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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억 번째 여름

청예 지음
창비 펴냄

“너는 살아. 오래. 행복하게.”

소설의 주제를 읽어보지 않고, 제목 하나만 보고 책을 골랐다. 아포칼립스물이라는 것도 모른 채. 처음에는 평범한 현대물이라 생각하며 읽다가, 몇 페이지쯤 지나서야 다른 세계라는 걸 인지하게 되었다. 초반에는 성장물인가 싶었지만, 끝까지 읽고 나니 이 이야기는 성장보다는 사랑에 가까웠다.

수많은 여름이 반복되어도 나를 살게 해주는 단 한 사람.

이 문장은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사랑은 숭고하다. 현실에서는 쉽게 존재하기 어려운, 자기희생적인 사랑이다. 결핍으로 시작된 관계가 이토록 간절해질 수 있을까.

일록과 이록, 주홍과 연두, 그리고 백금. 두 종족 사이에서 벌어지는 착취와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도, 그들은 사랑 하나로 진실을 감추고 서로를 지켜낸다.

서로의 결핍으로 시작된 관계였지만, 결국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원망과 미움을 감수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내어주면서까지 끝내 서로를 지켜낸다는 점에서, 그 사랑은 더욱 선명해진다.

결국 이 작품이 내게 던지는 질문은 단 하나다. 사랑은 어떻게 사람을 살게 만드는가.

작품 속 사랑은 거룩하고 아름답지만, 동시에 또 다른 의문을 남긴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일록과 이록의 삶은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이것이 사랑이라면, 누구를 위한 사랑인 것일까. 사랑은 반드시 희생을 전제로 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록은 주홍이 필요했고, 일록은 연두가 필요했다. 이록에게는 신체적 결핍이, 일록에게는 관계의 결핍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의존했고, 그만큼 사랑했다. 오직 그 사람만이 자신의 삶의 이유가 될 정도로.

결핍에서 시작된 사랑은 아름답다.
아름답고, 동시에 비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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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내 인생을 상대하러 나선 놈, 바로 나.]

‘나’를 찾지 못한 청년들에게 바치는 이야기.
정유정 작가의 소설은 나랑 그닥 맞지 않아서 안 읽었었는데, 『내 심장을 쏴라』는 유명한 소설이기도 하고, 리뉴얼된 표지가 너무 내 취향이라서 마음 잡고 읽게 됐다. 그리고 결국 최애 소설 탑 쓰리에 들어갈 정도로 깊게 남았다.

사실 초반 1~20페이지까지는 재미가 없다. 내가 초반 페이지를 대충 읽는 경향이 있기도 했고, 내용 급전개와 등장인물이 많은 점이 겹쳐 이해가 조금 힘들었다. 이 이야기는 병동에서부터 시작된다. 수명이 병동에 오게 된 이유와 그 이전의 이야기는 서두를 여는 정도이고, 본격적인 시작은 병동에 도착한 이후라고 느껴졌다.

수명이 ‘자기 자신을 잃고 방황하던 존재’라면, 승민은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려 싸우는 존재’다. 수명은 그런 승민을 지켜보면서 자기 자신을 찾기 시작하는 여정을 시작한다. 승민을 만나기 전, 수명은 병동에 입원한 채 시키는 것을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으며, 그저 눈에 띄지 않게 무던하게 지내왔다. 그러던 중 하라는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것도 해버리는 승민을 만나게 된다.

[이제 빼앗기지마. 네 시간은 네 거야.]

누구도 누구의 편이 아니던, 보호사의 의미가 퇴색된 공간 속에서 승민은 수명에게 눈이 되어주고, 자유 그 자체가 되어주었던 존재였다. 그리고 수명은 그런 승민을 통해 자신이 빼앗겨왔던 시간을 인지하게 된다. 수명은 언제든 준비가 되면 자유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자기 자신’이라는 벽에 막혀 그 자유를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시간은 현재가 아니라, 어머니를 잃었던 그 시간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 한마디 이후로 수명은 승민에게 점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을 것이다.

[뚫고 나갈 곳이 없었다. 멈출 수도 없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 가까웠다. 결정적으로, 멈추는 법을 몰랐다. 승민은 내게 질주만을 가르쳤다. 그러니 질주할 밖에.]

수명이 자기 자신의 의지로 자유를 향해 뛰기 시작한 순간이다. 수명은 승민에게 눈이 되어주었고, 승민은 수명에게 뛰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멈추지 않고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자유를 위해 싸우는 법을. 오직 죽음만이 나의 자유를 빼앗을 수 있을 것이라는, 극단적이면서도 강렬한 방식으로 말이다.

단 한가지… 승민의 ‘비행’은 진정한 ‘자유’가 맞을까?
승민이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선택한 마지막 비행, 승민은 수명에게 자유를 찾아주었지만, 결국 자기 자신의 자유는 돌려받지 못한 게 아닐까…

[그럼 우리는 이수명 씨의 첫 비행을 지켜본 사람들인가요?]

승민은 자유를 위해 마지막 비행을 선택했고, 수명은 그 비행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이제 수명의 비행은 시작되었다. 이 작품은 단순한 탈출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되찾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라고 느껴졌다.

작품을 읽기 전에는 이 작품이 단순히 ‘자아찾기’인줄 알았다. 물론 자아 찾기도 있긴 하지만, 그보다 더 깊고 강렬한 자유를 위한 투쟁이 작품 속에 녹아 들어 있었고, 그 속에서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는 널 위한 투쟁을 하고 있는지.’, ‘너는 너의 자유를 찾았고’, ‘너는 너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

그 질문 속에서 답을 찾는건 제법 오래 걸릴 듯 싶다…. 내가 지금 날 위한 투쟁을 하고, 자유를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내 시간은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내게 승민 같은 사람은 없었지만, 인간이란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투쟁하기 위한 존재로 만들어졌으므로… 승민은 그저, 수명이의 안에 잠들어있던 그 존재를 깨워줬을 뿐, 없던 것을 만들어내 준 것은 아니다.

