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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지은이), 황문수 (옮긴이) 지음
문예출판사 펴냄

[독서 후 코멘트]

# 자본주의 비판서
『사랑의 기술』의 또 다른 특징은 신랄한 자본주의 비판서라는 점이다. 프롬의 주장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표준화되고 예측할 수 있으며 쉽게 교환되는 인간을 필요로 한다. 그 결과 인간은 '상품'이 되고, 사랑마저 '거래'가 된다. 서로의 시장 가치를 계산해 "살 수 있는 최상의 대상"을 찾았다고 느낄 때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상품의 가치는 시간이 지나면 떨어지고, 가치가 떨어진 상품은 외면당하므로 거래로 이루어진 사랑은 필연적으로 파탄에 이른다.

#비판점
첫째로는 저자의 고정된 성 역할 가치관이다. 프롬은 '어머니의 무조건적 사랑 / 아버지의 조건적 사랑'이라는 이분법으로 1950년대의 가족 모델을 보편적 진리로 전제한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저자는 모성과 부성을 본질화하고 있다.
둘째로는 처방의 추상성이다. 사랑의 실천에 대해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훈련, 집중, 인내, 믿음 같은 원론적인 덕목들이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라는 물음 앞에서 책은 종종 침묵하거나 선문답으로 답한다. 물론 이는 처방을 주지 않겠다는 저자의 의도지만, 명쾌한 답을 바라는 처지에선 공허하다.

[발췌한 책 속 문장]

P4 사랑의 기술에 대한 편리한 지침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실망할 것이다. 사랑은 스스로 도달한 성숙도와는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탐닉할 수 있는 감상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이 이 책의 의도이기 때문이다.
=> 사실 저자의 이름을 고려하면 책이 단순히 ”기술“ 측면에서 서술된 것이 아님을 예상할 수 있다.

P16 사람들을 특히 매력 있게 하는 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 시대의 유행에 달려 있다.
=> 구닥다리라 놀림받던 패션도 몇 년이 지나 유행이 되기도 하는 법.

P35 인간은 ‘평균화’되고 노동력 또는 사무원이나 관리자의 관료적 힘의 일부가 된다.
=> 프롬은 근대가 내세운 '평등'의 이상이, 실제로는 '차이의 제거'와 '규격화된 인간의 대량생산'으로 변질되었다고 봤다.

P35 그들은 모두 조직의 전체적 구조에 의해 지시된 일을 지시된 속도로 지시된 방식에 따라 수행하고 있다.
=> 겉만 다를 뿐 수억 년 동안 우주는 이런 구조로 살아오지 않았을까.

P40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고립감과 분리감을 극복하게 하면서도 각자에게 각자의 특성을 허용하고 자신의 통합성을 유지시킨다. 사랑에서는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상대와 결합하는 역설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보는 저자의 관점.

P86 성애는 배타적이지만 다른 사람을 통해 전 인류를, 모든 살아 있는 자를 사랑할 수 있다.

P93 이기심과 자기애는 자기 자신을 엄청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사랑하지 않는다. 사실상 그는 자기 자신을 미워한다.
=>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무언가 잃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그러기에 자신의 것을 더 뺏기지 않으려 한다.

P119 마찬가지로 각각의 개인도 자기 자신 속에, 곧 프로이트가 밝힌 바와 같이 자신의 무의식 속에 무력한 갓난아이 이후의 모든 단계를 유지하고 있다.
=> 정도는 다를 지라도 사람은 저마다의 동심은 지닌 것일까.

P125 관리층은 최대 이익을 거두는 것보다는 기업의 확장, 그들의 권력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 현대에도 많은 관리자들은 순수한 이윤보다 자신의 지위와 조직의 팽창을 우선시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인간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전락한다.

