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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의 수기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열린책들 펴냄

서사 구조의 역설 : 죽음에서 삶으로
소설은 주인공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후 장례식 풍경에서 시작된다. 톨스토이는 시간을 역전시키는 구성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죽음의 결말을 먼저 목격하게 한 뒤, 그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이반의 삶을 복기하도록 유도한다.

생존 확인의 도구가 된, 주인공의 죽음
첫 장면인 장례식에서 동료들은 이반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는, 그의 죽음으로 인해 생길 공석과 승진 기회를 계산하느라 분주하다. 그들은 이반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자신들의 '삶의 이득'으로 환원시킴으로써, 죽음이 자신들에게도 닥칠 수 있는 현실임을 필사적으로 방어한다. 그들은 '타자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생존을 확인한다,

이반 일리치의 관료주의적 자아
이반 일리치는 고등법원 판사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그러나 그에게 직업은 자아실현의 장이 아니라, 권력을 행사하며 자존심을 충족하는 도구이자, 삶의 복잡한 문제들로부터 도피하는 피난처였다. 그는 법정에서 인간을 다룰 때, 그들의 사연이나 고통을 배제하고 오직 '법적 조항'에 해당하는 부분만을 건조하게 처리하는 데서 쾌감을 느꼈다.

이반 일리치의 결혼과 가정의 허위
그의 결혼 또한 사랑의 결실이 아니라 사회적 적합성의 결과였다. "가문도 좋고 지참금도 적당하다"는 이유로 선택한 결혼 생활은 곧 지루함과 증오로 변한다. 이반은 아내의 불평과 가정의 불화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더욱더 공무에 매달린다. 그는 가정을 '안락함'과 '체면'을 유지하는 공간으로만 규정했고, 그 기능이 삐걱거릴 때마다 아내를 탓하며 자신만의 세계로 도피했다. 이반 부부의 관계는 서로의 진심을 외면하고 각자의 역할만을 연기하는 가면 무도회였다.

거짓의 붕괴
이반 일리치의 견고한 위선적 성채는 옆구리의 통증과 함께 무너져 내린다. 이에 더해 이반이 가장 견딜 수 없어 한 것은 '거짓'이었다. 가족들과 의사들은 그가 죽어가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알면서도, "약만 잘 먹으면 낫는다"는 식의 연극을 계속한다. 이반은 그 위선적인 연극에 동참해야 한다는 사실에 모멸감을 느낀다. 그는 죽음이라는 거대한 사건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위로받고 싶어 하지만, '점잖은 판사'라는 사회적 가면 때문에 그 욕구를 억누르며 절대적인 고독 속에 갇힌다.

하인의 윤리적 위로
숨 막히는 위선의 세계에 균열을 내는 인물이 바로 농부 출신의 젊은 하인 게라심이다. 그는 이반의 배설물을 치우고, 썩어가는 냄새가 나는 방을 지키면서도 찡그리지 않는다. 이반이 미안해하자 게라심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언젠가 다 죽습니다요. 그러니 수고 좀 못 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게라심은 소설 속에서 죽음을 자연의 섭리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이반의 쇠약해진 육체를 혐오하지 않고, 건강한 자신의 어깨에 이반의 다리를 올려놓게 하여 편안함을 준다. 이반이 게라심에게서 위로를 받는 이유는 그가 '정직'하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게라심의 투박한 생명력이 어떻게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 책을 읽은 뒤 공유하고 싶은 질문들

Q1 죽음보다 삶을 다룬 이야기의 비중이 높은 이유는?
작가는 왜 이야기의 3/4 이상을 이반이 병들고 죽어가는 과정에 할애했을까요? 죽어가는 과정이 그의 '진짜 삶'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Q2 가족들의 위선
이반의 아내와 딸은 이반의 고통 앞에서 자신들의 사교 생활과 불편함만을 걱정합니다. 그들을 단순히 '나쁜 가족'으로 비난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들 역시 사회적 통념의 피해자일까요?

Q3 동료들의 반응
장례식장에서 동료들이 보인 반응은 매우 속물적입니다. 만약 나의 장례식장에서 직장 동료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 인상깊은 책 속 구절

10p 그런 까닭에 셰베끄의 집무실에 모여 있던 신사들이 이반 일리치의 부고를 전해 듣자마자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이 죽음이 자신과 지인들의 인사이동이나 승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한 것이었다.

