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 민음사 펴냄

안나 카레니나 3 (세계문학전집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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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9.4

페이지

6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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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가 남긴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 위선, 질투, 신념, 욕망, 사랑 등 인간의 감정과 결혼, 계급, 종교 등 인간이 만들어 낸 사회 구조에 대한 톨스토이의 모든 고민이 집약된 소설이다. 동시대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로부터 '완벽한 예술 작품'이라는 평가와, 러시아 출신 소설가인 나보코프로부터 '톨스토이 스타일의 정점'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스테판 공작이 가정교사와 바람을 피운 사건 때문에 부부 사이에 불황가 생기자, 그의 여동생 안나 카레니나는 이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모스크바로 온다. 페테르부르크에서 고위 관리의 아내로, 한 아이의 어머니로 행복하게 살던 안나는 이곳에서 만난 브론스키 백작에게 사로잡히고 만다. 브론스키는 스테판의 처제 키티에서 구애하던 중이었으나 그 역시 안나에게 빠져든다.

키티는 브론스키의 청혼을 기다리며 점잖은 귀족 레빈의 청혼도 거절했지만, 안나가 브론스키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절망한다. 레빈 역시 키티에서 거절당한후 낙담하여 시골로 돌아간다. 한편 안나와 브론스키의 관계는 그들 가족은 물론 러시아 사교계에도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둘은 사회에서 싸늘하게 외면당한 채 외국으로 떠난다.

<안나 카레니나>는 톨스토이 자신의 신념, 종교나 농민 문제 등에 대한 그의 고민이 잘 드러나있는 소설이다. 특히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 농민과 토지에 대해 고민하는 레빈에게 작가의 모습이 상당 부분 반영돼 있다. 톨스토이는 문학뿐 아니라, 철학과 종교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 준 사상가로 평가받는데, 그의 이런 사유가 이 소설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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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민(상태:카뮈)

@smlee682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안나 카레니나>를 여는 이 문장을 다시 읽으면서 나는 처음부터 조금 의심했다. 정말 행복은 서로 닮아 있고 불행만이 저마다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런데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오히려 이 문장을 거꾸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이 단순해서 비슷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대개 행복 앞에서는 그 내부를 굳이 해부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잘 돌아가는 시계의 톱니를 하나씩 들여다보는 사람은 드물지만, 시계가 멈추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뚜껑을 열고 무엇이 어긋났는지 살핀다. 불행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불행은 삶의 표면에 금을 내고, 그 틈으로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욕망과 두려움, 사랑과 권태, 책임과 고독의 결을 드러낸다. 그러니 불행한 가정들이 저마다 다르게 보이는 것은 불행이라는 것이 특별히 더 복잡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불행 앞에서야 비로소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에서 안나와 레빈의 이야기가 나란히 흐른다는 사실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서로 정반대의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안나는 사교계의 한가운데에서 브론스키와의 사랑이라는 불길 속으로 뛰어들고, 레빈은 도시에서 멀어진 들판에서 농부들과 낫을 휘두르며 노동과 가족, 신앙 속에서 삶의 의미를 더듬어간다. 한 사람의 삶은 점점 빠르게 타오르다가 소진되고, 다른 사람의 삶은 흙 위에 한 겹씩 천천히 쌓인다. 그러나 조금 더 오래 바라보면 두 사람은 사실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었다. 나는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가. 무엇이 내 삶을 견디게 할 것인가. 안나는 그 대답을 사랑이라는 하나의 강렬한 감정에서 찾았고, 레빈은 노동과 가족과 타인, 그리고 자신보다 오래 존재해온 어떤 질서 속에서 찾으려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차이는 행복과 불행의 차이라기보다 삶의 공백을 채우는 방식의 차이에 가까워 보였다. 안나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밝힐 수 있는 불꽃을 원했고, 레빈은 어둠 속에서도 오래 꺼지지 않는 작은 등불들을 하나씩 켜나갔다.

