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섭아_다읽었어
책을 다 읽고 한동안 먹먹했다. SF소설을 읽고 이런 감정이 들 줄 몰랐다.
흔히 이 책을 '지구 구하기 프로젝트'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에게 끝내 남은 건 다른 두 존재가 서로에게 건넨 온기, 그리고 미움받을 용기로 가득 찬 한 여자의 희생 정신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책 중간 중간 등장하는 우주선의 원리나 복잡한 물리•화학적 설명들은 이해하기 꽤나 낯설고 어려웠다. 아스트로파지의 작동 원리나 빛의 속도에 가까운 추진 방식 같은 부분은 눈으로 꼼꼼히 읽어도 머릿속에서 잘 그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모든 과학적 지식을 완벽히 이해하려는 시도를 그냥 내려놓았다. 어려운 수식과 전문 용어를 내려놓는 순간 비로소 이 책이 품은 진짜 이야기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건 바로 그레이스와 로키가 나누는 우정, 그리고 스트라트의 서늘한 결단이었다.
가장 먼저 마음을 흔든 건 그레이스와 로키의 관계다. 이들의 우정을 단순한 '동료애'나 '감동적인 종족 간 화합' 같은 예쁜 말로 포장하고 싶지 않다. 둘의 만남은 낭만적임과 거리가 멀었다. 거미를 닮은 기괴한 외형, 거친 금속음 같은 기괴한 언어. 하지만 생존이라는 절대적인 명제 앞에서 두 생명체는 서로의 공포를 알아채고, 지식을 교환하고, 마침내 서로를 위해 목숨을 건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두 사람이 서로의 언어와 생물학적 차이를 맞춰가는 과정이었다. 그건 단순한 통역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세계관을 깎아내는 일종의 '노동'이었다. 과학적 계산과 이성으로 뭉친 그레이스가 로키를 위해 지구로 돌아가는 확실한 생존의 길을 포기하고 다시 우주 한복판으로 핸들을 돌릴 때, 우정이란 거창한 감정이 아니라 '상대방이 없는 삶은 의미가 없다'는 확신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반면, 스트라트라는 인물은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묘하게 불편한 감정을 들게 만들었다. 모두가 희망을 말할 때 그녀는 홀로 오물을 뒤집어썼다. 법을 어기고,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윤리적 독재자가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녀의 행동에 혀를 찼지만, 정작 그녀 덕분에 만들어진 헤일메리호에 안도했다.
스트라트의 희생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웅적 희생'이 아니다. 그건 타인의 혐오와 역사적 악명을 스스로 짊어지는, 아주 지저분하고 고독한 희생이었다. 스스로를 악당으로 규정하면서까지 인류 전체를 구하려 했던 그 서늘한 결단력 앞에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은 의문이 남았다. 남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소박한 이기심조차 버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숭고함이었다.
결국 이 소설은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본질을 건드린다. 복잡한 과학 공식을 다 잊어버리더라도 가슴속에 남는 건 두 가지 사랑이다. 한쪽에는 인류 전체를 위해 스스로를 기꺼이 잿더미로 만든 스트라트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오직 한 존재를 구하기 위해 우주 끝으로 도약한 그레이스가 있다. 완전히 다른 크기의 두 사랑이 '에리디언'과 '지구'라는 두 세상을 구한 셈이다.
책을 다 읽고 우주가 아무리 차갑고 텅 비어 있어도 누군가 나를 위해 목숨을 걸고 달려오고 있다면, 혹은 누군가 세상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악역을 자처하고 있다면 그곳은 결코 외로운 공간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지은이), 강동혁 (옮긴이) 지음
알에이치코리아(RHK)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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