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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눌프

헤르만 헤세 지음
민음사 펴냄

이 책의 주인공 크눌프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다. 한 직장에 정착하지도 않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지도 않는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며 친한 친구나 아는 이들의 집에 며칠씩 묵어간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대책 없는 백수나 방랑자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크눌프에게는 묘한 매력이 있다. 성품이 따뜻하고, 노래를 잘 부르며,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책을 읽는 내내 크눌프의 삶을 보며 부러움과 걱정이 동시에 들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틀에 맞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크눌프처럼 자유롭게 사는 삶은 일종의 로망이다. 하지만 동시에 '저렇게 살면 나중에 어떻게 될까?', '노후는 어떻게 준비하지?'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 역시 사회가 정해놓은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소설의 마지막 , 죽음을 앞둔 크눌프가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였다. 크눌프는 자신이 정착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인생을 낭비했다며 후회 섞인 푸념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크눌프에게 너는 그 모습 그대로 세상에 기쁨을 주었고 사람들에게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일깨워주었다고 말해준다.

이 부분에서 마음이 참 먹먹해졌다. 우리는 늘 남들과 비슷한 길을 걸어야 잘 산 인생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가정을 이루고,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세상에는 크눌프처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남들과 똑같은 길을 가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결대로 살아간 인생이라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남들 눈에 조금 느려 보이거나 특이해 보이더라도 나에게 맞고 행복하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잘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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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초록색 피부에 머리에 나사가 박힌 괴물의 모습이었다. 어릴 적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 보았던 희화화된 캐릭터 말이다. 하지만 실제 소설 속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내가 알고 있던 괴물의 이미지는 완전히 깨졌다. 이 책은 흔한 공포 소설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감과 외로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무거운 이야기였다.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생명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집념으로 인공 생명체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자신이 만들어낸 피조물이 눈을 뜨는 순간 , 그 흉측한 몰골에 섬뜩함을 느끼고 도망쳐 버린다. 나는 이 대목에서 제일 먼저 화가 났다. 자기가 원해서 만들어놓고 단지 겉모습이 기괴하다는 이유만으로 갓 태어난 아기와 다름없는 생명체를 버린 것이다.

피조물이 처음부터 악마였을까? 소설 속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그렇지 않았다. 괴물은 세상에 나와 사람들의 사랑과 따뜻한 온기를 원했다. 글을 배우고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며 선한 마음을 키우려 애썼다. 하지만 그가 사람들에게 다가갈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비명과 돌멩이, 그리고 총알뿐이었다. 아무리 마음이 따뜻해도 외모가 흉측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상 모든 이들에게 거부당한 것이다.

결국 괴물이 저지른 수많은 악행과 복수는 그 자신의 본성이 악해서가 아니라 철저한 외로움과 절망이 만든 결과였다. 괴물이 빅터에게 자신과 닮은 짝을 만들어 달라고 애원하며 "나는 단지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할 때는 괴물이 아니라 상처받은 한 인간처럼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책을 덮고 나서 '진짜 괴물은 누구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명을 만들어놓고 나 몰라라 한 무책임한 과학자 빅터일까, 겉모습만 보고 그를 배척했던 세상 사람들일까, 아니면 결국 살인을 저지른 피조물일까.

요즘 세상도 소설 속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여전히 타인의 겉모습이나 배경만 보고 쉽게 판단하고 편가르기를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유 없는 편견을 보인 적은 없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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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M.셀리 지음
열린책들 펴냄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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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제목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보았을 때는 그냥 단순한 질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제목 뒤에 붙은 점 세 개(...)는 사실 질문이 아니라 유혹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시몽이 폴에게 던진 이 짧은 문장은 , 평범한 취향의 물음이 아니라 "당신은 아직 새로운 것에 가슴이 뛸 수 있는 사람인가요?"라는 은밀한 조롱이자 초대같았다.

주인공 '폴'은 자신에게 무심하고 늘 딴청만 피우는 연인 '로제' 때문에 매번 외롭고 상처받는다. 그러다 자신 보다 14살이나 어린 열정적인 청년 '시몽'을 만난다. 시몽은 폴에게 끊임없이 마음을 표현하며 그녀의 잊혀졌던 감정을 깨워주려 애쓴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속으로 폴을 답답해했다. '왜 자기를 외롭게 만드는 사람 곁에 계속 남아있을까? 저렇게 자신만을 바라봐 주는 좋은 사람이 나타났는데 왜 망설이는 걸까?' 당연히 시몽을 선택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결국 폴은 다시 예전 연인인 로제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로제는 역시나 예전과 똑같이 핑계를 대며 자리를 비운다. 참 답답한 결말이었지만, 책장을 덮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이상하게도 폴의 마음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 이해는 불쾌함과 슬픔이 동반했다.

