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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장편소설)의 표지 이미지

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황금가지 펴냄

https://m.blog.naver.com/typeface_/224194802028

📃 예거는 기묘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10대 초반 무렵,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누구와 살고 싶은지 그에게 물어봤을 때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니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대학 장학금을 받기 위해 육군에 입대하기로 결정했을 때도 느꼈던, 뒷걸음질치고 싶은 절박한 느낌. 지금 자신이 운명의 분기점에 서 있다는 사실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오른쪽과 왼쪽, 어느 쪽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그 후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리라.

📃 불행이라는 존재는 그것을 보는 타인 입장인지, 직접 겪는 당사자 입장인지에 따라 완전히 견해가 달랐다.

📃 사실 진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박사 과정으로 진학하려고 생각한 이유는 그저 사회에 나올 각오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연구직에 딱히 매력을 느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대학에 들어간 이래로 줄곧 진로를 잘못 잡은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약학이나 유기 합성이 재미있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달리 할 줄 아는 일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계속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대로 20년만 지나면 아버지처럼 과학계 곁다리에 맴도는 하찮은 연구자로 남게 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 하지만 납득할 수 없는 불운이었다. 리디아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이가 불치병으로 고통 받을 일이 없었을 터였다. 마찬가지로 리디아도 남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싶었을 것이다. 죄책감이 그들 사이를 끊임없이 오갔다. 상대에게 던진 공격의 칼끝이 같은 날카로움으로 자신에게도 파고들었다. 그럴수록 서로가 불행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 도중에 들렀던 모텔에서 차를 멈춘 아버지가 혼자 프런트에 가서 체크인 수속을 마치는 것을 예거는 뒷자리 창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담소를 나누는 두 어른. 뒷주머니에서 꺼낸 지갑. 사인을 하기 위해 받은 볼펜. 소년이었던 예거는 언젠가 자신도 아버지가 되어 저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본보기여야 할 존재는 주어진 책임을 수행하지 않은 채 가정을 떠났다.

📃 어찌되었건 인간이라는 동물은 원시적인 욕구를 지성으로 장식해서 은폐하고 자기 정당화를 꾀하려는 거짓으로 가득한 존재였다.

📃 이 어리석은 짓을 근절하려면 우리 자신이 멸망의 길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 세대 인류에게 다음을 부탁할 수밖에.

📃 “인간은 자신도, 다른 인종도 똑같은 생물종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네. 피부색이나 국적, 종교, 경우에 따라서는 지역사회나 가족이라는 좁은 분류 속에 자신을 우겨넣고 그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이라고 인식하지. 다른 집단에 속한 개체는 경계해야 하는 다른 종인 셈이야. 물론 이것은 이성에 의한 판단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습성이네. 인간이라는 동물의 뇌는 태어나면서부터 이질적인 존재를 구분하고 경계하게 되어 있어. 그리고 난 이거야말로 인간의 잔학성을 말해 주는 증거라고 생각하네.”

📃 “하지만 우리에게는 평화를 바라는 이성도 있지 않을까요?”
하이즈먼이 비웃듯이 말했다.
“이웃과 친하게 지내기보다 세계 평화를 외치는 게 더 간단하지. 알겠나, 전쟁이라는 것은 형태만 바꾸었을 뿐 서로 잡아먹는 건 똑같네. 그리고 인간은 지성을 써서 서로 잡아먹으려는 본능을 은폐하려 하네. 정치, 종교, 이데올로기, 애국심 같은 핑계를 주물럭대고 있지. 하지만 저 밑에 깔려 있는 것은 짐승하고 똑같은 욕구일세. 영토를 둘러싸고 인간이 서로 죽이는 것과 자기 영역을 침범당한 침팬지가 미쳐 날뛰며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어디가 다른가?”

📃 “인간에게 선한 측면이 있다는 것도 부정하지는 않네. 하지만 선행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위배되는 행위이기에 미덕이라고 하는 걸세. 그것이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행동이라면 칭찬 받을 일도 아니지 않은가. 국가의 선은 다른 국민을 죽이지 않는 행위로밖에 드러나기 어렵지만, 그것조차 불가능한 것이 지금의 인간이야.”

