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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장편소설 의 표지 이미지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알에이치코리아(RHK) 펴냄

[발췌한 책 속 문장]

54p “인류가 겪은 전쟁과 패배와 승리 중에는 군대와 상관없는 것도 있어. 그런 것들은 기록으로도 남아 있지 않지.”

57p 편지에는 또한 데이브 매스터스가 프랑스로 파견되었으며, 입대한 지 거의 1년 만에 미국의 첫 작전에 참가했다가 샤토 티에리에서 전사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 데이브 매스터스는 참전하지 않은 주인공 스토너에게 그의 인생이 끝났다 말했다. 하지만 생을 마감한 건 그 자신이었다. 앞선 페이지의 아처 솔론 교수의 말이 떠오르게 하는 충격적인 장면.

62p 그는 그 강의실에 들어갈 때마다 예전에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홀깃 바라보며, 매번 자신이 그 자리에 앉아 있지 않다는 사실에 조금 놀라곤 했다.
=> 모교에서 학생과 교수의 삶을 동시에 맞닥뜨린 스토너의 마음은 어땠을까.

63p 그는 어둠침침한 방에 앉아 밖에서 사람들이 질러대는 기쁨과 해방의 고함소리를 들었다. 패배를 슬퍼하며 울던 아처 슬론의 모습이 생각났다.
=> 아처 슬론의 슬픔엔 여러 의미를 추측할 수 있다. 자신이 지지했던 이념의 국가들이 패배해서? 생을 마감한 이들의 존재는 잊히고 승리의 함성만 남겨진 사실에 스스로가 자괴감을 느껴서? 전쟁의 결과가 국가의 큰 이익으로 이어졌기에, 폭력이 숭상되는 현실에 반전주의가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좌절해서?

78p 그녀는 지극히 형식에 집착하는 분위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 이디스의 경직됨은 스토너와 결혼 생활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95p 그녀의 입술도 그의 것만큼이나 건조했다.
=> 수십 년의 건조한 결혼 생활을 암시하는 문장.

122p 거의 그녀가 임신하던 바로 그 순간, 그러니까 달력과 의사의 진단을 통해 임신 사실을 확인하기도 전에, 두 달 가까이 그녀 안에서 날뛰던 윌리엄에 대한 굶주림이 사라져버렸다.
=> 성행위와 그로부터 발생하는 임신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필요한 도구로 여기는 이디스의 소름 돋는 가치관

125p 그래서 그레이스 스토너가 태어난 뒤 처음 1년 동안 접한 것은 오로지 아버지의 손길, 아버지의 목소리, 아버지의 사랑뿐이었다.
=> 그레이스 스토너는 태어날 때부터 비정상적인 가정 환경을 접할 수밖에 없었다.

127p 그가 운 것이 자신 때문인지, 슬론과 함께 보낸 젊은 시절이 함께 땅속에 묻히고 있기 때문인지, 그가 사랑했던 저 마르고 가엾은 사람 때문인지는 스토너 자신도 알 수 없었다.

133p 젊은 시절의 어색함과 서투름은 아직 남아 있는 반면, 어떠면 우정을 쌓는 데 도움이 되었을 솔직함과 열정은 사라져버린 탓이었다. 그는 자신의 소망이 불가능한 것임을 깨달았다
=> 로맥스와 인간관계가 파국으로 갈 것이라 암시하는 문장.

139p 그는 자신의 기형적인 외무 때문에 고립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일찍부터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으며, 자신을 방어할 방법을 떠올릴 수 없었다고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듯이 털어놓았다.
=>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듯한 말투로 내면에 자리한 수치심을 부정하려 하는 로맥스. 하지만 그의 수치심은 다른 사람의 것일 수 없었다.

143p 이디스가 그의 삶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그가 예전에 희망했던 것만큼 크지 않았다. 사실 두 사람은 교착상태와 비슷한 긴 휴전에 들어간 것 같았다.

168p 두 사람은 함께 살고 있지만 이제는 자신에 대해서는 상대에 대해서든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러 있었다. 두 사람의 공동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섬세한 균형이 깨어질까 두렵기 때문이었다.

