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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민음사 펴냄
“어느 누구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본토의 일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앞머리에 놓인 존 던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저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로버트 조던의 마지막까지 읽고 다시 이 문장으로 돌아오니, ‘섬이 아니다’라는 말이 전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졌다. 섬이 아니라는 것은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그 연결에서 마음대로 빠져나올 수도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기쁨뿐 아니라 그의 상처에도 영향을 받고, 때로는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의 선택이 만들어놓은 세계 안에서 살아간다. 인간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인 동시에, 서로의 삶에서 완전히 손을 뗄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전쟁은 단순히 죽음이 많이 발생하는 공간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전쟁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던 수많은 관계를 몇 개의 단어로 잘라내는 방식에 가까웠다. 아군과 적군, 승리와 패배, 필요한 희생과 불필요한 희생. 그렇게 이름을 붙이고 나면 한 사람의 죽음도 작전을 위해 감수해야 할 숫자로 바꾸기 쉬워진다. 그러나 숫자 하나가 지워질 때 실제로 사라지는 것은 숫자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돌아갈 사람, 아직 하지 못한 말, 살아보지 못한 시간이 함께 사라진다. 전쟁이 잔인한 이유는 사람을 죽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한 인간에게 세계 전체였던 삶을 다른 누군가에게는 계산 가능한 손실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서 조던의 확신보다 그의 망설임에 더 마음이 갔다. 그는 자신이 왜 싸우는지 알고 있고, 자신이 맡은 임무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믿는다. 하지만 그 믿음만으로 눈앞의 죽음을 깨끗하게 지워버리지는 못한다. 그에게 적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면서도 여전히 사람이고, 동료의 희생은 작전의 대가이면서도 한 사람의 생이 끝나는 일이다. 나는 그 모순을 끝까지 견디는 태도가 중요하게 느껴졌다. 사람은 흔히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강함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옳음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쉽게 잔인해질 수 있다. 자신이 옳다고 믿으면서도 그 옳음 때문에 누군가가 상처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동시에 바라보는 것. 어쩌면 양심은 어느 한쪽을 완벽하게 선택하는 능력이 아니라, 선택하고 난 뒤에도 버려진 한쪽을 잊지 않는 능력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그런 조던이 마리아를 사랑하게 된다는 사실도 그래서 의미심장했다. 마리아를 만나기 전까지 그는 죽음을 어느 정도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해야 할 일을 하고, 필요하다면 죽는 것. 그의 삶은 마치 이미 종착지를 알고 달리는 기차처럼 곧게 뻗어 있다. 그런데 마리아가 나타나면서 그 선 위에 갑자기 가지가 뻗기 시작한다. 전쟁이 끝난 뒤 함께 살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 내일도 이 사람 곁에 있고 싶다는 마음,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다. 사랑은 그에게 새로운 삶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미래를 보이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에서 사랑이 죽음의 반대편에 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은 죽음을 더 무겁게 만든다. 잃을 것이 없을 때 죽음은 자신의 끝으로만 다가오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죽음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까지 함께 빼앗아간다. 함께 걷지 못할 길과 나누지 못할 대화, 존재할 수도 있었던 수많은 날들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사랑이 사람을 살고 싶게 만드는 이유와 죽음을 두렵게 만드는 이유는 어쩌면 같은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한다는 것은 한 사람을 얻는 일인 동시에, 그 사람과 함께할 수 있었던 미래까지 마음속에 만들어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조던에게 주어진 사흘은 이상할 만큼 길게 느껴진다. 객관적인 시간으로 보면 사흘은 한 생애에 비하면 거의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시간의 길이와 우리가 실제로 살아내는 시간의 크기는 반드시 같지 않다. 끝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오늘을 내일로 쉽게 넘긴다. 언젠가 다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말과 마음을 미룬다. 반대로 끝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평범했던 것들이 갑자기 또렷해진다. 한 번의 대화가 오래 남고, 손을 잡는 일이 하나의 사건이 된다. 조던의 사흘이 한 생애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 안에 많은 사건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기보다, 그가 더 이상 시간을 당연하게 여기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끝을 의식하는 순간 시간은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 깊어진다.
