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 후 코멘트]
# 20세기 아프리카 내 신식민주의의 폐해를 보여주는 역사 + 추리 소설
응구기 와 시옹오의 『피의 꽃잎들』은 제국주의의 광풍이 휩쓸고 간 아프리카 대륙이 어떻게 신식민주의의 기형적 자본주의로 재편되었는지를 고발하는 소설이다. 소설은 케냐의 작은 농촌 마을 '일모로그'가 투기 자본이 침투한 신도시 '뉴 일모로그'로 개발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정·재계 거물 3인의 방화 살인 사건을 추리극의 형태로 펼쳐낸다. 살인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는 장르적 흡입력을 주면서도, 텍스트의 심층에 백인 지배자들의 자리를 고스란히 꿰찬 채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 흑인 신흥 엘리트 계급의 변절과 탐욕을 담았다. 독립 후 케냐는 물리적 식민 지배는 종식되었으나 자본과 권력, 종교가 결탁해 민중의 정신과 육체를 더욱 교묘하게 착취하는 신식민주의의 비극적 굴레에 얽매였다.
# 희망을 나타내는 ‘피의 역설’
하지만 작품이 짙은 허무주의로 침잠하지 않는 이유는 제목이 함의하는 역설에 있다. 짓밟히고 꺾이면서도 대지에 끈질기게 뿌리를 내리고 붉게 타오르는 '피의 꽃잎들'은 어떤 억압 속에서도 소멸하지 않는 케냐 민중의 생명력과 꺾이지 않는 투쟁의 불씨를 상징한다. 저자는 소설에 아프리카 구전 문학과 고유의 문체, 풍자를 융합했다. 아프리카 저항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의 배경은 외세의 수탈과 기형적 근대화를 거친 한국의 현대사와도 맞닿은 점이 있어 기시감을 주기도 한다.
[발췌한 책 속 문장]
p25 “여기 젊은이들은 우리를 떠났소. 반짝이는 쇠가 그들을 불렀소. 그들은 떠나고 젊은 여자들만 이따금 돌아와서 아이를 할머니에게 맡긴다오. 땅을 파 먹고살다가 이미 늙어버린 할머니에게 말이오.”
=>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낳은 이농 현상과 전통적 혈연 공동체의 붕괴를 보여준다.
p34 배가 나오고 몸집이 큰 네 번째 남자가 볼을 치지 못하고 계속 골프를 휘두르고 있었다. 세 명의 아프리카 인들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찢어진 옷을 입은 남자 캐디들이 골프채를 메고 공을 든 채 적당한 거리에 서 있었다.
=> 피부색이 같다는 민족적 동질성은 계급과 자본의 논리 앞에서 부서진다. 독립 이후 새로운 지배자로 군림한 흑인 엘리트들이 과거 백인 식민 지배자들의 오만한 사치를 완벽하게 답습하며 동족을 하대하는 씁쓸한 풍경을 나타내는 문장이다.
p38 그들에겐 모두 공통점이 있었다. 주님에 대한 복종이 그것이었다. 그들은 그를 이제키엘리 형제, 그리스도 안의 형제라고 불렀다. 그들은 일이 끝나면 뜰에 모여서 기도를 하고 감사를 드렸다. 물론 급료를 올려 달라고 선동하거나 농장에 문제를 일으키는 등 악마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도 가끔 있었지만, 그들은 해고당했다.
=> 제국주의와 함께 유입된 서구의 종교가 어떻게 피지배층의 각성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하는지 찌르는 대목이다. '주님에 대한 복종'이라는 명분은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마저 '악마적 선동'으로 매도하며 착취를 정당화하는 자본가들의 이데올로기적 통제 수단으로 기능했다.
p39 그래서 그는 집으로 가서 자신을 하느님한테 바치는 속죄의 의식을 치르기로 결심했다. 그는 성냥 한 통을 훔치고 풀과 마른 쇠똥을 모아 그가 하느님한테 죄를 저지른, 카미리소애 있는 아미나의 집 모형을 만들고 불을 붙였다. 불길을 바라보니 자신이 정말로 정화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 왜곡된 종교적 신념이 빚어낸 개인의 광기가 방화라는 파괴적 행위로 이어지는 후반 결말에 대한 복선이 이미 초반에 있었다.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게 하는 독서 되새김의 장점.
p42 아이들이 자러 들어가자, 안는 반은 엄격하고 반은 꾸짖는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무 독선적이고 성경만 읽고 날마다 기도만 하는 탓에, 아름다울 수도 있었을 아내의 얼굴엔, 감각적인 것이 모두 사라지고 이제 영혼의 차가운 빛만 남아 있었다.
=> 광신적인 믿음은 사람의 관상까지 변하게 한다.
p88 “그가 나를 보더니 갑자기 웃기 시작하더군요. 그러고는 우스운 짓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자신은 내 아버지만큼이나 나이가 많다면서요. 그리고 자신은 기독교인이라고 했어요.”
=> 도덕성을 보증해야 할 '기독교인'이라는 타이틀이 타락과 위선을 방어하는 면죄부로 전락했다. 신앙적 우월성이 오히려 약자를 향한 착취를 은폐하는 기만으로 소비되는 신식민지 사회의 윤리적 붕괴를 고발하고 있다.
p121 그녀는 유럽인 농장에서도 일을 해야 했고, 자기 땅에서도 일을 해야 했으며, 집 안도 깨끗하고 화목하게 유지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키운 것에 대해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보통의 경우, 남편이 그것을 가져다가 그들의 지주인 유럽인 농부에게 팔았다. 지주는 자기 마음대로 값을 매겼다.
=> 20세기 중반 케냐의 여성들은 제국주의, 자본주의, 가부장제라는 가혹한 삼중의 착취 사슬 밑바닥에서 고통받았다. 백인 지주에게 억압받는 피식민지 남성조차 가정 내에서는 여성을 수탈하는 지배자로 군림했다.
p140 지금 우리는 기찬디, 리퉁구, 응야티티의 시인들과 극작가들에 의해서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진 전설에 의존할 뿐이다. 최근의 고고학적, 언어학적 연구가 그것을 보완해 주고, 지난 수세기에 걸친 식민주의 모험가들, 특히 19세기 모험가들이 남긴 기록의 행간에서 조금씩 그것을 찾아낼 뿐이다.
