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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4시간 어떻게 살 것인가

아널드 베넷 (지은이), 이은순 (옮긴이) 지음
범우사 펴냄

아침의 한 시간은 밤의 두 시간 이상의 가치가 있다

일상의 일로 그렇게 피곤해진다면, 그것은 당신의 생활의 균형이 잘못된 것이므로 시정해야만 한다고. 인간의 정력은 일상의 일에 모두 빼앗겨 버려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분명한 것은 머리를 써서 무언가 당신의 정열을 일상의 일에만 모두 써버리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당신의 엔진을 일상의 일에 쓰기 전에(후가 아니다) 먼저 그 이외의 무언가에 쓰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다.

하루의 3분의 2의 시간을, 3분의 1일을 차지하는 근무 시간에 단지 추가로 붙어 있는 시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면(게다가 그 3분의 1의 시간에조차 전혀 정열적으로 일하지 않으므로) 완전히 충실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가능할 리가 없다.


밤에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이 있을 때, 모든 정력을 기울일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을 때,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날 하루가 빛나고 활기에 넘친다는 것을 당신은 부정할 수 있겠는가.


주 6일, 매일 아침의 적어도 30분간, 그리고 일주일에 3일 저녁 1시간 반씩을 합하면 주 7시간 반이 된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 7시간 반을 완전히 활용한다면 그 주일 전체가 활기와 정열에 넘치게 되며, 따분하기 그지없는 직업에조차 관심이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아우렐리우스와 에픽테토스가 쓴 책 이상으로 언제까지나 ‘신선한’ 책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신이나 나처럼 평범한 인간(허세와 잘난 체, 비상식을 싫어하는 인간)의 일상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평범한 상식이 이 이상으로 가득찬 책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시험삼아 밤에 1장이라도 좋으니까 한번 읽어 보기 바란다. 짧아서 1장이랄 것도 없이 금방 몇 장이라도 읽겠지만. 그리고 다음날 아침 어젯밤에 읽은 것에 관해 생각을 집중해 보기 바란다. 그러면 내가 말한 것을 납득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가 끊임없이 잇달아 일어남으로써 전개된다는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은 바다를 보고 그 기본적 구성 요소를 깨닫는다. 즉 지질학적 관점에서 그저께는 수증기에서, 어제는 끓어오르고, 내일은 얼게 되리라는 필연적 요소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액체는 고체로 되는 과정에 있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그로부터 유의전변하는 인생의 한없는 풍요로움에 대한 인식에 도달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자기를 갈고 닦음으로써 얻은 이러한 진정한 통찰력만큼 인간에게 항구적인 만족감을 주는 것은 없다. 이것이야말로 과학의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흥미를 가지고 매일 저녁 1시간 반 정도씩 런던의 부동산 문제를 연구해 보길 바란다. 그렇게 하면 일이 점점 재미있어져 일할 의욕이 높아지고 생활 전체가 바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식한 체하는 인간이 되지 마라
2022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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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maeehfz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삶은 그렇게 간단리 말해지는 것이 아님을 정녕 주리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기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은 행방불명인 내 아버지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지적은 사실일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지적이 지금의 주리처럼 나쁜 결과에 대한 동기로 설명되는 일은 적절히 못한 것이었다

그건 옳지 못한 거야 라는 주리의 관용구. 주리는 바로 그 관용구 밑에 숨어서 더 이상은 세상 속으로 나오지 않을 모양이었다

나는 이모를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척 했다 주리 식으로 말한다면 이런 거짓말도 분명 ‘옳지 못한 것’이겠지만 나는 주리가 아니고 안진진이었으므로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사랑은 그 혹은 그녀에게 보다 나은'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 망의 발현으로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 보다 이랬으면 좋았 을 나'로 스스로를 향상시키는 노력과 함께 사랑은 시작된다. 솔 직함보다 더 사랑에 위험한 극약은 없다. 죽는 날까지 사랑이 지 속된다면 죽는 날까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 있는 그대 로의 나를 보여주지 못하며 살게 될 것이다. 사랑은 나를 미화시 키고 나를 왜곡시킨다. 사랑은 거짓말의 유혹을 극대화시키는 감정이다.

