 옷깃을 풀고 벗겨 보셨다. 과연 몸에 표가 있으므로 참혹히 여기시고 분명히 옹주가 환생한 것으로 믿으셨다. 그리고 영조께서는 그 날부터 아이를 갑자기 귀중히 여기시어 화평 옹주 형제에게 하시듯 사랑하셨다.
=> 영조의 사랑이 얼마나 자의적이고 미신적인 근거에 있는지 나타난다.
p98 그 해 12월, 사헌부 홍준해의 나라 일에 관한 상소로 영조께서 대단히 격노하시어, 소조를 선화문에 굽어 엎드리게 하시고 엄격하게 가르치셨다. 그때는 경모궁께서 큰 병환 끝으로 겨울 추위가 혹독한데도 그 눈 속에서 처벌을 기다리셨다. 엎드려 계신 데 눈이 쌓여도 움직이지 않으시니, 인원황후께서 일어나라 하셨으나 듣지 않으셨다. 영조께서 지나친 노여움을 가라앉히신 후에야 일어나시니, 타고난 성질이 침착하고도 무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p100 경모궁께서는 그 병환이 재발하지 아니할 때는 인자함과 효성스러움을 다하시다가, 병환이 재발하시면 곧 딴사람 같으셨으니 어찌 이상하고 서러운 일이 아니리오.
=> 자애로운 남편이 어느 날 딴사람이 되는 것을 반복해서 겪은 혜경궁.
p104 을해년 2월에 윤지 등의 반역 음모 사건이 나서 5월까지 영조께서 죄인을 친히 심문하셨는데, 그때 역적을 사형시켜 조정의 질서를 세우실 때면 동궁을 내보내서 보게 하셨다. 날마다 친히 심판하시다가 들어오시며 인정 후나 삼사경이 될 때도 있으나, 영조께서는 하루도 거르지 않으시고 동궁을 부르셨다. “밥 먹었느냐?” 이렇게 물으신 후 동궁께서 대답하시면 즉시 가시나, 그 대답을 시키셔서 그 날 죄인 심문하신 일을 씻으시고 가시려는 뜻이셨다. 영조께서는 동궁을 좋고 길한 일에는 참석하지 못하게 하시고 좋지 못한 일에는 간섭하게 하셨다.
=> 폭력성이 극한에 달하는 환경에 노출되었으니, 사도 세자가 인명을 경시하게 된 것도 정해진 순서가 아니었을까.
p124 영조께서는 사람이 모인 곳과 내인들이 많은 데서 늘 동궁의 허물을 드러내시었다. 통명전에는 인원왕후전 내인이 가득하였는데, 6~7월의 한창 더운 가운데 여러 가지로 동궁을 질책하시니, 그대로 격화와 병환이 점점 더하셨다. 그래서 경모궁께서 내시들에게 매질하시는 것이 그때부터 더하시었다.
=> 내인은 사도세자가 폭력을 가할 수 있을 만큼 신분이 낮았으며. 그들도 자신을 낮게 보는 피해의식이 사도 세자의 폭력성이 도지게 한 것이 아닐까. 그는 폭력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그를 자기보다 약한 자들에게 옮긴 가해자였다.
p129 아버지께서 동궁이 문책을 받으신 것과 우물에 빠지신 일을 보시고 임금에 대한 충성심과 나라를 사랑하심에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시어 입장을 돌아보지 않으시고 임금께 아뢰었다. “옛말에 ‘임금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몸이 단다’고 하였습니다. 임금과 신하간에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부자간의 천성은 이를 것이 없습니다. 동궁께서 사랑을 잃으셔서 전전하여 저러시니, 이런 곡절을 생각하시길 천만번 바라옵니다.” 영조와 아버지 사이에 의사가 잘 통하셔서 지금까지 추궁 한 번 당하시는 일이 없더니, 그 날 아버지께서 아뢰는 말씀에는 격노하시고 나까지도 좋지 않게 생각하셨다. 그래서 내 죄를 겸하여 선친을 면직하시고 엄교가 대단하시니, 선친께서 곧바로 나가셔서 성밖의 월과계라는 곳에 계셨다.
