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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리

@user1383187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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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민음사 펴냄

아니, 그녀는 로제에게 설명할 수 없으리라. 자신이 지쳤다는 것, 그들 두 사람 사이에 하나의 규율처럼 자리 잡은 이 자유를 이제 자신은 더이상 어떻게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자유는 로제만 이용하고 있고, 그녀에게는 자유가 고독을 의미할 뿐이 아니던가. 자신이 그가 몹시 싫어하는 악착스럽고 독점욕 강한 여자가 된 것 같다는 말을 그녀는 그에게 할 수 없으리라.(11p)
그는 잘못 알고 행복해하기보다는 제대로 알고 불행해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80p)
그것은 차라리 ‘그들 두 사람’에 대한, 그들이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한 일종의 가학인 셈이었다. 두 사람 중 하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이제 이만하면 충분해.”라고 외쳤어야 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이나 로제에게서 그런 반응이 나오기를 거의 절박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 사이의 무엇인가가 죽어 버린 모양이었다. (100-101p)


‘감정’과 ‘관계’의 관계를 생각해본다.
우리는 대체로 대부분의 감정을 관계화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사랑’만은 거의 대부분 관계로 결론내고 인식한다. 정말 그럴까. 폴과 로제에게 느껴지는 이 불쾌함은 그들의 감정에 대한 것인지, 그들이 관계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문득 ‘사랑’의 정의가 궁금해진다. 사전적 정의를 넘어서 정말로 진정한 본연의 정의. 이 소설을 읽은 후 생각으로는, 어쩌면 사랑이라는 것은 애초에 없는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마다 이해심, 배려심, 욕심, 권태감, 익숙함의 배합법이 모두 다른 어떠한 감정을 그냥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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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리

@user1383187076

하차합니다...

제4의 벽을 너무 자주 강하게 뿌셔버리고..
대화가 너무 장황하고 연극톤으로 오고가고
이름이 너무 길고
....
포기..

백야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은이), 박은정 (옮긴이) 지음
문학동네 펴냄

4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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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리

@user1383187076

월화는 사랑을 주었는데 상대는 경멸로 받았다. 월화는 사랑을 주었는데 상대는 권태로 받았다. 월화는 사랑을 주었눈데 상대는 기만으로 받았다. 맹세코 월화에게 그것은 언제나 사랑이었다. 월화에게 꿈이 있다면 한 사람을 오랫동안 변치 않고 사랑하는 것. 그런 면에서 월화의 라이벌은 자기 자신이었다. 연애와 사랑에서 월화는 이기는 방법을 몰랐다.(39p)
무미건조한 사실에 불과한데도 생각할수록 감정이 섞였다. 왜 모두 다를까. 다른 삶을 살다가 결국 죽을까. 생명은 어째서 태어날까. 탄생이 없다면 두려워할 죽음도 없을 텐데.(103p)
무슨 일을 하게 되든 힘들거야. 사람들의 이해를 구하기도 어렵겠지. 그러나 네가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마.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누구에게나 있어.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네가 하는 건 사실이지. 하지만 누가 알겠니. 네가 하지 않는 일을 또 누군가가 하고 있을지.(112p)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신에게 구걸할 일이 늘어 난다는 것. 목화는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125p)
정원에게 목화는 자기를 반영하는 거대한 감정 덩어리였다. 가장 사랑하면서도 가장 하찮게 여기는 존재.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자 무심한 말 한마디의 진의를 의심하는 상대. 그 간극을 만드는 사람은 목화가 아니었다. 한정원의 상황이었다. (134p)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먼저 떠올랐다. 원망하지 않는 것. 후회하지 않는 것. 기대하지 않는 것. 미워하지 않는 것......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을 가두고 싶었던 걸까(153p)
어떤 사랑은 끝난 뒤에야 사랑이 아니었음을 안다. 어떤 사랑은 끝이 없어서 사랑이란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떤 사랑은 너무 멀리 있어 끝이 없다. 어떤 사랑은 너무 가까이 있어 시작이 없다.(155p)
목화는 자기를 둘러싼 나무에게 호소하듯 말했다. 숲속의 날개 달린 것들에게, 흙이 되어가는 죽은 것들에게, 가장 먼 곳까지 이동하는 바람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당신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 가서 그 나무에게 전해. 당신의 일을 대신하는 나에게 예의를 갖추라고. 나를 도구로만 쓰지 말라고. 나 또한 한 번뿐인 삶을 사는 단 한 명임을 기억하라고.(195p)
모두 자기만의 삶을 산다. 상대의 삶이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도 다들 너무 쉽게 판단하지. 불행할 거라고, 행복할 거라고, 부족한 게 뭐냐고, 부족한 것투성이라고.(197p)


사람이 사람을, 사람이 삶을, 그리고 죽음을 더듬어 사랑하는 것.
모든 문장은 시처럼 자기 말을 내뱉는다. 분명한 스토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을 읽는 것처럼 책을 읽었다.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삶이 의미있지 않아도 그저 단 한 사람으로만 그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위로가 필요할 때, 곁에 두면 참 좋을 책이다.