안나의 비극이 유독 서늘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브론스키를 사랑할수록 그녀의 세계는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점 좁아진다. 처음에 사랑은 답답했던 삶의 벽을 무너뜨리고 바깥으로 나아가는 문처럼 보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문은 오직 브론스키에게로만 이어지는 하나의 통로가 된다. 남편과 아들, 사회적 관계와 자신의 자리에서 떨어져 나간 뒤, 그녀는 점차 사랑 하나에 자기 존재의 거의 모든 무게를 싣는다. 그러자 사랑은 더 이상 삶을 풍요롭게 하는 감정이 아니라 삶 전체를 지탱해야 하는 기둥이 된다. 그러나 아무리 단단한 사랑이라도 한 인간의 삶 전체를 혼자 떠받칠 수는 없다. 기둥이 하나뿐인 집은 그 기둥에 작은 균열만 생겨도 건물 전체가 흔들린다. 브론스키의 무심한 표정 하나, 늦은 귀가 하나, 자신이 사랑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작은 의심 하나가 안나에게는 단순한 연인의 갈등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곧 자신의 존재가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사랑을 잃는 것이 곧 자기 자신을 잃는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안나의 비극을 사랑을 선택한 사람에게 내려진 벌처럼 읽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비극은 인간이 단 하나의 존재나 감정에게 자기 삶을 증명해달라고 요구할 때 생기는 위험에 가까워 보였다. 사랑은 한 사람의 삶을 밝혀줄 수는 있어도 그 사람 대신 삶 전체가 되어줄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이 너무 강렬할 때 자꾸만 그것을 삶의 일부가 아니라 삶 그 자체로 착각한다. 마치 태양이 너무 밝아서 그 빛 아래 다른 별들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하나의 감정이 지나치게 커지면 그 밖에 자신을 붙들고 있던 것들이 모두 사라진 듯 느껴진다. 그러나 별들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된 것뿐이다. 안나는 결국 사랑 이외의 빛을 거의 볼 수 없는 곳까지 걸어갔고, 그 하나의 빛마저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 자신에게 남은 세계 전체가 어두워졌다고 믿게 된다.

반대로 레빈이 삶의 의미에 가까워지는 순간들은 이상하리만큼 소박하다. 나는 그가 농부들과 함께 밭에서 낫을 휘두르는 장면을 읽으며, 톨스토이가 왜 하필 사유가 아니라 노동 속에서 그에게 잠깐의 평화를 허락했는지를 생각했다. 레빈은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머리로 이해하려 하지만, 죽음을 앞둔 형의 몸 앞에서는 그 모든 질문과 논리가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죽음은 사유로 풀어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모든 설명이 끝나는 자리처럼 그 앞에 놓인다. 그런데 들판에서 몸을 움직일 때, 땀이 흐르고 낫이 일정한 간격으로 풀을 베어낼 때, 그는 잠시 질문하는 자신을 잊는다. 그 순간 삶은 설명되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냥 살아지고 있는 하나의 리듬이 된다. 나는 여기서 의미라는 것이 우리가 끝끝내 발견해야 할 문장이라기보다, 때로는 질문을 잊을 만큼 무언가에 온전히 몸을 맡기는 순간에 잠깐 나타나는 감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삶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어느 순간 의미가 뒤늦게 우리를 따라잡는 것인지도 모른다.