p138 그 해에 장마가 지루하게 내리다가 참배하는 날 마침 비가 매우 많이 쏟아졌는데, 대조께서는 날씨가 이런 것은 소조를 데려온 탓이라며 능에 미처 가지도 못하시어 동궁을 쫓아보냈다. “다시 들어가거라.” 그리고 임금이 타는 수레만 가셨다. 소조께서 능에 참배하려 하시다가 못 하시니, 백성들의 생각인들 오죽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 세자를 ‘불길한 존재’로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 영조. 조선의 백성에게 사도세자의 위신을 꾸준히 깎아온 존재는 그의 아버지였다.
p157 지금 나의 이 말이 사람의 도리로서 해선 안 될 말이겠지만 세상에 없는 일을 겪으시니, 차라리 그 병환으로 돌아가셨더라면 여읜 아픔만 있지 않겠는가. 당신의 설움과 처자의 지극한 원이 이 정도이며, 사건의 망극함과 사람의 상함과 내 집의 원통함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하늘의 도리를 알지 못할 일이로다.
=> 사도세자가 병으로 명을 달리했다면, 뒤주에 갇히는 죽음은 없었겠지만, 그 뒤주가 영조의 학대를 더 알리게끔 한 것도 아이러니. 병사였다면 쓸 필요가 없었던 변명과 증언이, 뒤주로 인해 존재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p158 “자네는 생각하지 못하네. 나를 미워하심이 점점 심하여 어려우니, 나는 폐하고 세손은 효장세자의 양자로 삼을 것일세.” 소조께서 그 말씀을 하실 때는 병환증세도 없고 처량하게 그러시니, 그 말씀이 슬프고 서러워 내가 다시 말씀드렸다. “그럴 리 없습니다.” “두고 보소. 자네는 귀여워하시니, 내게 딸린 사람이지만 자네와 자식들은 예사롭고 나만 미워하여 이리 되고 병이 이러하니, 어디 살게 하겠는가.”
=> 죽음을 예견한 사도 세자의 체념.
p160 사현합에서 대소조가 만나시니, 대조의 마음이 어찌 순순히 살펴 보시겠는가. 하지만 이미 자식의 큰일을 보이려 데려와 계셨으니, 그 통정 옥관자가 무관의 관자처럼 크고 괴이하여 왕세자답지 않으나, 그보다 더한 일도 많은데 그 관자 일쯤이 무슨 큰일이겠는가? 그런데 미처 처녀가 들어오기도 전에 그 관자일로 대조께서 노하여 꾸짓으시며 소조께 보지 말고 돌아가라고 하셨다. 그 일은 실로 서럽고 그렇게까지 안하셔도 되는 일까지도 차마 어찌 그러시는가 싶어서 서러웠다. 그래서 소조께서는 며느리를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셨으니, 그 심정이 어떠하셨으리오. 그런데도 그 화증을 안 내시고 공손히 내려가셨는가 싶다.
=> 사도 세자의 자존감은 어디까지 떨어졌을까.
p169 하루에도 대궐에서 죽은 사람을 여럿 쳐내니, 온 나라의 인심이 소조를 두려워하고 원망하여 발을 잘못 디디며 언제 죽을지 몰라 하였다.
=> 사도세자는 피해자이면서 살인을 수도 없이 저지른 가해자였으며, 그의 아내는 두 얼굴을 모두 기록했다.
p174 그 날 아침, 대조께서 무슨 까닭인지 옥좌에 나와 앉으시려 경현당 관광청에 계셨다. 그러자 선희궁께서 가서 울면서 고하셨다. “소조의 병이 점점 깊어 바라는 것이 없으니, 소인이 차마 이 말씀은 모자 지간의 도리로 보아 못할 일이지만, 옥체를 보호하고 세손을 건져 종사를 평안히 하는 일이 옳으니 대처분을 하소서.”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 “부자의 정으로 차마 이리하시나 병으로 그러하니 병을 어찌 책망하오리까? 처분은 하시더라도 은혜를 드리우셔서 세손 모자를 편안케 하소서.” 내가 차마 그 아내로서 이를 옳다고는 못하나, 일인즉 어쩔 수 없는 지경이었다.“
=> 자식을 죽여야지만 손자의 목숨을 보전할 수 있는 현실 속에서 어머니로선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을까. 그리고 남편의 죽음을 막지 못한 혜경궁은 얼마나 한이 서렸을까.
p175 대조께서 전부터 선원전에 가시는 길이 두 길인데, 만안문(동문)으로 드실 때는 탈이 없고 경화문으로 들어오시면 탈이 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경화문으로 가자 하셨다. 소조꼐서 11일 밤은 수구로 다녀오셔서 몸이 물에 빠지시고 12일은 통명전에 계신데, 그 날 대들보에서 부러지는 듯이 대조의 행차 소리를 들으시고 탄식하셨다. ”내가 죽으려나 보다. 이게 웬일인고!“
p178 그러하다 제 시간이 늦어지고 대조의 재촉이 심하여 소조께서 나가셨다. 대조께서 휘녕전에 앉으시어 칼을 안으시고 두드리시며 그 처분을 하시게 되니, 그지없이 망극하여 그 모습을 내 어찌 기록할 수 있으리오.
