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2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 민음사 펴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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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2.5.31

페이지

456쪽

상세 정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1954)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장편소설. 미국 현대 문학의 개척자라 불리는 헤밍웨이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삶의 좌표를 잃어버린 '길 잃은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그의 소설 중 가장 방대한 작품으로, 1936년 발발한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웅대한 현대의 서사시라 할 수 있다.

헤밍웨이는 통신사 특파원 자격으로 내전을 취재한 후 그 경험을 살려 이 소설을 썼다. 자신이 체험한 전쟁의 잔혹함과 비인간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한편으로, 이전 작품에서는 드러나지 않던 공동의 가치나 연대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보다 긍정적이고 원숙해진 헤밍웨이의 사회의식이 처음으로 발견되는 작품인 것이다.

헤밍웨이는 자신의 작품이 "바다 위에 떠 있는 빙산과 같아서 8분의 1에 해당하는 부분만이 수면에 떠 있고 나머지 8분의 7은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김욱동 교수(한국외대)는 2009년부터 그의 작품들을 번역을 해 오면서 이러한 문체적 특성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두었다.

'하드보일드 스타일'이라 불리는 간결한 표현 속에 다양한 의미를 숨겨 둔 헤밍웨이의 문장 하나하나를 여러 각도로 고민하여 그 어감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한국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번역하려고 애썼다. 또한 스페인어를 그대로 노출해 지역적 특징을 드러낸 부분도 원문 그대로, 그러나 그 의도와 느낌은 해치지 않도록 하는 데도 고심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8-28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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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민(상태:카뮈)

@smlee682

“어느 누구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본토의 일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앞머리에 놓인 존 던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저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로버트 조던의 마지막까지 읽고 다시 이 문장으로 돌아오니, ‘섬이 아니다’라는 말이 전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졌다. 섬이 아니라는 것은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그 연결에서 마음대로 빠져나올 수도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기쁨뿐 아니라 그의 상처에도 영향을 받고, 때로는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의 선택이 만들어놓은 세계 안에서 살아간다. 인간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인 동시에, 서로의 삶에서 완전히 손을 뗄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전쟁은 단순히 죽음이 많이 발생하는 공간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전쟁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던 수많은 관계를 몇 개의 단어로 잘라내는 방식에 가까웠다. 아군과 적군, 승리와 패배, 필요한 희생과 불필요한 희생. 그렇게 이름을 붙이고 나면 한 사람의 죽음도 작전을 위해 감수해야 할 숫자로 바꾸기 쉬워진다. 그러나 숫자 하나가 지워질 때 실제로 사라지는 것은 숫자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돌아갈 사람, 아직 하지 못한 말, 살아보지 못한 시간이 함께 사라진다. 전쟁이 잔인한 이유는 사람을 죽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한 인간에게 세계 전체였던 삶을 다른 누군가에게는 계산 가능한 손실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서 조던의 확신보다 그의 망설임에 더 마음이 갔다. 그는 자신이 왜 싸우는지 알고 있고, 자신이 맡은 임무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믿는다. 하지만 그 믿음만으로 눈앞의 죽음을 깨끗하게 지워버리지는 못한다. 그에게 적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면서도 여전히 사람이고, 동료의 희생은 작전의 대가이면서도 한 사람의 생이 끝나는 일이다. 나는 그 모순을 끝까지 견디는 태도가 중요하게 느껴졌다. 사람은 흔히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강함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옳음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쉽게 잔인해질 수 있다. 자신이 옳다고 믿으면서도 그 옳음 때문에 누군가가 상처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동시에 바라보는 것. 어쩌면 양심은 어느 한쪽을 완벽하게 선택하는 능력이 아니라, 선택하고 난 뒤에도 버려진 한쪽을 잊지 않는 능력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그런 조던이 마리아를 사랑하게 된다는 사실도 그래서 의미심장했다. 마리아를 만나기 전까지 그는 죽음을 어느 정도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해야 할 일을 하고, 필요하다면 죽는 것. 그의 삶은 마치 이미 종착지를 알고 달리는 기차처럼 곧게 뻗어 있다. 그런데 마리아가 나타나면서 그 선 위에 갑자기 가지가 뻗기 시작한다. 전쟁이 끝난 뒤 함께 살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 내일도 이 사람 곁에 있고 싶다는 마음,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다. 사랑은 그에게 새로운 삶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미래를 보이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에서 사랑이 죽음의 반대편에 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은 죽음을 더 무겁게 만든다. 잃을 것이 없을 때 죽음은 자신의 끝으로만 다가오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죽음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까지 함께 빼앗아간다. 함께 걷지 못할 길과 나누지 못할 대화, 존재할 수도 있었던 수많은 날들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사랑이 사람을 살고 싶게 만드는 이유와 죽음을 두렵게 만드는 이유는 어쩌면 같은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한다는 것은 한 사람을 얻는 일인 동시에, 그 사람과 함께할 수 있었던 미래까지 마음속에 만들어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조던에게 주어진 사흘은 이상할 만큼 길게 느껴진다. 객관적인 시간으로 보면 사흘은 한 생애에 비하면 거의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시간의 길이와 우리가 실제로 살아내는 시간의 크기는 반드시 같지 않다. 끝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오늘을 내일로 쉽게 넘긴다. 언젠가 다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말과 마음을 미룬다. 반대로 끝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평범했던 것들이 갑자기 또렷해진다. 한 번의 대화가 오래 남고, 손을 잡는 일이 하나의 사건이 된다. 조던의 사흘이 한 생애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 안에 많은 사건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기보다, 그가 더 이상 시간을 당연하게 여기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끝을 의식하는 순간 시간은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 깊어진다.

