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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지은이), 강동혁 (옮긴이) 지음
알에이치코리아(RHK) 펴냄

읽었어요
#종섭아_다읽었어

✏️ 『프로젝트 헤일메리』 독서노트 🌌🦠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라일랜드 그레이스 박사의 일대기이다. 눈에 띄는 것은 그의 평범함이다. 울고, 웃고, 실망하고, 기뻐하는 보통의 인간. 작중에서 그레이스가 느꼈던 감정 중 가장 깊게 통감했던 것은 공포감과 허탈함이었다. 마침내 모든 기억을 되찾은 그레이스는 그때 느꼈던 절망을 기억해 내고, 잠시나마 자신이 용감한 사람이라고 믿었던 데 회의를 느낀다. 문득 영웅적인 면모와 평범함을 가르는 고정관념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평범’의 반대는 무엇일까? ‘비범’과 ‘특별’을 떠올렸다.
에바 스트라트는 비범한 인물로 그려진다.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담대함,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냉혹함. 스트라트가 대기의 냉각 속도를 늦추기 위해 핵폭발을 지시한 후에 이어지는 대화가 마음에 들었다. 스트라트는 프로젝트가 끝나면 남은 생은 감옥에서 보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역사나 창작물에서 난세의 영웅은 위기를 극복한 뒤에 대부분 희생양이 되며, 이 사실마저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설화 속 주인공을 자로 재서 그림으로 옮겨 놓으면 이런 모습일 듯하다.
주목할 점은 스트라트가 겁쟁이라고 비난했던 그레이스가 로키를 구하기 위해 죽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 책의 한국어 역자는 영웅적 비장함이 아닌 평범한 선량함이 두 인류를 구원했다고 해설하고 있다. 분명 스트라트라면 지구인의 생존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온몸이 암석으로 덮인 다리 다섯 개 외계인의 행성 따위, 배출 기관이 세 개 달린 진흙 나무늘보만큼이나 논외 사항일 것이고. 하지만 그레이스의 선택을 선량함이라는 이름으로 한정하자니 조심스럽다.
어쩌면 자신을 위해서였다. 로키는 그레이스에게 특별했다. 수많은 우연이 겹쳐 드넓은 우주 속에서 단둘이 만나서가 아니다. 돌덩이로 만든 거대 거미와 물이 줄줄 새는 우주 슬라임만큼이나 다른 두 인격체가 어떻게든 자신들만의 소통 방법을 찾으려고 애썼기 때문이었다. 둘이 에어로크 벽을 고르던 모습을 가장 좋아한다. 로키는 소리가 통과하는 특성에 따라 재료를 보여주는데, 그레이스는 빛이 투과하는 투명한 벽을 고른다. 그 벽 너머에 있으면 로키는 그레이스를 들을 수 있고, 그레이스는 로키를 볼 수 있다. 지구의 인간에게는 잠든 친구를 지켜보는 문화가 없지만, 그레이스는 잠든 로키를 지켜본다.
헤일메리 호에 탑승하기 전, 승조원들이 각자의 죽음의 방식을 선택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전혀 일반적인 상황도 아니고, 심지어 아무도 계획을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 발언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그레이스가 있다. 그레이스는 반쪽짜리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지구로 돌아가느니, 그토록 염원했던 마지막 퍼즐을 맞추고 친구가 지켜보는 곳에서 임종을 맞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로키는 계획대로 되게 두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레이스는 재앙 앞에 평범한 인간이었을지 몰라도 지구와 에리드의 가장 특별한 영웅이었다.

추천 음악: Jackson Laird-Algeb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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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쇄』 독서노트 🐗🔫