📃 “자네에겐 안됐지만, 펜타곤 작전에는 협력할 수 없네. 새로운 인류가 나타났다면, 기쁜 일이지. 현생인류는 탄생한 지 20만 년이나 지나도 서로 죽이는 걸 멈출 수 없는 딱하디 딱한 지적 생명체네. 살육 병기를 모아서 서로를 위협하지 않으면 공존할 수 없는 이 현재 상황이야말로 인류가 가진 윤리의 한계였던 거지. 슬슬 다음 존재에게 이 행성을 넘겨 줘도 좋을 때라고 생각하네.”

📃 네오나치나 백인 지상주의자 등 자신의 폭력 행동을 정치사상으로 탈바꿈하는 가짜 우익에는 공통적인 심성이 있었다. 비뚤어진 자존심의 발로였다. 그들은 자란 환경 등의 문제로 자신을 직접 긍정하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소속된 집단을 무턱대고 긍정하며 그 집단의 구성원인 스스로가 훌륭하다는 논법을 취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관심은 자기 자신에게밖에 향하지 않는 것이 명백했다. 그 증거로 가짜 우익의 공격은 자신들의 주장에 이의를 다는 동포들, 심지어 그들의 의견에 무턱대고 긍정했던 구성원에게도 향할 수 있다.

📃 전지전능한 존재를 꿈꾸며 이교도를 적으로 간주하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널리 보이는 습성이었다. 피부색이나 언어의 차이뿐만 아니라 어떤 신을 믿는지도 적과 아군을 식별하는 장치로써 기능했다. 그리고 신은 회개했다고 말하기만 하면 대학살의 죄악도 사라지게 해 주는 편리한 존재였다.

📃 오네카는 울음을 터뜨렸다. 두 눈에서 솟아난 눈물을 허공에 흩뿌리며 계속 뛰었다.
인간으로 태어나지 말 것을.
새나 짐승으로 태어나서 아빠와 엄마, 형, 여동생과 함께 맞대고 언제까지나 사이좋게 살고 싶었다.

📃 믹을 미워하고, 죽이고, 유해를 방치하고 떠났던 일에 대해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생 사라지지 않을 죄책감이 느껴져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생명이란 것이 너무나 여려서, 인간의 소름끼치도록 끔찍한 부분 때문에, 선(善)의 무력함에, 그리고 선악의 판단조차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에게, 예거는 화가 나서 소리를 죽인 채 비통하게 울었다.

📃 멀리 희게 빛나기 시작한 수평선에서 눈을 돌리니 예거 일행이 바로 아래까지 와 있었다. 콘크리트 계단을 밟으며, 국도 옆에 있는 주차장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겐토는 긴장하고 기다렸다. 이윽고 두꺼운 두 팔을 흔들면서 묵직해 보이는 미국인이 가로등 빛 속에 나타났다.
겐토는 영어로 첫인사를 머릿속에서 골랐다. 하지만 그 문장은 필요하지 않았다. 계단을 다 올라온 예거가 겐토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잠시 아무 말 없이 바라보다가 갑자기 끌어안았다. 억센 용병에게 온몸을 조여서 등을 팡팡 두들겨 맞고 나니 등뼈가 부러지지 않았는지 걱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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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체님의 기억 전달자 게시물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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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동시에 두려움이 가득 차는 것도 느꼈다. 조너스는 기억 보유자로 선출되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알지 못했다. 자신이 무엇이 될지 알 수 없었다. 아니면 무엇이 자신이 될지 알지 못했다.

📃 “모든 게 똑같으니까 선택할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아침에 일어나 옷을 입을 때 제가 옷을 고르고 싶어요! 파란 옷을 입을까, 빨간 옷을 입을까 하고 말이에요.”

📃 “하지만 저도 가끔씩 색깔을 볼 수 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가브리엘도 색깔을 볼 수 있어서 우리 가족이 빨간색, 노란색 물건을 양손에 들고 가브리엘이 그중 더 마음에 드는 걸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고요. 똑같은 색깔의 물건 대신 말이에요.”

“잘못 선택할 수도 있겠지.”

조너스가 잠시 숨을 들이쉬었다가 다시 말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사실 아기 장난감은 별 문제가 아닐지도 몰라요. 하지만 나중에는 아주 큰 문제로 나타나겠죠? 우리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선택도 할 수 없게 되어 있어요.”

기억 전달자가 물었다.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조너스가 확신에 차서 말했다.

“안전하지 않은 것은 확실해요. 사람들이 배우자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배우자를 잘못 선택한다면요?”

계속해서 조너스는 마치 자기 말의 어리석음을 비웃듯이 말했다.

“아니면 이럼 어떨까요? 사람들이 자기 직위를 스스로 선택한다면 말이에요?”