171P 그러고 나서 그녀는 그가 미처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문을 닫아버렸다.
=> 소통의 창구를 막아 놓고 자기의 입장만 주장하는 이디스.

177p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보니, 이디스가 낮에 일꾼을 고용해서 그의 소지품을 모두 서재에서 꺼내놓은 뒤였다.
=> 스토너가 발칵 뒤집어지지 않은 게 보살.

197p 그의 말과 행동이 왠지 기괴할 정도로 친숙하게 느껴졌다. 스토너는 그 이유를 문득 깨달았다. 이것은 홀리스 로맥스, 그의 대략적인 캐리커처였다. 경멸이나 반감이 아니라 존경과 사랑의 몸짓이 그 캐리커처에서 흘러나왔다.
=> 로맥스에게 워커의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자신을 보는 듯해 오래 가지고 놀고 싶어 하는 장난감? 스토너의 세미나에 제자 워커를 참여시켜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게 하는 도구?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게 해 동정심을 유발한 어린 제자?

219p 그는 계속 사과를 하면서 홀랜드의 질문을 자르고 자신이 직접 질문을 던져, 워커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233p 핀치가 갑자기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젠장, 난 우리 단과 대학 전체를 생각해야 하네.” 그가 스토너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 중재해야 하는 리더의 자리가 얼마나 어려운지 고든 핀치의 난처한 상황을 보며 생각하게 된다.

234p “그래 나도 알지. 원칙이 중요하다는 것. 하지만 자네가 생각해야 할 또 다른 원칙이 있네.”
=> 인간은 수도 없이 난립하는 원칙 간 충돌에서 살아간다.

248p 로맥스가 말했다. “앞으로는 나를 만나고 싶거든 그러니까 학과의 일로 만나고 싶거든 비서에게 연락해서 약속을 정하게.”

272p 나이 마흔셋에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란 것.

274p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

284p 하지만 그는 세상이 자신을 향해, 캐서린을 향해, 두 사람이 자기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작은 방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 결국 불륜은 도리를 어긴 행위기에, 당사자들의 목을 죌 수밖에.

291p “하지만 자네 인생은 자네 것이 아니야. 자네 인생은...”

327p 스토너는 그녀의 모든 행동, 즉 분노, 고뇌, 고함, 증오에 찬 침묵 등을 모두 남의 일처럼 바라보았다.

332p 그런데 이처럼 세상과 이질적인 본성이 도저히 집이라고 할 수 없는 곳에서 살아야 했다. 부드러운 애정과 조용한 생활을 갈망하는 본성이 무관심과 무정함과 소음을 먹고 자라야 했다.

343p 하지만 그는 아주 깊고 강렬한 여러 감정들이 그 안에 혼합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차마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인정할 수도 없는 감정들이었다.

376p 로맥스도 그들 중에 있었지만, 그는 지나가는 스토너를 향해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스토너는 이렇게 세월이 흐른 마당에 로맥스와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문득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수고했다’ 한 마디도 꺼낼 수 없는, 그들의 수십 년간 굳어진 관계.

383p 그들은 서로에게 입힌 상처를 용서하고, 자신들의 삶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지 생각하는 일에 빠져 있었다.

387p 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남들 눈에 틀림없이 실패작으로 보일 자신의 삶을 관조했다.
=> 스토너의 삶은 충분히 성공했고 위대했다. 책 결말까지 스토너는 낮은 자존감을 드러내고 있어 안타까울 뿐.

394p 여기에 작가가 인터뷰에서 했다는 말이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주었다. “나는 그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스토너의 삶을 슬프고 불행한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삶은 아주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었고, 그 일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했으니까요.”