=> 식민 지배는 물리적 영토의 침탈을 넘어 민족의 고유한 언어와 기억마저 철저히 말살했다. 약소국이었던 케냐는 침략자들의 기록을 더듬어 파편화된 역사를 복원해야만 했다.
p142 목자들과 농부들은 자기들이 주인이었고 자기들이 통치했던 땅에서 신분증을 갖고 다니는 노동자로 전락했다.
=> 대지와 함께하던 이들은 시스템에 등록된 '관리 대상'이자 부속품 같은 노동자로 전락했다.
p378 수많은 자극과 수많은 동기에서 촉발된 지극히 작은 행동들이 어떻게 역사를 바꾸고, 영혼이 영원한 괴로움과 상실, 죄의식과 잔인함에 시달리도록 저주를 하고, 때로는 모든 이해력을 넘어서는 사랑을 하게 만드는 걸까? 아니, 무슨 계획이나 법칙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 거대한 역사의 흐름은 결국 무수한 개인들의 욕망과 우연이 교차한 결과임을 말한 문장이다. 지구의 역사는 수많은 나비효과와 함께한다.
p384 유럽의 산업혁명을 창시한 유명인들에 견줄 만한 좋은 예라고 했다. 그들이 우리의 크루프이고 록펠러이며 포드라고 했다.
=> 예시로 든 기업인들이 악덕 경영으로 명성(?)을 떨친 사람들임을 고려하면, 피부색만 달라질 뿐 약자의 피를 쥐어짜 부를 축적하는 자본의 무자비한 포식성은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 복제되었지 않았는가.
p393 학식 있는 역사가들의 눈에 식민주의 이전의 케냐 역사는 방랑벽과 의미 없는 전쟁의 역사였다. 지식층들은 결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의미를 직시하려 하지 않았다. 그것을 건드리는 것은 오직, 폭력적인 저항의 행동들을 섬뜩한 살인으로 묘사할 때뿐이었다.
=> 그들의 과거 역사가 사라지는 건, 신식민주의에 물든 지식인들의 탓도 크다. 독립 투쟁을 야만적 살인으로 격하하고 식민 지배를 근대화로 포장하는 지식층의 비겁함이 저자가 꼬집은 ‘정신적 식민화’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p547 뉴 케냐였다. 뉴 일모로그였다. 공짜는 아무것도 없었다.
=> 전통 공동체의 일모로그는 모든 것이 화폐 가치로 환산되는 ‘뉴’ 일모로그로 변했다.
p549 또 1실링, 2실링, 5실링이 나가는 술을 다양한 작은 비닐봉지에 담아서 사람들이 그안에 든 독을 호주머니에 수비게 갖고 다닐 수 있게 했다.
=> 술은 노동자들에게 봉급을 안겨주면서도, 그들의 돈과 건강을 잡아먹는 족쇄가 되었다. 접근성이 좋은 술은 노동자들이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드는 저렴하고 효율적인 체제 유지 수단이 되었다.
p555 “제 생각에 이 술은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려고 만들어진 것 같아요. 자신들의 비참한 상태에 대해 질문을 하거나 무슨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말이죠.”
=> 그럼에도 술은 원시 시대부터 지금까지 인간과 함께하고 있다. 술을 싫어하는 본인으로선 지긋지긋할 따름.
p597 나중에 카레가는 모든 운동이 신도들에게 십일조를 내게 해서 많은 돈을 거둔 미국 교회들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의 일부가 나중에 하람비 교회 건설 운동에 대한 미국 교회의 기부의 일환으로 되갚아질 예정이었다.
=> 구호와 기부를 빙자한 서구 교회의 자본은 개발도상국의 정신적 통제권을 장악하려는 투자 행위였다. 대한민국 개신교의 극우주의 행태의 기원은 미국 개신교임을 드러내는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가.
p647 그것은 그가, 즉 무니라가 아니었다. 그는 단지 법에 적극적으로 복종하여 그것을 수행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지상에서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조롱하는 매음굴을 불살라 버리라는 명령이 그에게 내려진 것이었다.
=> 무니라는 자신의 끔찍한 방화 살인을 '신의 명령'이자 '법'으로 정당화했다.
p652 결국 관광 산업은 이 나라의 최대 산업 중 하나였다. 부정적인 것들이 없는 곳이 어디 있던가. 경찰관으로서 그가 해야 할 일은 안정과 법과 질서가 유지되도록 돕는 것이었다. 거기에 모든 산업과 외국인의 투자 성공 여부가 달려 있었다.
=> 공권력이 자국민의 안위가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와 관광객의 구미'를 맞추기 위해 작동했다. 기형적인 산업 구조와, 그 체제를 지켜야 하는 종복의 기괴함.
p656 어머니만이 아니라 모든 이웃들이 작당을 해서 케냐에 있는 돈의 자기 몫을 갖지 못하게 한다고 했다. 이제 남은 사람은 완자뿐이라고 했다. 갑자기, 지폐를 꺼내던 그녀의 손이 굳어 버렸다.
=> 배금주의의 독기가 천륜과 지역 공동체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돈에 대한 집착은 자녀로서 마지막 정마저 사라지게 했다.
p673 작가는 진공 속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 속으로 태어나 그 역사를 자양분으로 살아가는 존재다. 그래서 작가가 어떤 역사 속으로 태어났느냐 하는 것은 그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p676 그가 한국 집권층의 타락을 풍자한 김지하의 「오적」에서 영감을 얻어 『십자가 위의 악마』를 쓰게 된 것은 이듬해까지 이어진 감옥 생활을 통해서였다.