=> 그 현장의 미시적인 내용을 다 적은 것보다 뒤이은 침묵이 그날의 공기를 더욱 극적으로 전달한다.
p335 내가 10살인 어린 나이에 궁궐에 들어와 이제 거의 60년이 지났다. 나는 인생은 험난한 운명과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내며 유례없는 고통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말로 다할 수 없는 덧없고 기구한 사건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야말로 살고 싶지 않은 날들을 아들 때문이라는 이유를 만들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또한 선왕의 지성스러운 효도로 차마 목숨을 끊지 못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니, 하늘이 갈수록 나를 밉게 여기셔서 차마 당하지 못할 참혹한 화를 당하는가 싶다.
p355 그러나 특별히 나로 인하여 몸을 자유롭게 못하이서 유례업는 형편을 다 겪으셨다. 결국에는 처지가 망측하여 원한을 품으신 채 명을 재촉하시니 임금의 친척이 되신 효험은 적고 해로움은 많으셨다. 이것이 다 나 때문이시니 내 일생의 죄스럽고 억울하고도 원통해 하는 것이다.
p398 <<한중록>>은 혜경궁 홍씨가 지난날 몸소 겪었던 일들을 서술한 것으로, 남편 사도세자가 부왕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참변을 주로 하여, 공적, 사적 연루(連累)와 국가 종사(宗社)에 관한 댕쟁의 복잡 미묘한 문제 등 여러 사건들 속에서 살아온 일생사를 순 한글의 유려한 문장으로 묘사한 파란만장한 일대기이다. 문체에 등장인물의 성격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으며, 이 글을 통하여 조선 여성의 이면사를 엿볼 수 있다는 점과 당시의 정치풍토를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한중록
혜경궁 홍씨 (지은이), 신동운 (옮긴이) 지음
스타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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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 코멘트]
# 수백 페이지를 뒤덮은 저자의 승부욕
수백 페이지의 축구 이야기를 관통하는 책의 대표적인 정서를 꼽으라면 승부욕이다. 책의 승부욕은 흔한 '이기고 싶다'가 아니라 '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라는 형태다. 이 미묘한 차이가 책의 개성이다. 이기고 싶은 사람은 이길 때만 행복하지만, 지는 것을 못 견디는 사람은 열 번 져도 열한 번째를 준비한다. 저자는 만년 후보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해 온 연료가 후자였음을 책의 모든 페이지에서 말하고 있다.
# 자기와 남에게 모두 결벽증을
저자의 승부욕이 가장 인상적으로 드러난 사례는 '주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은 MVP 트로피를 쓰레기통에 처박는 일화다. 남과의 승부 이전에 자기 자신과의 승부에서 정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저자의 결벽이, 이후 '가르침은 있되 차별은 없어야 한다.'(181쪽), '기록으로 새겨지지 않는 공헌을 인정하라'(243쪽) 같은 공정성의 원칙으로 확장된다. 자기에게 엄격했던 사람만이 남에게 공정할 수 있다는 저자의 윤리관도 엿볼 수 있다.
# 상대 팀 감독 연봉 인터뷰의 뒷사정
저자 ‘악명’을 떨친 '페트레스쿠 연봉' 인터뷰(130쪽)의 뒷이야기도 흥미롭다. 저자는 페트레스쿠 전 전북 감독이 받던 연봉 언급이 자책골 실점 장면에서 기자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계산된 도발이었다고 말한다. 자기 자랑 같으면서도 자기의 민감한 면까지 드러내는 해부처럼 읽히기도 한다. 다산북스가 책을 "축구를 잘 모르는 독자에게도 흥미롭다“라고 소개한 것은 상투적 홍보 문구만은 아니다.