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5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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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리

@user1383187076

“좋은 것만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세상에서 살고 싶어.” “끔찍한 걸 제대로 직시하는 게 진짜 좋은 세상 아닐끼.”(15p)
모두가 앞을 향해 질주해도 어떤 것은 제자리에 남았다. -중략- 기술은 자주 불공평했다.(42p)
어떠한 효율은 돈이 없으면 성취가 어려웠다.(43p)
과연 사람의 꿈과 효율이란, 서로 대척점을 이룰 정도로 거리가 멀었다.(73p)
사과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라고. 타인에게 미안하다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오류를 발견하고도 이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노력이라 오랜 고난 후에야 얻어지는 용기였다.(75p)
설령 그게 부당하다 할지라도 온 세상이 합의를 본 불합리였다. 그러니 폴로는 자신도 그 불합리의 수혜를 좀 봐야겠다고 판단했다. 인간은 수혜자가 되면 꽤나 많은 걸 눈감았다.(88p)
사람들은 열정과 의지에서 발현되는 기적을 믿지만, 현실은 지나칠 정도로 이성적일 때가 있었다. 가끔보다 더 자주. 그래서 꿈은 사람을 자주 울렸다. 또한 기계들은 인간이 꿈을 좇눈 속도보다 더욱 빠르게 이상에 닿았다. 그들은 꼬리의 잔상조차 남기지 않는 무시무시한 빛줄기였고, 인간이 시린 눈을 감은 때에는 이미 지상에 불시착한 뒤였다.(96-97p)
가진 게 많은 사람일수록 믿음에 까다로운 대가를 요구한다는 점 역시 알았다.(114p)
갈수록 똑똑해지는 타자들은 예리한 첨탑 위에 설 줄은 알아도 사람의 둥그런 마음을 보듬을 줄은 몰랐다. 그들이 키워낸 기술 또한 서글픔을 모른 채로 자라난 아이여서 상처를 준 후에도 찬란하게 웃기만 했다.(124p)
법은 선악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명제 뒤에 숨어 딱히 피해자를 최우선으로 여기진 않았다.(188p)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술은 선언자의 영향을 받습니다.-중략-선언자가 인간인 이상 반드시 이들의 족적이 남는데 어떻게 가치중립을 지킬 수 있단 말이에요?(193p)
빙산같은 마음을 참지 못해 티끌만 한 문제를 만들 바에야 속에 빙산을 가둬놓고 사는 게 나았다.(209p)
타자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는 데 반해 요구하는 것 없이 잘 인내하니 이것이야 말로 헌신이며 진정한 돌봄이라는 걸. 그러나 인간이 영위하는 모든 것은, 심지어 약자를 돌보는 일조차도 그들의 세계에서는 상호작용이었다. 일방의 마음으로 완수되는 일은 없었다.(252p)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존재일까. 또 무엇을 위해 걷고 있는 걸까. 누군가는 발걸음 뒤에 남겨진, 의지를 빗나갔던 시간을 비극이라 치부하지만, 그것마저 감싸 안는 마음이야말로 제 몫의 미래가 아닐까. 나는 먼훗날, 소년에게 필요할 용기가 되어주기로 했다.(281p)


엑스 데우스 마키나
효율 논리 인내
이해 존중 수용
인봇의 경계와 한계를 스토리로 한 소설이였으나, 사실은 인간의 경계와 한계를 말한다. 의도적으로 불편한 상황을 보여주며 불쾌함의 내면을 고민하게 만든다. 과학문학상이라는 정의를 직관하기 어려운 부분의 대상이라는 이 작품은 분명히도 철학을 다룬다.
필력도 좋고 스토리도, 플롯도 좋아서 글은 막힘 없이 읽힌다. 어쩌면 이 소설의 단점이 속도감일지도 모른다. 인생 내내 거듭 고민해야 겨우 가닥이 잡힐 만한 인간으로서 삶의 가치관 문제들은 우르르 쏟아낸다. 글이 잘 읽혀진 바람에(?) 책을 덮고 나서야 나는 내 앞에 놓인 물음들 곱씹어 본다.
작가는 ‘무게 추를 어디에 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뀐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지극히 공감갈 뿐만 아니라 반박이 필요없을 정도로 자명한 사실이지만, 중요한 것은 사실 우리는 삶에 많은 부분에 천칭을 두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무게 추를 ‘어디’에 두는지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대부분 천칭을 외면한다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나의 천칭은 어디어디에 있고, 어느 방향으로 기울었는지 생각하며 살아야겠다.

라스트 젤리 샷

청예 지음
허블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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