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 민음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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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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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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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권. 20세기의 지성이자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 억압적인 관습과 부조리를 고발하며 신화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다. 1942년 <이방인>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카뮈는 젊은 무명작가에 불과했다. 낯선 인물과 독창적인 형식으로 현대 프랑스 문단에 이방인처럼 나타난 이 소설은 출간 이후 한순간도 프랑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진 적이 없는 걸작이 되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을 겪으며 정신적인 공허를 경험한 당대 독자들에게 카뮈는,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서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뫼르소라는 인물을 통해 관습과 규칙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한다. 현실에서 소외되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이 죽음을 앞두고 비로소 마주하는 실존의 체험을 강렬하게 그린 작품이다. 김화영 교수가 원문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친근한 언어로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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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민(상태:카뮈)

@smlee682

낯선 이는 결국 나 자신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방인>을 다시 읽는 동안 계속 따라다녔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만 해도 제목 속 ‘이방인’은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고 바깥으로 밀려난 뫼르소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읽으니 조금 다르게 보였다. 세상이 뫼르소에게 낯선 것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먼저 뫼르소 자신이 자기 자신에게조차 낯선 사람이었던 것은 아닐까.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울지 않는 그의 모습을 처음에는 감정의 결핍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읽다 보니 그 무표정함 안에는 다른 종류의 진실이 숨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죽음은 본래 누구와도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경험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한 사람이 죽음으로 건너가는 그 순간에 함께 들어갈 수는 없다. 남겨진 사람은 다만 그 바깥에 서 있을 뿐이다.

그래서 타인의 죽음 앞에서 슬퍼한다는 것은 어쩌면 죽음을 이해하는 일이라기보다, 그 사람의 부재를 견디는 방식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우리는 울고, 애도하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죽음 주변에 하나의 질서를 만든다. 뫼르소는 그 질서 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지 못한다.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보다 장례식장의 더위와 빛, 졸음과 피로를 먼저 느낀다. 사람들은 바로 그 점을 견디지 못한다. 슬픔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슬픔을 표현해야 할 순간에 아무것도 연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더 불편해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이 소설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 역시 조금 낯설게 보였다. 우리는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실제로 알고 있는 것은 상대의 일부에 불과하다. 관계를 맺는다는 건 어쩌면 나와 상대가 겹쳐지는 부분을 크게 바라보고, 끝내 겹쳐지지 않는 부분은 잠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두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서로에게 이해 가능한 모습만을 골라내며 우리는 친밀함이라는 감각을 만들어간다.

그런데 뫼르소는 이상하리만큼 그 작업을 하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말을 요구받아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고, 슬퍼해야 할 때 슬픈 표정을 만들지도 않는다. 자신이 느끼지 않는 감정을 관계를 위해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과 멀어진다.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게 수행하는 삶의 문법을 혼자만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뫼르소가 이방인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가 인간적인 감정을 갖지 못해서가 아니라, 인간들이 서로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그대로 드러내버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로 관계를 설명하고, 눈물로 슬픔을 증명하고, 미래의 계획으로 삶에 방향을 부여한다. 뫼르소는 그런 설명에 좀처럼 기대지 않는다. 그에게 세계는 의미보다 먼저 햇빛이고, 땀이고, 피로이며, 피부에 닿는 감각이다.

그래서인지 재판 장면에서 가장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자신의 삶이 심판받고 있는데도 뫼르소가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법정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그의 행동에 의미를 붙이고, 성격을 해석하고, 어머니의 장례식까지 끌어와 한 인간의 서사를 완성한다. 그런데 정작 그 서사의 주인공인 뫼르소 자신은 그 설명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나’라는 존재가 과연 온전히 내 것일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지만, 사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는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때로는 지나간 자신의 행동조차 내가 한 일 같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 안에도 이미 작은 거리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뫼르소가 법정에서 느끼는 낯섦은 단순한 무감각이라기보다, 인간이 자기 자신과 맺고 있는 관계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법정에서 하나의 ‘뫼르소’를 만들어내지만, 그는 그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를 설명하는 수많은 말 속에서 오히려 내가 가장 낯선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그는 비로소 세상의 ‘다정한 무관심’을 받아들인다. 나는 이 결말을 읽을 때마다 죽음이 인간에게서 빼앗아가는 것과 남겨주는 것을 동시에 생각하게 된다. 죽음은 미래를 없애버린다. 하지만 그와 함께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계산, 언젠가는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 역시 사라진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다음을 향한다. 내일을 준비하고, 더 나은 순간을 기다리고, 지금의 삶을 미래를 위한 과정처럼 취급한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는 더 이상 ‘다음’이 없다. 남는 것은 오직 지금뿐이다. 밤공기와 별빛, 피부에 닿는 바람처럼 아무 의미를 붙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들만이 남는다.

