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로우
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민음사 펴냄
작품의 주인공 스티븐스는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집사를 업으로 삼고 있으며, 자신의 직업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품고 있다.
요즘은 집사라는 직업을 거의 찾아볼 수 없어 스티븐스의 태도를 선뜻 이해하기 어렵지만,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1,900년대 초반이라는 점과 공간적 배경이 ‘신사의 나라 영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집사라는 직업에 대한 주인공의 자부심도 충준히 납득할만 하다.
이야기는 최근들어 주인이 영국인에서 미국인으로 바뀐 달링턴 홀에서 시작된다.
저택의 새 주인이 된 페러데이는 영국식 매너로 꽉 차있는 집사가 마음에 들어 자신이 아끼는 신형 포드까지 내어주며 휴가를 권한다.
주인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타입의 스티븐스는 새 주인의 권유를 못이긴 척 받아들이지만, 그에게 있어 이번 여행의 진짜 목적은 휴식이 아닌 업무의 연장이었다.
다시 말해 ‘위대한 집사’가 되고자 했던 그는 과거 자신의 밑에서 유능하게 총무역할을 수행했던 캔턴 양을 다시 채용하고자 여행을 겸한 출장을 떠난 것이다.
이렇듯 스티븐스를 움직인 것은 스스로의 욕망이었지만, 정작 자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숨겨진 욕망을 인정할 경우 ‘위대한 집사’의 필수 요건인 ‘품위’가 손상되기 때문이다.
작품은 주인공이 여행 도중에 느낀 소회와 옛 주인인 달링턴 경에 대한 기억, 그리고 과거에 겪었던 다양한 사건 등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었지만, 작품에 내포된 ‘인생에 정답은 없다.’ 라는 서글픈 진리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쉽지만은 않았다.
스티븐스의 옛 주인 달링턴 경의 사례가 그러하다.
달링턴 경은 인간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흠잡을 데 없는 인격의 소유자로 오로지 도덕적 양심에 따라 일을 도모한다.
특히 1차 세계대전 이후 막대한 전쟁 배상금으로 인해 고통받는 독일 국민들을 구하기 위해 독일, 미국, 영국, 프랑스의 정치 유력자들을 달링턴 홀로 끌어 모은다.
수차례에 달하는 협상과 토론, 서로를 속고 속이는 치열한 암투 끝에 달링턴 경이 의도한 대로 회합은 마무리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결과는 훗날 그가 겪게 될 비운의 단초가 된다.
전 유럽에 전운이 감돌던 시기, 달링턴 경은 제 2차 세계대전을 막기위해 히틀러의 최 측근을 상대로 외교력을 총동원한다.
그러나 전쟁은 발발하고, 달링턴 경은 히틀러의 기만전술에 보기좋게 놀아난 꼴이 되고만다.
이 모든 과정들을 샅샅들이 지켜본 스티븐스는 달링턴 경의 선한 의도를 알았지만, 세상 사람들의 비난으로부터 주인을 지켜줄 순 없었다.
결국 스파이로 몰린 달링턴 경은 비참한 말년을 맞이하고, 역사의 변곡점 마다 막중한 역할을 담당했던 달링턴 홀 역시 미국인에게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이처럼 세상은 선한 의도보다 결과에 막대한 가중치를 부여한다.
알베르 카뮈가 말한 '부조리'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인생은 참으로 복잡하면서도 어려운 것같다.
끝으로 작품에서 자주 언급된 ‘품위’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고 싶다.
우리는 누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아우라를 갖고 있다.
어떤 이는 그것을 품위라 부르고, 또다른 이는 그것을 포스, 카리스마, 아비투스, 인상, 품격, 채취, 기품 등으로 부른다.
자신을 열심히 갈고 닦을 때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아우라, 그것은 값비싼 향수나 수천만원짜리 명품보다 훨씬 더 값진 법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꾸준히 연마해 자신만의 향기를 만들어내며 산다면 충분히 의미있는 삶이지 않을까?
0
god님의 인생책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