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쁜 일정 속, 독서를 휴식으로 선택한 날! 내 자신을 칭찬합니다❤
'주존감'으로 살아가기
만약 내 안에 주존감이 없었다면 나는 미국 유학 시절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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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주존감이 있었기에 전혀 기죽지 않았다.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이 내 아버지인데, 그 친구들이 뭐라고 하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너희가 뭐라 하든, 나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나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리고 아버지도 늘 “사람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평가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어라”라고 하셨다.
착하게 살다 지친 당신에게 중에서
비싼 건 소중히 다뤄야 한다. 나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말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 왜냐하면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을 낮게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높게 평가하신 존재인데, 내가 나를 하찮게 여기는 건 하나님을 의심하는 일이다. 스스로를 낮추는 건 겸손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지불하신 값을 값싸게 여기는 것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건 교만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건,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이다.
나를 소중히 여긴다는 건 단지 마음만의 문제가 아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영적으로도 건강하게 사는 걸 의미한다. 거룩한 성전인 내 몸을 잘 관리해야 한다. 음식을 가려 먹고, 운동도 하고, 충분히 쉬는 것도 필요하다.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는 건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영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 머물러야 한다. 하나님과 가까이 있을 때 영혼이 살아난다.
착하게 살다 지친 당신에게 중에서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최고라고 착각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귀하게 만드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그러니 나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애가 아니라 신앙의 고백이다.
착하게 살다 지친 당신에게 중에서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분리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심리학자 볼비(John Bowlby)는 아이가 탯줄이 끊기는 순간부터 독립된 존재로서 불안과 고립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마가렛 말러(Margaret Mahler)는 인간이 평생 ‘가까이 있고 싶은 욕구’와 ‘나를 잃지 않으려는 욕구’ 사이에서 흔들린다고 설명했다.
성경도 동일한 진리를 말한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창 2:18)라고 선언하고,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전 4:9)을 강조한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만들어졌고, 관계 속에서 살아가도록 지음 받았다. 그래서 인간은 연결을 갈망하고, 동시에 잃어버릴까 두려워한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인간의 고립을 넘어서는 유일한 길이며, 동시에 각자의 통합성을 지키는 힘이다”라고 말했다. 성숙한 사랑은 ‘나 다움’을 파괴하지 않는다. 사랑으로 하나로 연결되지만 동시에 둘로 남는다. 미숙한 사랑은 연결됨을 착각한다. 상대를 소유하려 한다. 상대를 바꾸려 한다. 하지만 그런 사랑은 결국 서로를 파괴한다.
성숙한 사랑은 다르다. 너를 ‘너’로 두고, 나를 ‘나’로 둔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 안에서 자라간다. 서로를 통해 더 넓은 존재가 되어간다.
사랑은 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확장하는 일이다. 이런 사랑의 모습을 심리학자 헨리 클라우드(Henry Cloud)는 이렇게 설명했다.
“진정한 친밀함은 경계(boundary)가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경계가 없는 관계는 친밀함이 아니라 융합이며, 결국 파괴로 이어진다.”
사랑이란 경계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머무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바꾸는 것이 사랑이 아니다. 무조건적으로 나를 바꾸는 것도 사랑이 아니다.
착하게 살다 지친 당신에게 중에서
“네가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이야. 내가 널 사랑하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야.”
그녀는 점점 웃음을 잃었다. 더 이상 자유롭게 말하지 못했고, 상대가 좋아하는 모습에 자신을 맞추려 애썼다. 그는 자신이 사랑을 주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자신의 방식’으로 그녀를 바꾸려고 했다.
착하게 살다 지친 당신에게 중에서
✍🏻 가장 고통스럽고, 안타까운 사랑의 방식과 표현. 이러지 않도록, 명심하고, 기억하고, 주의하고, 생각하자.
