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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죽는다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삼인 펴냄

단언컨대, 지금껏 내가 읽었던 여자에 의해 쓰여진 모든 소설 중 가장 치밀하고 가장 고상하며 가장 우아하고 가장 진지한, 그리하여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 확신한다. 사르트르가 왜 이 여인에게 매혹되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될 정도니 말 다한거지. 실존주의에 기반한 흔적이 군데군데서 보이지만 그 철학 속에 매몰되지 않고 그를 기틀로 삼아 이토록 멋진 이야기를 지어낸 그녀의 비범한 표현력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적어도 표현의 영역에 한정해서 본다면 보브와르는 사르트르마저도 초월해 있음이 분명하다.

인간의 삶의 본원적인 불안정성을 인정하고 그로부터 삶의 의미를 이끌어내는 실존주의 철학, 그리고 철학에 입각한 사유만이 아니라 삶 속에서 묻어난 통찰이 소설 속 인물과 대사들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영원을 사는 존재를 통해 보여지는, 거의 무가치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아무것도 아닌, 그러나 동시에 그로써 의미있는 무언가로 존재하는 인간이라니. 보브와르가 써내려간 한 문장 한 문장에 나는 거의 매료되고 말았다.

비록 63p만에 이 소설이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날 것이며, 무얼 위해 쓰여졌고 궁극에 이르러 무얼 말하게 될 것인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소설의 위대함은 티끌만큼도 낮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야말로 이 소설이 위대한 작품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당신은 내 생각에 대해서 걱정을 해서는 안되요. 그건 무력함이죠."(86p)

"때때로 그들의 가슴 속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있습니다. 그들이 산다고 이르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253p)

"누굴 위해서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서로 인정하지 않았던가요?"(254p)

"우리가 낙원이라고 부르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마음에 품은 모든 꿈이 실현되는 때를 말합니다. 그로부터 또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요구를 또 원하게 되리라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지요."(398p)

시몬느 드 보브와르.
매력적이다.

이토록 매력적인 여자가 이곳에 살았고 또 죽었다니.

인상적인 대목 하나 더(405p)

"당신이 나를 잊게 될 그 미래 전부와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 모두를 나는 인정해요. 난 그것에 대해서 가끔 생각해 왔고, 시간이 우리를 떼어 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만......"

그 여자의 목소리는 숨이 막혔으며, 그 여자는 아주 빨리 말을 끝내버렸다.

"......다만 당신이 내게 대해서 우정만 간직하고 계신다면."

나는 손을 내밀었다. 그 여자의 사랑의 힘으로 수세기 이래 처음으로 내가 지나 온 과거에도 불구하고, 또 내가 맞이할 미래에도 불구하고, 이제 나는 완전한 현재에서 완전히 살아있는 나 자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나는 한 여인이 사랑하는 남자로서 여기에 있었다. 나는 그 여자의 손가락을 만졌다. 단 한 마디의 말만 하면, 이 죽어버린 껍데기가 금이 가 버릴 것이며, 또다시 인생의 뜨거운 용암이 휘몰아 닥칠 것이다. 이 세상은 얼굴을 다시 되찾아서, 거기에는 기다림과 기쁨 그리고 눈물이 있을 것이다. 그 여자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도록 해 주세요."
2023년 1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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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goldstarsky

한국 최초 전업 공익변호사 단체인 '공감' 소속 변호사들이 각자 관여한 활동을 폭넓게 전한다.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중고령 여성노동자, 난민, 주거취약계층 등 공감이 진력해 온 각 부문에서의 성과와 한계가 개략적인나마 소개된다. 이 모든 분야가 여전히 한국 사회 인권의 전선, 곧 현재진행형인 문제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겠다. 공감과 같은 변호사 단체, 또 각 부문 활동가들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한국 법과 제도가 여전히 뒤쳐져 있고, 언론과 대중의 인식이며 관심 또한 턱없이 부족한 탓이겠다.

완성도가 높은 편은 아니다. 여러 변호사가 저마다 맡은 영역에서 글을 쓰느라 문장부터 구성까지 통일되지 않아 어지럽고, 차라리 단체 소개 소책자 같기도 하다. 어느 한 문제를 깊이 다루지 못하고 겉핥기식으로 지나쳐 아쉽다. 다루고 있는 많은 문제 중 어느 하나도 빠뜨릴 수 없다는 간절함이 이 같은 아쉬움으로 이어진 것이라 여기고 넘어간다.

나는 내가 죽는 그날까지 공감 후원자로 남길 바란다.

