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다이스의 평화로운 나날들
[지나간 시간은 흔적을 남겼어. 하루가 모여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모여 한 달이 됐지. 이제 가을의 끝자락이 야. 곧 겨울이 시작되고 추위가 찾아올 거야.]
[우린 대단한 일을 해냈어. 너와 나, 우리 둘이서.]
[우리한테는 더 멋진 미래가 남아있어,바스테드. 기대해]
•비행
아직 네 영혼을 울릴 만한 예술을 만나지 못해서 그 런 거니까 실망하지 말래. 그리고 음악과 미식이 예술의 전부가 아니라고 꼭 말해 달래. 회화나 조각, 무용도 있 고 향수, 패션, 원예 등도 하나의 예술적 표현 형태가 될 수 있대. 네가 이런 예술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날이 오길 바란대. 또 네가 진정으로 인간 문명을 계승할 고양이 문명을 확립하고 싶다면 예술의 위력을 깨달아 그것을 강력한 무기로 삼아야 한대. 어떤 종이 세상을 지 배하는 방법은 그 종이 가진 힘이나 지능이 아니라 자신 의 한계를 끊임없이 뛰어넘으면서 미를 창조하는 능 력이라고, 이 점을 강조해 달래.
•급수탑
[내 말 잘들어, 이 거만한 동물아. 우린 누군가의 소유가 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니야. 암고양이들은 더더욱 그래. 우린 자유롭게 존재할 뿐이야.]
•숙명론
숙명론이라는 단어는 이미 쓰여 있는 운명이라는 뜻 을 가진 라틴어 〈파툼/fatum〉에서 왔다.
숙명론자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이미 쓰인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라고 믿는다. 이 시나리오 속 각각 의 단계는 우리를 뛰어넘는 초월적인 존재, 가령 신들이 나 유일신, 혹은 자연의 법칙들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선택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해로운 경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초월적 시나리오의 톱니바퀴가 돌아가면서 생 기는 일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평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맞서 싸우는 것 또한 무의미하다. 세상은 바꾸려 애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고통과 고난과 불행은 우리 존재의 시험대 이므로 당연히 감내해야 한다.
키케로는 『운명론』에 이렇게 쓰고 있다. <당신이 병에 걸렸는데 만약 나을 운명이라면 의사를 불렀든 부르지 않았든 나을 것이고, 낫지 못할 운명이라면 의사를 불렀 든 부르지 않았든 낫지 못할 것이다.> 초기 불교의 육사외도 중 한 사람인 막카리 고살라는 고타마 싯다르타보다 한 세기 정도 늦게 인도에 서 태어났다. 아지비카교를 만든 그는 이렇게 숙명론을 주창했다. 좋은 행동이든 나쁜 행동이든 어차피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어떠한 종교 행위도 어떠한 형태 의 헌신도 아무것도 바꿔 놓을 수 없다. 어차피 존재의 흐 름이 다하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해탈에 이르게 되어 있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이런 주장과는 반대로, 우리가 하 는 선택이 카르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숙명론은 자유 의지를 부정함으로써 인간을 책임에서 자유로운 존재로 규정하는 반면, 부처는 인간이 하는 모 든 행동이 결과를 초래하니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개의 시간
네가 무엇을 하든 자연은 다 알고 있단다. <네가 하는 행동에 따라 자연으로부터 상을 받을 수도 벌을 받을 수 도 있어.> 이러면서 엄마는 내게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가르쳐 주었다.
좋은 말은 맞지만, 솔직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하는 행동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니 대가를 바라선 안 된다. 다른 보상을 기대하고 행동하면 실망하거나 좌절 할 가능성이 크다.