* 『파과』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각은 본래 버리는 패였다. 그런데 먹이로 던져 준 쥐가 고양이를 물었다. 고작 부엌일을 조금 도울 수 있을 뿐인 군식구보다는 확실한 미끼가 필요했고, 그저 그런 미끼보다는 방역 조수가 쓸만했다. 류가 편리한 도구로 조각을 들였음은 자명하다. 처음에는 미련하다고 생각했다. 매번 죽을 길을 가리키는 사람에게 목매는 일이, 조각에게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을 가늘게 뜨도록 만들었다. 『파쇄』를 마저 읽고 나서야 조각의 심정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조심스럽다는 개념에도 상대성이 있을까? 바람 불면 날아갈까 손에 쥐면 터질까 안달복달하는 행위의 절댓값이 아니라, 스스로 돌보는 것보다 실낱만큼이라도 더 염려하는 마음이라면 류는 조각에게 조심스러웠다. 어린 조각은 자신을 물건 취급했다. 유용하면 쓰이고, 가치가 다하면 버려지는. 처음부터 거기 없었던 것처럼 묻어둬야만 하는 감정이 새어나가면 곁에 머물 수 없기에 망가져도 상관없다고 말했고, 류는 조각을 사지로 떠밀지언정 적어도 스스로 보호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 선생이었다.
건강한 애정은커녕 짓무른 과육처럼 염증마저 느껴지는 관계임에도 조각이 류를 추억하는 이유는 의도된 공백일 것이다. 조각의 세계는 이어지지만, 류는 멈춰 버린 시간에 있다. 처음에는 이미 지켜야 할 세계가 있어서, 그것을 잃고 난 후에는 더 이상 지킬 것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면서도 류는 조각을 구하고 죽었다. 이제 그 이유는 누구의 입으로도 들을 수 없다. 시간의 흐름은 조각의 안에 있는 류의 모습을 끊임없이 재구성했고, 이제는 사랑했던 한 남자가 아니라 일종의 행동 규범으로 남았다.
류는 조각에게 칼 쥐는 법, 피하는 법 하나까지 가르쳐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조각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류라면 어떻게 대처했을지 생각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흔적은 그 이상으로 생활 전반에 퍼져 있다. 별 의미 둘 것 없는 상투적인 표현인데도,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가 싫다고 억지를 부리던 류가 떠오른다. 누군가 ‘어머님’이라고 부를 때마다 ‘누가 당신 어머니야’ 지적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조각은 분명 류를 닮았다.
여기까지 돌아보고 나니 60대 조각의 사연이 달리 보였다. ‘내게도 은퇴하고 평범한 삶을 영위할 자격이 있을까?’ 조각의 고민은 흔한 자격 강박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물음이었다. 평생에 걸쳐 쓸모를 증명해야만 했던 삶이다. 할 줄 아는 거라곤 방역뿐인데, 그마저도 내려놓은 자신이 계속 살아가도 되는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남들 눈에 어설프게 보일지언정 오색찬란하게 치장하고, 버릇없게 보여도 순수하게 기뻐할 줄 아는 아이를 보고 흐뭇해하기도 하는 일상의 사소한 페이지가 썩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조각은 류를 떠올리며 읊조린다, 아직은 당신에게 갈 시간이 아닌 모양이라고.

추천 음악: 이고도-Mouse 🐀

파쇄

구병모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읽었어요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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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과』 독서노트 🍑🐛

책 읽는 것을 숨기고 싶었던 적이 있다. 튀는 옷을 입고,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마음에 드는 향기로 공간을 채우는 일에 무관심한 양 굴었다. 누군가가 입을 댈 빌미가 되는 것이라고 여겼다. 무채색 인간이 되면 괜찮아질 거야, 주문처럼 한 다짐은 점차 의도와는 다른 힘을 갖게 되었다. 좋아한다는 말을 하기 전에 목울대에서 막히는 기분이 들었고, 옷에 얼룩이 지기 전에 닦으려는 사람처럼 세면대로 달려가야 했다. 대체 뭐가 ‘괜찮다는’ 것일까?
『파과』는 정상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조각은 의심받지 않고 방역을 수행하기 위해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노부인을 연기한다. 하지만 갈수록 주저하는 마음이 든다. 갈 곳 잃은 강아지를 주워 오고, 폐지 줍는 노인을 돕고, 남몰래 연심도 품어 본다. 투우는 조각에게 그럴 자격이 없다고 한다. 네가 죽든 내가 죽든 하나는 하자고 한다. 죽어가는 투우를 안고 조각은 그가 자신이 방역했던 남자의 아들임을 깨닫는다.
투우는 아버지의 원수와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없다고 거부할 만큼 도덕관념이 투철하지도 않았고, 거창하게 복수할 만큼 의협심이 대단한 인물도 아니었다. 그가 원했던 것은 그저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벌레 잡듯 사람들을 잡아 온 조각에게 가능한 한 시시한 마지막을 선물해 주는 것과, 이제 와서 마음 속에 연민이 있는 사람처럼 굴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었다.
그런 바람이 무색하게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은퇴한 조각은 평범한 일상 속으로 섞여 들어간다. 이제 조각을 지탱하는 것은 ‘우리 더 이상 지킬 것은 만들지 말자’라고 한 류와의 약속도 아니고, 끝끝내 고백하지 못할 강 박사에 대한 연심도 아니고, 지나간 일에 대한 속죄도 아니다. 조각은 현역일 때 수없이 고민했던 일을 실행에 옮긴다. 이제는 한 손밖에 남지 않은 손톱에 네일아트를 하는 것.
갤러리를 정리하다 우연히 5년 전에 찍은 손 사진을 발견했다. 종이접기 한 꽃을 들고 있는 손. 사진 속 손과 지금의 손을 견주어 본다. 투박하다. 손톱이 부러지지 않도록 짧게 깎는 습관 때문이다. 약한 손톱에 강화제를 바른다. 더 이상 책 읽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좋아하는 옷을 입고, 양쪽에 팝콘과 콜라를 끼고 영화를 보고, 시향지에 코를 대고 어디선가 들어본 말로 평가하는 일도 있다. 여전히 좋아한다는 말을 하기 전에 막히는 기분이 들지만, 닦아내야 할 얼룩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좋아합니다.

추천 음악: Melanie Martinez-Soap 🫧

파과

구병모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읽었어요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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