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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소감

김혼비 (지은이) 지음
(주)안온북스 펴냄

읽고있어요
크게 아팠던 탓에 체력이 한꺼번에 깎여나갔던 30대 초반에 비해, 축구를 갓 시작한 30대 중반에 비해, 40대가 된 지금의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몸이 되었는지. 그럼에도 아직까지 50대 언니들을 따라가려면 얼마나 멀었는지. 다가올 나의 40대 중후반에는 또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열릴지. 철봉에 매달리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세상이 거꾸로 되었다. 축구공을 따라 뛰다 보니 시간은 거꾸로도 흘렀다.

‘거꾸로 시간들’이 나의 일상 곳곳에도 흘러들어와서인지, 예전 같았으면 단지 나이 때문에 새롭게 시작하기를 망설였을 일들 앞에서 ‘나이가 뭐가 문제야. 해보면 되지!’ ‘나이랑 상관없이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같은 배짱이 몸속 어딘가에 근육과 함께 슬그머니 붙어 있는 걸 발견할 때도 있었다.

다정소감 : 김혼비 산문집 | 김혼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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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혜윰님의 착하게 살다 지친 당신에게 게시물 이미지
✨✨바쁜 일정 속, 독서를 휴식으로 선택한 날! 내 자신을 칭찬합니다❤

'주존감'으로 살아가기
만약 내 안에 주존감이 없었다면 나는 미국 유학 시절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

내게는 주존감이 있었기에 전혀 기죽지 않았다.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이 내 아버지인데, 그 친구들이 뭐라고 하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너희가 뭐라 하든, 나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나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리고 아버지도 늘 “사람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평가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어라”라고 하셨다.

착하게 살다 지친 당신에게 중에서

비싼 건 소중히 다뤄야 한다. 나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말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 왜냐하면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을 낮게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높게 평가하신 존재인데, 내가 나를 하찮게 여기는 건 하나님을 의심하는 일이다. 스스로를 낮추는 건 겸손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지불하신 값을 값싸게 여기는 것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건 교만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건,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이다.
나를 소중히 여긴다는 건 단지 마음만의 문제가 아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영적으로도 건강하게 사는 걸 의미한다. 거룩한 성전인 내 몸을 잘 관리해야 한다. 음식을 가려 먹고, 운동도 하고, 충분히 쉬는 것도 필요하다.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는 건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영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 머물러야 한다. 하나님과 가까이 있을 때 영혼이 살아난다.

착하게 살다 지친 당신에게 중에서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최고라고 착각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귀하게 만드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그러니 나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애가 아니라 신앙의 고백이다.

착하게 살다 지친 당신에게 중에서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분리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심리학자 볼비(John Bowlby)는 아이가 탯줄이 끊기는 순간부터 독립된 존재로서 불안과 고립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마가렛 말러(Margaret Mahler)는 인간이 평생 ‘가까이 있고 싶은 욕구’와 ‘나를 잃지 않으려는 욕구’ 사이에서 흔들린다고 설명했다.
성경도 동일한 진리를 말한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창 2:18)라고 선언하고,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전 4:9)을 강조한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만들어졌고, 관계 속에서 살아가도록 지음 받았다. 그래서 인간은 연결을 갈망하고, 동시에 잃어버릴까 두려워한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인간의 고립을 넘어서는 유일한 길이며, 동시에 각자의 통합성을 지키는 힘이다”라고 말했다. 성숙한 사랑은 ‘나 다움’을 파괴하지 않는다. 사랑으로 하나로 연결되지만 동시에 둘로 남는다. 미숙한 사랑은 연결됨을 착각한다. 상대를 소유하려 한다. 상대를 바꾸려 한다. 하지만 그런 사랑은 결국 서로를 파괴한다.
성숙한 사랑은 다르다. 너를 ‘너’로 두고, 나를 ‘나’로 둔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 안에서 자라간다. 서로를 통해 더 넓은 존재가 되어간다.
사랑은 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확장하는 일이다. 이런 사랑의 모습을 심리학자 헨리 클라우드(Henry Cloud)는 이렇게 설명했다.
“진정한 친밀함은 경계(boundary)가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경계가 없는 관계는 친밀함이 아니라 융합이며, 결국 파괴로 이어진다.”
사랑이란 경계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머무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바꾸는 것이 사랑이 아니다. 무조건적으로 나를 바꾸는 것도 사랑이 아니다.

착하게 살다 지친 당신에게 중에서

“네가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이야. 내가 널 사랑하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야.”
그녀는 점점 웃음을 잃었다. 더 이상 자유롭게 말하지 못했고, 상대가 좋아하는 모습에 자신을 맞추려 애썼다. 그는 자신이 사랑을 주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자신의 방식’으로 그녀를 바꾸려고 했다.

착하게 살다 지친 당신에게 중에서
✍🏻 가장 고통스럽고, 안타까운 사랑의 방식과 표현. 이러지 않도록, 명심하고, 기억하고, 주의하고, 생각하자.