안나가 마지막으로 기차역을 향해 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 거리의 풍경을 하나같이 추하고 악의적으로 받아들이는 장면도 오래 남았다. 그 순간 그녀에게 세상은 갑자기 견딜 수 없이 천박하고 비열한 장소가 된다. 그러나 변한 것이 정말 세상이었을까. 나는 그 장면을 읽으며 절망이라는 감정에는 자기 자신을 세계 전체로 확대하는 힘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슬픈 사람에게 세상은 슬퍼 보이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모든 우연은 위협의 징조로 읽힌다. 마음은 투명한 유리창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색으로 바깥을 물들이는 스테인드글라스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안나의 마지막 세계가 그토록 어두웠던 것은 세상의 모든 빛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그녀 안에서 이미 너무 많은 빛이 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인간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불행과 세계의 본질을 더 이상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절망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느새 세상에는 절망밖에 없다는 명제로 바뀌는 순간 말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소설의 첫 문장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행복한 가정이 모두 비슷해 보이는 까닭은 어쩌면 행복이 어떤 완전한 상태이기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것들이 서로의 무게를 조금씩 나누어 들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족과 일, 사랑과 우정, 습관과 책임, 신념과 사소한 기쁨들이 서로 기대어 있기 때문에 하나가 흔들려도 삶 전체가 곧바로 쓰러지지 않는 것이다. 행복은 하나의 거대한 기둥 위에 세워진 궁전이 아니라, 얼핏 보기에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수많은 들보와 못이 서로의 무게를 조금씩 나눠 가진 집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그래서 <안나 카레니나>를 덮고 나서 나는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보다 무엇들이 나를 붙들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됐다. 나는 지금 내 삶의 무게를 어디에 싣고 있는지, 혹시 하나의 사랑이나 하나의 성공, 한 사람의 인정 같은 것에 너무 많은 무게를 몰아주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됐다. 안나와 레빈의 삶은 결국 나에게 서로 다른 대답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경고처럼 남았다. 하나는 삶 전체를 단 하나의 불꽃에 맡겼을 때 인간이 얼마나 쉽게 그 불길 속에서 자기 모습을 잃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다른 하나는 삶이란 거대한 의미 하나를 찾아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 작고 평범한 것들에게 조금씩 자신의 무게를 나눠주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삶은 어쩌면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견딜 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무너질 수 없을 만큼 많은 이유를 만들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랑이 흔들릴 때는 일이, 일이 무너질 때는 사람이, 믿음이 희미해질 때는 아주 사소한 하루의 습관이 우리를 붙잡아주는 것. 그렇게 서로 다른 작은 기둥들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서로의 균열을 대신 견디고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하나의 상실이 자신의 전부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어쩌면 톨스토이가 그토록 많은 인물과 관계와 일상을 이 거대한 소설 안에 밀어 넣은 이유도 거기에 있는지 모른다. 한 인간의 삶은 결코 하나의 사랑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단 하나의 절대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일이 아니라 수많은 불완전한 의미들 사이에 조금씩 자신의 무게를 나누어 싣는 일이기 때문이다.

안나 카레니나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민음사 펴냄

4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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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godd

나는 이 책을 단순히 소설이 아니라 사랑에 관한 감정을 총 망라한 종합 예술서라 부르고 싶다.

왜냐하면 이 작품엔 첫 눈에 반한 사랑, 첫사랑, 짝사랑, 자녀를 향한 사랑, 육체적 사랑, 정신적 사랑 등 자세히 뜯어보면 미묘한 차이가 있는 온갖 사랑이 총 망라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는 감정의 일부분이며 그것은 관계와 상황, 분위기 또는 개인차에 따라 상이한 높낮이와 강도, 농도를 갖는다.

톨스토이는 레빈과 키티, 안나와 브론스키라는 두 쌍의 연인, 그리고 그들과 관계맺고 있는 주변 인물들을 통해 각각의 사랑에 대한 은밀한 차이를 펼쳐낸다.

사건은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우다 걸린 안나의 오빠 스티바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스티바는 분노한 아내 돌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여동생 안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페테르부르크에 살던 안나는 오빠를 돕기위해 기꺼이 모스크바로 향한다.

이와 동시에 모스크바 역에 도착한 스티브의 친구 브론스키는 안나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하지만 안나는 이미 결혼한 신분이었다.

열 여덟 이른 나이에 결혼한 안나에겐 20세 연상의 남편과 사랑하는 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사랑에 눈 먼 브론스키는 그러한 안나의 처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녀를 따라다닌다.

한편 스티바의 또다른 친구 레빈은 스티바의 아내 돌리의 친 동생이자, 최근들어 브론스키와 달달한 로맨스에 빠져 있는 키티를 오래전부터 짝사랑해 왔다.

그는 스티바의 조언을 받고 용기내어 키티에게 청혼하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 만다.

그러나 키티가 레빈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브론스키와 레빈 사이에서 갈피를 정하지 못 한 당시의 상황 때문이었다.

크게 실망한 레빈은 시골로 떠나고, 안나에게 반한 브론스키에게 외면당한 키티 또한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고 실의에 빠진다.

그러는 사이 안나와 브론스키의 금지된 사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안나의 남편 카레닌은 수치와 모욕, 배신과 분노로 고통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론스키와의 사이에서 아이까지 갖게 된 안나는 사랑을 찾아 집을 떠난다.

그러나 그녀에겐 집에 남겨놓은 또 다른 사랑이 있었는데, 하나뿐인 아들 세료자가 바로 그 사랑이었다.

