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평론가가 선정한 올해의 책이면서 호불호가 정말 많이 갈리기도 했던 책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서평입니다. 작가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는지 서평을 통해 함께 살펴보시죠!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땐 일종의 추리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명한 괴테 연구가 도이치가 어느 날 홍차 티백에 적힌 출처 불명의 ‘괴테 명언’을 발견하고, 그 문장의 출처를 추적해 나간다는 설정이니까 말이죠. 다만 읽으면 읽을수록 추리라고 할 만한 부분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스토리 자체는 귀족의 일상을 다루는 잔잔한 고전 소설 같은 몽글몽글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다만 저는 이 작품의 주제가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언어’입니다.
이 시점에서 다시 책의 제목으로 돌아가 봅시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이 문장은 괴테라는 인간이 실제로 모든 말을 입 밖으로 내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이 전에 없었던 새로운 생각을 떠올린다 한들 결국 존재하는 언어 체계 내부에 갇혀 새롭지 않은 언어로 표현이 된다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새로운 생각은 쉬우나, 새로운 말로 표현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입니다.
소설의 언어관은 괴테의 또다른 저서인 『파우스트』를 보면 더욱 선명해집니다. 『파우스트』초반부에서 파우스트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라는 『파우스트』 초반부에서 파우스트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라는 구절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는 ‘말(Word)’이라는 번역에 머무르지 않고, ‘생각(Thought)’, ‘힘(Power)’을 거쳐 결국 ‘행위(Act)’에 도달합니다. 이 장면은 괴테가 진리를 고정된 문장 안에 가두기보다, 살아 움직이는 힘과 실천 속에서 이해하려 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역시 결국 “말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동시에, 말 이전 혹은 말 너머에 있는 생각과 행위의 차원을 암시하는 소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괴테가 정말 그런 말을 했는가’를 묻는 소설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언어와 생각의 차이, 언어의 한계와 오류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소설의 제목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아 보려고 합니다. 괴테가 모든 것을 말했다-라기보단, 모든 언어는 이미 말해졌고, 우리는 언제나 그 낡은 말들 속에서만 새로운 생각을 더듬거리며 꺼내 놓을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언어가 결코 인간의 생각을 완전히 담아낼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고찰하는 과정을 담았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전문보기 : https://m.blog.naver.com/jellyfish_club/224232000442?referrerCode=1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스즈키 유이 지음
리프 펴냄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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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 년 전, 토마스 모어가 그려낸 이상 사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그가 상상한 ‘유토피아’는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이상향과 얼마나 닮아 있고, 또 얼마나 다를까요?
소설<유토피아>를 통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유토피아는 '민주주의 국가이면서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많은 분들이 민주주의의 반의어를 사회주의라고 생각하기에, 이 표현이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두 개념은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한 개념입니다. 민주주의는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묻는 정치 체제이고, 사회주의는 '재산과 생산 수단을 어떻게 소유하고 분배하는가'를 다루는 경제 체제입니다. 따라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반드시 충돌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정치적으로는 시민이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공동 소유와 평등한 분배를 추구하는 체제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는 현실에서도 가능할까요?
(중략)
사유 재산이 없고, 모두가 동일한 시간 동안 노동하는 유토피아의 제도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이 있었습니다.
'위험을 감수하며 도전하려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혁신 역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해파리들과 토론을 진행하면서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과연 모든 사회에 끊임없는 혁신이 반드시 필요한가?'
오늘날의 기술 발전은 분명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혜택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발전은 이미 안정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더 편리하게 만들 뿐,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합니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우리는 발전의 속도보다, 그 방향과 목적을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유토피아』는 전혀 다른 선택지를 제시합니다. 이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더 빠른 발전’이 아니라 ‘안정된 삶의 유지’입니다. 이 체제의 핵심은 발전의 속도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복입니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빨리 성장하는 것보다, 모두가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유토피아 인들에겐 더 중요한 과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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