그제야 뫼르소는 세계가 자신을 위해 존재한 적도, 자신에게 적대적이었던 적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세계는 그저 존재한다. 무심하게 햇빛을 내리쬐고, 바다를 흔들고, 사람을 태어나게 하고 죽게 한다. 이상하게도 그는 바로 그 무관심 속에서 처음으로 세계와 하나가 된다.

그래서 마지막의 평온은 초월이라기보다 오히려 가장 철저하게 지금으로 돌아오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도, 자신을 설명하려는 시도도,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판단할지에 대한 걱정도 사라진 자리. 거기에는 살아 있다는 감각과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만이 남는다.

<이방인>을 다시 읽고 나서 나는 우리가 자기 자신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꼭 결함만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타인을 완전히 알 수 없듯 자기 자신에게도 완전히 투명해질 수 없다. 마음속에는 언제나 설명되지 않는 감정과, 뒤늦게야 이해되는 선택과, 내가 나를 바라보는 낯선 시선이 남아 있다.

어쩌면 인간은 처음부터 자기 자신과 완전히 일치할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나라고 믿어온 사람과 실제의 나 사이에는 언제나 작은 틈이 있고, 우리는 평생 그 틈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이방인>의 제목이 가리키는 가장 먼 타인은 결국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평생 함께 살아가면서도 끝내 전부 알 수 없는 사람.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가장 낯선 사람.

나 자신이라는 이방인.

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민음사 펴냄

2주 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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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O

@gaon__lee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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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18p 나는 그들 앞에 누인 그 시신이 그들의 눈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인상마저 받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그릇된 인상이었던 것 같다.
=> 주인공의 가치관이 달라질 것이란 복선.

32p 나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엄마의 장례식도 이제는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겠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 어머니의 죽음조차 일상의 한 매듭으로만 처리하는 뫼르소의 무심함. 정서서가 마비된 되어 삭막하기 그지없는 주인공의 내면.

45p 레몽은 안색이 변했으나 당장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공손한 목소리로, 꽁초를 주워도 좋으냐고 물었다.
=> 앞서 전 연인을 무자비하게 때린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권력에 비굴해지는 레몽. 뫼르소가 이런 인간과 친구가 된다는 사실이 뫼르소의 도덕적 무관심을 드러내고 그의 말로가 암시된다

52p 나는, 그런 건 아무 중요성도 없는 것이지만 정 원한다면 결혼을 해도 좋다고 설명을 했다.
=> 결혼에서도 방관자적 입장을 지닌 1부의 뫼르소. 뫼르소는 진정한 자유주의자일까 아님 의미 부여를 포기한 자일까.

68p 내게 있어서 그 사건은 이미 끝난 것이었으므로 나는 그 생각은 하지도 않은 채 그리로 갔던 것이었다.

69p 다만 이마 위에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와, 단도로부터 여전히 내 앞으로 뻗어 나오는 눈부신 빛의 칼날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 뜨거운 태양이 뫼르소의 살인 충동을 일으킨다. 하지만 작가는 살해 동기를 '태양'으로 환원해 피해자의 인격을 지운다. 더욱이 태양 빛으로 살인을 일으킨 자를 순교자로 소개한 출판사의 카피에도 의문이 든다.

70p 총탄은 깊이, 보이지도 않게 들어박혔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80p 나는, 그것은 바로 그들이 죄인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대답하려 했다. 그러나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그것은 나로서는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 생각이었다.
=> 주인공의 비현실적 가치관이 현실과 충돌함을 나타내는 문장. 뫼르소가 자신을 객관하기 시작하는 순간.

87p 그다음에는 죄수로서의 생각을 자주 했다.
=> 사회의 가장 아래 범주에 속한 자임을 인지한 뫼르소

108p 왜냐하면, 내일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이제 내가 다시 대면한 것은 바로 나의 감방이니까 말이다.
=> 삶의 위치가 어디 있는지를 명확히 자각해 가는 뫼르소

112p 나는 내가 한 행동을 그다지 뉘우치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토록 악착스럽게 덤벼드는 것이 나에게는 의외였다.
=> 삶을 자각해 나가지만, 그에게 살해당한 아랍인에 대한 인식은 극히 미미하다. 재판에서도 검사와 변호사의 발언에서도 아랍인보단 뫼르소의 언급 비중이 높다. 살해당한 아랍인은 시대 배경 상 식민지인으로 추정된다. 그는 또 하나의 이방인이었고 낮은 지위에 있었기에 더욱 비참하다.