=>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후에 고 김지하 시인이 한국 집권층에 의탁한 사실을 작가가 알았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p677 그런데 ‘피의 꽃잎들’이라는 제목은 궁극적으로, 벌레들의 습격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결국에는 그것에 맞서 싸우는 용기와 기개를 갖게 되는 민중의 생명력과 저항 정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p680 흥미로운 것은 살인 사건의 전모를 풀어헤치는 과정에서 케냐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조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소설에서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 자체가 식민 지배와 자본의 구조적 악을 규명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역사 소설과 추리 소설의 성격이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p680 스토리는 일모르그라는 작은 농촌 마을을 좀처럼 벗어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모로그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케냐라는 나라의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반영한다.
p681 작가는 그들이 정치적으로 눈을 뜨는 과정을 풍자와 해학, 우화, 구전의 요소들을 적절히 섞어 가며 감동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자신이 왜 케냐, 아니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작가인지를 증명해 보인다.
=> 이 책을 읽음으로써 아프리카 문학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다른 훌륭한 작품들도 아프리카 문화권에 많을 텐데, 지금까지도 큰 조명을 받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p681 현실에 대한 분노나 정의에 대한 신념이 때로는 예술적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소설의 경우에는 오히려 두 가지가 상승 작용을 일으켜 소설의 완성도를 높이는 효과를 발휘한 것처럼 보인다.
=> 시대 상황을 작품에 반영하는 것이 작가에겐 큰 만족을 줄 수 있지만, 독자에겐 거부감을 줄 수도 있다.
p682 그리고 전에도 이 소설을 읽었지만 번역을 해 가는 과정에서 여러 번 읽으며, 케냐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이 우리 역사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번역하는 작업은 우리의 근대사를 돌아보는 계기이기도 했다.
=> 식민주의, 자본주의의 폐해, 지배 수단으로 사용되는 개신교 등 우리나라의 근대사와 겹치는 점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피의 꽃잎들
응구기 와 시옹오 지음
민음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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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 코멘트]
# 한의 이중적 의미
'한가할 한(閑)'을 쓴 한중록은 표면적으로 '한가한 중에 쓴 기록'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평생 왕실에서 온갖 풍파를 겪어야 했던 혜경궁의 일생과 책 안에 담긴 파란만장한 내용을 생각하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역설적 제목이다. 그래서 후대는 원통할 한(恨)을 대신 넣은 한중록(恨中錄), 혹은 피를 토하고 눈물을 흘리며 쓴 글이라는 뜻의 읍혈록(泣血錄)이라 불렀다. 실제로 후자가 저자의 심경에 더 가깝다. 담담한 회고의 겉 아래 원통함이 끓고 있다.
# 한중록은 연대기였다
『한중록』은 한 번에 쓴 한 권의 책이 아니다. 네 차례에 걸쳐 쓰였고, 각각의 집필 동기가 다르다. 평온한 시기에 작성해 담담하게 삶을 되돌아본 1편과 달리, 순조 즉위 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통해 자신의 친정을 몰락시키던 시기에 쓴 2~4편에는 벽파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다. 정조 시대에 조카의 청으로 쓴 첫 회고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두루뭉술하게 비껴간다. 아들 정조가 죽고 남동생 홍낙임이 사사된 뒤의 글들은 친정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정순왕후 사후에 쓴 마지막 부분에서야 임오화변의 경위가 상세히 풀린다.
같은 사건에 관한 서술의 온도가 편마다 달라지는 것, 앞부분에서 회피한 것을 뒷부분에서 폭로하는 것, 책의 후반부에서 앞의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이 '한 저자의 일관된 서술'이 아니라 '십수 년에 걸쳐 달라진 처지에서 쓴 네 개의 텍스트'인 책의 성격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변화가 책의 사료로서 성격을 드러낸다. 혜경궁이 무엇을 언제 말할 수 있었고 없었는가는, 그녀의 처지가 어떻게 변했는가의 지표이기 때문이다.
# 역사서로서 책의 가치
이 책의 역사적 가치는 사도세자 관련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1차 사료임에 있다. 한중록을 제외하면 상세한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뒤주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이전 십수 년간 부자 사이에 무엇이 쌓였는지를 곁에서 본 사람의 증언은 이것뿐이다. 관련 정신의학적 연구에 따르면, 한중록의 정신 증상 기술은 상당히 상세하고 구체적이다. 그 때문에 저자가 순전히 상상력으로 허구를 기록했다고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
# 친정을 변호하기 위한 책
하지만 저자의 집필 의도에 또 다른 면이 있다, 책은 친정을 신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다는 것이 주된 평가다. 저자는 홍봉한이 뒤주를 바쳤다는 혐의를 부인하고 아버지의 결백과 친정의 신원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소망을 담았다. "사도세자의 광증은 안타깝지만 죽음은 어쩔 수 없었으며 홍씨 가문은 책임이 없다"라는 관점이 책에 들어 있다.
# 사도 세자의 정신병 기록은 위증이 아니다
때문에 책을 '친정 옹호를 위한 위작'으로 몰아 사도세자의 광증 자체를 부정하고 그를 노론 음모의 희생양으로만 보는 극단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사도세자의 정신병 기록은 한중록 외에도 영조의 묘지문, 사도세자의 편지, 정조의 발언 등 다수의 사료에서 확인된다. 학계 주류는 영조-사도세자의 부자 갈등과 사도세자의 병증을 기본 전제로 하되, 일부 당파 인물들의 정치적 개입을 복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 정신병리학서로서의 책
책을 역사서나 문학서로 읽다가 영조의 학대와 사도세자의 비행을 읽으며 마음이 피폐해짐을 느낄 수 있다. 아이가 태어나 아버지에게 방치되고, 열 살에 신하처럼 엎드리고,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하고, 죄인 심문장에 끌려다니고, 결국 아버지가 칼을 두드리는 앞에서 뒤주로 들어감으로 생을 마감한다. 혜경궁은 이 서사를 곁에서 본 사람의 경험으로 써 내렸다. "그 모습을 내 어찌 기록할 수 있으리오"(178쪽)라며 붓을 멈춘 것은 저자의 한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때문에 이 책은 정신병리학서로서도, 양육 관련 서적으로도 읽어봐야 할 책이다. 한중록은 한 인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부서지는가에 대한, 조선이 남긴 가장 정밀한 기록이다.