마리아에게도 사랑은 지나간 일을 없애주는 힘이 아니다. 그녀가 겪은 폭력은 조던을 사랑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가 더 진실하게 느껴졌다. 사랑이 과거를 지울 수 있다고 믿는다면, 사랑은 또 하나의 거짓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은 한 사람이 자신의 상처보다 더 큰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줄 수는 있다. 마리아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만으로 설명되는 사람이 아니고, 조던 역시 전쟁이라는 한 가지 역할로만 설명되는 사람이 아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지워주지 못하지만, 그 상처 바깥에도 아직 살아보고 싶은 자신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한다. 어쩌면 구원이란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아직 사라지지 않은 부분을 다시 발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에 조던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는 더 이상 동료들과 함께 갈 수 없지만, 자신에게 남은 몇 분을 그들이 달아날 수 있는 시간으로 바꾼다. 나는 이 장면을 단순한 영웅적 희생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았다. 희생이라는 말은 때때로 죽음을 너무 빨리 아름답게 만든다. 내가 오래 생각한 것은 오히려 시간의 방향이었다. 조던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앞으로 나아갈 수 없지만, 그가 그 자리에 남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시간은 계속 앞으로 간다. 한 사람에게서 멈춘 시간이 다른 사람에게 건너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장면에서 나는 존 던의 종소리를 다시 떠올렸다. 종을 치는 순간 소리는 종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한곳에서 시작된 진동은 공기를 타고 퍼져나가고,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에게까지 닿는다. 한 사람의 삶도 어쩌면 비슷한 방식으로 남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고 해도, 살아 있는 동안 만들어낸 선택까지 같은 순간에 멈추는 것은 아니다. 어떤 선택은 다른 사람의 기억이 되고, 어떤 사랑은 다른 사람의 삶을 견디게 하며, 누군가를 위해 내어준 몇 분은 그 사람이 살아갈 몇 년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삶은 한 사람 안에서 시작되지만 반드시 한 사람 안에서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라는 질문을 조금 다르게 읽게 됐다. 이 질문의 핵심은 종이 누구의 죽음을 알리느냐에 있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한 사람의 죽음을 과연 어디까지 그 사람만의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각자 하나의 몸을 가지고 있으니 자신의 삶에도 분명한 경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지금 가진 생각과 기억, 사랑과 두려움 속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남기고 간 것들이 수없이 섞여 있다.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는 하나의 섬이라기보다 수많은 흔적이 잠시 한곳에 모여 만들어진 땅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소설을 덮고 나서야 존 던의 첫 문장이 처음보다 조금 더 선명해졌다. 누구도 온전한 섬이 아니라는 것은 서로 사이좋게 살아야 한다는 아름다운 교훈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한 인간의 삶을 완전히 그 사람만의 것으로 떼어놓는 일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받아 자신이 되고, 살아가는 동안 다시 자신의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남긴다. 조던 역시 죽지만, 그가 마지막에 내어준 시간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시간 속에서 계속된다.