P187 우리 사회는 관리자의 관료 조직에 의해, 직업 정치가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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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 코멘트]

『레드불 스파』는 대한민국의 급소를 정확히 찌르는 소설이다. 관심으로 연명하는 삶, 재난에도 멈추지 않는 시스템, 좀비와 구별되지 않는 대한민국 국민의 일상을 사우나 속에서 가격한다. 다른 여주인공 쌈루타의 설정이 헐거운 면이 있지만, 세상이 끝나는 밤에도 700그램을 빼야 하는 현지현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면 이를 금방 잊게 되었다.

[발췌한 책 속 문장]

54p 그러나 하나의 후회는 언제나 극도의 연쇄적 힘을 가지고 있다. 마치 유치원 다니던 시절 만들었던 색종이 사슬처럼, 둥그렇고 쨍한 색의 후회는 또 다른 후회로 계속해 이어진다.

59p 먹고사니즘이란 원체 중요하고, 한국인들은 그 무슨 일이 일어나도 꾸역꾸역 직장으로 향하는 민족으로 또 유명하니까.
=> 악천후 속에서도 학교로 향하고, 직장으로 향하는 한국인들이 찍힌 뉴스 자료 영상들이 떠오른다.

97p 손님에게 먼저 퍼 드려야 하는 동방예의지국의 사람들이 내뱉는 저열한 속내들.
=> 동방 예의의 겉면으로 덮어도 인간의 심리 본질은 쉽사리 바뀔 수 없다.

119p 비열할 정도로 치열하게 사는 사람의 두 콧구멍에선 이산화탄소가 남들보다 두어 배는 풍풍 뿜어져 나오지 않을까. 그럼 차라리 죽어 버리는 게 전 지구의 안위를 위해서는 훨씬 이롭지 않으려나.
=> 신체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같을지라도, 그 인간의 악행으로 배출되는 공해 물질은 일반인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수 있다.

137P 언제나 그렇듯 실컷 사고를 친 하이드가 책임도 안 진 채 퇴장하고 나면, 왜소한 지킬이 비척비척 등장해 비로소 자기 인식을 시작하기 마련이었다.

139P 선수의 운동만큼이나 중요한 게 그 윗사람들의 정치였다. 승유는 지현을 이 자리까지 올리기 위해, 그리고 이 시합을 성사시키기 위해 수많은 골프 모임과 식사 자리 및 술자리에 불려 다녔다고 했다.
=> 승유가 지현을 너무 몰아세우는 것 같지만, 승유도 고충이 있었다. 원치 않은 술자리와 회식은 정말로 야만적이다.

149P 매일 죽고 싶다 염불을 외면서도 그 정도의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는 사람이 흔한가? 전혀.

152P 평소에 느끼는 당혹감과 분노를 쏟아부어도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대상이 사람들에겐 필요했다.
=> 돌팔매질은 원시 시절부터 내려온 전통.

162P “이제는 말도 잘하는 좀비들이 천지라고, 하룻밤 만에.”
=> 세계관 속 사회 활동이 가능한 좀비 바이러스는 어떤 연유로 탄생했을까? 그리고 좀비가 나타나도 시합을 강행하는 세계관 속 대한민국의 높으신 분들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172P 그 어떤 판이든, 그 무슨 일이든 그걸 감싸고 있는 외피는 서로 다를지 몰라도 구조는 동일하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직감하고 있었다.

197P 덕질이란 티백으로 차를 우려내는 일과 같아서, 몇 번이고 우릴 수 있고 수만 번을 반복해도 미세한 알갱이가 남아 있기 마련이었다.
=> 어떻게든 떨쳐내려 해도 약간의 관심의 재가 남아 있으면, 덕질을 쉽사리 포기할 수 없다.

202P 어려서부터 새벽마다 맨발의 승려에게 공양하며 불심을 쌓아 왔던 쌈루타는, 어디서든 잘못되거나 가여운 장면을 묵인하는 순간 윤회의 수레바퀴에 쌓일 업보를 걱정하며 살아왔다.
=> 업보론은 수많은 데이터베이스가 있기 때문에 그 힘과 역사를 인정받는다.