안나는 죽을 때까지 아들을 못 잊어 괴로워한다.

바야흐로 그녀에게 남은 사람은 오직 브론스키 뿐이었으며, 오직 그의 사랑만이 삶을 이끌어 줄 유일한 원동력이었다.

그렇게 브론스키를 향한 안나의 집착과 히스테리는 점점 커져만 가고 브론스키 또한 그러한 안나의 태도로 인해 서서히 지쳐간다.

숨 쉴 구멍이 필요한 브론스키와 맹목적인 사랑만을 요구하는 안나.

둘 사이에 균열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사이, 레빈은 키티에게 다시 청혼하여 오랜 짝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키티와 레빈은 시골로 내려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안나와 브론스키의 관계는 끝을 향해 치닫는다.

안나의 뇌리엔 브론스키에 대한 의심이 똬리를 틀기 시작하고, 그녀는 더욱 더 브론스키를 못 살게 군다.

끝없이 피어오르는 망상과 집착, 괴로움과 고통의 나날 속에 그녀가 찾은 것은 영원한 안식이었다.

사랑하는 연인 브론스키와 사랑하는 아들 세료자.

성질이 다르고 모순적인 두 사랑은 결코 동시에 취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었다.

나는 브론스키와 세료재를 동시에 사랑하는 안나의 이중적인 면을 보며, 그녀가 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 안엔 브론스키를 사랑하는 안나와 아들 세료자를 사랑하는 안나가 마치 샴쌍둥이처럼 각각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그녀를 비난하고 싶진 않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안나처럼 다중인격과 중첩된 자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의 나와 집에서의 나, 가족을 대할 때의 나와 친구를 대할 대할 때의 나는 전혀 다른 인격적 특성을 갖는다.

마치 사랑이 한 마디로 정의 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것처럼, 우리 인간도 광활한 인격의 스펙트럼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민음사 펴냄

8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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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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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민음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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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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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가 남긴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 위선, 질투, 신념, 욕망, 사랑 등 인간의 감정과 결혼, 계급, 종교 등 인간이 만들어 낸 사회 구조에 대한 톨스토이의 모든 고민이 집약된 소설이다. 동시대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로부터 '완벽한 예술 작품'이라는 평가와, 러시아 출신 소설가인 나보코프로부터 '톨스토이 스타일의 정점'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스테판 공작이 가정교사와 바람을 피운 사건 때문에 부부 사이에 불황가 생기자, 그의 여동생 안나 카레니나는 이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모스크바로 온다. 페테르부르크에서 고위 관리의 아내로, 한 아이의 어머니로 행복하게 살던 안나는 이곳에서 만난 브론스키 백작에게 사로잡히고 만다. 브론스키는 스테판의 처제 키티에서 구애하던 중이었으나 그 역시 안나에게 빠져든다.

키티는 브론스키의 청혼을 기다리며 점잖은 귀족 레빈의 청혼도 거절했지만, 안나가 브론스키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절망한다. 레빈 역시 키티에서 거절당한후 낙담하여 시골로 돌아간다. 한편 안나와 브론스키의 관계는 그들 가족은 물론 러시아 사교계에도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둘은 사회에서 싸늘하게 외면당한 채 외국으로 떠난다.

<안나 카레니나>는 톨스토이 자신의 신념, 종교나 농민 문제 등에 대한 그의 고민이 잘 드러나있는 소설이다. 특히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 농민과 토지에 대해 고민하는 레빈에게 작가의 모습이 상당 부분 반영돼 있다. 톨스토이는 문학뿐 아니라, 철학과 종교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 준 사상가로 평가받는데, 그의 이런 사유가 이 소설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출판사 책 소개

《뉴스위크》 선정 100대 명저|국립중앙도서관 선정 권장도서|서울대 권장도서 100선
19세기 러시아가 낳은 위대한 예술가 톨스토이, 그가 남긴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
위선, 질투, 신념, 욕망, 사랑 등 인간의 감정과 결혼, 계급, 종교 등 인간이 만들어 낸 사회 구조에 대한 톨스토이의 모든 고민이 집약된 걸작

▶ 『안나 카레니나』는 완벽한 작품으로, 현대 유럽 문학 중에서 이 작품에 비견될 만한 것은 찾을 수 없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 『안나 카레니나』는 세계 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사회소설이다. ―토마스 만