124p 그저 좀 수치심을 느끼면서, 대단히 정확하게, 목숨이 슬그머니 끊어지는 것이다.

125p 나는 내,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려고 들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136p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 살해당한 아랍인이 뫼르소의 자각을 지켜보고 있다면 얼마나 분노하고 있을까. 뫼르소의 '행복'은 그가 살해한 자의 불행 위에 세워진 것이다.

198p 독자 스스로 살인범인 그의 편을 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 작품 해설에서 자신의 주관을 드러내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단정이 돼선 안된다.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한 해설이 외려 독자에게 거부감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 글이 바로 대표적 사례가 아닐까 싶다. 살인을 옹호하는 가치관에 동조를 요구하는 옮긴이는 어쩌면 해설에 취해 작가와 자신을 동일시한 것이 아닐까.

198p 세 가지 죽음이 전략적 지점에 배치되어 소설 형식의 기둥이 되고 있다.

200p 체포된 뒤의 심문과 재판 과정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이 살인에는 아예 피해자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사실상의 피해자는 당시의 피식민인 아랍인이다.
=> 해설의 이 대목엔 매우 공감한다.

201p 이처럼 소설은 죽음에 의하여 내적 균형을 얻고 그 1부와 2부는 서로 대칭 관계 속에 놓인다.

206p 소설을 정독해 보면 우리는 화자 뫼르소의 무심한 듯한 어조의 진술이 암암리에 ‘어머니의 죽음’의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213p 필연적인 죽음의 운명 때문에 삶은 의미가 없으므로 자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한정된 삶을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이 소설의 참다운 주제는 삶의 찬가, 행복의 찬가다.
=> '행복의 찬가'가 누구의 침묵 위에서 있는지를 생각해 보지 않은 문장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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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 지음
민음사 펴냄

3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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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

@song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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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 지음
민음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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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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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권. 20세기의 지성이자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 억압적인 관습과 부조리를 고발하며 신화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다. 1942년 <이방인>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카뮈는 젊은 무명작가에 불과했다. 낯선 인물과 독창적인 형식으로 현대 프랑스 문단에 이방인처럼 나타난 이 소설은 출간 이후 한순간도 프랑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진 적이 없는 걸작이 되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을 겪으며 정신적인 공허를 경험한 당대 독자들에게 카뮈는,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서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뫼르소라는 인물을 통해 관습과 규칙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한다. 현실에서 소외되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이 죽음을 앞두고 비로소 마주하는 실존의 체험을 강렬하게 그린 작품이다. 김화영 교수가 원문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친근한 언어로 번역하였다.

출판사 책 소개

20세기의 지성이자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 알베르 카뮈
억압적인 관습과 부조리를 고발하며 영원한 신화의 반열에 오른 작품


1942년 『이방인』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카뮈는 알제리에서 태어난 젊은 무명작가에 불과했다. 낯선 인물과 독창적인 형식으로 현대 프랑스 문단에 이방인처럼 나타난 이 소설은 출간 이후 한순간도 프랑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진 적이 없는 걸작이 되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을 겪으며 정신적인 공허를 경험한 당대 독자들에게 카뮈는,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서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뫼르소라는 인물을 통해 관습과 규칙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한다. 현실에서 소외되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이 죽음을 앞두고 비로소 마주하는 실존의 체험을 강렬하게 그린 이 작품은 아직까지도 전 세계 독자들 사이에서 고전 중의 고전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민음사에서는 불문학 최고의 번역자 김화영 교수가 이십 여년 만에 원문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오늘의 독자들에게 보다 친근한 언어로 “새로 번역하다시피 대폭 수정”한 원고를 ‘세계문학전집’ 266번으로 출간함으로써 『이방인』이 독자들에게 보다 깊은 감동을 전할 수 있도록 하였다.

■ 전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신화의 반열에 오른 고전

프랑스 파리 갈리마르 출판사의 통계에 따르면 『이방인』은 지금까지 프랑스에서만 모두 733만여 부가 판매되었으며 연 평균 판매 부수는 19만 부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갈리마르 출판사 설립 이래 백여 년의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에 속한다. 『이방인』은 현재 전 세계에서 무려 백한 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방인』은 작품 그 자체로 보나 20세기 서사 형식의 역사에 있어서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는 작품으로 출판 당시부터 하나의 문학적 ‘사건’이었다. 롤랑 바르트는 이 짧은 소설을 “건전지의 발명”과 맞먹는 사건이라고 압축했다. 가에탕 피콩은 “지극히 현대적인 감수성을 완벽에 가까운 고전적인 형식으로 끌어올렸다.”라고 격찬했고 에마뉘엘 무니에는 “뼛속까지 고전적인, 다시 말해서 의도적이고 정돈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를 지향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거의 청교도적인 이 작가는 내면에 분열의 아픔과 어둠을 간직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1945년에 이미 사르트르는 이런 모든 평가를 종합하는 동시에 이 작품의 가치를 꿰뚫어보며 다음과 같은 예언적인 말을 남겼다.