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지음
부키 펴냄

6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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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goldstarsky

빼어난 작품이다. 특히 그 결말부의 전환이 그렇다.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파랑새>가 비로소 주인공이 집에 돌아온 뒤에야 훌륭해지듯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제 집 누추한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누운 노인이 비로소 꿈을 꿀 때에야 탁월해지듯이, 꼭 그렇게 저만의 아름다움을 획득한다.

현대사회의 상징적 우화처럼 보인다는 것도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이다. 이를테면 니키 준페이가 갇힌 부락의 가장 아래쪽 구덩이 가운데 놓인 집은 끝없이 모래를 퍼내야만 간신히 생존한다. 그 노동의 대가로써 저 위 마을 사람들로부터 물과 생필품, 이따금은 라디오나 거울 같은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사치품을 살 돈을 구한다. 이들이 요구받는 어처구니없이 고된 노동 덕분에 마을 전체가 존립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노동에 대한 대가는 마을 전체가 얻는 이익에 비하면 턱없이 적기만 하다.

이들 뿐 아니라 노동을 요구받는 아랫집 주민들이 적잖다. 니키 준페이의 눈에 비친 이들은 탈출에의 의욕조차 잃은 채 그를 제 삶 가운데 받아들인 존재들이다. 말하자면 반자발적 노예상태처럼도 보인다. 니키 준페이의 곁을 지키는 여자가 그렇듯이. 가장 낮은 이가 가장 고된 노동을 한다는 사실, 사회 전체를 떠받치는 노동의 대가로써 주어지는 이익이 턱없이 적다는 것, 그럼에도 점차 그 사실에 적응하고 주어진 노동을 제 선택처럼 받아들이는 모습이 현대사회와 꽤 닮아 있지 않은가. 왜 사는지, 무얼 위해 일하는지도 따져 보지 않고서 끝도 없이 쏟아지는 모래를 파내며 살아가는 비현실적 공간 속 군상들로부터 소설 바깥 진짜 세계를 떠올리게 된단 게 의미심장하다.

모래의 여자

아베 코보 지음
민음사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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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goldstarsky

김애란은 잘 쓴다. 두말할 나위 없다. 실린 글 가운데 '칼자국'이 특히, 그중에서도 중요한 고요에 대한 문장이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 답답한 것도 사실이다. 소설 속엔 가난을 벗어날 길을 모르는 사람들, 그래서 반지하방에 피아노를 껴안고 들어가고, 성탄전야에 싼 모텔방을 찾아 서울을 가로지르며, 고시원 비좁은 공간에서 숨죽여 살아가는 이들이 가득하다. 이들이 저의 가난과 희망없음과 비루함을 겪어내는, 작가가 그를 다루는 방식이 너무나 세세하고 소소하여서 나는 읽는 것 만으로도 출세와 성공과 관계맺음과 나아짐을 향한 희망이며 의지가 골다공증에 걸린 듯한 느낌을 받는다.

김애란뿐 아니라 이 시대 한국문학의 주류가 모조리 그렇다. 공감이며 연대에 머무르지 않고, 시대를 헤쳐가고, 너머를 상상하게 하며, 웅지를 품도록 하는 위대한 문학의 자리가 거의 도모되지 않는다. 김애란의 섬세한 세계 가운데 납작하게 그려지는 세상 또한 없지 않으니, 계단 뜀뛰기를 하며 저를 단련하는 고시원 맞은편 건물 사내의 아주 짧은 등장('기도')과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소설은 그리고 있지 않으나 당시 사회 가운데서도 충만한 가능성과 희망이 흩뿌려져 있고, 또한 그를 도모하거나 체제에 저항하며, 스스로를 단련하고 변화를 획책하는 흐름 또한 자리했음을 기억한다.

따져보면 <모비딕>의 주인공 이슈메일보다 가난한 이가 없고 <노인과 바다> 속 노인보다 미래 없는 이도 전혀 등장하지 않는 이 작은 소설집 안에 오로지 자욱하게 깔려 있는 패배감이며 희망 없음만을 거듭 발견하게 되는 건 결코 마땅한 일은 아니다. 세대와 성별, 취향에 따라 한국문학의 독자층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편중되고 좁아들었단 비판이 이와 분명한 관련이 있다고 여긴다.

지난시대 작은 개인의 고충을 돌보지 않던 문학의 실패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한국 문학이 충실히 돌아보지 않고 있는 대지가 또한 드넓다는 사실을 더는 무시해선 안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것이 그대로 다음 시대 문학가가 개척할 지점이 된다는 건 역설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일이 아닌가!

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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