[발췌한 책 속 문장]
p24 그 날부터 부모님께서는 내게 말씀을 고쳐 존대를 하시고, 일가 어른들도 공강하며 대해 주시므로 나의 마음은 불안하고 편치 않았으며 슬픔을 형용할 수 없었다. 아버지께서는 근심 걱정을 하시며 훈계의 말씀이 많으셨다. 내가 무슨 죄를 진 것처럼 몸 둘 곳을 몰라 하면서도 부모님 곁을 떠날 일이 서러워 어린 마음에 애가 타고 만사에 아무런 흥미도 없었다.
=> 아동의 관점에서 부모님이 갑자기 자신에게 존대하며 여러 훈계를 할 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부모의 존대는 아동에겐 또 다른 벌이 아니었을까.
p32 “신하의 집이 임금의 외숙이 되면 은총이 따르고, 임금의 은총이 따르면 문벌이 성하고, 문벌이 성하면 불행을 부르는 법입니다. 내 집이 도위 자손으로 나라의 은혜를 대대로 끝없이 입었으니 나라를 위해 끓는 물, 타는 불 속을 어찌 사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백면서생이 하루아침에 왕실의 친척이 되니, 이는 복의 징조라기보다는 화의 근원입니다. 그러니 오늘부터 근심과 두려움으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주의를 주시면서 평상시의 모든 예의범절을 가르쳐 주셨다.
=> 홍씨 일가의 잘잘못을 떠나서, 여러 정쟁과 풍파를 겪은 역사를 돌이켜 보면, 혜경궁의 입궁은 비극이지 않았을까.
p74 만일 부모님 곁을 떠나지 않게 하여 모든 일을 자애와 가르치심으로 병행하였더라면, 너그럽고 어진 도량과 재능의 성취가 놀라웠을 것이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되지 못하고 일찍 멀리 떠나 계신 것으로 인하여 작은 일이 크게 되어, 마침내 말하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 사도세자의 비극은 어느 하루의 사건이 아니라 유아기부터 축적된 결핍과 학대의 누적에서 비롯되었다.
p76 저승전으로 말하면, 어대비께서 계시던 집인데 안 계신지 얼마되지 않았고, 저승전 저편의 취선당이라는 집은 희빈이 갑술년(1694) 후에 머물리 인현황후를 저주하던 집이다. 그런데도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이런 황량한 전각에 혼자 두시고 희빈의 처소는 소주방을 만들어, 잡수시는 음식을 만드는 곳으로 삼으니 어찌 이상한 일이 아니리오.
=> 풍수지리가 21세기까지 살아남은 이유.
p78 그 뒤로 영조께서는 마음이 몹시 분하여 동궁에 가고 싶으시나 그 내인들이 보기 싫어 동궁 처소에 가시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 내인들을 모두 내쫓지 못하시고 도리어 동궁을 그런 괴이한 내인들이 미워 동궁을 드물게 보러 다니시니 어찌 갑갑한 일이 아니겠는가!
=> 영조는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문제가 있는 곳을 방치했다.
p80 막 배우실 시기에 괴이한 내인이 그 불길한 장난감을 노시게 인도하니, 본래 선천적으로는 영웅의 기상이신데 그런 놀음을 좋아하시다가 그 놀음으로 말미암아 나중에 차마 말 못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 남편의 본성은 훌륭했으나 환경이 그를 망쳤다는 저자의 변호는 그 환경을 만든 영조에 대한 우회적 고발이다.
p81 경모궁의 도량과 재능은 훌륭하시나 모든 일에 영조의 성품과는 달랐다. 보통 때 물으시는 말씀이라도 즉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대답하시고, 당신의 소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대답하면 어떨까 하시어 즉시 대답하지 못하셨다. 그래서 늘 영조께서 갑갑해 하셨으니, 이 일도 화변의 큰 실마리가 되었다.
=> 사도세자는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버지 앞에서 어떤 답이 맞을지 재느라 늦은 것인데, 영조는 그를 우둔함으로 읽었다. 기질의 불일치가 화변의 큰 실마리가 된 것이다.
p81 하지만 갑갑하고 애달프게도 영조를 모시고는 두렵고 어려워 대답을 재빠르게 못하셨다. 영조대왕께서 한 번 갑갑해 하시고 두 번 갑갑해 하셔서, 이로 인해 몹시 화를 내시고 근심도 하셨다. 영조께서는 이럴수록 가까이 두시고 친히 가르쳐서 서로간의 인정과 도리가 친하게 될 방법은 생각지 않으신 채, 항상 멀리 두시고 동궁 스스로 잘하여 당신의 뜻에 맞으시길 기대하시니, 이럴 때 어찌 탈이 나지않으리오.
=>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사랑을 주지 않으면서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기를 요구했다.
p82 그렇게 점점 서먹하게 지내시다가 서로 보실 때는 여조께서는 꾸중이 사랑보다 앞서시고, 아드님은 한 번 뵙는 것도 조심하시고 매우 두려워하심이 무슨 큰일이나 치르시는 듯싶었다.
=>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 의례가 되고, 의례는 곧 공포가 되었다.
p82 경모궁께서도 아버지인 영조께 친근함보다는 위엄이 많아 10살 된 어린애인데도 감히 마주 앉지 못하고 신하들처럼 몸을 굽히고 엎드려 뵈었으니 어찌 그리도 지나치셨던가 싶다.
=> 왕실 가족의 관점에서도 사도 세자의 엎드림은 과해 보였던 것일까.
p85 한 가지 일만 생각해도 지극히 서러운데, 영조께서는 어찌된 생각이신지 그 아드님을 조용한 때에 친근히 앉히시고 진정으로 교훈하시는 일은 없고, 멋대로 내버려두어 아는 체도 않으시다가, 늘 남들이 모인 때에 흉을 보시는 듯 말씀하셨다.
