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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천선란 지음
허블 펴냄
🛸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남녀 주인공이 어렸을 적부터 같은 아픔을 가지고 서로만을 사랑한다는 부분에서 『급류』와 같은 결을 가질 수 있겠다. 역설적이게도 내가 따라갈 수 있고 더 와닿는 사랑의 감정선은 『급류』 속 인물들의 것이 아닌 이 작품 속 좀비의 것이다. 그리고 잠깐 등장한 지구에 남아있던 ‘메이린’과는 『동경』의 삼각형 관계도 생각났다. 이들도 ‘아름, 민아, 해든’과 같은 관계였지 않았을까. 디스토피아의 우주선 속 좀비 이야기에 먹먹해진다.
🦜 「제 숨소리를 기억하십니까」
‘앵두’ 때문에 울고 시작했다. 우리와 가족을 이루는 동물들의 수명이 너무 짧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가 인간이 너무 오래 산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꿨다. 지겹다 인간. ‘카카포’가 뭔가 해서 검색해 봤더니 굉장히 흥미로운 동물이다. 수명이 58~90년 정도인, 날지 못하는 멸종 위기 육상 앵무. 전반부 이름 모를 카카포 선생님의 지당하신 말씀에 다 밑줄을 치고 있다가 은미와 노윤이 등장하면서 생각보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제비 소녀의 가족 이야기에 더 집중했으면 좋지 않았을지 아쉽지만, 전반부가 너무 좋았다.
🐢 「우리를 아십니까」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토막 난 우주를 안고서.’
이미 읽었던 『토막 난 우주를 안고서』에 수록된 작품이었다. 인간의 격리로 지구의 자연이 회복되는 걸 봤을 땐 이런 종말이라면, 어차피 인간 모두가 끝을 향해 가는 마당에 뭐라도 살릴 수 있다면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겠다 생각했다. 이 마음이 ‘장풍이’를 바다로 보내주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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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작소설은 좀비 세계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다. 내가 여태껏 접한 좀비물들은 전적으로 좀비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인물들에만 초점을 맞추고 이분법적으로 좀비는 그저 처리해야 할 괴물이었다. 그렇다 보니, 내게는 고어물에 가까웠고 공포라는 감정만 심어주는 장르였다.
그러나 이 작품을 기점으로 나에게 더 이상 좀비는 허구가 아니다. 작가의 말에서도 이야기하듯 ‘볼 수 있고, 본인 스스로 움직이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린 사람. 그 사람을 죽이지도 못한 채 봐야 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우리의 세계에도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에 의한 팬데믹이 있었고, ‘나’를 포함한 모든 것을 잊어가고 잃어가는 질병과 사랑하는 이의 삶과 죽음에 대해 갈등하게 되는 상황이 있다.
‘죽어버린 자, 살아남은 자 누구도 행복할 수 없는, 해피엔딩은 없는 장르’로 공포 이외의 감정을 경험하는 순간 이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다. 이야기를 곁에 두고 자문한다. 내가 겪었던 상황 속에서 어디까지가 이기심이고 어디까지가 사랑이었을지. 나는 사랑을 원동력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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