‘나 · 너 · 우리’가 된 사랑
예수님은 우리를 예수님의 복사본으로 만들지 않으셨다. 그분은 모두가 동일한 모습, 동일한 성격, 동일한 방식으로 살아가길 원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고 한 몸으로 묶으셨지만, 그 안에서 각자의 고유한 자리와 역할은 여전히 살아 있다.
예수님은 모두에게 손이 되라고 명하지 않으신다. 모두에게 발이 되라고 명하지 않으신다. 눈은 눈으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존재한다. 그러나 모두가 한 몸 안에 있다. 이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의 신비다.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의 몸처럼 움직인다는 것이다. 각기 다르기 때문에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더 온전한 하나가 된다.
사랑은 내가 원하는 대로 바꾸는 힘이 아니다. 사랑은 서로를 다르게 존재하게 하면서도 하나 되게 하는 힘이다. 하나님은 사랑을 통해 ‘하나 됨’과 ‘다름’이 함께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셨다. 사랑은 모두를 동일하게 만드는 힘이 아니다. 사랑은 서로를 온전히 살게 하는 힘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존재의 깊이를 확장시키는 사랑이다. 그 사랑은 나의 경계를 허물지 않으면서도 너와 연결되게 하고, 우리 모두를 하나님 안으로 묶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온전히 살리는 힘이다.
사랑은 거창한 행동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작은 방향 전환에서 시작된다. 오늘 누군가의 말을 ‘내 기준’이 아니라 ‘그의 입장’에서 한번 들어주는 것, 내가 주고 싶은 방식이 아니라 상대가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다가가보는 것, 그 한 걸음이 사랑의 중심을 ‘나’에서 ‘너’로 옮겨 놓는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그러나 사랑이 흘러가면 그 다름 속에서 ‘우리’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이웃 사랑의 기적이 시작된다.
착하게 살다 지친 당신에게 중에서
바울은 로마서 13장 9절에 나오는 여러 계명을 하나로 요약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위의 모든 계명은 이웃에게 상처 주지 말라는 것이다.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면 자연스럽게 이 계명들을 지키게 된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착하게 살다 지친 당신에게 중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만 괜찮다면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독교의 사랑은 두 가지 방향으로 완성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수직적 관계, 이웃을 사랑하는 수평적 관계. 이 두 선이 만날 때 십자가가 완성된다.
착하게 살다 지친 당신에게 중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다. 사랑받을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해주시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랑은 나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내 옆의 사람, 내가 불편해하는 사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흘러간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내 옆에 있는 사람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이다. 그들을 사랑하는 일은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다.
착하게 살다 지친 당신에게 중에서
누군가 나에게 선물도 주고 칭찬하면 기분이 좋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내 자녀를 욕하고 때린다면 그 사람은 원수가 된다. ‘나에게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자녀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차라리 나를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내 자녀를 해치면 부모의 마음은 견디기 어렵다.
착하게 살다 지친 당신에게 중에서
착하게 살다 지친 당신에게
안세진 지음
규장(규장문화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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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잡담 시간을 좀 더 많이 늘리는 게 도움이 되겠네요. 이것도 언어라서.]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 심너울
오산이었다. 문화의 장벽보다, 감각의 장벽이 훨씬 높았다. 음성 언어가 약간의 억양 차이로 다른 뉘앙스를 전하듯이, 수화는 거의 같은 몸짓을 약간 변형하는 것으로 큰 차이를 만들었다. 그 미묘함을 익히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 심너울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 몰상식하지 않죠. 하지만 100명 중에 세 명만 있다고 쳐도 적지 않아요. 하루에 50명의 사람들이 저 사람 옆을 지나간다고 본다면 1.5명은 만나겠네요. 그럼 거의 맨날 만나는 거죠.」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 심너울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심너울 지음
안전가옥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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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싸우게 됐어요. 가령…… 집주인이랑.”