=> 아버지에게 주목받는 유일한 순간이 망신당하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사도세자는 영조의 시선을 공포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p85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도 여러 신하들이 많이 모인 때 굳이 아드님을 부르셔서 글 뜻을 물으시니, 세자가 자세히 대답하지 못할 것이라도 야속하게 물으시곤 하셨다. 본래 부왕 앞에서는 분명히 아시는 것도 주뼛주뼛 하시는데, 여러 사람이 모인 가운데서 어려운 것을 일부러 물어보시니, 더욱 두렵고 겁이 나서 대답을 못하면 남이 보는 데서 꾸중도 하시고 흉도 보셨다.
=> 공포로 인해 제대로 된 대답을 못하는 것은, 학습된 무기력의 후유증이 아니었을까.
p86 화평 옹주가 살아 계셨더라면 부자간에 자애와 효도가 있게 하셨을 텐데, 착하신 옹주가 요절하신 것이 어찌 나라의 운명에 관계치 않으리오. 지금 생각해도 애석하고 마음이 아프다.
p87 화협 옹주는 계축년(영조 9년) 생인데 태어날 때 영조께서 또 딸인 것이 애달파서 그러셨는지, 그 용모가 빼어나고 효성도 있어 아름다우나 부왕의 사랑을 받지 못하였다. 영조께서는 그때 아들이 아닌 것을 애달파하여 심지어 화평 옹주와 형제를 서로 한 집에 있지 못하게 하셨다. 화평 옹주는 혼자 사랑을 받는 것이 마음속에 은근히 고통스러워, 부왕께 그러지 마시라고 아무리 여쭈어도 듣지 않으셔서 어쩔 수 없었는데, 화협으로 인해 그 남편인 영성위까지 사랑을 못 받았다.
=> 영조의 편애가 세자만이 아니라 딸들 사이에도 있었다. 편애받은 화평옹주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영조의 편애는 받는 자에게도 못 받는 자에게도 상처였다.
p88 불길한 말을 주고받거나 들으시면 들어오실 때 양치질을 하시고 귀를 씻으신 다음, 먼저 사람을 부르시고 한 마디라도 처음 말씀을 하신 후에야 안으로 들어오셨다. 좋은 일과 좋지 않은 일을 하실 때는 출입하시는 문이 다르시고, 사랑하는 사람의 집에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지 못하게 하셨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다니는 길에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다니지 못하게 하시니, 몹시 두려우나 애정과 증오의 뚜렷함이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일이었다.
=> 영조의 편집증적인 세계관에서 세자는 불길한 쪽으로 가까워졌다.
p89 영조께서는 대리 전이라도 사형수를 다시 심리하거나 형조(刑曹)의 일 또는 죄인을 다스리는 대궐에서 말하는 불길한 일에는 자주 세자를 불러 옆에 있게 하셨다.
=> 사람이 죽는 것을 일상적으로 보는 것이 아버지와 동행이 유일하게 허락된 어린 사도세자의 시간이었다.
p91 이처럼 저렇게 한 일은 이렇게 안 했다고 꾸중하시고, 이렇게 한 일은 저렇게 안 하셨다고 꾸중하시어, 이 일 저 일 모두 심하게 화를 내시며 마땅치 않게 여기셨다. 심지어 백성이 춤고 배고프거나 가뭄이 들거나 천재지변이 있어도 꾸중하셨다. “소조의 덕이 없어서 그렇다.” 그러므로 소조꼐서는 날이 흐리거나 겨울에 천둥이 치면 또 무슨 꾸중이나 나실까 근심하시고 염려하여 일마다 두렵고 겁을 내셨다. 그러다 마침내 사악하고 망령된 생각이 다시 들어 병이 점점 깊어지는 징조가 나타났다.
=> 통제 불가능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우는 것만큼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어떻게 해도 틀린 상태에 있던 사도 세자의 광증은 이중구속의 누적에서 자랐다.
p95 그 해 9월 12월 온양에 거동하시는데, 11일에 영조와 선희궁께서 안색이 한편 슬프고 한편 기쁘신 모양을 하고 옷서 갑자기 자는 아기의 옷깃을 풀고 벗겨 보셨다. 과연 몸에 표가 있으므로 참혹히 여기시고 분명히 옹주가 환생한 것으로 믿으셨다. 그리고 영조께서는 그 날부터 아이를 갑자기 귀중히 여기시어 화평 옹주 형제에게 하시듯 사랑하셨다.
=> 영조의 사랑이 얼마나 자의적이고 미신적인 근거에 있는지 나타난다.
p98 그 해 12월, 사헌부 홍준해의 나라 일에 관한 상소로 영조께서 대단히 격노하시어, 소조를 선화문에 굽어 엎드리게 하시고 엄격하게 가르치셨다. 그때는 경모궁께서 큰 병환 끝으로 겨울 추위가 혹독한데도 그 눈 속에서 처벌을 기다리셨다. 엎드려 계신 데 눈이 쌓여도 움직이지 않으시니, 인원황후께서 일어나라 하셨으나 듣지 않으셨다. 영조께서 지나친 노여움을 가라앉히신 후에야 일어나시니, 타고난 성질이 침착하고도 무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p100 경모궁께서는 그 병환이 재발하지 아니할 때는 인자함과 효성스러움을 다하시다가, 병환이 재발하시면 곧 딴사람 같으셨으니 어찌 이상하고 서러운 일이 아니리오.