그래서 종은 한 사람의 끝을 알리면서도, 이상하게 그 사람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한 번 울린 종소리가 공기 속으로 퍼져나가듯, 한 사람의 삶도 자신이 끝난 자리에서 완전히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죽음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삶의 단절보다 오히려 삶의 경계가 얼마나 불분명한가 하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나는 어디까지 나이고, 어디부터가 타인일까. 내가 사랑했던 사람과 나를 사랑했던 사람, 나 때문에 달라진 사람과 나를 바꾸어놓은 사람들을 모두 걷어낸 뒤에도 과연 지금의 내가 그대로 남아 있을까. 그 질문 앞에서 다시 서문에 놓인 문장으로 돌아가게 된다. 우리는 애초부터 섬이 아니었고, 어쩌면 한 번도 완전히 혼자였던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민음사 펴냄

5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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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구

@sanggu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그것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니.
-존 던 p7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2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민음사 펴냄

2022년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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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1954)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장편소설. 미국 현대 문학의 개척자라 불리는 헤밍웨이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삶의 좌표를 잃어버린 '길 잃은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그의 소설 중 가장 방대한 작품으로, 1936년 발발한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웅대한 현대의 서사시라 할 수 있다.

헤밍웨이는 통신사 특파원 자격으로 내전을 취재한 후 그 경험을 살려 이 소설을 썼다. 자신이 체험한 전쟁의 잔혹함과 비인간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한편으로, 이전 작품에서는 드러나지 않던 공동의 가치나 연대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보다 긍정적이고 원숙해진 헤밍웨이의 사회의식이 처음으로 발견되는 작품인 것이다.

헤밍웨이는 자신의 작품이 "바다 위에 떠 있는 빙산과 같아서 8분의 1에 해당하는 부분만이 수면에 떠 있고 나머지 8분의 7은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김욱동 교수(한국외대)는 2009년부터 그의 작품들을 번역을 해 오면서 이러한 문체적 특성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두었다.

'하드보일드 스타일'이라 불리는 간결한 표현 속에 다양한 의미를 숨겨 둔 헤밍웨이의 문장 하나하나를 여러 각도로 고민하여 그 어감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한국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번역하려고 애썼다. 또한 스페인어를 그대로 노출해 지역적 특징을 드러낸 부분도 원문 그대로, 그러나 그 의도와 느낌은 해치지 않도록 하는 데도 고심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8-289권.

