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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글 쓰는 사람으로 살며 이따금은 '아, 이런 책을 써야 하는데' 싶은 책을 만나고는 한다. 이번이 꼭 그러했다. 흥미와 감탄, 질시와 납득에 이르는 전 과정을 이 책 한 권으로 경험했달까.

사람이란 타인의 인정을 통해 비로소 획득되는 사회적 개념이다. 생물학적 인간과 달리 사람은 그를 사회적 성원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구성원이 있는 공간에서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 제가 터 잡은 장소에서 환대에의 의무를 다할 때 비로소 사람의 자격을 갖는단 것, 그것이 책의 중추를 이룬다.

보기 드문 통찰로 사회를 사회답게 하는 제 요소를 점검한다. 한국 사회 안에 실재하는 잘못을, 허물어져 가는 공동체의 건강을 살피게끔 한다. 철학과 사상이 부재한 세상에선 법과 제도만이 인간을 규율한다. 그 질서가 공정하지 못할 때 가장자리부터 무너진다. 누군가의 붕괴는 우리 모두의 약화다. 사회는 그렇게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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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starsky

한국 최초 전업 공익변호사 단체인 '공감' 소속 변호사들이 각자 관여한 활동을 폭넓게 전한다.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중고령 여성노동자, 난민, 주거취약계층 등 공감이 진력해 온 각 부문에서의 성과와 한계가 개략적인나마 소개된다. 이 모든 분야가 여전히 한국 사회 인권의 전선, 곧 현재진행형인 문제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겠다. 공감과 같은 변호사 단체, 또 각 부문 활동가들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한국 법과 제도가 여전히 뒤쳐져 있고, 언론과 대중의 인식이며 관심 또한 턱없이 부족한 탓이겠다.

완성도가 높은 편은 아니다. 여러 변호사가 저마다 맡은 영역에서 글을 쓰느라 문장부터 구성까지 통일되지 않아 어지럽고, 차라리 단체 소개 소책자 같기도 하다. 어느 한 문제를 깊이 다루지 못하고 겉핥기식으로 지나쳐 아쉽다. 다루고 있는 많은 문제 중 어느 하나도 빠뜨릴 수 없다는 간절함이 이 같은 아쉬움으로 이어진 것이라 여기고 넘어간다.

나는 내가 죽는 그날까지 공감 후원자로 남길 바란다.

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지음
부키 펴냄

6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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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starsky

빼어난 작품이다. 특히 그 결말부의 전환이 그렇다.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파랑새>가 비로소 주인공이 집에 돌아온 뒤에야 훌륭해지듯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제 집 누추한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누운 노인이 비로소 꿈을 꿀 때에야 탁월해지듯이, 꼭 그렇게 저만의 아름다움을 획득한다.

현대사회의 상징적 우화처럼 보인다는 것도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이다. 이를테면 니키 준페이가 갇힌 부락의 가장 아래쪽 구덩이 가운데 놓인 집은 끝없이 모래를 퍼내야만 간신히 생존한다. 그 노동의 대가로써 저 위 마을 사람들로부터 물과 생필품, 이따금은 라디오나 거울 같은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사치품을 살 돈을 구한다. 이들이 요구받는 어처구니없이 고된 노동 덕분에 마을 전체가 존립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노동에 대한 대가는 마을 전체가 얻는 이익에 비하면 턱없이 적기만 하다.

이들 뿐 아니라 노동을 요구받는 아랫집 주민들이 적잖다. 니키 준페이의 눈에 비친 이들은 탈출에의 의욕조차 잃은 채 그를 제 삶 가운데 받아들인 존재들이다. 말하자면 반자발적 노예상태처럼도 보인다. 니키 준페이의 곁을 지키는 여자가 그렇듯이. 가장 낮은 이가 가장 고된 노동을 한다는 사실, 사회 전체를 떠받치는 노동의 대가로써 주어지는 이익이 턱없이 적다는 것, 그럼에도 점차 그 사실에 적응하고 주어진 노동을 제 선택처럼 받아들이는 모습이 현대사회와 꽤 닮아 있지 않은가. 왜 사는지, 무얼 위해 일하는지도 따져 보지 않고서 끝도 없이 쏟아지는 모래를 파내며 살아가는 비현실적 공간 속 군상들로부터 소설 바깥 진짜 세계를 떠올리게 된단 게 의미심장하다.

모래의 여자

아베 코보 지음
민음사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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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은 잘 쓴다. 두말할 나위 없다. 실린 글 가운데 '칼자국'이 특히, 그중에서도 중요한 고요에 대한 문장이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 답답한 것도 사실이다. 소설 속엔 가난을 벗어날 길을 모르는 사람들, 그래서 반지하방에 피아노를 껴안고 들어가고, 성탄전야에 싼 모텔방을 찾아 서울을 가로지르며, 고시원 비좁은 공간에서 숨죽여 살아가는 이들이 가득하다. 이들이 저의 가난과 희망없음과 비루함을 겪어내는, 작가가 그를 다루는 방식이 너무나 세세하고 소소하여서 나는 읽는 것 만으로도 출세와 성공과 관계맺음과 나아짐을 향한 희망이며 의지가 골다공증에 걸린 듯한 느낌을 받는다.

김애란뿐 아니라 이 시대 한국문학의 주류가 모조리 그렇다. 공감이며 연대에 머무르지 않고, 시대를 헤쳐가고, 너머를 상상하게 하며, 웅지를 품도록 하는 위대한 문학의 자리가 거의 도모되지 않는다. 김애란의 섬세한 세계 가운데 납작하게 그려지는 세상 또한 없지 않으니, 계단 뜀뛰기를 하며 저를 단련하는 고시원 맞은편 건물 사내의 아주 짧은 등장('기도')과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소설은 그리고 있지 않으나 당시 사회 가운데서도 충만한 가능성과 희망이 흩뿌려져 있고, 또한 그를 도모하거나 체제에 저항하며, 스스로를 단련하고 변화를 획책하는 흐름 또한 자리했음을 기억한다.

따져보면 <모비딕>의 주인공 이슈메일보다 가난한 이가 없고 <노인과 바다> 속 노인보다 미래 없는 이도 전혀 등장하지 않는 이 작은 소설집 안에 오로지 자욱하게 깔려 있는 패배감이며 희망 없음만을 거듭 발견하게 되는 건 결코 마땅한 일은 아니다. 세대와 성별, 취향에 따라 한국문학의 독자층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편중되고 좁아들었단 비판이 이와 분명한 관련이 있다고 여긴다.

지난시대 작은 개인의 고충을 돌보지 않던 문학의 실패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한국 문학이 충실히 돌아보지 않고 있는 대지가 또한 드넓다는 사실을 더는 무시해선 안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것이 그대로 다음 시대 문학가가 개척할 지점이 된다는 건 역설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일이 아닌가!

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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