=> 자애로운 남편이 어느 날 딴사람이 되는 것을 반복해서 겪은 혜경궁.
p104 을해년 2월에 윤지 등의 반역 음모 사건이 나서 5월까지 영조께서 죄인을 친히 심문하셨는데, 그때 역적을 사형시켜 조정의 질서를 세우실 때면 동궁을 내보내서 보게 하셨다. 날마다 친히 심판하시다가 들어오시며 인정 후나 삼사경이 될 때도 있으나, 영조께서는 하루도 거르지 않으시고 동궁을 부르셨다. “밥 먹었느냐?” 이렇게 물으신 후 동궁께서 대답하시면 즉시 가시나, 그 대답을 시키셔서 그 날 죄인 심문하신 일을 씻으시고 가시려는 뜻이셨다. 영조께서는 동궁을 좋고 길한 일에는 참석하지 못하게 하시고 좋지 못한 일에는 간섭하게 하셨다.
=> 폭력성이 극한에 달하는 환경에 노출되었으니, 사도 세자가 인명을 경시하게 된 것도 정해진 순서가 아니었을까.
p124 영조께서는 사람이 모인 곳과 내인들이 많은 데서 늘 동궁의 허물을 드러내시었다. 통명전에는 인원왕후전 내인이 가득하였는데, 6~7월의 한창 더운 가운데 여러 가지로 동궁을 질책하시니, 그대로 격화와 병환이 점점 더하셨다. 그래서 경모궁께서 내시들에게 매질하시는 것이 그때부터 더하시었다.
=> 내인은 사도세자가 폭력을 가할 수 있을 만큼 신분이 낮았으며. 그들도 자신을 낮게 보는 피해의식이 사도 세자의 폭력성이 도지게 한 것이 아닐까. 그는 폭력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그를 자기보다 약한 자들에게 옮긴 가해자였다.
p129 아버지께서 동궁이 문책을 받으신 것과 우물에 빠지신 일을 보시고 임금에 대한 충성심과 나라를 사랑하심에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시어 입장을 돌아보지 않으시고 임금께 아뢰었다. “옛말에 ‘임금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몸이 단다’고 하였습니다. 임금과 신하간에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부자간의 천성은 이를 것이 없습니다. 동궁께서 사랑을 잃으셔서 전전하여 저러시니, 이런 곡절을 생각하시길 천만번 바라옵니다.” 영조와 아버지 사이에 의사가 잘 통하셔서 지금까지 추궁 한 번 당하시는 일이 없더니, 그 날 아버지께서 아뢰는 말씀에는 격노하시고 나까지도 좋지 않게 생각하셨다. 그래서 내 죄를 겸하여 선친을 면직하시고 엄교가 대단하시니, 선친께서 곧바로 나가셔서 성밖의 월과계라는 곳에 계셨다.
p138 그 해에 장마가 지루하게 내리다가 참배하는 날 마침 비가 매우 많이 쏟아졌는데, 대조께서는 날씨가 이런 것은 소조를 데려온 탓이라며 능에 미처 가지도 못하시어 동궁을 쫓아보냈다. “다시 들어가거라.” 그리고 임금이 타는 수레만 가셨다. 소조께서 능에 참배하려 하시다가 못 하시니, 백성들의 생각인들 오죽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 세자를 ‘불길한 존재’로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 영조. 조선의 백성에게 사도세자의 위신을 꾸준히 깎아온 존재는 그의 아버지였다.
p157 지금 나의 이 말이 사람의 도리로서 해선 안 될 말이겠지만 세상에 없는 일을 겪으시니, 차라리 그 병환으로 돌아가셨더라면 여읜 아픔만 있지 않겠는가. 당신의 설움과 처자의 지극한 원이 이 정도이며, 사건의 망극함과 사람의 상함과 내 집의 원통함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하늘의 도리를 알지 못할 일이로다.
=> 사도세자가 병으로 명을 달리했다면, 뒤주에 갇히는 죽음은 없었겠지만, 그 뒤주가 영조의 학대를 더 알리게끔 한 것도 아이러니. 병사였다면 쓸 필요가 없었던 변명과 증언이, 뒤주로 인해 존재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p158 “자네는 생각하지 못하네. 나를 미워하심이 점점 심하여 어려우니, 나는 폐하고 세손은 효장세자의 양자로 삼을 것일세.” 소조께서 그 말씀을 하실 때는 병환증세도 없고 처량하게 그러시니, 그 말씀이 슬프고 서러워 내가 다시 말씀드렸다. “그럴 리 없습니다.” “두고 보소. 자네는 귀여워하시니, 내게 딸린 사람이지만 자네와 자식들은 예사롭고 나만 미워하여 이리 되고 병이 이러하니, 어디 살게 하겠는가.”
=> 죽음을 예견한 사도 세자의 체념.
p160 사현합에서 대소조가 만나시니, 대조의 마음이 어찌 순순히 살펴 보시겠는가. 하지만 이미 자식의 큰일을 보이려 데려와 계셨으니, 그 통정 옥관자가 무관의 관자처럼 크고 괴이하여 왕세자답지 않으나, 그보다 더한 일도 많은데 그 관자 일쯤이 무슨 큰일이겠는가? 그런데 미처 처녀가 들어오기도 전에 그 관자일로 대조께서 노하여 꾸짓으시며 소조께 보지 말고 돌아가라고 하셨다. 그 일은 실로 서럽고 그렇게까지 안하셔도 되는 일까지도 차마 어찌 그러시는가 싶어서 서러웠다. 그래서 소조께서는 며느리를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셨으니, 그 심정이 어떠하셨으리오. 그런데도 그 화증을 안 내시고 공손히 내려가셨는가 싶다.
=> 사도 세자의 자존감은 어디까지 떨어졌을까.
p169 하루에도 대궐에서 죽은 사람을 여럿 쳐내니, 온 나라의 인심이 소조를 두려워하고 원망하여 발을 잘못 디디며 언제 죽을지 몰라 하였다.