58p 이 모든 것은 이반 일리치가 피고를 앞에 세워 놓고 수천번도 넘게 사용했던 그 방법과 놀랍도록 일치했다.

91p 아이를 달래며 보살피듯 다독여 주고 입을 맞춰 주고 자기를 위해 울어 주기를 바랐다.

92p 바로 이 거짓, 주변 사람들과 그 자신의 거짓이 이반 일리치의 마지막 나날들을 해치는 가장 무서운 독이었다.

109p 세월이 흐를수록 좋은 것은 점점 더 적어졌다.

159p 그런대 바로 이때 그는 무서운 허탈감을 체험했다.

162p 똘스또이는 저작권을 포기하고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의지를 끝까지 관철시키려 했고 부인은 절대고 그것만은 용서할 수 없다고 버텼다.

166p 똘스또이의 문명관, 자연관, 도덕론, 그리고 인생론을 말할 때 반드시 죽음의 문제를 함께 논해야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182p 화자에 의해 전기적 사실 위주로 그의 일생이 묘사되다가 그가 중병에 걸린 시점에서부터는 그의 시각에서 반추가 이루어진다.

190p 이반의 병을 계기로 그들 간의 억눌렸던 진짜 관계가 위선의 수면 위로 솟아오른 것이다.

199p 어린 아들이 진심으로 자신을 불쌍히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된 시점부터 이반은 세계를 다르게 경험한다.

200p 결국 그가 그토록 알고 싶었던 <그것>은 연민, 화해, 용서,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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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 코멘트]

『레드불 스파』는 대한민국의 급소를 정확히 찌르는 소설이다. 관심으로 연명하는 삶, 재난에도 멈추지 않는 시스템, 좀비와 구별되지 않는 대한민국 국민의 일상을 사우나 속에서 가격한다. 다른 여주인공 쌈루타의 설정이 헐거운 면이 있지만, 세상이 끝나는 밤에도 700그램을 빼야 하는 현지현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면 이를 금방 잊게 되었다.

[발췌한 책 속 문장]

54p 그러나 하나의 후회는 언제나 극도의 연쇄적 힘을 가지고 있다. 마치 유치원 다니던 시절 만들었던 색종이 사슬처럼, 둥그렇고 쨍한 색의 후회는 또 다른 후회로 계속해 이어진다.

59p 먹고사니즘이란 원체 중요하고, 한국인들은 그 무슨 일이 일어나도 꾸역꾸역 직장으로 향하는 민족으로 또 유명하니까.
=> 악천후 속에서도 학교로 향하고, 직장으로 향하는 한국인들이 찍힌 뉴스 자료 영상들이 떠오른다.

97p 손님에게 먼저 퍼 드려야 하는 동방예의지국의 사람들이 내뱉는 저열한 속내들.
=> 동방 예의의 겉면으로 덮어도 인간의 심리 본질은 쉽사리 바뀔 수 없다.

119p 비열할 정도로 치열하게 사는 사람의 두 콧구멍에선 이산화탄소가 남들보다 두어 배는 풍풍 뿜어져 나오지 않을까. 그럼 차라리 죽어 버리는 게 전 지구의 안위를 위해서는 훨씬 이롭지 않으려나.
=> 신체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같을지라도, 그 인간의 악행으로 배출되는 공해 물질은 일반인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수 있다.

137P 언제나 그렇듯 실컷 사고를 친 하이드가 책임도 안 진 채 퇴장하고 나면, 왜소한 지킬이 비척비척 등장해 비로소 자기 인식을 시작하기 마련이었다.

139P 선수의 운동만큼이나 중요한 게 그 윗사람들의 정치였다. 승유는 지현을 이 자리까지 올리기 위해, 그리고 이 시합을 성사시키기 위해 수많은 골프 모임과 식사 자리 및 술자리에 불려 다녔다고 했다.
=> 승유가 지현을 너무 몰아세우는 것 같지만, 승유도 고충이 있었다. 원치 않은 술자리와 회식은 정말로 야만적이다.

149P 매일 죽고 싶다 염불을 외면서도 그 정도의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는 사람이 흔한가? 전혀.

152P 평소에 느끼는 당혹감과 분노를 쏟아부어도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대상이 사람들에겐 필요했다.
=> 돌팔매질은 원시 시절부터 내려온 전통.

