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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었어요
《소유냐 존재냐》는 좋게 말하면 철학 에세이에 가깝고, 나쁘게 말하면 자기계발서인 척하는 철학서에 가깝습니다. 많은 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삶의 조언을 주는 책을 기대하고 읽으시겠지만, 실제 내용은 자본주의 비판, 종교, 사회 전체의 변화 같은 훨씬 큰 철학적 담론을 다룹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책을 완전히 철학서로 읽으려고 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철학서라면 ‘소유’와 ‘존재’라는 핵심 개념이 어디까지 구분될 수 있는지, 그 구분이 반례 앞에서도 유지되는지, 앞선 철학적 논의들과 어떻게 충돌하거나 이어지는지까지 꽤 엄밀하게 다뤄야 합니다. 그런데 《소유냐 존재냐》는 이런 개념들을 치밀하게 따져 나가기보다는, 소유와 존재를 삶의 두 방향으로 크게 나누고 그 대비를 통해 독자를 설득하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메시지는 분명하지만, 그만큼 단순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또한 순환 논리도 존재합니다. 프롬은 소유 양식에서 벗어나 존재 양식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존재 양식으로 살아가는 모습마저 하나의 ‘소유’가 될 수 있습니다. 책에 나온 예시를 생각해 봅시다. 내가 수업 전에 미리 공부하고 교수님과 건설적인 대화를 하는 ‘존재 양식적 학생’이 된다고 해도, 결국 나는 “그런 멋진 학생인 나”라는 이미지를 소유하게 됩니다. 기부나 선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수하게 소유를 벗어난 행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나는 좋은 사람이다”라는 자기 만족이나 정체성의 소유가 따라올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소유에서 벗어나 존재로 나아간다는 프롬의 구분은 생각보다 깔끔하게 나뉘지 않습니다. 존재하려는 태도조차 결국 또 다른 방식의 소유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자기계발서로 읽기에는 지나치게 무겁고, 철학서로 읽기에는 논리가 성긴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책에는 분명한 의의가 있습니다. 세계대전을 겪고, 유럽에서는 “인간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실존주의적 분위기가 강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사르트르의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라는 말이나 카뮈의 《이방인》, 사르트르의 《구토》 같은 작품들이 그 시대의 불안과 허무를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그런 철학 작품을 직접 읽고 이해했던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 점에서 프롬은 당시의 철학적 문제의식을 조금 더 대중적인 삶의 언어로 바꾸어 제시한 사람입니다. 실존주의가 “인간은 정해진 본질보다 먼저 존재하고, 스스로의 선택으로 자신을 만들어 간다"라고 말한다면, 프롬은 이를 “무엇을 소유하느냐보다 어떻게 존재하느냐가 중요하다"라는 방식으로 풀어낸 것 같습니다. 즉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라는 추상적인 명제를, “존재가 소유에 앞선다"라는 보다 현실적인 삶의 태도로 바꾼 셈입니다.
물론 논리적으로 허술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렵고 형이상학적인 철학의 문제를 일반 독자들이 자기 삶에 비추어 생각해 볼 수 있는 질문으로 바꾸었다는 점에서, 《소유냐 존재냐》는 여전히 의미가 있는 책이라고 느꼈습니다. 이 책은 완성도 높은 철학서라기보다는, 전후 시대의 불안과 실존주의적 고민을 “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번역한 책에 가깝습니다.
서평 전문보기 : https://m.blog.naver.com/jellyfish_club/224340784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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