▶ 예술가가 할 일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올바르게 제시하는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는 모든 문제를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안톤 체호프

▶ 톨스토이는 가장 위대한 러시아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강력하고 눈부시게 빛나며, 독창적인 동시에 보편적이다. 『안나 카레니나』는 톨스토이 스타일의 완벽한 마법이다. ―나보코프

19세기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Анна Каренина)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219.220.221)으로 출간되었다. 동시대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로부터 “완벽한 예술 작품”이라는 평가와, 역시 러시아 출신 소설가인 나보코프로부터 “톨스토이 스타일의 정점”이라는 극찬을 받은 바 있는 작품이다. 2007년 《타임》지에서 현대 작가 12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 통해 “지금까지 쓰인 가장 훌륭한 소설”로 뽑히기도 했다. 톨스토이 자신도 『안나 카레니나』를 “나의 진정한 첫 소설”로 여겼다고 한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안나 카레니나』는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젊은 번역자 연진희가 21세기의 감수성에 맞는 새로운 번역을 선보인다.


톨스토이의 사상과 고민이 집결된 대작
『안나 카레니나』는 안나와 레빈이라는 주요 인물에게 일어나는 사건과 그들의 생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안나는 유능한 고위 관리인 알렉세이 카레닌의 아내로, 둘 사이에는 귀여운 아들이 하나 있다. 정숙한 귀부인으로 사교계와 가정생활만이 자신의 세계였던 그녀는 어느 날 젊은 백작과 사랑에 빠지고 사교계에서도 가족에게서도 외면당한다. 한편 레빈은 대도시의 삶을 뒤로하고 시골에서 농장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후에는 더욱 시골 생활에 몰두하면서 농촌의 현실과 종교에 대해 고민한다. 삶의 방식과 태도, 가치관 등 모든 것에서 상반돼 보이는 이 두 인물을 통해 톨스토이는 전쟁, 농민, 부정부패 등 당시 러시아가 직면해 있던 문제와, 종교, 신념, 결혼 제도 등 그 자신이 고민하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인류에게 주어진 철학적, 사상적 문제를 추상적인 사고 속에서가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구체적인 세계에서 해결하려고 했다. 즉,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시공간과 인물을 창조하여, 그 속에서 여러 인물들을 통해 실직적인 해답을 얻으려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나 카레니나』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그들 나름의 사연과 생각을 지닌 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그 가운데에서 작가와 나아가 독자들은 삶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
『안나 카레니나』의 인물들 가운데는 톨스토이 자신의 모습이 특히 많이 반영돼 있다고 평가되는 인물이 있는데, 그는 바로 레빈이다. 레빈의 영지는 톨스토이의 영지 야스나야 폴랴나와 유사하며, 형의 죽음이나 키티에게 청혼하는 장면 등도 톨스토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중요한 점으로는 레빈이 가진 러시아 농민들에 대한 애정과 신에 대한 태도를 들 수 있는데, 이러한 점에서는 톨스토이가 자신의 사상을 레빈에게 그대로 반영한 듯 보이기도 한다. 그만큼 톨스토이는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 그의 생각과 고민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는 수없이 많은 내적 고리를 품고 있고, 그 고리를 연결할 때마다 형체를 갖추게 될 테마 역시 무한하게 존재한다. 그 무수한 발견의 ‘즐거움’은 안나와 레빈이 살았던 시공간과 동일한 질료로 이루어진 우리의 시공간, 즉 지속성과 관계성을 띤 시공간 안에서 우리의 축적된 삶과 『안나 카레니나』의 등장인물의 삶을 끊임없이 연계하여 독서할 때 찾아올 것이다.(「작품 해설」 중에서)