=> 사도세자는 피해자이면서 살인을 수도 없이 저지른 가해자였으며, 그의 아내는 두 얼굴을 모두 기록했다.
p174 그 날 아침, 대조께서 무슨 까닭인지 옥좌에 나와 앉으시려 경현당 관광청에 계셨다. 그러자 선희궁께서 가서 울면서 고하셨다. “소조의 병이 점점 깊어 바라는 것이 없으니, 소인이 차마 이 말씀은 모자 지간의 도리로 보아 못할 일이지만, 옥체를 보호하고 세손을 건져 종사를 평안히 하는 일이 옳으니 대처분을 하소서.”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 “부자의 정으로 차마 이리하시나 병으로 그러하니 병을 어찌 책망하오리까? 처분은 하시더라도 은혜를 드리우셔서 세손 모자를 편안케 하소서.” 내가 차마 그 아내로서 이를 옳다고는 못하나, 일인즉 어쩔 수 없는 지경이었다.“
=> 자식을 죽여야지만 손자의 목숨을 보전할 수 있는 현실 속에서 어머니로선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을까. 그리고 남편의 죽음을 막지 못한 혜경궁은 얼마나 한이 서렸을까.
p175 대조께서 전부터 선원전에 가시는 길이 두 길인데, 만안문(동문)으로 드실 때는 탈이 없고 경화문으로 들어오시면 탈이 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경화문으로 가자 하셨다. 소조꼐서 11일 밤은 수구로 다녀오셔서 몸이 물에 빠지시고 12일은 통명전에 계신데, 그 날 대들보에서 부러지는 듯이 대조의 행차 소리를 들으시고 탄식하셨다. ”내가 죽으려나 보다. 이게 웬일인고!“
p178 그러하다 제 시간이 늦어지고 대조의 재촉이 심하여 소조께서 나가셨다. 대조께서 휘녕전에 앉으시어 칼을 안으시고 두드리시며 그 처분을 하시게 되니, 그지없이 망극하여 그 모습을 내 어찌 기록할 수 있으리오.
=> 그 현장의 미시적인 내용을 다 적은 것보다 뒤이은 침묵이 그날의 공기를 더욱 극적으로 전달한다.
p335 내가 10살인 어린 나이에 궁궐에 들어와 이제 거의 60년이 지났다. 나는 인생은 험난한 운명과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내며 유례없는 고통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말로 다할 수 없는 덧없고 기구한 사건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야말로 살고 싶지 않은 날들을 아들 때문이라는 이유를 만들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또한 선왕의 지성스러운 효도로 차마 목숨을 끊지 못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니, 하늘이 갈수록 나를 밉게 여기셔서 차마 당하지 못할 참혹한 화를 당하는가 싶다.
p355 그러나 특별히 나로 인하여 몸을 자유롭게 못하이서 유례업는 형편을 다 겪으셨다. 결국에는 처지가 망측하여 원한을 품으신 채 명을 재촉하시니 임금의 친척이 되신 효험은 적고 해로움은 많으셨다. 이것이 다 나 때문이시니 내 일생의 죄스럽고 억울하고도 원통해 하는 것이다.
p398 <<한중록>>은 혜경궁 홍씨가 지난날 몸소 겪었던 일들을 서술한 것으로, 남편 사도세자가 부왕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참변을 주로 하여, 공적, 사적 연루(連累)와 국가 종사(宗社)에 관한 댕쟁의 복잡 미묘한 문제 등 여러 사건들 속에서 살아온 일생사를 순 한글의 유려한 문장으로 묘사한 파란만장한 일대기이다. 문체에 등장인물의 성격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으며, 이 글을 통하여 조선 여성의 이면사를 엿볼 수 있다는 점과 당시의 정치풍토를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한중록
혜경궁 홍씨 (지은이), 신동운 (옮긴이) 지음
스타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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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 코멘트]
# 시간과 공간의 교차
책의 형식에 있어 중요한 특징은 시간과 공간의 유연한 교차다. 원래 제목이 '어떤 사람의 머릿속(The Inside of His Head)'이었다는 사실은 형식의 의도를 정확히 말한다. 무대는 객관적 현실이 아니라 윌리의 의식이다. 벽 없는 집은 과거와 현재를 가르는 벽이 무너진 그의 정신 상태를 시각화한 것이다
# 희곡의 형식이 주는 두 가지 효과
이 형식은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만든다. 첫째, 시점이 오가는 와중에 부자 관계가 어떻게 망가졌는지가 서서히 드러난다. 관객은 보스턴 호텔에서 윌리와 비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극 후반에야 알게 되며, 앞의 모든 장면이 다시 읽히게 된다, 둘째, 윌리에게 과거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현재를 잠식한다. 그가 회상 속으로 도망칠 때마다 도피는 윌리의 병임을 알게 된다. 을 목격한다. 저자는 이렇게 개인의 정신적 방황을 그리는 드라마와 사회극을 하나의 무대 위에 합치고, 허상과 현실의 대립이라는 현대극의 주제를 무대 장치 자체로 구현했다.
# 윌리 로먼의 이중성
윌리는 그는 예순이 넘도록 가족을 위해 일한 헌신적 가장인 동시에, 스타킹을 기워 신는 아내를 두고 내연녀에게 새것을 선물하는 불륜을 저지른다. 아들에게 그릇된 성공 관을 주입해 인생을 망가뜨린 아버지이자, 그에게 남길 것이라곤 보험금뿐이라 여겨 차를 몰고 죽음으로 향하는 아버지다.
그리고 "사람은 과일이 아니다"라고 사장에게 호소하지만 정작 이웃 찰리에게는 무식한 놈이라 소리치고, 아들에게는 눈물을 명령한다. 인류애를 호소하는 자가 인류애를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존중받지 못하는 자는 존중을 요구할 줄은 알아도 존중을 줄 여유는 없다. 저자는 악순환을 미화하지도, 단죄하지도 않으며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 할부의 결말이 주는 아이러니
작품의 결말은 현대극에서 가장 잔인한 아이러니 중 하나다. 윌리의 보험금으로 그의 아내 린다는 마지막 대출을 갚아 드디어 집이 온전히 가족의 것이 된다. 25년 할부가 끝나는 날 그 집의 주인이 죽는다는 것은 윌리의 대사인 "할부가 끝나면 물건도 생명이 끝난다"가 냉장고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적중한 것이다.