162P “이제는 말도 잘하는 좀비들이 천지라고, 하룻밤 만에.”
=> 세계관 속 사회 활동이 가능한 좀비 바이러스는 어떤 연유로 탄생했을까? 그리고 좀비가 나타나도 시합을 강행하는 세계관 속 대한민국의 높으신 분들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172P 그 어떤 판이든, 그 무슨 일이든 그걸 감싸고 있는 외피는 서로 다를지 몰라도 구조는 동일하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직감하고 있었다.

197P 덕질이란 티백으로 차를 우려내는 일과 같아서, 몇 번이고 우릴 수 있고 수만 번을 반복해도 미세한 알갱이가 남아 있기 마련이었다.
=> 어떻게든 떨쳐내려 해도 약간의 관심의 재가 남아 있으면, 덕질을 쉽사리 포기할 수 없다.

202P 어려서부터 새벽마다 맨발의 승려에게 공양하며 불심을 쌓아 왔던 쌈루타는, 어디서든 잘못되거나 가여운 장면을 묵인하는 순간 윤회의 수레바퀴에 쌓일 업보를 걱정하며 살아왔다.
=> 업보론은 수많은 데이터베이스가 있기 때문에 그 힘과 역사를 인정받는다.

레드불 스파

설재인 지음
한끼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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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 코멘트]

# 5번 레인의 의미
수영 결승에서 레인 배정은 예선 기록 순이다. 1위가 물살이 가장 안정된 한가운데 4번 레인을 받고, 2위가 그 옆 5번 레인에 선다. 즉, '5번 레인'은 챔피언의 자리가 아니라 도전자의 자리다. 8년을 수영해 온 에이스 나루가 라이벌 초희에게 자꾸 2등으로 밀리는 자리이기도 하다.

# 주인공 스스로 반성하고 사과하기
소설을 관통하는 중요한 사건은 수영복 절도다. 초희에게 거듭 밀리던 나루는 열등감 속에 초희의 수영복을 훔친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이후 수영복을 돌려준다. 그와 동시에 진심 어린 사과와 편지를 건네며 작품 말미엔 수영 대회 경쟁으로 화해한다. 어린이문학에서 주인공은 대개 '착한 아이'이거나 잘못해도 실수 수준인데, 작품에서 주인공은 명백한 절도를 저지른다. 그리고 그 잘못을 우연한 발각이나 어른의 개입이 아니라, 나루 자신의 직면과 고백과 회복으로 통과한다.

# 도약의 발판, 5번 레인
결국 소설은 나루를 끝내 1등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마지막 대회에서도 나루는 초희에게 밀리지만, 이번에는 그 2위를 떳떳하게 받아들인다. 5번 레인은 무너져 머무르는 자리가 아니라 다시 일어나 나아갈 발판이 되며, 1등의 서사가 넘치는 세상에서 2등의 자리를 성장의 좌표로 새긴 책은 결과 지상주의 사회의 대한민국 어린이들에게 건네는 선물이라는 심사 평을 인용한다.

[발췌한 책 속 문장]

38p 나루도 알고 있다. 수영은 무엇보다 집중력이 중요한 종목이다. 환상의 호흡을 보여 줄 팀원도 없고, 신체 조건을 보완해 줄 현란한 기술도 없다. 믿을 구석이라고는 오로지 나 자신과 물뿐이다. 그뿐인가, 가끔은 물마저도 내 편이 아닌 날도 있다.
=> 수영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대면의 공간이다.

60p 나루는 가끔 시합장이 마법의 공간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법사들이 허공에 지팡이를 흔들어 비밀의 포털을 열고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처럼, 커다란 시합장 문을 열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들어와 보지 않고는 절대 알 수 없는 세상이다.
=> 시합장의 문은 세계관이 바뀌는 경계다. 시합장에선 선수들의 일상이 끝나고 승부의 시간이 시작된다.

61p 뻑뻑하게 사람들로 가득 찬 경영 풀과는 달리, 다이빙 풀 쪽의 관중석은 반도 차지 않았다. 나루는 그 온도 차이에 조금 놀랐다. 시합장 안에 나루가 모르는 또 다른 세상이 하나 더 있었다.
=> 어린이의 눈에서 본, 비인기 종목과 인기 종목의 차이. 그러기에 더 가슴이 아파진다.