=> 스토너를 읽기 전, 스토너의 삶이 불행하다는 서평을 많이 접했다. 심지어 책 뒤표지 소개 글에서도 스토너를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라 평했다. 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었을 때 스토너는 훌륭한 삶을 살았으며 많은 걸 성취한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전쟁에 휘말리지 않았다. 건강이 소진될 때까지 교수직을 유지했다. 자신의 전공과 학문에 자부심을 느꼈고, 연구를 수행하며 여러 저작을 남겼다. 학생들을 위해 최선의 수업을 하려 노력했다. 정상적인 가정 활을 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도 딸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스토너의 삶을 긍정적으로 평한 작가의 말을 보고 안도했다. 아직 세상을 삐뚤게 바라보는 데 가까운 편이고, 자존감이 높진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토너에 대한 생각을 되새기며 내 가치관도 그리 부정적이진 않은 것 같아 위안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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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 코멘트]

『레드불 스파』는 대한민국의 급소를 정확히 찌르는 소설이다. 관심으로 연명하는 삶, 재난에도 멈추지 않는 시스템, 좀비와 구별되지 않는 대한민국 국민의 일상을 사우나 속에서 가격한다. 다른 여주인공 쌈루타의 설정이 헐거운 면이 있지만, 세상이 끝나는 밤에도 700그램을 빼야 하는 현지현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면 이를 금방 잊게 되었다.

[발췌한 책 속 문장]

54p 그러나 하나의 후회는 언제나 극도의 연쇄적 힘을 가지고 있다. 마치 유치원 다니던 시절 만들었던 색종이 사슬처럼, 둥그렇고 쨍한 색의 후회는 또 다른 후회로 계속해 이어진다.

59p 먹고사니즘이란 원체 중요하고, 한국인들은 그 무슨 일이 일어나도 꾸역꾸역 직장으로 향하는 민족으로 또 유명하니까.
=> 악천후 속에서도 학교로 향하고, 직장으로 향하는 한국인들이 찍힌 뉴스 자료 영상들이 떠오른다.

97p 손님에게 먼저 퍼 드려야 하는 동방예의지국의 사람들이 내뱉는 저열한 속내들.
=> 동방 예의의 겉면으로 덮어도 인간의 심리 본질은 쉽사리 바뀔 수 없다.

119p 비열할 정도로 치열하게 사는 사람의 두 콧구멍에선 이산화탄소가 남들보다 두어 배는 풍풍 뿜어져 나오지 않을까. 그럼 차라리 죽어 버리는 게 전 지구의 안위를 위해서는 훨씬 이롭지 않으려나.
=> 신체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같을지라도, 그 인간의 악행으로 배출되는 공해 물질은 일반인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수 있다.

137P 언제나 그렇듯 실컷 사고를 친 하이드가 책임도 안 진 채 퇴장하고 나면, 왜소한 지킬이 비척비척 등장해 비로소 자기 인식을 시작하기 마련이었다.

139P 선수의 운동만큼이나 중요한 게 그 윗사람들의 정치였다. 승유는 지현을 이 자리까지 올리기 위해, 그리고 이 시합을 성사시키기 위해 수많은 골프 모임과 식사 자리 및 술자리에 불려 다녔다고 했다.
=> 승유가 지현을 너무 몰아세우는 것 같지만, 승유도 고충이 있었다. 원치 않은 술자리와 회식은 정말로 야만적이다.

149P 매일 죽고 싶다 염불을 외면서도 그 정도의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는 사람이 흔한가? 전혀.

152P 평소에 느끼는 당혹감과 분노를 쏟아부어도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대상이 사람들에겐 필요했다.
=> 돌팔매질은 원시 시절부터 내려온 전통.

162P “이제는 말도 잘하는 좀비들이 천지라고, 하룻밤 만에.”
=> 세계관 속 사회 활동이 가능한 좀비 바이러스는 어떤 연유로 탄생했을까? 그리고 좀비가 나타나도 시합을 강행하는 세계관 속 대한민국의 높으신 분들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172P 그 어떤 판이든, 그 무슨 일이든 그걸 감싸고 있는 외피는 서로 다를지 몰라도 구조는 동일하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직감하고 있었다.

197P 덕질이란 티백으로 차를 우려내는 일과 같아서, 몇 번이고 우릴 수 있고 수만 번을 반복해도 미세한 알갱이가 남아 있기 마련이었다.
=> 어떻게든 떨쳐내려 해도 약간의 관심의 재가 남아 있으면, 덕질을 쉽사리 포기할 수 없다.