언젠가 내 안에 있는 용기도 승민과 수명처럼 날아오를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날이 온다면, 나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내 인생을 정면으로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비로소, ‘나의 시간’을 온전히 살아가는 사람이 아닐까.

내 심장을 쏴라

정유정 지음
은행나무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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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보니 이곳이었다. 마르코가 삶 전체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든 선택권이 결여된 순간이 그때일 것이다. 탄생. 그것만큼은 마르코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이번에도 역시 이끼숲에 대한 사전적 배경 없이 글을 잃었다. 이것도 포스트아포칼립스물에 가깝나. 지하세계에서 삶을 꾸리며 살아가는 지구인들의 이야기로, ‘바다눈’, ‘우주늪’, ‘이끼숲’ 세 가지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을 따로 읽기도 하지만, 나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읽었다. 연작이기도 하고...

메인 제목답게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끼숲’ 이야기도 인상 깊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큰 울림을 준 것은 ‘우주늪’이었다.

우주늪은 태어났지만 존재하지 않는 아이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존재하지 않는 채로 살아가던 아이는, 어느 순간 스스로를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 ‘인식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더 이상 혼자 기어다니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때 터뜨린 울음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그 울음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나는 여기 있다’는 선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편 ‘바다눈’에서는 “어떤 순간은 마르코를 살고 싶게 했고, 어떤 순간은 마르코를 죽고 싶게 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 문장이 마음에 남았던 이유는, 사람이 결국 행복과 불행을 모두 느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을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늘 그 갈림길 위에서 위태롭게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이 문장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왜 행복과 불행을 모두 느끼도록 되어 있을까. 행복하기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 걸까, 불행 없이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불행 속에서 작은 희망을 사랑하는 존재다. 어쩌면 그 작은 희망만이 삶을 지속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이끼숲’은 그런 희망에 대한 이야기다.

이끼숲을 읽으며 떠오른 작품은 1984였다. 감시와 통제 속에서 유지되는 폐쇄된 세계라는 점에서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세계 속에서도 인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저항하고, 자신의 삶을 향해 나아간다. 유오의 말처럼, 살아 있는 모든 작은 것들은 강하다. 그리고 그 말대로, 아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간다.

유별난 슬픔을 간직한 소마가 다시 집 밖으로 나오게 된 것도 유오의 영향이었다. 소마는 유오가 간직했던 꿈을 이어가기 위해, 설령 그것이 허울뿐인 약속일지라도 지키기 위해 집 밖으로 나선다. 그리고 결국 체제에 저항하고, 자신의 삶을 선택한다.

마침내 소마는 유오와 함께 지상의 숲을 보게 된다.

읽는 내내 지하 세계가 붕괴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결국 세계는 무너지지 않는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그곳은 아슬아슬한 긴장 속에 유지된다.

그러나 개인의 삶으로 시선을 옮기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마르코의 첫사랑은 끝이 났고, 의조는 좁은 세계를 벗어나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다. 소마는 지상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 속에서 유오의 클론과 함께 밤하늘을 바라본다.

세계는 그대로지만, 사람은 변한다.

제각각의 이야기처럼 보였지만, 결국 하나로 이어진 이야기였다는 감상을 남기며... 괜찮게 읽음.

이끼숲

천선란 지음
자이언트북스 펴냄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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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사랑의 누룩이다.

비에 젖은 듯 눅눅한 이야기. 화자는 직접 말하지 않고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어느 이야기가 더 그럴듯한지,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선택할 것인지.

모든 이야기에는 질문이 있고, 그 이야기는 곧 타인이다. ‘내’가 ‘내’가 아닌 이상, 타인을 읽는 독자인 이상 우리는 필연적으로 오독할 수밖에 없다.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일은 끝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문오언은 아가씨가 자신을 읽어주길 바란다. 이해자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문오언은 아가씨가 자신에 대한 질문을 품고 그것을 풀어내길 바라면서도, 동시에 아가씨에 대한 풀리지 않는 질문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어쩌면 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만 그 답을 아가씨가 읽어주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끝내 알 수 없게 되었지만, 결국 문오언과 아가씨의 사이는 해답 없이 질문만을 남긴 채 끝나버린다.

이 작품에서 ‘읽는다’는 행위는 곧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아가씨는 타인의 삶을 읽어내고, 특정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내며, 활자로 존재하는 타인을 해석한다.

그러나 타인의 시점으로 조명된 삶이 과연 그 사람의 ‘진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소설을 읽으면서도 수많은 해석과 견해 속에 놓인다. 그렇다면 아가씨의 ‘읽음’ 역시 그 수많은 해석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문오언은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가씨가 자신을 읽어주기를 바란다. 자신의 질문과 삶을 바라봐주기를 바라고, 그 모든 것을 아가씨의 방식대로 해석한 결과를 듣고 싶어 한다.

그가 끝내 듣고 싶었던 것은 어떤 문장이었을까.

나의 삶을 이해하고, 읽어주고, 해석해 줄 누군가가 있다면, 나 역시 문오언처럼 그 사람이 내 삶을 읽어주기를 바라지 않을까. 나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나에 대한 질문을 비로소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문오언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절창

구병모 지음
문학동네 펴냄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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