레드불 스파

설재인 지음
한끼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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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 코멘트]

# 5번 레인의 의미
수영 결승에서 레인 배정은 예선 기록 순이다. 1위가 물살이 가장 안정된 한가운데 4번 레인을 받고, 2위가 그 옆 5번 레인에 선다. 즉, '5번 레인'은 챔피언의 자리가 아니라 도전자의 자리다. 8년을 수영해 온 에이스 나루가 라이벌 초희에게 자꾸 2등으로 밀리는 자리이기도 하다.

# 주인공 스스로 반성하고 사과하기
소설을 관통하는 중요한 사건은 수영복 절도다. 초희에게 거듭 밀리던 나루는 열등감 속에 초희의 수영복을 훔친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이후 수영복을 돌려준다. 그와 동시에 진심 어린 사과와 편지를 건네며 작품 말미엔 수영 대회 경쟁으로 화해한다. 어린이문학에서 주인공은 대개 '착한 아이'이거나 잘못해도 실수 수준인데, 작품에서 주인공은 명백한 절도를 저지른다. 그리고 그 잘못을 우연한 발각이나 어른의 개입이 아니라, 나루 자신의 직면과 고백과 회복으로 통과한다.

# 도약의 발판, 5번 레인
결국 소설은 나루를 끝내 1등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마지막 대회에서도 나루는 초희에게 밀리지만, 이번에는 그 2위를 떳떳하게 받아들인다. 5번 레인은 무너져 머무르는 자리가 아니라 다시 일어나 나아갈 발판이 되며, 1등의 서사가 넘치는 세상에서 2등의 자리를 성장의 좌표로 새긴 책은 결과 지상주의 사회의 대한민국 어린이들에게 건네는 선물이라는 심사 평을 인용한다.

[발췌한 책 속 문장]

38p 나루도 알고 있다. 수영은 무엇보다 집중력이 중요한 종목이다. 환상의 호흡을 보여 줄 팀원도 없고, 신체 조건을 보완해 줄 현란한 기술도 없다. 믿을 구석이라고는 오로지 나 자신과 물뿐이다. 그뿐인가, 가끔은 물마저도 내 편이 아닌 날도 있다.
=> 수영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대면의 공간이다.

60p 나루는 가끔 시합장이 마법의 공간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법사들이 허공에 지팡이를 흔들어 비밀의 포털을 열고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처럼, 커다란 시합장 문을 열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들어와 보지 않고는 절대 알 수 없는 세상이다.
=> 시합장의 문은 세계관이 바뀌는 경계다. 시합장에선 선수들의 일상이 끝나고 승부의 시간이 시작된다.

61p 뻑뻑하게 사람들로 가득 찬 경영 풀과는 달리, 다이빙 풀 쪽의 관중석은 반도 차지 않았다. 나루는 그 온도 차이에 조금 놀랐다. 시합장 안에 나루가 모르는 또 다른 세상이 하나 더 있었다.
=> 어린이의 눈에서 본, 비인기 종목과 인기 종목의 차이. 그러기에 더 가슴이 아파진다.

67p “입수가 기가 막히게 잘되면 딱 이런 느낌이거든. 수백 개의 공기 방울이 얇은 이불처럼 내 몸을 감싸 줘. 오늘 마지막에 딱 그랬어.”
=> 다이빙으로 전향한 나루의 언니, 버들의 세계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문장.

87p 대회 시작 전, 태양이는 레인 끝 결승점에 자신이 꼭 열어야 할 문이 있다고 생각했다. 뒤로 몇 개의 문이 더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우승한 그 순간만큼은 첫 번째 문을 통과했다는 기쁨에 가슴이 벅찼다.
=> 생이 다할 때까지 인간은 수많은 결승점을 통과해야 한다. 남은 문의 개수를 모른다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계속 헤엄칠 이유가 된다.

