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 관계를 다룬 작품은 많다.
그러나 그 중에 엄마의 시선으로 딸을 보는 작품은 드물다.
열 아들 안 부럽게 키운 딸. 생을 다 바쳐 키운 딸.
그러나
레즈비언이자 시간강사이자 부당한 해고에 시위하는 딸.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만류하는 엄마.
이 둘의 갈등을 풀어내는 계기는 엄마가 요양원에서 돌보는 치매 노인이자 무연고자인 '젠'에게서 온다.
딸이 시간강사 부당 해고 시위에 참여하는 까닭은 "언제든 내 일이 될 수 있으니까".
엄마가 젠을 집으로 데려와서까지 돌보는 까닭도 "언제든 내 일이 될 수 있으니까".
레즈비언, 무연고자, 시간강사, 요양보호사 등 내 일이 아니면 궁금해하지 않는다. 사실 내 한 몸 챙기기도 벅찬 시대다.
인물들이 타인의 삶에 끼어드는 결정적 계기는 '현실적 공포'다. 측은지심이나 연민이 아닌,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그들을 투사로 이끈다. 나이가 들면서 혼자 남겨지고 고독해지는 미래의 두려움 때문에 엄만 딸이 보통 사람처럼 적당한 남자 만나 아이 낳고 사는 것을 간절히 바란다.
그렇게 엄마는 딸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그저 팽팽하던 밧줄을 조금 느슨히 풀어줄 뿐이다.
엄마 시점이기에 딸과 딸 친구의 사정은 자세히 드러나지 않는다. 뭔가 제대로 해결되는 것도 없다. 달라지지 않는 상황들이 다소 우울하고 답답한 면이 있다. 어쩌면 이러한 점 때문에 이 소설이 더 현실적으로 와닿는 것인지도 모른다.
끝내 딸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엄마의 마음이, 딸을 끝내 모르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엄마의 마음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 그럼에도 나는 질문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묻고 또 묻고 지칠 때까지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딸애는 내 자식이니까. 끝내는 내가 알고 싶고, 내가 알아야만 한다. 적어도 나는 도망가는 부모이고 싶지 않다. 그런 식으로 회피하고 머뭇거리면서 딸을 잃고 싶지 않다. (155쪽)
읽었어요
1
오디세우스의 영웅 서사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어서 + 동서양 신화를 광범위하게 아우르는 책이므로 이 책을 선택했는데 반은 끄덕이며 읽고 반은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을 하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 헬리오스 섬의 오디세우스
- 헬리오스의 섬(광명의 섬)에서, 헬리오스의 황소를 잡아먹은 죄로 파선된다. 광명이라는 존재 앞에서 식욕을 느끼는 것은 참담하다. 광명을 내적으로 체험하지 못하고,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 부하들은 죽었다.
- 판다로스(퓌티아 경기의 씨름대회에서 챔피언이 된 오디세우스에게): "광명의 아들이 아닌가?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인간은 꿈 같이 덧없는 존재. 그러나 하늘의 선물인 태양이 비치면, 광명한 일광이 머무르면, 아, 아름다워라!"
-> 부하들과 달리 식욕을 참아 낸 오디세우스는 아름다운 존재로서 거듭난다.
📚 '영웅'이란, 자기 삶을 자기보다 큰 것에 바친 사람을 비유한다. 영웅은 무언가를 상실하거나 결핍된 상태에서 모험을 떠나 돌아오는데, 모험은 성인식과 유사한 기능을 한다. 유아기의 인격과 정신을 버리고 책임 있는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원래 살던 생에서 의식하지 못한 것을 깨닫는다.
- 오디세우스의 아들인 텔레마코스는 여행을 스스로 선택하는 영웅이다. 자기 아버지의 이름, 자신의 근본을 찾는 모험인 반면, 오디세우스는 자발적인 모험이 아니다. 길을 잃어 헤멘다.
📚 우리는 세계와 관계를 이루기 위해, 우리 삶을 현실과 조화시키기 위해 옛이야기를 읽고 감상한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불완전한 인간은 작가가 진실한 언어의 창을 던지면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그 창은 사랑의 창이다. 이것이 이른바 토마스 만의 '에로틱 아이러니'다. 불완전한 존재에게 사람은 사랑을 느낀다. 불완전한 존재가 고통을 느끼는 데에서 '인간미'를 느낀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은 '삶의 의미'가 아닌, '살아있음에 대한 경험'이다. 인간은 살아있음을 느낄 때 황홀하다.
🙄 조셉 캠벨의 신화학은 이야기 구조와 상징성을 분석하는 도구로서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가 전제한 성역할과 '보편성'의 기준은 20세기 중반 서구 남성 중심적 시각이라는 분명한 시대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 캠벨이 주장하는 여성은 영웅을 유혹하는 역할, 또는 영웅의 업적에 주어지는 보상에 그친다. 캠벨은 전세계의 신화를 수집하여 보편적 의미를 추출했다고 하지만, 사실 가부장적 관계를 보여 주는 신화에 치우처져 있다.
- 따라서 현대에 캠벨을 읽을 때는 그의 이론을 절대적 법칙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신화 속 가부장제 프레임이 어떻게 작동했는가"를 이해하는 비판적 참고서로 읽는 것이 최근 학계의 일반적인 접근 방식이라고 한다.
신화의 힘
조지프 캠벨 외 1명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읽었어요
1
2019년부터 최근까지 쓴 기고문, 발표문, 수필을 모았다.
김애란의 소설 속 문장들엔 주제가 직접 드러나는 일이 적어서 감상하려면 다른 책들에 비해 보다 몰입해서 읽어야 하므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 소설에 비해 이 수필집을 읽으면서는 이런 마음으로 그간 작품들을 써 왔겠구나, 하고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깊은 눈 너머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총 3부로 구성했는데, 1부에선 쇠약해 가는 아버지와 발전해 가는 챗지피티의 이야기를 담았다. 아버지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20년 전 소설집 《달려라, 아비》가 몇 번 같이 인용되어서 함께 읽고 있다. 《달려라, 아비》에서도 그렇지만 다른 소설들에서도 주인공 가정의 생계를 도맡은 것은 어머니였으며 아버지의 입지는 작았다. 작은 입지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이번 산문집을 읽으니 아버지를 대하는 작가의 시선이 더 애틋하다.
나와 동년배인 이 작가의 수필들을 보면서 같은 나이에 같이 겪었을 여러 사건들에 나를 겹쳐 본다. 성찰하는 그의 글을 통해서 동시에 나를 성찰한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지는 밤이다.
읽었어요
1
모든것
읽고싶은데 읽기 무서운 그런 책이네요
2시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