202P 어려서부터 새벽마다 맨발의 승려에게 공양하며 불심을 쌓아 왔던 쌈루타는, 어디서든 잘못되거나 가여운 장면을 묵인하는 순간 윤회의 수레바퀴에 쌓일 업보를 걱정하며 살아왔다.
=> 업보론은 수많은 데이터베이스가 있기 때문에 그 힘과 역사를 인정받는다.

레드불 스파

설재인 지음
한끼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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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 코멘트]

# 5번 레인의 의미
수영 결승에서 레인 배정은 예선 기록 순이다. 1위가 물살이 가장 안정된 한가운데 4번 레인을 받고, 2위가 그 옆 5번 레인에 선다. 즉, '5번 레인'은 챔피언의 자리가 아니라 도전자의 자리다. 8년을 수영해 온 에이스 나루가 라이벌 초희에게 자꾸 2등으로 밀리는 자리이기도 하다.

# 주인공 스스로 반성하고 사과하기
소설을 관통하는 중요한 사건은 수영복 절도다. 초희에게 거듭 밀리던 나루는 열등감 속에 초희의 수영복을 훔친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이후 수영복을 돌려준다. 그와 동시에 진심 어린 사과와 편지를 건네며 작품 말미엔 수영 대회 경쟁으로 화해한다. 어린이문학에서 주인공은 대개 '착한 아이'이거나 잘못해도 실수 수준인데, 작품에서 주인공은 명백한 절도를 저지른다. 그리고 그 잘못을 우연한 발각이나 어른의 개입이 아니라, 나루 자신의 직면과 고백과 회복으로 통과한다.

# 도약의 발판, 5번 레인
결국 소설은 나루를 끝내 1등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마지막 대회에서도 나루는 초희에게 밀리지만, 이번에는 그 2위를 떳떳하게 받아들인다. 5번 레인은 무너져 머무르는 자리가 아니라 다시 일어나 나아갈 발판이 되며, 1등의 서사가 넘치는 세상에서 2등의 자리를 성장의 좌표로 새긴 책은 결과 지상주의 사회의 대한민국 어린이들에게 건네는 선물이라는 심사 평을 인용한다.

[발췌한 책 속 문장]

38p 나루도 알고 있다. 수영은 무엇보다 집중력이 중요한 종목이다. 환상의 호흡을 보여 줄 팀원도 없고, 신체 조건을 보완해 줄 현란한 기술도 없다. 믿을 구석이라고는 오로지 나 자신과 물뿐이다. 그뿐인가, 가끔은 물마저도 내 편이 아닌 날도 있다.
=> 수영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대면의 공간이다.

60p 나루는 가끔 시합장이 마법의 공간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법사들이 허공에 지팡이를 흔들어 비밀의 포털을 열고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처럼, 커다란 시합장 문을 열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들어와 보지 않고는 절대 알 수 없는 세상이다.
=> 시합장의 문은 세계관이 바뀌는 경계다. 시합장에선 선수들의 일상이 끝나고 승부의 시간이 시작된다.

61p 뻑뻑하게 사람들로 가득 찬 경영 풀과는 달리, 다이빙 풀 쪽의 관중석은 반도 차지 않았다. 나루는 그 온도 차이에 조금 놀랐다. 시합장 안에 나루가 모르는 또 다른 세상이 하나 더 있었다.
=> 어린이의 눈에서 본, 비인기 종목과 인기 종목의 차이. 그러기에 더 가슴이 아파진다.

67p “입수가 기가 막히게 잘되면 딱 이런 느낌이거든. 수백 개의 공기 방울이 얇은 이불처럼 내 몸을 감싸 줘. 오늘 마지막에 딱 그랬어.”
=> 다이빙으로 전향한 나루의 언니, 버들의 세계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문장.