스스로 만들어 낸 사회 제도와 구조 속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인간 군상들을 통해 드러나는 삶의 진실, 사랑의 본질 나아가 인간 존재의 문제를 파헤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스테판 오블론스키 공작이 가정교사와 바람을 피운 사실이 발각되어 부부 사이에 위기가 닥친다. 페테르부르크에 살던 스테판의 여동생 안나 카레니나가 이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모스크바로 온다. 안나는 유능한 관리의 아내로 한 아이의 어머니로 정숙하고 우아하게 살아왔다. 안나의 노력으로 부부는 화해를 하지만, 오히려 안나는 그곳에서 젊은 백작인 브론스키에게 한눈에 사로잡히고 만다. 브론스키는 스테판의 처제 키티에게 구애하던 중이었으나 그 역시 안나에게 빠져든다. 키티는 브론스키가 청혼할 것으로 굳게 믿으며 점잖은 귀족 레빈의 청혼을 거절해 버린다. 그러나 안나와 브론스키가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함께 있는 모습에 키티는 절망한다. 레빈 역시 키티에게 거절당한 후 낙담하여 시골로 돌아가 그곳에 파묻혀 지내면서, 농촌과 농민 문제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간다.
한편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관계를 남편에게 숨기며 그와 밀회를 계속한다. 그러나 남편은 물론이고 사교계의 모든 사람이 둘의 사이를 눈치 챈다. 마침내 안나는 남편에게 사실을 대담하게 고백하고 이혼을 요구한다. 하지만 남편은 이혼을 거절하면서 표면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데, 안나는 그럴수록 더욱 그에 대한 증오심이 커져 감을 느낀다. 결국 안나는 브론스키의 딸을 낳고, 가족은 물론 사교계에도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다. 둘은 사회에서 싸늘하게 외면당한 채 외국으로 떠난다.
키티는 마음의 병을 얻어 외국으로 휴양을 떠났다가 마음의 변화를 느끼며 돌아오는데, 레빈은 그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변치 않았음을 확인하고, 마침내 둘은 결혼하게 된다. 한편 안나와 브론스키는 딸과 함께 외국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군대에서 제대한 후 출세의 길이 막히자 브론스키의 어머니는 안나를 더욱 미워하며 둘 사이를 반대한다. 여전히 남편과의 이혼은 요원하고, 첫 아이인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 가자, 안나는 점점 더 브론스키에게 집착하게 된다. 다시 러시아에 돌아오지만 사교계를 비롯한 그 어느 곳에서도 브론스키와의 관계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안나는 브론스키에 대한 사랑을 지독하게 갈구하고 그럴수록 브론스키는 그녀에 대한 마음이 식어 가는 것을 느낀다.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윌리엄 포크너 등 20세기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소설
영화, TV 드라마, 발레,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 각종 예술 장르로 재탄생하고 있는 영원한 고전
『안나 카레니나』는 여러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한편으로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사용해 그 인물들의 행동과 생각을 샅샅이 읽어 낸다. 각각의 인물들이 자신의 내면 심리를 생생하게 내비칠 때는, 독자들이 그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의 변화를 실감하게 되는 동시에, 인물들은 더욱 생명력 있는 인물로 거듭나게 된다. 또한 그 과정에서 작가 자신의 가치관과 문제의식이 드러나기도 한다.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에서 보여 준 이러한 ‘의식의 흐름’ 기법은 이후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윌리엄 포크너 등 20세기 작가들에게로 계승되어 발전했다.

‘저 남자는 날 안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날 알지 못하듯, 저 남자도 날 몰라. 나 자신도 날 모르겠는걸. 프랑스인들이 말하듯, 내가 아는 건 나 자신의 욕구야. 저 아이들은 저런 더러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 하네. 분명 저 애들이 아는 것도 자신의 욕구겠지.’ 그녀는 아이스크림 장수를 불러 세운 두 소년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아이스크림 장수는 머리에서 나무통을 내려놓고 수건의 끝자락으로 땀에 젖은 얼굴을 훔치고 있었다. ‘우리 모두 달콤하고 맛있는 것을 원하지. 당과가 없으면 더러운 아이스크림이라도. 키티도 똑같아. 브론스키를 갖지 못하면 레빈이라도 갖겠다는 거야. 그래서 날 질투하고 있어. 그리고 날 증오해. 우리 모두 서로를 증오해. 난 키티를, 키티는 나를. 그것이야말로 진실이야.’(본문 중에서)

『안나 카레니나』는 1935년 그레타 가르보를 주연으로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된 이후 비비안 리, 소피 마르소가 주인공 ‘안나’ 역을 맡는 등 계속해서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소설은 1878년 처음 단행본으로 출간된 이후, 영화와 TV 드라마, 발레,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 여러 예술 장르로 재탄생하면서 영원한 고전으로서의 가치가 계속해서 입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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