67p “입수가 기가 막히게 잘되면 딱 이런 느낌이거든. 수백 개의 공기 방울이 얇은 이불처럼 내 몸을 감싸 줘. 오늘 마지막에 딱 그랬어.”
=> 다이빙으로 전향한 나루의 언니, 버들의 세계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문장.

87p 대회 시작 전, 태양이는 레인 끝 결승점에 자신이 꼭 열어야 할 문이 있다고 생각했다. 뒤로 몇 개의 문이 더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우승한 그 순간만큼은 첫 번째 문을 통과했다는 기쁨에 가슴이 벅찼다.
=> 생이 다할 때까지 인간은 수많은 결승점을 통과해야 한다. 남은 문의 개수를 모른다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계속 헤엄칠 이유가 된다.

91p 대회에서 본 수영부 아이들은 달랐다. 분명히 그 순간 같은 장소에 함께 있었지만, 그들만의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었다. 감싸고 있는 공기가 달랐고, 스타트대 위에서의 긴장감이 달랐고, 터치패드를 찍고 나서의 간절함도 달랐다.
=> 태양은 수영부 아이들의 삶과 수영에 대한 마음가짐이 공기의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음을 느낀다. 그가 잠시 잃어버린 간절함을 타인들의 공기에서 재발견한다.

97p 마음에 두 가지를 담고 있다고 해서 꼭 하나의 크기가 100중의 50인 것은 아니다.
=> 마음에 둘 다 100을 추구하는 건 불가능이 아니다. 마음은 제로섬으로 따질 수 없기 때문이다.

112p 하지만 수영은 0.01초의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일이 허다하다. 물 밖의 1초와 물속의 1초는 그 무게가 천지 차이이다.
=> 육상 선수에게도 물 밖의 1초와 물 안의 1초를 다르게 느낄 수 있는 일. 시간의 가치는 의미 부여의 크기에 비례한다.

118p 제대로 된 자세가 몸에 배기 위해서는 수많은 반복이 필요하다.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도 움직일 수 있어야 시합에 나가도 그대로 할 수 있다.
=> 훈련이 무조건 성공은 보장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저점을 방어할 확률은 성공보단 훨씬 높다.

126p 나루의 핸드폰에 비밀 채팅방 초대 알림이 떴다. 태양이었다. 그 순간, 나루의 마음에 진도 3 정도의 지진이 일었다. 느낄 수 있지만 아직 피해는 없다.
=> 감정을 재난의 언어로 표현하되, 그 재난을 기다려지게 만드는 역설이 공존한다. 마음의 두근거림을 진도로 표현한 귀여운 문장.

164p 소문이란 전자레인지에 들어간 팝콘처럼 조금의 열만 가해져도 기다렸다는 듯이 부풀려지는 법이다.
=> 천리를 가는 발 없는 말과, 열만 가해졌을 뿐인데 부피가 급격히 커지는 팝콘 옥수수.

175p 운동이라는 게 그랬다. 인내는 지긋지긋하게 쓰고 열매는 짜릿하게 달다. 나루는 그 달콤함에 취해서 아무리 쓴 인내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쓰디쓴 인내의 끝에 열매가 없다면? 그래도 운동을 계속해야 할까?
=> 전 세계 엘리트 선수들이 매일 지닌 고민.

190p 다이빙대에 오른 이상, 누군가 밀쳐 떨어지기보다는 스스로 뛰어내려야 한다.
=> 결정에는 자신의 비율이 0%일 수 없다.

209p 다시 부끄럽지 않게 물 앞에 서기 위해서는, 잘못을 바로잡아야 했다.
=> 나루는 떳떳함은 기억을 지워서가 아니라 잘못을 갚아서 회복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211p 어쩌면 친구들은 이해해 줄지 모른다고 기대를 품었지만 역시 아닌 건 아닌 거다.
=> 잘못을 세탁해 주는 관계는 편하지만, 사람을 썩게 한다. 아닌 걸 아니라 해주는 관계는 아프지만 사람을 자라게 한다. 반성할 수 있게 하는 친구가 진퉁.

221p 마음에 돌덩이를 안고 있느니 등에 돌덩이를 업고 뛰는 편이 훨씬 후련했다.
=> 여러 불행한 일에도 인간이 선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의 기반엔, 인간의 양심이 본성이라는 데에 있다.