다정소감 : 김혼비 산문집 | 김혼비 저
무엇보다 공포를 버텨내는 힘이 달라졌다. 그라운드 위에서나 그라운드 밖에서나 마찬가지였다. 물리적 충돌을 대면하는 수밖에 없다면 여차하면 나도 육탄 방어할 거야, 때릴 수 있다면 나도 같이 때릴 거야,라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자 공포가 조금 줄었다. 진짜로 그럴 수 있든 없든(아마도 실제 상황이 닥치면 못 그럴 확률이 높아 보이지만), 그런 그림조차 그려지지 않았을 때는, 백지처럼 새하얘진 머리와 함께 온몸이 얼어붙어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당할 수 있는 물리적 폭력이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른다는 점도 공포의 요인이었다.
다정소감 : 김혼비 산문집 | 김혼비 저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상상할 수 있는 최대 크기의 고통을 떠올리며 더 심하게 얼어붙곤 했다. 그런데 그라운드에서 몸싸움을 하면서 ‘맞는’ 경험치가 쌓이다 보니, 고통의 느낌을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고, 그렇게 고통이 구체성을 띠고 다가오니 그게 또 두려움을 한결 줄였다. 적어도 나를 집어삼킬 정도로 커지지는 않았다. 이것만도 굉장한 발전이었다. 우리는 보통 폭력에 제압당하기 전에 폭력에 대한 두려움에 먼저 제압당하니까. 수비수 한 명을 제친 기분이었다.
다정소감 : 김혼비 산문집 | 김혼비 저
어떤 의도에서든 바깥으로 방출하는 행동이 ‘악’이라면 그건 그냥 ‘악’일 뿐인 것을, ‘위악’이라는 말 뒤로 숨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체로 ‘나는 지금 위악을 부리고 있다 → 악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이다 → 그러니 난 악한 게 아니라 그냥 악해 보이는 걸 선택했을 뿐이다’라는 논리로 자신이 행하는 악에 면죄부를 깔고 들어간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진짜 자기 욕망이 가닿은 악이고, 어디까지가 위조한 악인지 본인은 딱딱 나눌 수 있을까? 아니 나눌 수 있으면 또 뭐하겠는가. 뭐가 됐든 결과가 악이면 악인 거지.
다정소감 : 김혼비 산문집 | 김혼비 저
어떤 사람들은 ‘솔직한 나’를 너무나 사랑하고 ‘솔직한 나’에 대해 너무나 비대한 자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다정소감 : 김혼비 산문집 | 김혼비 저
✨그러니까 내 앞에서 저 사람이 떨고 있는 저 가식은, 아직은 도달하지 못한 저 사람의 미래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 사람이 가진, 저기서 더 앞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누군가가 “넌 가식적이야”라는 말로 섣불리 가로막을까 봐 지레 초조할 때도 있다. 실제로, 특히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이들 중에 “내가 너무 가식적으로 느껴져서 자기혐오가 생긴다”라고 고민 상담을 해오는 경우가 많아서이다.
다정소감 : 김혼비 산문집 | 김혼비 저
‘나다움’의 상당 부분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고난 나, 만들어진 나, 만들어져가고 있는 나, 모두 다 나이다. ‘본캐’도 ‘부캐’도 다 나.
다정소감 : 김혼비 산문집 | 김혼비 저
‘꼰대질 사절!’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온몸으로 내뿜고 다니던 시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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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건 꼰대질 아닐까’라고 자기 검열할 줄 아는 사람들만 내 앞에서 조심했는데, 바로 여기서 커다란 딜레마가 생겼다. 그렇게 조심하는 사람일수록 내가 귀담아들을 만한 충고나 조언을 해줄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고민조차 안 하는 사람보다 몇 배는 더. 그러니까 ‘꼰대질 사절’ 메시지가 결과적으로 순도 100퍼센트 고농축 꼰대질만 깔끔하게 남겨놓고 정작 듣고 싶은 이야기들은 걸러버리는 바람에, 애초에 근절하고자 했던 꼰대질‘만’ 계속 듣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작전은 대실패였다.
다정소감 : 김혼비 산문집 | 김혼비 저
다정소감
김혼비 (지은이) 지음
(주)안온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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