91p 대회에서 본 수영부 아이들은 달랐다. 분명히 그 순간 같은 장소에 함께 있었지만, 그들만의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었다. 감싸고 있는 공기가 달랐고, 스타트대 위에서의 긴장감이 달랐고, 터치패드를 찍고 나서의 간절함도 달랐다.
=> 태양은 수영부 아이들의 삶과 수영에 대한 마음가짐이 공기의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음을 느낀다. 그가 잠시 잃어버린 간절함을 타인들의 공기에서 재발견한다.

97p 마음에 두 가지를 담고 있다고 해서 꼭 하나의 크기가 100중의 50인 것은 아니다.
=> 마음에 둘 다 100을 추구하는 건 불가능이 아니다. 마음은 제로섬으로 따질 수 없기 때문이다.

112p 하지만 수영은 0.01초의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일이 허다하다. 물 밖의 1초와 물속의 1초는 그 무게가 천지 차이이다.
=> 육상 선수에게도 물 밖의 1초와 물 안의 1초를 다르게 느낄 수 있는 일. 시간의 가치는 의미 부여의 크기에 비례한다.

118p 제대로 된 자세가 몸에 배기 위해서는 수많은 반복이 필요하다.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도 움직일 수 있어야 시합에 나가도 그대로 할 수 있다.
=> 훈련이 무조건 성공은 보장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저점을 방어할 확률은 성공보단 훨씬 높다.

126p 나루의 핸드폰에 비밀 채팅방 초대 알림이 떴다. 태양이었다. 그 순간, 나루의 마음에 진도 3 정도의 지진이 일었다. 느낄 수 있지만 아직 피해는 없다.
=> 감정을 재난의 언어로 표현하되, 그 재난을 기다려지게 만드는 역설이 공존한다. 마음의 두근거림을 진도로 표현한 귀여운 문장.

164p 소문이란 전자레인지에 들어간 팝콘처럼 조금의 열만 가해져도 기다렸다는 듯이 부풀려지는 법이다.
=> 천리를 가는 발 없는 말과, 열만 가해졌을 뿐인데 부피가 급격히 커지는 팝콘 옥수수.

175p 운동이라는 게 그랬다. 인내는 지긋지긋하게 쓰고 열매는 짜릿하게 달다. 나루는 그 달콤함에 취해서 아무리 쓴 인내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쓰디쓴 인내의 끝에 열매가 없다면? 그래도 운동을 계속해야 할까?
=> 전 세계 엘리트 선수들이 매일 지닌 고민.

190p 다이빙대에 오른 이상, 누군가 밀쳐 떨어지기보다는 스스로 뛰어내려야 한다.
=> 결정에는 자신의 비율이 0%일 수 없다.

209p 다시 부끄럽지 않게 물 앞에 서기 위해서는, 잘못을 바로잡아야 했다.
=> 나루는 떳떳함은 기억을 지워서가 아니라 잘못을 갚아서 회복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211p 어쩌면 친구들은 이해해 줄지 모른다고 기대를 품었지만 역시 아닌 건 아닌 거다.
=> 잘못을 세탁해 주는 관계는 편하지만, 사람을 썩게 한다. 아닌 걸 아니라 해주는 관계는 아프지만 사람을 자라게 한다. 반성할 수 있게 하는 친구가 진퉁.

221p 마음에 돌덩이를 안고 있느니 등에 돌덩이를 업고 뛰는 편이 훨씬 후련했다.
=> 여러 불행한 일에도 인간이 선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의 기반엔, 인간의 양심이 본성이라는 데에 있다.

224p 나루는 이날 초희를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의 경기야말로, 어떻게 졌는지가 중요한 시합이었다. 그런 시합이 있다는 걸 이제는 나루도 알았다.
=> 작가는 마지막까지 나루에게 우승을 주지 않는다. 화해했으니, 성장했으니 1등으로 보상하는 관성적 결말을 거부하며 '어떻게 졌는가'를 최종 시험으로 삼았다.

