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점묘화 같다. 화자를 옮겨가며 전개되는 소설은 저마다 제 자리에서 본 세상을, 겪어낸 인생을, 마주한 사람을 이야기하는 인물들 앞으로 독자를 이끈다.
그로부터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에서 수시로 그러하듯이 어느 한 단면만 베어놓고 '세상에 이런 몹쓸 자가 없다'고 욕하고 후려쳤을 사람에게조차도 실은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정과 역사가 있단 걸 이해하게끔 한다. 그의 자리에 내가 섰대도 달리할 수 없었을 것을 납득하고, 심지어는 내가 그보다도 못했을 수도 있음을 수긍할 수도 있겠다. 이 소설이 아니었다면 불가했을 인정이다. 변화고 달라짐이다. 성석제가 해낸 것이 이와 같다.
서로 다른 이들이 더듬어낸 다리와 코와 몸통이 모여 한 마리 코끼리를 이루어낸다. 관측하지 않을 땐 그저 파동일 뿐이지만 바라보면 입자로써 존재하는 물질들처럼, 소설 속 투명인간도 힘을 다해 들여다보면 저마다 비할 바 없는 역사를 지닌 존재로써 화한다.
읽는 이의 자리를 옮겨낸다. 그리하여 읽는 이가 보는 풍경을 전과는 조금쯤 달라지게 한다. 읽기 전과 읽고 난 뒤를 달라지게 하는 작품, 그야말로 훌륭한 소설이 아닌가. 나는 <투명인간>으로부터 훌륭함의 단서쯤은 보았다고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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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틸이 연 인재양성 프로젝트, 틸 펠로십 원년인 2011년 펠로우들의 이야기다. 소행성을 채굴하겠다는 야망 말고는 대학교 불합격 통지서만 열 몇 개를 가진 존 번햄부터, 12살부터 석학의 연구실에 채용돼 인류 영생의 가능성을 연구해온 천재소녀 로라 데밍, 대학교 따윈 갈 생각 없는 런던 출신의 코딩 오타쿠 제임스 프라우드 등 펠로십 대상자로 선정된 이들이 겪어내는 도전과 실패, 재기와 또 다른 어려움의 과정을 살펴나간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걸 조건으로 실전적 교육과 인맥, 돈을 지원하는 틸 펠로십은 미국 교육계에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대학교에선 가질 수 없는 실전적 경험, 문화와 인맥, 도전과 실패의 순간들이 실리콘밸리의 젊은 창업가를 빚어간다. 걸출한 성공례가 쌓이며 미국 최고의 인재가 달려드는 귀한 장이 된 틸 펠로십이다. 실패한 이들조차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많다고 입을 모은다. 이곳으로 모여드는 인재들이 하나 같이 당면한 사회의 문제를 해소하고 문명과 국가에 이바지하길 꿈꾼단 게 충격적이다.
그나마의 인재가 모조리 의대로 쏠려가는 섬나라 대한민국의 실패한 교육현실이 명문대학 진학마저도 기회비용의 낭비라 여기는 실리콘밸리의 문화와 대비된다. 면허의 장벽 안에 저를 숨겨 남보다 나은 상황에서 출발하려는 이쪽의 청년들과 배수진을 치고 탁월함과 마주하려는 저편의 젊음 사이에서 나는 어떤 절망을 감각한다.
피터 틸의 벤처 학교
알렉산드라 울프 지음
처음북스(구 빅슨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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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한 특징 한 가지는 외래어나 신조어의 적극적 활용이다. 닥터, 셸터, 스팽클, 퍼레이드, 프런트 같은 단어가 아무렇지 않게 시 가운데 들어선다. 때로는 흔하게 쓰이는 어휘여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시인의 취향이며 단어가 불러오는 시적 정취를 위해서라 느껴질 때가 잦다. 이를테면 의사를 닥터라 표현할 때, 그것은 어떤 차이를 불러오는가. ‘액기스라고 불러요. 즙자는 징그러워요’라는 싯귀는 선택과 배제의 이유를 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마음의 찢어짐’과 ‘맴찢’ 사이엔 얼마만큼의 거리가 있을까. ‘마음의 상함’과 ‘마상’의 관계는 또 어떠한가. 권민경의 시어가 이루는 미학이 누구에게 통하고 다른 누구에겐 닿지 않는다면, 거기엔 시어를 고르는 그 취향이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다.
말고는 따로 언급할 게 없다. 시시하단 뜻이다. 시가 갈수록 시시해져 가는 시대긴 하다. 여기저기 시부럴 부랄 없는 시만 넘쳐난다. 나는 그저 베시시 웃고 넘어간다.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
권민경 지음
문학동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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