# 작품 속 제한된 여성의 주체성
이 작품에서 여성은 헌신적 아내(린다)와 성적 대상(내연녀, 해피가 유혹하는 여자들)으로 이분되어 있다. 린다에게는 남편을 지키는 것 외의 욕망이 부여되지 않는다. 그녀는 극 중 최대 피해자이면서도 끝까지 남편의 불륜을 알지 못했다. 극적 아이러니이지만 동시에 린다라는 인물의 주체성이 서사에서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 현재에도 통용되는 울림
이 작품의 이야기가 현재에도 유효하다 "34년을 바친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잘리는 예순의 남자, 성과가 아니라 인맥과 인상으로 성공한다고 믿다 무너지는 사람, 자식에게 자기 못다 이룬 꿈을 투사하는 부모, 할부금과 함께 끝나는 삶“ 이 중 어느 것이 1949년의 뉴욕에만 속하는가. 누구나 윌리 로먼이거나, 그의 자식이거나, 그의 배우자일 수 있다.
[발췌한 책 속 문장]
p17 윌리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래서 이 나라가 망가지고 있다고! 인구가 통제 불가능이야. 경쟁 때문에 사람이 미칠 지경이지! 아파트에서 나오는 악취 좀 맡아봐! 다른 쪽에 또 아파트가 하나 더 있지.”
=> 20세기도, 21세기에도 뉴욕은 언제나 인구 과밀로 골머리를 썩인다.
p86 윌리 “그런 물건들은 유효 기간을 정해 놓고 나오나 봐. 할부가 마침내 끝나면 물건도 생명이 끝나도록 말이야.”
=> 가계부는 할부와의 동행이며 싸움이다.
p96 윌리 “그 때엔 인간미가 있었단 말입니다, 사장님. 영업할 때도 존경과 우정과 감사가 있던 시절이란 말입니다. 요즘은 그런 것일랑 깡그리 사라지고 말라비틀어지고, 우정이라든가 인간미가 끼어들 여지는 전혀 없단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 과거 미화와 라떼 제조는 동서고금을 막론.
p97 윌리 “저는 이 회사에서 삼십사 년을 봉직했는데 지금은 보험금조차 낼 수 없는 형편입니다! 오렌지 속만 까먹고 껍데기는 내다 버리실 참입니까. 사람은 과일 나부랭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 후술할 윌리의 대사를 생각하면 그의 인류애 호소가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알게 된다.
p102 윌리 “유명한 대학 세 곳에서 비프더러 돈 한 푼 들일 것 없이 들어오기만 해 달라고 굽실거려요. 그런 대학만 들어가면 그다음부터는 못할 게 없죠. 그런 동네는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아느냐, 얼굴에 미소를 짓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곳이죠.”
=> 정작 윌리는 껍데기에 의존하며 자신과 가정의 파멸을 맞게 된다.
p106 윌리 “아, 그래? 이 경기가 끝나고 나면 찰리 자네는 완전히 기가 죽을걸. 비프는 레드 그레인지에 버금가는 최고의 미식축구 선수로 불리게 될 거야. 연봉만 25,000달러는 될 거라고.”
=> 윌리에게 아들의 재능은 ‘이웃을 기죽일 것, 연봉 25,000달러’로 드러나듯이 타인과 비교와 재물의 계산 속에서만 의미가 있었다.
115p 윌리 “나는 자네의 빌어먹을 일자리 따위 필요 없어!”
찰리 “자넨 도대체 언제쯤 어른이 되려고 그러나?”
윌리 “(분노하여) 야, 이 무식한 놈아, 한 번만 더 그런 소리하면 한 대 얻어맏을 줄 알아! 네 덩치가 아무리 커도 상관없어! (싸울 태세를 취한다.)”
=> 윌리의 알량한 자존심. 찰리에게 돈을 받아오면서도 정작 그가 제안하는 일자리는 거부한다.
128p 윌리 “난 해고당했고, 뭔가 조그만 좋은 소식이라도 들고 들어가 너희 어머니에게 얘기해 주고 싶다. 너희 어머니는 내내 기다려 왔고 마음고생을 했으니까. 요지인즉 내 머릿속엔 더 이상 이야기할 만한 거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거야, 비프. 그러니 사실이니 뭐니 하는 말로 내게 설교하려 들지 마라, 나는 관심 없어. 자, 내게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더라?”
=> 윌리의 이야깃거리 소진과 가정 파탄은 그의 독불장군 태도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p144 윌리 “그만 울고 내가 하라는대로 해. 명령하고 있잖아. 비프, 내 말대로 해! 내가 말하면 너 이렇게 행동하니? 왜 질질 짜고 그래! (비프를 안는다.) 얘야, 네가 크면 다 이해하게 될 거야.”
=> 자녀가 부모의 외도를 목격하는 것이 정신적 외상을 크게 준다는 여러 연구가 있다. 비프의 방황은 윌리의 불륜과 뻔뻔함으로부터 만들어졌다.
p157 윌리 “기차 안이든, 산속이든, 골짜기든, 네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반항심으로 네 인생을 두 동강 냈다는 것을 알길 바란다.”
=> 윌리는 아들의 인생 파탄을 반항심의 결과로 규정한다. 호텔에서 자신의 불륜이 준 충격은 문장 어디에도 없다.
p173 찰리 “세일즈맨은 구두를 신고 하늘에서 내려와 미소 짓는 사람이야. 사람들이 그 미소에 답하지 않으면, 그게 끝이지. 모자가 더러워지고, 그걸로 끝장이 나는 거야.”
p179 아서 밀러는 이처럼 개인과 국가의 기억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펼쳐 보이는데, 그것이 제한된 시간과 공간을 유연하게 넘나들며 개인의 정신적 방황을 그리는 드라마와 사회극의 형식을 고루 취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p180 이처럼 현실 사이로 허상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을 시각적인 무대 활용을 통해 극명하게 보여줌으로써, 밀러는 현대극의 주요한 주제 중 하나인 허상과 현실의 대립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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