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로우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소설집의 첫 작품이 시작을 아주 잘 열어준 것 같다. 영화 〈테넷〉이 많이 떠올랐는데, 동시에 《천일야화》 같은 분위기도 강하게 느껴졌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장면들이 그려졌고, 이렇게나 상상이 쉬워진 건 그만큼 SF가 더 이상 이질적인 장르가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가장 긴 작품이었다. 이 정도면 단독으로 출간되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일정 부분은 반려동물 이야기처럼 읽히기도 했는데 결국은 돌봄과 책임, 인정과 존중의 범위에 관한 질문 같았다. 상반된 의견을 가진 두 인물 모두 이해가 가서 아직 나도 무엇이 답인지는 모르겠다. 그 선은 어디까지여야 할까.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블랙 미러》 시즌1의 〈당신의 모든 순간〉이 떠올랐다. 모든 기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재생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과연 행복할까? 모든 사실이 완벽하게 기록되는 세계에서는 역설적으로 기억을 다듬고 해석하며 살아가는 방식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감정적 진실은 사실적 진실에 비해 왜곡된 것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그것이 더 중요한 진실이 되기도 하고 삶을 견디게 하는 동아줄이 되어주듯이 말이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처럼 이 작품 세계 역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순간을 기준으로 세계와 그 안의 자아가 분기되며 수많은 버전의 평행 자아가 존재하게 된다. 순간의 선택이 미래를 바꾼다고 믿기에 사람들은 평행 자아와 자신을 비교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가능성에 의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의 선택 하나만이 세상의 모든 것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큰 죄책감이나 부채감을 가질 필요가 없으며, 아무리 수많은 평행 자아가 존재하더라도 결국 그 자아는 자신이 해 온 선택의 총체이기 때문에 기본 성격은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서술이 독자에게 조용한 응원과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다. 지금의 선한 선택들이 미래의 나를 조금 더 선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거라는 낙관도 가질 수 있게 되고.
 ̄
여러 작품을 읽으며 작품 세계가 상당히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기반 위에 세워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일상의 시공간을 이야기하면서도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그저 허무맹랑하게 읽히지 않는다. 그런 세계를 움직이는 가장 큰 무게추는 결국 인간의 ‘자유의지’인 것 같았다. 이런 ‘하드 SF’는 거의 처음 읽는 것 같기도 한데, 언젠가 읽게 될 『당신 인생의 이야기』도 기대된다.
0
다솜님의 인생책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