어쩌면 나는 이모의 넘쳐나는 낭만에의 동경을 은근히 비난하는 쪽을 더 쉽게 선택하는 부류의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이모부 같은 사람을 비난 하는 것보다는 이모의 낭만성을 나무라는 것이 내게는 훨씬 쉽다.
그러나 내 어머니보다 이모를 더 사랑하는 이유도 바로 그 낭만성에 있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랑을 시작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미워하게 된다는, 인간이란 존 재의 한없는 모순·•·•·•.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 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열심히 기계의 글자판을 두들기며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면 손가락이 치고 있는 내용과는 관계없는, 그러나 소설의 뒤나 앞에서 반드시 쓰이거 나 쓰였어야 할 문장들이 저 혼자 뚜벅뚜벅 머릿속을 걸어 다니는 일이 벌 어지곤 한다. 그럴 때, 결단코 그 문장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 문장은 작가 인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나 말고 누군가가, 오직 소설을 위해 아 껴둔 한 말씀을 섬광처럼 발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러므로 메모 노트의 글씨들은 몹시 난삽하다. 놓치기 전에 그 말들을 채집하려면 단정할 수가 없다. 그랬다가 혹시 놓치기라도 하면, 잃어버린 그 말들을 되찾기까지 도저히 일을 계속할 수 없는 것이다. 언젠가는, 찾 다찾다 못해서 그만 울어버린 적도 있었다.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정신과 육체, 풍요와 빈곤.
『모순」의 창작노트 곳곳에는 이런 종류의 복합어들이 아주 많이 발견 된다. 흘려 쓴 글씨로 붙박여 있는 그 편린들은 아마도 주제에 관한 내 마 음의 무늬일 터였다.
얼마 전부터 나는 이런 식의 서로 상반되는 단어들의 조합을 보면 그 냥 지나치지 못했다. 하나의 개념어에 필연적으로 잇따르는 반대어, 거기 엔 반드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곡절을 보편성 으로 풀어 쓰는 직업이 작가 아니겠냐고 홀로 질문을 던지기도 했었다.
『모순」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었다. 그랬으므로 이 소설에 쌍 둥이가 나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단 한 번뿐인 이 삶, 한 사 람을 놓고 두 개의 상반되는 삶을 추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나지만 둘이고, 둘이지만 하나인 인생 궤적을 보여주기 위해서 일란성 쌍생아 보다 더 적합한 장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설이 중반에 이르렀을 때, 나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우리들 모두, 인간이란 이름의 일 란성 쌍생아들이 아니었던가 하는 자각. 생김새와 성격은 다르지만, 한 번 만 뒤집으면, 얼마든지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일 수 있는 우리.
새삼스런 강조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 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마찬가지다. 풍요의 뒷면을 들추면 반드시 빈곤이 있 고, 빈곤의 뒷면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풍요가 숨어있다. 하나의 표제어에 덧붙여지는 반대어는 쌍둥이로 태어난 형제의 이름에 다름 아닌 것이다.

작가로 살아가다 보면 이런 질문은 종종 받게 마련이다. 벌써 이십 년 작가였으므로 나 또한 수도 없이 이런 질문 앞에 노출되었다. 그리고 이 십 년 세월 동안 그 대답도 자주 바뀌었다. 작가가 어떤 존재인지를 말하 기 위해서는 작가인 나는, 살아낸 만큼, 소설을 쓴 만큼 대답할 수밖에 없 어서였다. 작가 자신의 전 생애가 담겨진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 작가란
누구인가.
아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답변이라면, 작가란 주어진 인생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현실을 소설 위에 세우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는 사람 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서 한 번뿐인 삶을 반성하 고 사색하게 하는 장르가 바로 소설이라고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여일 하게 믿어왔다. 남의 소설을 읽을 때나 내 소설을 쓸 때도 나는 이 기본원 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주어진 인생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이야기 와 새로운 현실에서 얻은 감동을 더불어 나눌 수 있는 세상, 그것이 바로 작가가 꿈꾸는 세상이다.
그래서 내게 있어 '이야기'와 감동'은 소설 창작의 핵심적인 화두이며 전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작가인 나는 '이야기'와 '감동'이란 주제에 매 달려 사는 사람이다. 작가는 누구나 다 그럴 것이다. 문제는 이 두 가지를 함께 성취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데 작가의 고민이 있다.


소설의 제목을 정하면서 많이 망설였다. 『모순」이라는 추상적 개념어 를 가장 구체적인 현실을 다루는 소설의 제목으로 삼기에는 좀 무겁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들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모순투성이였다. 이론상의 진실과 마음속 진실은 언제나 한 방향만을 가 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모순」은 무엇을 따라도 모순의 벽과 맞닥뜨려지 는 인간과 삶에 관한 진술이었다. 세상의 일들이란 모순으로 짜여있으며 그 모순을 이해할 때 조금 더 삶의 본질 가까이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 이상 구체성을 띤 제목은 없을 터였다.

모순

양귀자 지음
쓰다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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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런 감각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마음가짐'에서 나오는 겁니다. 친구의 부탁으로 디자인을 하는 마음과 10억 원이라는 비용을 받고 디자인을 하는 마음은 천지 차이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맡은 모든 일이 10억 원짜리 일이라고 상상하는 사람의 결과물은 '받은 만큼만 일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결과물과 같을 수가 없겠죠. 그러니 이런 마음가짐으로 일하는 사람에게는 저절로 감각이 생깁니다.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세상에 흐름을 알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 하며 사소한 일을 큰 일처럼 대하는 마음 가짐을 가지는 것 이것이 감각의 원천 입니다.

정리하자면 기획의 과정은 이렇습니다.
1. 이 비즈니스의 본질(상식)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2. 기존 레퍼런스에서 문제점을 찾아낸다.
3. 비상식적인 부분을 상식적으로 되돌려 문제를 해결한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본질에 대한 고민을 얼마나 자주 할까요? 혹시 어떤 걸 봐도 저 건 원래 저런 거야 하고 넘기지는 않는지요. 세상에 원래 그런 건 없습니다. 본질로 돌아가는 것 그게 바로 감각의 핵심 입니다. 감각적인 사람은 우리가 가고 있던 본질을 다시금 떠올리는 사람입니다.

일의 감각

조수용 지음
B Media Company 펴냄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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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손이 피로 물든 사람이 묻습니다.
"왜 그는 우리처럼 선택하지 않나요?"

“그는 이미 자유를 선택했지요." 목소리가 대답합니다.
"아, 그럴 수도 있었나요?"

”물론이지요!“

호랑이를 타다

다비드 칼리 지음
책빛 펴냄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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