“카뮈의 어둡고도 순수한 작품 속에서 미래의 프랑스 문학의 주된 특징들을 식별해 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어떤 고전적인 문학을 약속한다. 그 문학은 아무런 환상도 주지 않지만 인간성의 위대함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차 있고, 가혹하지만 불필요한 폭력은 배제하는, 열정적이지만 절제된 문학이다.”

■ 삶과 죽음, 부조리한 세상
―영웅이기를 거부하면서도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순교자 뫼르소


알제에서 선박 중개인 사무실 직원으로 일하는 젊은 청년 뫼르소는 어느 날 마랭고의 양로원에 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고 가서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다. 그는 예전 직장 동료였던 마리를 다시 만나 유쾌한 영화를 보고 해수욕을 즐기며 사랑을 나눈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뫼르소는 한 아파트에 사는 이웃 레몽과 친해진다. 레몽은 변심한 애인을 괴롭히려는 계획을 세우고, 뫼르소는 레몽의 뜻에 이끌려 이 계획에 동참한다. 며칠 후 뫼르소는 레몽과 함께 해변으로 놀러 갔다가 그들을 미행하던 아랍인들과 마주친다. 그 아랍인들 중에는 레몽 옛 애인의 오빠가 있다. 싸움이 벌어져 레몽이 다치고 소동이 마무리되지만 뫼르소는 답답함을 느끼며 시원한 샘 가로 간다. 그곳에서 우연히 레몽을 찔렀던 아랍인을 만난 뫼르소는 그가 꺼내는 칼의 강렬한 빛에 자극을 받아 자신도 모르게 품에 있던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교육을 받았지만 신분 상승 욕구나 야심이 없고 생활의 변화를 원하지 않는, 이상할 정도로 주위에 ‘무관심한’ 뫼르소는 우발적 살인 이후 세상에서 ‘이방인’이 되어 버린다. 진실을 왜곡해 자신을 도우려는 변호사도, 하느님을 통해 뫼르소를 감화하려는 재판관도, 구원을 위해 그를 찾아온 사제도, 그 누구도 뫼르소를 진정 이해하지 못하고 뫼르소 역시 주위 세계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뫼르소는 자기 자신의 사건에서 소외되고 만다. “어처구니없게만 여겨지는 죽음에 대한 거부, 자기 스스로의 밖으로 쫓겨난 듯 자기 자신에 대해 느끼는 낯섦, 그리고 이 세계의 불투명한 어둠, 부조리는 송두리째 여기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이렇게 타인에 의해 내려진 사형 선고를 받으며 뫼르소는 마지막 유혹, 신앙과 구원의 유혹을 떨치고 자신의 죽음과 정면으로 대면하게 된다.

■ 한국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의 전면 개정판

프랑스 내에서도 최고의 고전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방인』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끝난 1953년이었으며 정가는 700환이었다. 당시 전후의 물질적 정신적 폐허 속에서 ‘실존주의’ 철학과 함께 상륙한 이 짤막한 소설은 한국 독자들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근원적 질문 앞에 세웠다.
1999년 우리나라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선정된 김화영 교수는 작품 해설을 통해 “열다섯 살 때 영문 모르고 처음 읽”은 이 소설이 “줄곧 운명처럼 나의 삶을 동반해” 왔다고 밝혔다. 이십여 년 전 처음 번역했던 『이방인』을 이번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수록하며 김화영 교수는 작품을 “새로 번역하다시피 대폭 수정”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구별한 “엄마”와 “어머니”의 표현을 원문에 따라 예외 없이 일치시켜 화자의 심정을 보다 적절히 전달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유간접화법의 어감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으며 “잘못된 번역, 어색한 표현을 바로잡았”다. 또한 “구투가 되어 버린 수사를 오늘날 언어 관습에 맞추”는 동시에 “이방인 특유의 문체”를 고스란히 간직하였다.
수십 년 동안 강단에서 이 소설을 학생들과 함께 다시 읽고 가르쳤으며, 이제 새 번역을 내면서 “마치 처음 대하는 독자가 된 듯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는 김화영 교수의 “새로운 번역”은 오늘날 『이방인』을 처음 읽는 독자들뿐만 아니라 이미 한번 만났던 독자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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