출판사 책 소개

노벨 문학상, 퓰리처상 수상 작가
20세기 미국 문학을 개척한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부정에서 긍정으로, 비관주의에서 낙관주의로, 개인주의에서 공동체 의식으로 발전하는 헤밍웨이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소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1954)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전 2권)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8, 289번으로 출간되었다. 미국 현대 문학의 개척자라 불리는 헤밍웨이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삶의 좌표를 잃어버린 ‘길 잃은 세대(une g?n?ration perdue, lost generation)’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그의 소설 중 가장 방대한 작품으로, 1936년 발발한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웅대한 현대의 서사시라 할 수 있다. 헤밍웨이는 통신사 특파원 자격으로 내전을 취재한 후 그 경험을 살려 이 소설을 썼다. 자신이 체험한 전쟁의 잔혹함과 비인간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한편으로, 이전 작품에서는 드러나지 않던 공동의 가치나 연대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보다 긍정적이고 원숙해진 헤밍웨이의 사회의식이 처음으로 발견되는 작품인 것이다.
헤밍웨이는 자신의 작품이 “바다 위에 떠 있는 빙산과 같아서 8분의 1에 해당하는 부분만이 수면에 떠 있고 나머지 8분의 7은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김욱동 교수(한국외대)는 2009년부터 그의 작품들을 번역을 해 오면서 이러한 문체적 특성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두었다. ‘하드보일드 스타일’이라 불리는 간결한 표현 속에 다양한 의미를 숨겨 둔 헤밍웨이의 문장 하나하나를 여러 각도로 고민하여 그 어감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한국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번역하려고 애썼다. 또한 스페인어를 그대로 노출해 지역적 특징을 드러낸 부분도 원문 그대로, 그러나 그 의도와 느낌은 해치지 않도록 하는 데도 고심했다. 스페인의 지명과 전쟁, 투우 등에 사용되는 용어들도 하나하나 조사하여 실어 주었다. 김욱동 교수는 “헤밍웨이의 육체뿐만 아니라 그 영혼을 살려 내고 싶었다. 지시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함축적 의미까지 옮기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다시 말해 행간의 숨은 뜻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라고 헤밍웨이 번역 과정의 마음가짐을 밝히기도 했다.

헤밍웨이 자신이 직접 경험한 전쟁의 잔혹함과 비인간적인 모습을 고발한 대작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전쟁에 깊은 관심을 보였을 뿐 아니라 직접 참전하거나 특파원 자격으로 전쟁을 취해하여 그 체험을 소설화한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전쟁이야말로 작가가 작품을 쓰는 데 가장 좋은 소재’라고 밝힌 바 있으며, 특히 “작가에게 가장 좋은 전쟁은 내전이다.”라고 하면서 내전에 큰 관심을 두었다. 이는 내전이 더 극적이고 더 비극적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배경이 되는 스페인 내전을 직접 취재한 그는 어느 작가보다 깊이 있게 이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미국 남북 전쟁에 참전한 군인이었던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 역시 이 소설의 주인공 로버트 조던의 할아버지가 경험한 전쟁으로 소설화되어 있다.
스페인 내전이 일어난 다음 해인 1937년 5월, 마드리드와 세고비아 사이 과다라마 산맥의 어느 계곡. 미국인 로버트 조던은 공화파 사령부로부터 세고비아 공격의 사전 단계로 철교를 폭파하라는 명령을 받고 이곳에 도착한다. 그는 스페인에서 10년간 공부하고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스페인어를 가르치다가 내전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참전하여 1년 가까이 폭파원으로 활약해 왔다. 이번 작전은 폭파해야 할 철교 근처 계곡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게릴라 대원들이 그를 돕기로 되어 있었다. 게릴라들의 대장은 파블로라는 인물로, 한때는 게릴라들을 이끌며 파시스트들과 싸우는 데 앞장섰던 용맹한 남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의 손에 죽어 간 사람들을 떠올리며 괴로워하고, 현재의 보잘것없는 생활이나마 지키려고 아집을 부린다. 특히 작전이 시작되면 다른 곳으로 근거지를 옮겨야 한다는 데 불만을 품고 조던에게 비협조적이었으며, 나약한 모습을 보이며 대원들과도 갈등을 일으킨다. 그의 부인인 필라르는 비굴한 그의 모습에 실망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워하며 조던의 작전 준비를 돕는다.
첫눈에 서로에게 이끌렸던 조던과 마리아를 이어 준 사람도 필라르였다. 마리아는 파시스트들에게 마을 시장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능욕까지 당한 처녀로, 몇 달 전 구출되어 필라르의 보살핌을 받아 왔다. 그녀는 순수하고 열렬하게 조던을 사랑하고, 조던 역시 그녀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는 기대하지 못했던 열정과 희망을 품게 된다.