87p 대회 시작 전, 태양이는 레인 끝 결승점에 자신이 꼭 열어야 할 문이 있다고 생각했다. 뒤로 몇 개의 문이 더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우승한 그 순간만큼은 첫 번째 문을 통과했다는 기쁨에 가슴이 벅찼다.
=> 생이 다할 때까지 인간은 수많은 결승점을 통과해야 한다. 남은 문의 개수를 모른다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계속 헤엄칠 이유가 된다.

91p 대회에서 본 수영부 아이들은 달랐다. 분명히 그 순간 같은 장소에 함께 있었지만, 그들만의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었다. 감싸고 있는 공기가 달랐고, 스타트대 위에서의 긴장감이 달랐고, 터치패드를 찍고 나서의 간절함도 달랐다.
=> 태양은 수영부 아이들의 삶과 수영에 대한 마음가짐이 공기의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음을 느낀다. 그가 잠시 잃어버린 간절함을 타인들의 공기에서 재발견한다.

97p 마음에 두 가지를 담고 있다고 해서 꼭 하나의 크기가 100중의 50인 것은 아니다.
=> 마음에 둘 다 100을 추구하는 건 불가능이 아니다. 마음은 제로섬으로 따질 수 없기 때문이다.

112p 하지만 수영은 0.01초의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일이 허다하다. 물 밖의 1초와 물속의 1초는 그 무게가 천지 차이이다.
=> 육상 선수에게도 물 밖의 1초와 물 안의 1초를 다르게 느낄 수 있는 일. 시간의 가치는 의미 부여의 크기에 비례한다.

118p 제대로 된 자세가 몸에 배기 위해서는 수많은 반복이 필요하다.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도 움직일 수 있어야 시합에 나가도 그대로 할 수 있다.
=> 훈련이 무조건 성공은 보장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저점을 방어할 확률은 성공보단 훨씬 높다.

126p 나루의 핸드폰에 비밀 채팅방 초대 알림이 떴다. 태양이었다. 그 순간, 나루의 마음에 진도 3 정도의 지진이 일었다. 느낄 수 있지만 아직 피해는 없다.
=> 감정을 재난의 언어로 표현하되, 그 재난을 기다려지게 만드는 역설이 공존한다. 마음의 두근거림을 진도로 표현한 귀여운 문장.

164p 소문이란 전자레인지에 들어간 팝콘처럼 조금의 열만 가해져도 기다렸다는 듯이 부풀려지는 법이다.
=> 천리를 가는 발 없는 말과, 열만 가해졌을 뿐인데 부피가 급격히 커지는 팝콘 옥수수.

175p 운동이라는 게 그랬다. 인내는 지긋지긋하게 쓰고 열매는 짜릿하게 달다. 나루는 그 달콤함에 취해서 아무리 쓴 인내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쓰디쓴 인내의 끝에 열매가 없다면? 그래도 운동을 계속해야 할까?
=> 전 세계 엘리트 선수들이 매일 지닌 고민.

190p 다이빙대에 오른 이상, 누군가 밀쳐 떨어지기보다는 스스로 뛰어내려야 한다.
=> 결정에는 자신의 비율이 0%일 수 없다.

209p 다시 부끄럽지 않게 물 앞에 서기 위해서는, 잘못을 바로잡아야 했다.
=> 나루는 떳떳함은 기억을 지워서가 아니라 잘못을 갚아서 회복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211p 어쩌면 친구들은 이해해 줄지 모른다고 기대를 품었지만 역시 아닌 건 아닌 거다.
=> 잘못을 세탁해 주는 관계는 편하지만, 사람을 썩게 한다. 아닌 걸 아니라 해주는 관계는 아프지만 사람을 자라게 한다. 반성할 수 있게 하는 친구가 진퉁.

221p 마음에 돌덩이를 안고 있느니 등에 돌덩이를 업고 뛰는 편이 훨씬 후련했다.
=> 여러 불행한 일에도 인간이 선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의 기반엔, 인간의 양심이 본성이라는 데에 있다.