224p 나루는 이날 초희를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의 경기야말로, 어떻게 졌는지가 중요한 시합이었다. 그런 시합이 있다는 걸 이제는 나루도 알았다.
=> 작가는 마지막까지 나루에게 우승을 주지 않는다. 화해했으니, 성장했으니 1등으로 보상하는 관성적 결말을 거부하며 '어떻게 졌는가'를 최종 시험으로 삼았다.

226p 결과가 좋든 나쁘든, 나루 손으로, 나루의 두 팔과 다리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만 승리의 기쁨도 패배의 분함도 떳떳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 승패를 떳떳하게 받아들이려면 결과가 온전히 내 것이어야 한다.

233p 작가는 아이들이 세계와 싸우며 거대한 모험을 하는 이야기 대신 저마다의 빛과 그림자를 통과하며 자신의 터치패드에 정정당당하게 도달하는 이야기를 선택했다. 이토록 현실적이며 촘촘한 시선이 이 작품을 반짝거리게 한다.
=> 열세 살의 유소년에게는 라이벌에게 지는 것, 잘못을 고백하는 것, 좋아하는 아이에게 답장하는 것도 거대한 모험일 수 있다.

234p 어릴 때 자신의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한 존재가 어른이 되어서 갑자기 그것과 직면할 힘을 얻게 될 리 없다.
=> 성공한 엘리트 중에서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들여다본 과정을 거친 어른들은 얼마나 있을까? 글을 적는 나도 진정으로 성찰을 한 적이 있을까? 이 책을 통해 어른이라고 동화 읽기를 가려선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어릴 적 건너뛴 성찰을 5번 레인의 보충 수영 훈련으로 학습하려 한다. 늦었을지라도, 늦지 않았다는 최면을 하면서.

5번 레인

은소홀 지음
문학동네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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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 코멘트]

# 많은 걸 내비치지만, 많은 걸 감추는 수영장
어디서나 있을 법한 수영장 내 여러 인간 군상을 그려낸 작품. 물안경 너머로만 서로를 훔쳐보는, 반쯤 벗은 채로도 철저히 익명인 현대 도시의 축소판인 수영장.

# 여주인공의 물속 몸짓은 무슨 의미였을까
물속에서 여자는 남주인공에게 어떤 말을 했을까. 책 마지막에도 여자의 동작을 그린 부분을 따로 배정한 거면 분명 큰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실화를 기반으로 쓴 작가가 여자의 말은 자신의 경험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평생 비밀로 간직할 것이라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저자가 남긴 한 인터뷰를 통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미국 밴드 케이크(Cake)의 노래 「World of Two」를 부르는 모습이라고 밝힌 바 있다. 「World of Two」는 두 사람이 바깥세상과 분리된 자신들만의 작은 세계를 이룬다는, 쓸쓸함을 자아내는 노래다. 그 노래의 제목이 곧 그녀가 물속에서 건넨 노랫말 없는 몸짓의 방향을 추측해 본다.

[발췌한 책 속 문장]

75p
“간단히 말하면, 호흡, 다리, 팔을 동시에 잘 움직여야 해. 우선 팔부터, 물속에서 중심을 잘 잡은 상태에서 팔꿈치와 어깨를 높이 들어. 그러고선 반대쪽 손을 허벅지까지 쭉 밀어내. 밀어낸 손을 다시 원위치로 가져오는데, 팔꿈치를 높이 들어야 돼. 손이 겨드랑이에 닿을 듯한 느낌으로, 그리고 다리는 계속 물장구 쳐야 돼. 절대로 멈추면 안 돼. 자기 리듬을 찾아야 돼. 두 박자든, 세 박자든, 다섯 박자든 상관없어. 너 다리는 잘하잖아.”
=> 대화가 거의 없는 책에서 가장 긴 대사는 여주인공의 기술 설명이었다.

“마지막으로 호흡인데, 너만의 리듬을 찾아야 돼. 물속에서는 천천히 숨을 내쉬어. 그러지 않으면 금방 진이 빠지거든.”
=> 인생을 산 지 몇십 년 만에 자유형 동작 설명을, 책을 통해 접했다.

염소의 맛

바스티앙 비베스 지음
미메시스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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