난 우리가 싸워서 지켜 온 모든 것을 사랑하듯 당신을 사랑해. 자유와 존엄, 그리고 모든 사람이 일할 권리, 굶지 않을 권리를 사랑하는 것처럼 당신을 사랑해. 우리가 방어한 마드리드를 사랑하듯, 죽어 간 내 동지들을 사랑하듯 당신을 사랑해. 정말 많은 동지가 죽었지. 정말, 정말로 많은 동지들이. 당신은 얼마나 많은 동지가 죽었는지 아마 상상도 못 할 거야. 하지만 난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듯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아니, 그 이상으로 당신을 사랑하지. 정말로 사랑해, 토끼. 이루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해. 하지만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건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뭔가 말하고 싶기 때문이야. 아내가 있어 본 적은 없지만, 이제 아내로서 당신이 있으니까 행복해.”(본문 중에서)

작전이 가까워 올수록 파블로와의 갈등이 심해지는데, 결국 그는 대원들을 배신하고 한밤중에 달아나 버린다. 철교 폭파에 사용할 도구까지 가져가 버린 데 대해 조던은 크게 상심한다. 뿐만 아니라 도움을 얻으려 했던 엘소르도의 게릴라 부대가 적군에 의해 괴멸되자 조던과 대원들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이뤄 나갈 마리아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묵묵히 작전을 진행해 가고, 필라르나 안셀모 같은 충직한 대원들도 그를 조용히 돕는다.

헤밍웨이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작품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자 헤밍웨이는 공화파를 지원하기 위해 모금 운동을 시작했고, 이듬해인 1937년에는 특파원 자격으로 직접 스페인을 찾아 내전을 취재했다. 그는 스페인에 도착하고 몇 달 후 ‘스페인 내전을 소재로 소설을 쓸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1940년에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출간하자 몇 달 안에 무려 50만 부 이상 판매되는 등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소설 부문 퓰리처 상 후보에 올랐다.
헤밍웨이는 유럽의 여러 나라 가운데서도 스페인과 스페인 사람에 남다른 애정이 있었다고 한다. “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중세 국가이며, 스페인 사람들은 유럽인 중에서는 가장 인간적인 사람들이었다.”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실제로 그는 “이 나라를 더 이상 위험이 없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진부한 말처럼 들릴지라도 역시 그것은 진실이다.”와 같은 생각을 품고 내전을 취재했으며, 그 경험을 살려 이 소설을 완성했다.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과 그들의 나라가 전쟁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처참하게 변해 가는 것을 직접 목격한 그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전 작품들에서는 삶을 ‘승산 없는 싸움’으로 간주하거나, 전쟁에 참가하여 가까스로 살아남은 이들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절룩거리는 불구자로 그려 왔다. 그러나 1930년대 경제 대공황과 스페인 내전을 겪으면서 그는 삶을 긍정하고 공동체 의식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특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이르면 주인공은 사회의식과 공동선의 중요성을 자각하게 되고, 그의 마지막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는 공동체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김욱동 교수는 “부정에서 긍정으로, 비관주의에서 낙관주의로, 개인주의에서 공동체 의식으로 발전하는 헤밍웨이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작품이 바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이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무엇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제목에서 두드러진다. 헤밍웨이는 17세기 영국 시인 존 던의 시에서 이 제목을 가져왔다.

어떤 사람도 그 혼자서는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이니. 흙 한 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 땅은 그만큼 줄어들기 마련이다. 한 곶[岬]이 씻겨 나가도 마찬가지고, 그대의 친구나 그대의 영토가 씻겨 나가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의 죽음도 그만큼 나를 줄어들게 한다. 나는 인류 속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그것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니.―존 던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라는 이 시에서처럼, 주인공 조던은 개인을 희생하여 공동선을 지키려 하는 헤밍웨이의 주제를 대변한다. 누군가가 죽었음을 알리며 울려 퍼지는 ‘조종’과 같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공동선을 구호로만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는 “너라는 존재는 없어. 절대 아무 일도 당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 나도 이 노인도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야. 다만 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거든.”이라는 그의 독백에서도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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