# 요란하고 꽉 찬 수레
이 책은 요란하다. 목소리가 크고, 확신에 차 있고, 때로 독자를 몰아붙인다. 그러나 비어 있지 않다. 만년 후보의 12년, 강등팀을 아시아 8강까지 끌어올린 5년, 그 모든 시간을 관통한 '지는 것을 못 견디는 마음'이 문장마다 채워져 있다. 저자는 정답을 매일 다시 찾겠다고, 심지어 끝 무리엔 책의 정답조차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과의 승부에서 보이는 저자의 정직함이 더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발췌한 책 속 문장]
p12 도저히 풀기가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에도 정답은 존재한다. 나에게 축구란 그랬다. 문제와 조건에 따라 달라질 뿐, 정답은 언제나 있다.
=> 저자가 믿는 것은 정답의 존재 가능성이며, 그 믿음의 기저엔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있다.
21p 그날 나는 집으로 가며 MVP 트로피를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그 트로피는 틀림없이 내가 그동안 10년 넘도록 축구를 하며 받았던 어떤 상장과 트로피와도 비교되지 않을 만큼 큰 상이었지만 버리면서 아무 미련도 없었다. 주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은, 조금도 영광스럽지 않은, 나 자신에게 납득이 되지 않은 영광을 찬장에다 진열해 두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 남이 준 최고의 상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저자의 결벽성은 책 전체를 관통한다.
23P 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마음, 그것이 프로로 일하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첫 번째 마음가짐이다. 이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열 번 겨뤄서 열 번 다 지더라도 여전히 지는 것을 싫어해야 한다. 승자에게 손이 아플 정도로 박수를 쳐주면서도 속으로는 울면서 칼을 갈고 있어야 한다.
=> 저자는 상대를 존중하는 것과 상대에게 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일이라고 언급하며, 프로는 그 둘을 동시에 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p34 내가 걷는 길이 조금이라도 평탄한 것 같다면 애써 스스로를 낭떠러지로 몰아가야 한다. 나 같은 사람은 더욱 그래야 한다.
p44 절실한 사람은 애초에 안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노력하는 사람은 방법을 계속 찾는다. 수많은 방법을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p70 내가 화를 낸 가장 큰 이유는, 이기는 팀이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고 고삐를 늦추는 것이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라고 여기는 데 있다.
=> 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상대라면, 봐주는 것이 자존심을 모욕하는 것일 수도 있다.
p71 가비지 타임? 연봉 100억씩 받는 여유 있는 NBA 선수들, 너희나 실컷 그렇게 하가를 바란다. 축구엔 버리는 시간 따위는 없다.
=> NBA 선수들이 이 멘트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p84 솔직히 말해서 축구 역시 거의 현실처럼 냉정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현실에 없는 낭만을 보여주는 경기가 아주 간혹가다 나온다.
=> 10번을 져도 1번의 승리를 위해 끊임없이 경기를 보고 응원을 하는 것이 스포츠의 매력.
p86 기다림의 보상이 없을 수도 있지만 오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나의 치열한 노력에는 한치의 방심도 없어야 한다.
=> 아쉬워하되, 후회는 하지 말자.
p92 목표에 이르는 길 위에는 지름길이 없다. 결국 하나의 길로 통할 뿐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부족한 것을 하나하나 보완해가는 것, 그것밖에 없다.
p102 조직을 운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다 같이 노를 저어야 한다는 점이다. 누구 하나가 젓지 않으면 배는 똑바로 갈 수 없다.
p107 시끄러운 리더가 되자. 함께하는 사람들도 같이 신나서 같이 움직이게끔 만드는 그런 사람이. 대신에 조건이 있다. 잘해야 한다는 것. 실력은 훌륭하게 갈고닦고서 한번 시끄럽게 떠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세상은 요란하고 빈 수레는 비웃지만, 요란하고 꽉 찬 수레는 욕을 할지언정 비웃지는 못한다.
=> 속담을 비틀면서 '요란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되, 요란함의 자격을 실력으로 규정하는 저자의 재치가 드러난다,
p118 축구만이 아니라 어떤 스포츠, 어떤 업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멋진 결말을 이루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p124 팀이 성장하려면 서로에 대한 불만이 긍정적인 방식으로 자주 그리고 많이 표출되어야 한다. 불만을 쌓아두지 않고 한바탕 싸우다보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가 드러나고 기준점과 방법을 새로이 세우게 된다.
p125 감독이라는 자리, 리더라는 자리는 포용해야 하는 자리다. 나의 서러움, 불만, 억울함, 외로움, 눈물을 혼자 머금은 채 남의 마음들을 담아내야 하는 자리다.