마리아에게도 사랑은 지나간 일을 없애주는 힘이 아니다. 그녀가 겪은 폭력은 조던을 사랑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가 더 진실하게 느껴졌다. 사랑이 과거를 지울 수 있다고 믿는다면, 사랑은 또 하나의 거짓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은 한 사람이 자신의 상처보다 더 큰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줄 수는 있다. 마리아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만으로 설명되는 사람이 아니고, 조던 역시 전쟁이라는 한 가지 역할로만 설명되는 사람이 아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지워주지 못하지만, 그 상처 바깥에도 아직 살아보고 싶은 자신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한다. 어쩌면 구원이란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아직 사라지지 않은 부분을 다시 발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에 조던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는 더 이상 동료들과 함께 갈 수 없지만, 자신에게 남은 몇 분을 그들이 달아날 수 있는 시간으로 바꾼다. 나는 이 장면을 단순한 영웅적 희생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았다. 희생이라는 말은 때때로 죽음을 너무 빨리 아름답게 만든다. 내가 오래 생각한 것은 오히려 시간의 방향이었다. 조던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앞으로 나아갈 수 없지만, 그가 그 자리에 남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시간은 계속 앞으로 간다. 한 사람에게서 멈춘 시간이 다른 사람에게 건너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장면에서 나는 존 던의 종소리를 다시 떠올렸다. 종을 치는 순간 소리는 종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한곳에서 시작된 진동은 공기를 타고 퍼져나가고,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에게까지 닿는다. 한 사람의 삶도 어쩌면 비슷한 방식으로 남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고 해도, 살아 있는 동안 만들어낸 선택까지 같은 순간에 멈추는 것은 아니다. 어떤 선택은 다른 사람의 기억이 되고, 어떤 사랑은 다른 사람의 삶을 견디게 하며, 누군가를 위해 내어준 몇 분은 그 사람이 살아갈 몇 년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삶은 한 사람 안에서 시작되지만 반드시 한 사람 안에서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라는 질문을 조금 다르게 읽게 됐다. 이 질문의 핵심은 종이 누구의 죽음을 알리느냐에 있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한 사람의 죽음을 과연 어디까지 그 사람만의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각자 하나의 몸을 가지고 있으니 자신의 삶에도 분명한 경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지금 가진 생각과 기억, 사랑과 두려움 속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남기고 간 것들이 수없이 섞여 있다.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는 하나의 섬이라기보다 수많은 흔적이 잠시 한곳에 모여 만들어진 땅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소설을 덮고 나서야 존 던의 첫 문장이 처음보다 조금 더 선명해졌다. 누구도 온전한 섬이 아니라는 것은 서로 사이좋게 살아야 한다는 아름다운 교훈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한 인간의 삶을 완전히 그 사람만의 것으로 떼어놓는 일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받아 자신이 되고, 살아가는 동안 다시 자신의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남긴다. 조던 역시 죽지만, 그가 마지막에 내어준 시간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시간 속에서 계속된다.
그래서 종은 한 사람의 끝을 알리면서도, 이상하게 그 사람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한 번 울린 종소리가 공기 속으로 퍼져나가듯, 한 사람의 삶도 자신이 끝난 자리에서 완전히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죽음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삶의 단절보다 오히려 삶의 경계가 얼마나 불분명한가 하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나는 어디까지 나이고, 어디부터가 타인일까. 내가 사랑했던 사람과 나를 사랑했던 사람, 나 때문에 달라진 사람과 나를 바꾸어놓은 사람들을 모두 걷어낸 뒤에도 과연 지금의 내가 그대로 남아 있을까. 그 질문 앞에서 다시 서문에 놓인 문장으로 돌아가게 된다. 우리는 애초부터 섬이 아니었고, 어쩌면 한 번도 완전히 혼자였던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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