폴이 로제에게 돌아간 것은 그를 더 사랑해서가 아니다. 자신이 이미 너무 익숙해져 버린 고통과 슬픔이 , 시몽이 가져다줄지 모르는 낯선 행복보다 더 안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새로운 행복을 받아들이려면 자기 자신이 변해야 하고 그 관계가 언제 깨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견뎌야 한다. 반면에 오래된 슬픔이나 외로움은 이미 삶에 너무 깊이 들어와 있어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나를 아프게 하는 일상일지라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보다는 덜 무서운 법이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비슷했던 적이 많았다. 더 좋은 기회가 오거나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순간에도 단지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도전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했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상처받기 싫어서, 혹은 변하는 게 두려워서 익숙한 불편함을 그냥 참아버리던 모습이 내 안에도 분명히 있었다.

이 책은 단순히 세 사람의 연애 이야기를 넘어서 인간이 얼마나 변화를 두려워하고 익숙한 삶에 쉽게 길들여지는지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물음은 결국 나에게 이렇게 돌아온다. "너는 지금 익숙함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 새로운 삶을 피하고 있지는 않은가?" 책을 덮고 나서 내가 지금 붙잡고 있는 익숙한 일상들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해보게 되었다.

@member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민음사 펴냄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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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섭아_다읽었어

책을 다 읽고 한동안 먹먹했다. SF소설을 읽고 이런 감정이 들 줄 몰랐다.
흔히 이 책을 '지구 구하기 프로젝트'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에게 끝내 남은 건 다른 두 존재가 서로에게 건넨 온기, 그리고 미움받을 용기로 가득 찬 한 여자의 희생 정신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책 중간 중간 등장하는 우주선의 원리나 복잡한 물리•화학적 설명들은 이해하기 꽤나 낯설고 어려웠다. 아스트로파지의 작동 원리나 빛의 속도에 가까운 추진 방식 같은 부분은 눈으로 꼼꼼히 읽어도 머릿속에서 잘 그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모든 과학적 지식을 완벽히 이해하려는 시도를 그냥 내려놓았다. 어려운 수식과 전문 용어를 내려놓는 순간 비로소 이 책이 품은 진짜 이야기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건 바로 그레이스와 로키가 나누는 우정, 그리고 스트라트의 서늘한 결단이었다.

가장 먼저 마음을 흔든 건 그레이스와 로키의 관계다. 이들의 우정을 단순한 '동료애'나 '감동적인 종족 간 화합' 같은 예쁜 말로 포장하고 싶지 않다. 둘의 만남은 낭만적임과 거리가 멀었다. 거미를 닮은 기괴한 외형, 거친 금속음 같은 기괴한 언어. 하지만 생존이라는 절대적인 명제 앞에서 두 생명체는 서로의 공포를 알아채고, 지식을 교환하고, 마침내 서로를 위해 목숨을 건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두 사람이 서로의 언어와 생물학적 차이를 맞춰가는 과정이었다. 그건 단순한 통역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세계관을 깎아내는 일종의 '노동'이었다. 과학적 계산과 이성으로 뭉친 그레이스가 로키를 위해 지구로 돌아가는 확실한 생존의 길을 포기하고 다시 우주 한복판으로 핸들을 돌릴 때, 우정이란 거창한 감정이 아니라 '상대방이 없는 삶은 의미가 없다'는 확신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반면, 스트라트라는 인물은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묘하게 불편한 감정을 들게 만들었다. 모두가 희망을 말할 때 그녀는 홀로 오물을 뒤집어썼다. 법을 어기고,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윤리적 독재자가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녀의 행동에 혀를 찼지만, 정작 그녀 덕분에 만들어진 헤일메리호에 안도했다.

스트라트의 희생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웅적 희생'이 아니다. 그건 타인의 혐오와 역사적 악명을 스스로 짊어지는, 아주 지저분하고 고독한 희생이었다. 스스로를 악당으로 규정하면서까지 인류 전체를 구하려 했던 그 서늘한 결단력 앞에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은 의문이 남았다. 남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소박한 이기심조차 버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숭고함이었다.

결국 이 소설은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본질을 건드린다. 복잡한 과학 공식을 다 잊어버리더라도 가슴속에 남는 건 두 가지 사랑이다. 한쪽에는 인류 전체를 위해 스스로를 기꺼이 잿더미로 만든 스트라트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오직 한 존재를 구하기 위해 우주 끝으로 도약한 그레이스가 있다. 완전히 다른 크기의 두 사랑이 '에리디언'과 '지구'라는 두 세상을 구한 셈이다.

책을 다 읽고 우주가 아무리 차갑고 텅 비어 있어도 누군가 나를 위해 목숨을 걸고 달려오고 있다면, 혹은 누군가 세상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악역을 자처하고 있다면 그곳은 결코 외로운 공간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지은이), 강동혁 (옮긴이) 지음
알에이치코리아(RHK)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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