=> 겉은 요란할지라도 뒤로는 가장 많은 쓴맛을 감내하는 리더.
p129 성과를 냈을 때 스포트라이트 가장 가운데에서 영광을 받으려면 성과가 나지 않을 때 욕을 먹는 일을 기꺼이 떠안아야 한다.
=> 많은 리더의 추태는 욕을 피하는 데서 일어났다.
p130 “궁금한데 페트레스쿠 감독님 연봉이 얼마나 돼요? 정말 궁금합니다. 저와 비교를 해보고 싶습니다.” 뒤이은 웅성웅성하는 소리. 성공이었다. 기삿거리를 얻은 기자들 사이에 난리가 났고 화제는 완전히 돌아갔다. 물론 자책골로 인한 실점 장면에 대한 질문은 있었지만 잠깐이었다.
=> 유명하지 않던 이정효 감독의 이름을, 악명이지만 크게 떨치게 한 인터뷰 멘트. 그해 광주FC의 ‘요란함’은 ‘높은 성적’으로 꽉 차있었기 때문에 비난이 아닌 찬사를 받았다.
p135 남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배움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설프게 베끼는 데서 그치면 결국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파고들고 우리에게 맞게 세부 사항을 추가하고 실행하면서 실력을 쌓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고민해야 한다.
=> 남의 정답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남의 정답에서 원리를 배워 자신의 문제를 푸는 것이 배움의 궁극적 목표이지 않을까.
p140 이것은 나의 지론인데, 축구란 이기고 있다고 해서 유리하지 않고, 지고 있다고 해서 불리하지 않은 스포츠다.
p141 야구의 고장인 광주에서 어떻게 사람들을 축구장에 찾아오도록 만들 수 있을까? 내가 내린 답은 공격이었다. 공격적인 축구가 수비적인 축구보다 더 재미있다. 팬들도 선수들도 마찬가지이다. 팬들이 재밌으려면 선수들부터가 신나고 재미있어야 하는데 플레이를 하기에도 공격축구가 재미 면에서 훨씬 위에 있다.
=> 올해 세 자릿수까지 기록한 광주FC의 관중 수를 보며, 이정효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느낀다.
p142 상대의 공격을 막는 축구로는 선수를 성장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때리는 쪽은 상대를 공략할 방법을 이리저리 찾기 때문에 더 창의적으로 생각하면서 뛰어다니게 되고, 결과적으로 선수로서 더욱 성장하게 된다.
p146 찾아온 기세를 살려 결과를 만들지 못한다면 기세는 또다시 남에게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러니 결과를 지어야 한다.
p147 뭘 해도 될 것 같은 날이란 자연히 하늘에서 떨어져주는게 아니었다. 버티고 기다린 끝에 기세가 한번 찾아왔을 때 강하게 밀어붙여 쟁취해내야 하는 것임을 그 경기가 내게 알려주었다.
p152 리더는 우리가 품고 있는 가능성의 최대치로 목표를 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혼자 품고 있을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에게 공유해야 한다. 이때 사람들이 목표를 공감해주리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서운하고 외롭겠지만 어쩔 수 없다.
=> 보통의 리더십론은 '비전을 공유하면 구성원이 따른다'라고 약속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 약속을 하지 않습니다. 저자에게 공유는 의무이고 공감은 보너스이며, 서운함은 리더의 기본급이다.
p154 새로 창단한 조직이 아닌 이상 그곳이 지니고 있는 유산이라는 것이 있다. 감독은 그 팀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구성원과 스타일과 문화를 향한 존중 위에서 서서히 뜻을 펼쳐야 한다.
=> 2026년 저자는 광주라는 '자기가 만든 팀'을 떠나 수원 삼성이라는 '전통과 유산이 두꺼운 명문'의 지휘봉을 잡았다, 그런 면에서 이 문장은 큰 울림을 지닌다.
p155 감독은 전술 이전에 문화를 만드는 사람이고, 새 감독은 문화를 입히기 위해 선임된 사람이다. 그리고 문화를 입히려는 이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바로 ‘기다림’이다.