📃 그런데 지금 조너스는 굶어 죽어 가고 있었다. 계속 마을에 머물렀다면 아마도 굶어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간단명료한 사실이었다. 한때 조너스는 선택을 갈망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잘못이었다. 떠나기를 선택한 것 말이다. 그 결과 지금 자신은 굶어 죽으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그곳에 머물렀다면…….’ 

조너스는 계속 생각했다. 

만약 계속 마을에 머물렀다면 다른 것에 굶주렸을 것이다. 감정, 색깔, 사랑 등에 굶주리면서 평생 살았을 것이다. 게다가 가브리엘은? 가브리엘은 마을에서는 절대로 생명을 보장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셈이다.

📃 이제 조너스는 자신이 어쩌면 가브리엘을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울었다. 더 이상 자신을 걱정할 수조차 없었다.

기억 전달자

로이스 로리 지음
비룡소 펴냄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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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체님의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게시물 이미지
https://m.blog.naver.com/typeface_/224225905762

📃 시간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왜 항상 바보 같은 연속만 있고, 들끓어 오르는, 충족된 ‘동시’는 없는 것일까? 왜 그는 홀아비처럼, 노인처럼, 이제 다시 홀로 침대에 누워 있는가? 짧은 생애 전체를 통하여 우리는 즐길 수 있고 창작할 수 있지만, 언제나 노래를 연속으로 부를 수 있을 뿐, 결코 수백 가지의 음성과 악기들이 동시에 울리는 완전한 교향곡처럼 소리 낼 수는 없었다.

📃 여보게나, 루이지. 나도 종종 자네처럼 생각한다네, 우리가 하는 예술 행위 전체가 보상일 뿐이라고. 놓쳐 버린 삶, 놓쳐 버린 동물성, 놓쳐 버린 사랑에 대해 힘들고도 열 배나 더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는 보상이라고 말일세. 하지만 그렇지 않아. 전혀 달라. 우리가 정신적인 것을 감각적인 것의 결핍에 대한 임시 보상책이라고 간주한다면, 그건 감각적인 것을 과대평가하는 것일세. 감각적인 것이 정신적인 것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양자는 하나이고, 모두 똑같이 좋은 것이야.

📃 클링조어는 다시 한번 청춘의 가장 달콤한 술잔에서 우정이란 음료를 빨아들였다. 클링조어에게는 친구가 많았고, 많은 친구들이 그를 사랑했으며, 그도 여러 친구들에게 많은 것을 주고 자신의 성급한 가슴을 열어 보이기도 했다.

📃 내 말은, 오늘은 결코 다시 오지 않으며 오늘을 먹고 마시고 맛보고 냄새 맡지 않는 사람에게 영원히 절대로 두 번 다시 주어지지 않는다는 거야. 태양은 두 번 다시 오늘처럼 빛나지 않을 거야.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헤르만 헤세 지음
민음사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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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체님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게시물 이미지
https://m.blog.naver.com/typeface_/224218910743

📃 ‘어쩌겠어, 죽었는걸. 하지만 나는 아니잖아.’ 그들은 저마다 이렇게 생각하거나 느꼈다. 가까운 지인들, 이른바 이반 일리치의 친구들은 이와 더불어 이제 예의상 몹시 따분한 의무를 다해야 하고 추도식에 참석하여 남편을 잃은 부인에게 조의를 표해야 한다는 떨떠름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 이반 일리치는 자기가 죽어 가고 있음을 깨닫자 계속 절망에 빠져 있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자신이 죽어 가고 있음을 알았지만 그것에 익숙해지기는커녕, 그저 이해되지 않았고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었다.

📃 키제베터 논리학에서 배운 삼단 논법의 예를 따르자면 카이사르는 인간이다, 인간은 죽는다, 고로 카이사르도 죽는다, 라고 했다. 그는 평생 이것이 카이사르에게만 해당하는 말이지 절대 자기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리라고 여겨 왔다. 카이사르는 보편적 인간이므로 이것은 완벽히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카이사르 같은 보편적 인간이 아니라, 항상 모든 사람들과 다른, 완전히 특별한 존재였다.

📃 그가 보기에 자기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은, 죽어 간다는 이 무섭고 끔찍한 사건을 어쩌다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로, 일정 부분 점잖지 못한 일의 수준으로(마치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거실로 들어오는 사람을 대하듯) 격하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그가 한평생 모셔 온 ‘품위’라는 것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민음사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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