226p 결과가 좋든 나쁘든, 나루 손으로, 나루의 두 팔과 다리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만 승리의 기쁨도 패배의 분함도 떳떳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 승패를 떳떳하게 받아들이려면 결과가 온전히 내 것이어야 한다.

233p 작가는 아이들이 세계와 싸우며 거대한 모험을 하는 이야기 대신 저마다의 빛과 그림자를 통과하며 자신의 터치패드에 정정당당하게 도달하는 이야기를 선택했다. 이토록 현실적이며 촘촘한 시선이 이 작품을 반짝거리게 한다.
=> 열세 살의 유소년에게는 라이벌에게 지는 것, 잘못을 고백하는 것, 좋아하는 아이에게 답장하는 것도 거대한 모험일 수 있다.

234p 어릴 때 자신의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한 존재가 어른이 되어서 갑자기 그것과 직면할 힘을 얻게 될 리 없다.
=> 성공한 엘리트 중에서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들여다본 과정을 거친 어른들은 얼마나 있을까? 글을 적는 나도 진정으로 성찰을 한 적이 있을까? 이 책을 통해 어른이라고 동화 읽기를 가려선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어릴 적 건너뛴 성찰을 5번 레인의 보충 수영 훈련으로 학습하려 한다. 늦었을지라도, 늦지 않았다는 최면을 하면서.

5번 레인

은소홀 지음
문학동네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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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 코멘트]

# 많은 걸 내비치지만, 많은 걸 감추는 수영장
어디서나 있을 법한 수영장 내 여러 인간 군상을 그려낸 작품. 물안경 너머로만 서로를 훔쳐보는, 반쯤 벗은 채로도 철저히 익명인 현대 도시의 축소판인 수영장.

# 여주인공의 물속 몸짓은 무슨 의미였을까
물속에서 여자는 남주인공에게 어떤 말을 했을까. 책 마지막에도 여자의 동작을 그린 부분을 따로 배정한 거면 분명 큰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실화를 기반으로 쓴 작가가 여자의 말은 자신의 경험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평생 비밀로 간직할 것이라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저자가 남긴 한 인터뷰를 통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미국 밴드 케이크(Cake)의 노래 「World of Two」를 부르는 모습이라고 밝힌 바 있다. 「World of Two」는 두 사람이 바깥세상과 분리된 자신들만의 작은 세계를 이룬다는, 쓸쓸함을 자아내는 노래다. 그 노래의 제목이 곧 그녀가 물속에서 건넨 노랫말 없는 몸짓의 방향을 추측해 본다.

[발췌한 책 속 문장]

75p
“간단히 말하면, 호흡, 다리, 팔을 동시에 잘 움직여야 해. 우선 팔부터, 물속에서 중심을 잘 잡은 상태에서 팔꿈치와 어깨를 높이 들어. 그러고선 반대쪽 손을 허벅지까지 쭉 밀어내. 밀어낸 손을 다시 원위치로 가져오는데, 팔꿈치를 높이 들어야 돼. 손이 겨드랑이에 닿을 듯한 느낌으로, 그리고 다리는 계속 물장구 쳐야 돼. 절대로 멈추면 안 돼. 자기 리듬을 찾아야 돼. 두 박자든, 세 박자든, 다섯 박자든 상관없어. 너 다리는 잘하잖아.”
=> 대화가 거의 없는 책에서 가장 긴 대사는 여주인공의 기술 설명이었다.

“마지막으로 호흡인데, 너만의 리듬을 찾아야 돼. 물속에서는 천천히 숨을 내쉬어. 그러지 않으면 금방 진이 빠지거든.”
=> 인생을 산 지 몇십 년 만에 자유형 동작 설명을, 책을 통해 접했다.

염소의 맛

바스티앙 비베스 지음
미메시스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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