=> 감독은 단순히 전술을 짜는 기계가 아니다. 감독은 만능 살림꾼이어야 한다.
p162 개인이 아닌 팀이 우선이지만 그 안에서 누구보다 내가 잘하려는 에고를 품어야 한다. 개인의 성장이 팀의 성장을 부른다. 경쟁하지 않는 팀은 절대 성장할 수 없고, 순위를 경쟁하는 팀들 사이에서 절대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 저자는 경쟁을 팀워크의 적이 아니라 팀워크의 연료로 간주한다.
p163 경쟁을 동력 삼아 조직을 성장시킬 때 리더가 꼭 가져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진실된 노력을 알아보는 눈이다. 선수들 각자가 ‘자신을 위한’ 경쟁을 해야 하지만 그것이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경쟁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 건전한 경쟁을 가려내는 건 ‘리더의 눈’이다.
p164 리더는 꾸준하게 선수들을 고루 지켜보면서 진실된 노력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진실된 노력을 기울인 사람에게 그가 더욱 성장할 수 있는 무대에 오를 기회를 기꺼이 건네야 한다.
p175 똑같은 시간을 쓰더라도 어떻게 시간을 써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사람이 곁에 있는 선수는 어느새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상대가 되어 있었다.
=> 저자는 속도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시간의 사용법이며, 그를 터득하기 위해선 가르쳐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문장의 뒤에서 저자의 선수 시절 자신에게 멘토가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느껴진다.
p181 실력과 위상에 맞게끔 대우해주는 것은 필요하나, 똑같이 팀플레이의 원칙을 어겼는데 질책을 미루거나 생략하는 것은 명확한 차별이다. 가르침은 있되 차별은 있어서는 안 된다.
=> 저자는 조직의 신뢰가 대우의 평등에서가 아니라 원칙 적용의 평등에서 나온다고 바라본다.
p183 질책의 원칙을 지켜나가면서 우아함 한 방울을 나에게 떨어뜨리는 것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경험이었다.
=> 원칙을 강조할 땐, 그 리더가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
p186 선수가 가지고 있는 재능, 성품, 피지컬이 다르듯이 성장의 속도라는 것도 개인이 가진 개성이다.
=> 속도를 능력이 아니라 개성으로 분류하는 순간, 늦게 피는 선수는 열등한 선수가 아니라 ‘다른’ 선수가 된다.
p187 그저 그랬던 선수가 갑자기 그 성장의 물살을 만나 세계적인 수준까지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따라서 경쟁하고 거기서 밀리면 속상해하되 조급해해서는 안된다. 나의 시간이 오리라고 굳게 믿고 단련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 앞서 147쪽에서 말했듯 저자에게 성장의 시간은 오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자에게 쟁취되는 것이다. 준비의 방법은 '단련을 멈추지 않는 것'뿐이라고 문장에 조건을 달았다.
p199 지도자의 역할은 꽃을 피우려는 선수들이 꽃을 더 활짝 피울 수 있도록 그들을 가꿔주는 것이다. 즉, 선수의 꿈을 더 크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 낭떠러지로 모는 것도, 지는 것을 못 견디게 하는 것도, 결국은 저자가 말하는 '가꿈'의 방식이다.
p222 스스로가 어떤 선수에게 감정을 가지고 차별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경계해야 하며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 물고기를 잡느냐 못 잡느냐는 선수의 몫이지만 모두에게 잡는 방법을 알려주고 누구에게나 잠을 기회를 주는 것이 지도자의 일이다.
p231 내가 인터뷰를 좀 세게 해서 기사에 실리기라도 하면 귀신같이 어머니의 눈과 귀에 어떻게든 포착되었다. “이제 너한테 영향을 받는 사람도 많이 있지 않겠냐. 그럼 좋은 영향을 끼쳐야지. 네가 나쁜 말을 하면 그분들이 나쁜 영향을 받는 거다. 이제는 좀 그만 분출해라.”
=> 나이가 들어서도 어머니의 조언과 아들의 사과는 끝나지 않는다.
p243 기록으로 새겨지지 않는 공헌이 있다. 나 자신을 넘어 팀에게 도움을 주려는 그 노력을 지도자는 특별히 인정하고 보상해주어야 한다.
p248 불만 앞에서 나는 어떻게 할지 구체적인 방안까지 강구하는 사람이 나중에 지도자의 자리에 올랐을 때 새로운 지도자가 된다.
p252 시대도 바뀔 것이고 나도 바뀔 것이다. 그러니 몇 가지 철학만 제외하고는 시간이 지나며 싹 다 바뀌어갔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열심히 이 책을 읽어주신 분들께는 죄송한 말이겠지만 말이다.
=> 사실 책에도 이정효 감독의 변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정효 감독의 잘못을 나무랄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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