224p 나루는 이날 초희를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의 경기야말로, 어떻게 졌는지가 중요한 시합이었다. 그런 시합이 있다는 걸 이제는 나루도 알았다.
=> 작가는 마지막까지 나루에게 우승을 주지 않는다. 화해했으니, 성장했으니 1등으로 보상하는 관성적 결말을 거부하며 '어떻게 졌는가'를 최종 시험으로 삼았다.

226p 결과가 좋든 나쁘든, 나루 손으로, 나루의 두 팔과 다리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만 승리의 기쁨도 패배의 분함도 떳떳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 승패를 떳떳하게 받아들이려면 결과가 온전히 내 것이어야 한다.

233p 작가는 아이들이 세계와 싸우며 거대한 모험을 하는 이야기 대신 저마다의 빛과 그림자를 통과하며 자신의 터치패드에 정정당당하게 도달하는 이야기를 선택했다. 이토록 현실적이며 촘촘한 시선이 이 작품을 반짝거리게 한다.
=> 열세 살의 유소년에게는 라이벌에게 지는 것, 잘못을 고백하는 것, 좋아하는 아이에게 답장하는 것도 거대한 모험일 수 있다.

234p 어릴 때 자신의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한 존재가 어른이 되어서 갑자기 그것과 직면할 힘을 얻게 될 리 없다.
=> 성공한 엘리트 중에서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들여다본 과정을 거친 어른들은 얼마나 있을까? 글을 적는 나도 진정으로 성찰을 한 적이 있을까? 이 책을 통해 어른이라고 동화 읽기를 가려선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어릴 적 건너뛴 성찰을 5번 레인의 보충 수영 훈련으로 학습하려 한다. 늦었을지라도, 늦지 않았다는 최면을 하면서.

5번 레인

은소홀 지음
문학동네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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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 코멘트]

# 많은 걸 내비치지만, 많은 걸 감추는 수영장
어디서나 있을 법한 수영장 내 여러 인간 군상을 그려낸 작품. 물안경 너머로만 서로를 훔쳐보는, 반쯤 벗은 채로도 철저히 익명인 현대 도시의 축소판인 수영장.

# 여주인공의 물속 몸짓은 무슨 의미였을까
물속에서 여자는 남주인공에게 어떤 말을 했을까. 책 마지막에도 여자의 동작을 그린 부분을 따로 배정한 거면 분명 큰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실화를 기반으로 쓴 작가가 여자의 말은 자신의 경험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평생 비밀로 간직할 것이라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저자가 남긴 한 인터뷰를 통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미국 밴드 케이크(Cake)의 노래 「World of Two」를 부르는 모습이라고 밝힌 바 있다. 「World of Two」는 두 사람이 바깥세상과 분리된 자신들만의 작은 세계를 이룬다는, 쓸쓸함을 자아내는 노래다. 그 노래의 제목이 곧 그녀가 물속에서 건넨 노랫말 없는 몸짓의 방향을 추측해 본다.

[발췌한 책 속 문장]

75p
“간단히 말하면, 호흡, 다리, 팔을 동시에 잘 움직여야 해. 우선 팔부터, 물속에서 중심을 잘 잡은 상태에서 팔꿈치와 어깨를 높이 들어. 그러고선 반대쪽 손을 허벅지까지 쭉 밀어내. 밀어낸 손을 다시 원위치로 가져오는데, 팔꿈치를 높이 들어야 돼. 손이 겨드랑이에 닿을 듯한 느낌으로, 그리고 다리는 계속 물장구 쳐야 돼. 절대로 멈추면 안 돼. 자기 리듬을 찾아야 돼. 두 박자든, 세 박자든, 다섯 박자든 상관없어. 너 다리는 잘하잖아.”
=> 대화가 거의 없는 책에서 가장 긴 대사는 여주인공의 기술 설명이었다.

“마지막으로 호흡인데, 너만의 리듬을 찾아야 돼. 물속에서는 천천히 숨을 내쉬어. 그러지 않으면 금방 진이 빠지거든.”
=> 인생을 산 지 몇십 년 만에 자유형 동작 설명을, 책을 통해 접했다.

염소의 맛

바스티앙 비베스 지음
미메시스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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