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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어준다면 (게일 포먼 장편소설)의 표지 이미지

네가 있어준다면

게일 포먼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읽었어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간호사의 말이 떠올랐다. "아이가 주인공이죠." 그 순간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묻던 게 무었이었는지 갑자기 깨달았다. 간호사의 말을 유심히 들은 할아버지는 나보다 먼저 그 말뜻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 세상에 남을 것인가. 살 것인가. 그건 내게 달린 문제였다.

할아버지는 눈물을 닦아내지도, 코를 풀지도 않았다. 그저 눈물이 아무 데나 떨어지게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슬픔의 우물이 잠시 말랐을 때, 할아버지는 다가와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할아버지는 떠날 듯 하더니 다시 내 곁으로 와서, 내 귀까지 몸을 낮추곤 속삭였다.
"괜찮아. 네가 떠나고 싶다고 해도. 다들 네가 남아주길 바라지만. 나는 살면서 이보다 더 간절하게 원한 것은 없었단다. 할아버지는 네가 남아주면 좋겠구나. 하지만 이건 내 바람이고. 네가 다른 걸 바란다 해도 난 이해할 거란다. 네가 떠나고 싶다고 해도, 이해한다고 그냥 말하고 싶었다. 네가 꼭 우릴 떠나야 한다면, 괜찮아. 이제 그만 싸우고 싶다 해도 괜찮아."
2016년 1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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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참 '적당히'라는 말을 좋아한다. 밥도 적당히 먹고, 운동도 적당히 하고, 적당히 알았다고 하고, 적당히 착한 아이가 되기를 바란다. 이 세상 모든 것에 '적당히'라는 이름을 붙여 그 뒤에 숨는다.
적당히. 적당히.
처음으로 '적당히'라는 말을 들었던 날이 떠오른다. 날은 더웠고,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을 가던 내게 '그'가 내 어깨를 짓누르며 속삭였다.
"적당히 넘어가렴."
적당히.
나는 그 상황이 정말로 '적당히' 넘어가도 되는 일인지 몰라 한참을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적당히'의 의미를 어른들은 설명하지 않는다. '적당히'는 설명이 필요 없는 말이다. 그래서 다들 '적당히'라는 말을 좋아하나 보다. 그리고 나도 그때부터 '적당히'라는 말을 좋아하게 되었다.

있었다

성실 (지은이) 지음
초록서재 펴냄

읽었어요
5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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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고맙습니다. 저같이 살 가치가 없는 쓰레기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셔서."
면을 후루룩거리며 머리를 숙이자, 남자는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난 쓰레기라는 말은 별로 안 좋아하네.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진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은 자기가 쓰레기라고 한탄하지 않거든. 그리고 허접쓰레기 같은 놈도 뻔뻔하게 잘 살고 있으니까 자책할 줄 아는 사람은 충분히 살 가치가 있어."

"네 신념을 타인에게 반드시 인정받을 필요는 없어. 중요한 건 그걸 옳다고 믿는 네 마음이지. 네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도록 살아가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단다. 너는 네가 야요이에게 한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니?"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면, 그게 정답이야."
"...그렇지만, 위선자 소리를 듣는 건 정말 끔찍해요."
할머니의 얘기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한편으로 그것 그냥 허울 좋은 말일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도 야요이와 친하게 지내면 점점 더 외톨이가 될 거 같아요..."
"가령 그게 진정한 고립이라면, 나는 그렇게 돼도 좋다고 생각해."

“난 서예교실에서 정성을 다하면 예쁜 글씨를 쓸 수 있다고 가르쳤단다. 그런데 어느날 한 남자아이가 이렇게 말하더구나. 자기가 쓰고 싶은 글씨는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대로 쓰는 글씨가 아니라고. 그러면서 내가 시범을 보여준 대로 쓴 글씨에는 자기 진심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고 하더구나.”
할머니는 내 눈을 들여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나는 그 아이한테 네가 쓰고 싶은 글씨를 자유롭게 써 보라고 했어. 그랬더니 며칠 후에 그 아이가 감정과 의지를 담아 쓴 글씨를 들고 왔단다. 기술적으로 썩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그 글씨에는 그 아이의 진심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어. 나는 그때 깨달았단다. 글씨를 잘 쓰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중요한 건 참된 마음과 의지를 담아 솔직하게 표현하는 거라는 것을.”
“...”
“그때부터 서예 교실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자신을 속이지 않는 마음가짐이란다. 남의 시선만 신경 쓰고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게 되면, 글씨를 아무리 잘 쓰더라도 그걸로 진심을 표현할 수는 없어. 남에게 잘 보이려고 자신을 내버리게 되면, 정말 절망적인 외로움을 맛보게 된단다.”
그 말을 듣자, 내 마음을 가리고 있던 불안감이 조금씩 옅어졌다.
“만일 네가 소신을 지켜 나가고 있다면,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현혹될 거 없단다. 좀 외로울 수는 있지만 고독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그 시간이 반드시 너를 강하게 만들어줄 거야. 인생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고 살아가는 자세보다 더 강한 건 없다고 나는 믿어.”

세상의 마지막 우체국

무라세 다케시 지음
모모 펴냄

읽었어요
1개월 전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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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yuayt

돈 아저씨의 책상 앞에 앉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저씨는 가게 카운터로 쓰이던 이 연갈색 나무 책상에서 매일 두껍고 큰 책의 내용을 옮겨 적었다. 처음엔 그 책이 큰 글자 성경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스페인 소설 『돈키호테』였다. 돈키호테라고 하면 풍차로 돌진하는 미치광이 늙은 기사로만 알던 나는 실제 책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걸 언제 다 베껴요?”
“필사를 하는 거란다.”
“그러니까 왜 필사하는 거예요?”
“그건 말이다. 음…… 돈키호테의 정신을 배우기 위해서지. 그리고 대한민국에 그 누구도 『돈키호테』를 필사한 사람은 없을 거야. 그러니까 이건 한국어로 된 최초의 『돈키호테』 필사본이지.”
“하지만 그걸 누가 알아줘요? 스페인 사람들이 알아주려 해도 한국어로 된 거면 알아보지도 못하지 않나요?”
“누가 알아준다고 모험을 떠나는 건 아니란다. 나만의 길을 가는 데 남의 시선 따윈 중요치 않아. 안 그러니 솔아?”

나의 돈키호테

김호연 지음
나무옆의자 펴냄

읽었어요
1개월 전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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