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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골한 청년들 (‘건강한 몸’의 세계를 살아내는 다양한 몸들의 이야기)의 표지 이미지

골골한 청년들

김향수 외 1명 지음
오월의봄 펴냄

#책서평 #골골한청년들 #오월의봄

어렸을 적부터 아프다고 말하면, 엄마는 “쓰러져도 학교에 가서 쓰러져”라고 말했다. 성인이 되어 직장에 다니며 병가를 내려고 해도 눈치가 보이고, "돌도 씹어 먹을 나이"에 왜 자주 아프냐는 이야기를 상사로부터 듣는다. 아파서 출근을 안 해도 심지어 입원했는데도 회사에서 급한 일이라며 연락이 와 병실에서 업무를 처리한 경험이 한국 사회에서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쉴 틈은커녕 ‘아플 틈’도 없이 바쁘게 굴러간다.

그 사회 속에서 청년들은 노동하며 열심히 살아간다. 그리고 워라밸을 꿈꾸며 “나답게” 살려고 한다. 여기서 “나답다”라는 말은 사회적 기대와 요구에 더 이상 나를 맞추지 않겠다는 각오다. 그러나 늘 그렇듯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크다. 더구나 몸이 건강하지 못한 청년이라면 더 그러하다.

그렇기에 사회건강연구소는 골골한 청년들의 삶의 경험에 주목했다. 만성질환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고, 주 40시간 이상 일하는 게 체력적으로 어려워 일을 그만둔 적이 있는 20~30대 청년을 사회건강연구소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을 통해 모집했다. 이렇게 만나게 된 청년들은 워라밸을 넘어 골골한 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했다.

여러 사례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성실씨(가명)의 이야기였다.
p.75-76
자신을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 표현하며, 허리 디스크와 비염 때문에 병원에 정기적으로 다닌다. 위궤양은 “한국 여성은 말라야 한다”는 외모 지상주의, 허리 디스크는 지도교수의 집안일에 학생들을 동원하는 대학원의 조직문화, 우울증은 대학원 생활과 성폭력 피해가 원인이라고 이야기한다.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는 병가를 쓸 수 있었지만, 대체인력이 없어 자신의 업무를 대신하는 동료든 눈치에 몸이 회복되지 않은 채 업무에 복귀했다. 후유증을 치료하러 점심시간이나 주말에 병원에 다녔지만, 여전히 몸이 아프다...“건강을 희생해야 하는 일터”는 좋은 일터가 아니라며, 만성적으로 아픈 노동자들이 자신의 몸을 보살피며 일할 수 있기를 바랐다.

​교통사고가 나서 당장 치료해야 할, 그리고 치료가능한 외상이 있지 않는 한 만성질환은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짐이 되는 것이다. 성실 씨의 경우 코뼈가 “기형적으로”자라 코로 숨을 쉴 수 없어 입으로 숨을 쉬어야만 하는 비염을 갖고 살아가는데, 타인들은 비염을 작은 병으로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단순히 코를 숨을 쉬기 어려워 냄새를 못 맡는 어려움 뿐만 아니라 콧물이 종일 나기도 하고, 때로는 집중도 안 되고 머리가 엄청 아픈 경우도 있어 일상생활이 괜찮지 않았다.

나와 친한 친구 하나도 어느 날 갑자기 알 수 없는 증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눈과 입이 심하게 마르고 건조했는데, 점차 몸에 염증이 생겨나 분명 이전과는 다른 몸 상태를 감지하고 병원에 갔다. 의사는 쇼그렌 증후군이라고 진단했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만성질환”이기에 “치료법은 없다”고 말했다. 염증은 더 심해져서 걷기조차 힘든 날도 있었다. 결국 일상생활에서 지장을 받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녀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가 있었다. 발병 시 처음에 그의 어머니는 얼른 회복하라며 걱정해주셨지만, 이내 결혼을 반대하셨다. 그 병이 유전은 되어 행여나 손주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을지, 또 아픈 몸으로 가정을 돌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아들에게 파혼하라고 강요했고, 아들은 그녀에게 이 모든 말을 전했다. 결국 그들은 파혼했다. 그 이후 그녀는 비교적 노동시간이 자유로운 일을 하기 위해 캔들제작 자격증을 따서 공방을 준비하고 있다.

누구나 아플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경우 회복하고 다시 일터에 돌아올 수 있도록 보장해달라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지 않나. 병이 회복 불가능한 만성질환이라도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이들은 사람들의 시선, 낙인이 찍히는 일 때문에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고 말한다.

p.221
회복탄력성이란 어려움이나 실패를 경험한 뒤 그것에서 벗어나 도약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하는데, 기존 연구들은 회복탄력성을 개인의 고유 특성으로 이해해 왔다. 하지만 최근 회복탄력성은 사회에 의해 지원되거나 파괴될 수 있는 것, 즉 환경의 영향을 받아 변화할 수 있는 인간의 능동적 혹은 반응적 결과물이라고 정의되기도 한다...그래서 취업서비스와 같은 공적 제도를 마련할 때 그들의 탄력 회복까지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p.342
서사는 누군가가 살아가고 경험한 인생의 의미를 이해하는 도구다. 아파야 보이는 것이 있고 아파야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이들의 질병서사는 무엇이 문제인지 문제의 정의부터, 행위, 감정, 사건에 관한 개인적 해석을 드러낸다. 나아가 질병과 젠더가 권력을 분배하는 방식, 골골한 사람들의 삶을 가로막는 방식과 상처 입히는 방식을 드러낸다...그렇기에 아픈 이들을 위한 변화와 실천 요구에 귀 기울이는 “상식의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요구한다.

이 책의 구술자들이 몸이 아파 사회에서 배제되고 상처받은 경험을 이야기한 이유는 하나였다.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으로 육체적 취약성을 인식하며, 나아가 이들의 사회적 고통을 줄이기 위해 어떤 사회정치적 변화가 필요한지 전하고 싶어 했다. 무기력해지고 현실에 순응하기 보다, 아프고 골골한 이에게, 아픈 이를 돌보며 그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이에게, 언젠가 아플 수 있는 이에게 용기 내어 말 거는 것이다.
👍 에너지가 방전됐을 때 추천!
2023년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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