‘나 · 너 · 우리’가 된 사랑
예수님은 우리를 예수님의 복사본으로 만들지 않으셨다. 그분은 모두가 동일한 모습, 동일한 성격, 동일한 방식으로 살아가길 원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고 한 몸으로 묶으셨지만, 그 안에서 각자의 고유한 자리와 역할은 여전히 살아 있다.
예수님은 모두에게 손이 되라고 명하지 않으신다. 모두에게 발이 되라고 명하지 않으신다. 눈은 눈으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존재한다. 그러나 모두가 한 몸 안에 있다. 이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의 신비다.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의 몸처럼 움직인다는 것이다. 각기 다르기 때문에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더 온전한 하나가 된다.
사랑은 내가 원하는 대로 바꾸는 힘이 아니다. 사랑은 서로를 다르게 존재하게 하면서도 하나 되게 하는 힘이다. 하나님은 사랑을 통해 ‘하나 됨’과 ‘다름’이 함께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셨다. 사랑은 모두를 동일하게 만드는 힘이 아니다. 사랑은 서로를 온전히 살게 하는 힘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존재의 깊이를 확장시키는 사랑이다. 그 사랑은 나의 경계를 허물지 않으면서도 너와 연결되게 하고, 우리 모두를 하나님 안으로 묶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온전히 살리는 힘이다.
사랑은 거창한 행동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작은 방향 전환에서 시작된다. 오늘 누군가의 말을 ‘내 기준’이 아니라 ‘그의 입장’에서 한번 들어주는 것, 내가 주고 싶은 방식이 아니라 상대가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다가가보는 것, 그 한 걸음이 사랑의 중심을 ‘나’에서 ‘너’로 옮겨 놓는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그러나 사랑이 흘러가면 그 다름 속에서 ‘우리’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이웃 사랑의 기적이 시작된다.

착하게 살다 지친 당신에게 중에서

바울은 로마서 13장 9절에 나오는 여러 계명을 하나로 요약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위의 모든 계명은 이웃에게 상처 주지 말라는 것이다.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면 자연스럽게 이 계명들을 지키게 된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착하게 살다 지친 당신에게 중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만 괜찮다면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독교의 사랑은 두 가지 방향으로 완성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수직적 관계, 이웃을 사랑하는 수평적 관계. 이 두 선이 만날 때 십자가가 완성된다.

착하게 살다 지친 당신에게 중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다. 사랑받을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해주시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랑은 나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내 옆의 사람, 내가 불편해하는 사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흘러간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내 옆에 있는 사람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이다. 그들을 사랑하는 일은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다.

착하게 살다 지친 당신에게 중에서

누군가 나에게 선물도 주고 칭찬하면 기분이 좋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내 자녀를 욕하고 때린다면 그 사람은 원수가 된다. ‘나에게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자녀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차라리 나를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내 자녀를 해치면 부모의 마음은 견디기 어렵다.



착하게 살다 지친 당신에게 중에서

착하게 살다 지친 당신에게

안세진 지음
규장(규장문화사) 펴냄

읽고있어요
5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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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

@hyeyum8910

[이제 잡담 시간을 좀 더 많이 늘리는 게 도움이 되겠네요. 이것도 언어라서.]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 심너울

오산이었다. 문화의 장벽보다, 감각의 장벽이 훨씬 높았다. 음성 언어가 약간의 억양 차이로 다른 뉘앙스를 전하듯이, 수화는 거의 같은 몸짓을 약간 변형하는 것으로 큰 차이를 만들었다. 그 미묘함을 익히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 심너울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 몰상식하지 않죠. 하지만 100명 중에 세 명만 있다고 쳐도 적지 않아요. 하루에 50명의 사람들이 저 사람 옆을 지나간다고 본다면 1.5명은 만나겠네요. 그럼 거의 맨날 만나는 거죠.」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 심너울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심너울 지음
안전가옥 펴냄

읽고있어요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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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

@hyeyum8910

이것은 ‘떨어진 책’ 뿐만 아니라 ‘읽은 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읽은 책이 내 인생을 바꾸었는지 아닌지도 내가 무엇을 믿을지 선택하기 나름이다. 도끼에 발등이 쪼개져야 비로소 배신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고 찍히는 것만으로도 배신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듯이, 인생의 흐름이 살짝 바뀌는 정도로는 성에 안 차는 사람이 있고 그것만으로도 인생이 바뀌었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인생의 흐름을 바꾼, 조금 거창하게 말해서 ‘인생의 책’이라고 꼽을 만한 책들이 분명히 있다.

다정소감 : 김혼비 산문집 | 김혼비 저

+알렉상드르 마트롱,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삶에 가능한 한 오래도록, 꼿꼿하게 머물고 싶어졌다.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몸에 좋은 것을 먹고 눈을 보호하며 나를 잘 돌보고 싶어졌다. 어떤 좋은 책들은 사람을 오래 살고 싶게 만든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다정소감 : 김혼비 산문집 | 김혼비 저

다정소감

김혼비 (지은이) 지음
(주)안온북스 펴냄

읽고있어요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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