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이 떠난 무당은 여전히 굿을 한다.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에서 문수는 그렇게 산다. 삼십 년을 함께했던 장수할멈이 앞집의 어린 신애기에게로 옮겨갔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모형 작두를 끌어안고 진짜인 척한다. 아니, 진짜였던 척한다. 그 구분이 점점 흐려진다.
신애기의 웃음이 특히 오래 남았다.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오는 그 소리가 할멈의 것인지, 아이의 것인지, 아니면 둘 다 아닌 것인지. 문수의 몸이 굳어가는 장면은 읽으면서도 자꾸 뒷목이 서늘해졌다.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그 자리에서, 누가 더 영험한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중요한 건 그 자리를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의 고집 같은 것이었다.
다른 이야기들도 비슷한 균열을 안고 있다. 논란의 감독을 사랑하는 팬들, 처음 밟은 한국 땅에서 태극기와 성조기 사이를 걷는 재미교포. 그들은 각자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진짜인지 의심하면서도 그곳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성해나 작가는 그 머뭇거림을 차갑게 잘라내지 않는다. 다만 오래 들여다보게 한다.
나는 문득 내 안의 확신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생각했다. 내가 진짜라고 여기던 감정들, 진짜라고 믿던 관계들. 그것들이 다른 이름을 가지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문수처럼 모형 작두라도 움켜쥐게 될까. 아니면 그냥 손을 놓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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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이 약하다는 말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김민섭 작가는 조용히 다른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를 읽는 동안, 나는 자꾸만 누군가의 잘됨을 진심으로 바랐던 적이 있었는지 헤아리게 되었다. 각자도생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사회 속에서 작가는 대리운전 기사로, 서점 주인으로, 출판사 대표로 살아가며 마주친 장면들을 적는다. 편법으로 사람을 내보내는 대학, 비정규직의 죽음에 무심한 사업장, MZ라는 이름 아래 묶여 버린 청년들. 그 풍경들은 낯설지 않다. 그런데 김민섭 작가의 시선은 그 풍경 앞에서 차갑게 굳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 남아 있는 작은 연결의 가능성을 가만히 응시한다.
인상 깊었던 건 ‘김민섭 씨 찾기 프로젝트’의 후일담이었다. 한 번의 선한 선택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로 이어지고, 다시 또 다른 누군가에게로 흘러가는지. 그 흐름이 거창하지 않아서 더 선명했다. 대단한 결단이 아니라, 일상의 서명 속에 추모 리본을 그리는 습관처럼, 반복되는 작은 태도들이 한 사람의 방향을 만들어간다는 사실이 마음에 남았다.
다정함은 동정에서 시작되지만, 그 범위를 조금씩 넓혀 가는 일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나와 상관없는 타인에게서 나를,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상상하는 일. 그 상상이 행동을 부르고, 그 행동이 다시 누군가의 선택이 되어 돌아오는 순환. 이 책은 그 순환을 믿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 믿지 않아도 된다고, 그래도 한 번은 시도해 볼 수 있지 않느냐고.
읽는 내내 나는 내 안의 계산기를 의식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도울 때 먼저 손익을 따지는 습관, 친절을 약점으로 여기는 눈빛들. 그 모든 것들 앞에서 김민섭 작가는 단호하지 않다. 다만 다정함이 가치의 영역이 아니라 지능의 영역이 될 수도 있다고, 차분히 제안할 뿐이다.
책을 덮고 나서도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라는 문장이 한동안 귓가에 남아 있었다. 시기 없이, 계산 없이, 그저 그 말을 건네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그런데도 작가는 그 어려운 일을 계속하자고 말한다.
조금 더, 조금만 더.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
김민섭 지음
어크로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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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나무로 되살아났다. 남자친구의 오른손이 브로콜리가 되었다. 죽은 남자친구가 손톱에 빙의해 나타났다. 이렇게 나열하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들인데, 읽다 보니 전혀 황당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졌다.
이유리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는 환상과 현실이 밀착되어 있었다. 경계가 흐릿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기이한 사건 앞에서 그리 놀라지 않았다. 잠시 멈칫하다가도 금세 별일 아니라는 듯 대처했다. 식물로 되살아난 아버지에게 툴툴거리면서도 번번이 바람을 들어주는 유진처럼, 돌과 대화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말하는 이구아나에게 수영을 가르쳐주는 강사처럼. 그들은 담담했고, 그 담담함이 나를 설득했다.
그런데 이 소설들이 단순히 유쾌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복합적인 맛이 입안에서 굴러다녔다. 단맛과 쓴맛이 뒤섞였고, 기이함 속에 따뜻함이 얼핏 스쳤다. 인물들이 경험하는 기묘한 현상들은 억눌리고 지연된 감정을 가시화한 것처럼 보였다. 마음속 힘듦을 숨긴 채 오래 살아가다가 견디다 못해 생겨나는 암덩어리처럼.
복싱 선수 원준의 오른손이 브로콜리가 된 이유는 밉지도 않은 사람을 억지로 미워하려 애썼기 때문이었다. 학교폭력을 당하던 과거에 괴롭힘이 아무 타격도 주지 않는다고 자신조차 속이며 버티던 순간, 돌과 말하는 능력이 생겼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두고 간 이구아나에게 “야, 우린 버림받았다, 그 쓰레기한테”라고 말하는 이의 푹 꺼진 눈두덩은 이구아나와 닮아 있었다. 억지로 삼킨 괴로움들이 결국 어느 날 아침 별안간 브로콜리가 되어버리는 것. 그런 식으로 마음의 매듭은 형체를 갖추었다.
그리고 그 매듭을 풀어주는 건 우연에 가까운 관계들이었다. 혈연처럼 끈끈하지 않은, 헐거운 공동체. 같이 버림받은 이구아나, 할머니와 할아버지, 죽은 남자친구의 유령과 함께 찌개를 끓여 먹는 시간. 왜가리의 사냥을 함께 구경한 동네 주민 네 명. 그런 사람들과 보낸 시간이 맺힌 마음을 풀어냈다. 함께 밥을 먹고, 산 위에서 소리를 지르고, 별것도 아닌 일에 깔깔 웃는 것. 그런 게 필요했던 거였다.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살다 보면 꼭 있다는 걸, 이 소설들은 알고 있었다. 조금만 스쳐도 멍이 드는 우리 인간이 실패와 상처를 말끔히 받아들이기까지는 아직 요원하다는 것도. 그래도 성공과 실패를 같은 무게로 여기는 왜가리를 부러워하며 함께 웃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그런 기묘한 평안함이 페이지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있었다.
일상에 불쑥 침범하는 초자연적 사건들,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세계, 억눌린 감정이 형체를 갖추는 순간들. 그 모든 것이 이상하면서도 다정했다. 이유리 유니버스라는 이 세계는 물음표와 느낌표로 가득했지만, 그 안에서 나는 묘하게도 편안함을 느꼈다. 누구에게나 이런 브로콜리 같은 게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덜 외로웠다.
브로콜리 펀치
이유리 (지은이)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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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곧은그림책
"그 손들이 하루가 끝나면 어디에 가서 쉬는지를 물어본 적 있었던가"라는 문장에서 한참을 멈추게 되네요. 돌봄을 받는 일에만 익숙해져 그 무게를 당연하게 여겼던 제 주변의 얼굴들과 손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돌봄의 숭고함 뒤에 가려진 피로와 복잡한 마음을 이토록 담담하고 깊이 있게 길어 올려주셔서, 읽는 저에게도 오래 남을 질문이 된 것 같아요….
1주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