문명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은이), 전미연 (옮긴이) 지음
열린책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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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p. 마음은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샤를로트. 집에 가는 게 낫겠어요. 이 시간이면 아무리 날 괴롭히고 싶은 적 들이라도 기진맥진해 있을 거예요. 더군다나 난 내 침대 가 아니면 잠을 못 자요. 밤에 하는 나만의 오붓한 의식 도 있고. 오늘 일어났던 소란은 걱정하지 말아요. 밤사 이 잠이 대사 작용을 해줄 테니까. 나라는 사람은 꿈을 이용해서 낮 동안 겪은 힘든 일들을 씹고 으깨고 소화 하죠.
32p. 낮에 꿈 꾸는 사람은 밤에만 꿈꾸는 사람에게는 찾아오지 않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흐릿한 시야에서 영원의 틈들을 포착한 그는 깨어나는 순간 위대한 비밀의 문턱에 잠시 머물다 왔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전한다.
51p. 하루 중 가장 묘한 순간은 당신이 막 잠에서 깨 눈을 뜨는 몇 초간, 당신이 누군지, (당신 자신과 세계의) 존 재의 어느 시점에 당신이 등장하는지 분간이 되지 않는 바로 그 순간이다. 이 순간 당신은 남은 하루를 보내게 될 당신의 육체 와, 기억과 욕망, 정해진 단기 일정 같은 당신의 의식에 새롭게 익숙해져야 한다.
81p. 우리는 노동의 절대적 중요성을 믿지. 광고를 믿고, 신문 기사를 믿고, 정치인들의 약속을 믿어. 짓밟힌 조 국을 믿고, 직접 한 번 만나 보지도 않고 신을 대신해 얘 기하는 사제복 차림의 사람도 믿어. 인쇄된 종잇장에 불 과한 돈을 믿지. 자유를 믿고, 사랑을 믿어. 가족을 믿 고, 자식은 부모를, 부모는 자식을 믿지. 우리는 불멸을 믿어. 마지막에 가서는 〈괜찮을 겁니다〉 하고 말하는 의 사를 믿지. 그런데 이 순간, 아주 뒤늦게, 우리가 애초부 터 <아무 얘기나 믿는 사람> 취급을 당하며 살아온 게 아닌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지.
202p. 그는 전 인류가 침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통 체증도 전쟁도 시위도 파업도 사라지지 않을까? 군인들은 늦잠 을 재우는 거야. 공해를 유발하는 사람들, 불평하고 짜 증내는 사람들, 광신도들을 침대에 누워 나처럼 TV나 보게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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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생각: 인간은 나를 먹여 주고 지켜 주고 사랑해 준 다, 인간은 신이 분명하다.
고양이의 생각: 인간은 나를 먹여 주고 지켜 주고 사랑 해 준다, 인간에게 나는 신이 분명하다.
•묘생을 걷다
무슨 일일까. 인간들이 저런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건 난 생처음 보는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나는 인간을 좋아한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인간집사
그녀가 몸을 일으키더니 천천히 부엌으로 걸어간다.
연녹색 수프와 노란색, 분홍색, 흰색이 섞인 음식을 먹으 면서 빨간 액체를 흘짝거린다. 접시를 식기세척기에 넣 고 나서 전화기에 대고 한참 말을 한다. 샤워를 하고 나오 더니 핀셋을 들고 콧수염 털을 뽑는다(나로선 죽었다 깨 도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다. 가뜩이나 균형 감각이 빵점 인데 주둥이 털까지 없어지면 더 잘 넘어지고 외부 파동 은 아예 감지할 수도 없을 텐데 어쩌려고).
•정체모를 이웃
일단, 나의 진지한 대화 상대가 될 집사의 환심부터 사 자. 지하실에 있는 쥐를 잡아다 바지는 게 좋겠어, 맥락이 발딱거리는 생쥐야말로 고양이가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니까.
•불빛중독
우리 고양이들로서는 납득하기 힘들지만 인간들은 자유를 견디지 못해서,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지기 싫 어서 신을 만든 것 같아. 신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면 자신 들이 섬기는 주인한테 복종만 하면 되니까. 자신들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은 〈신의 뜻〉이 되니까. 신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종교인들이 심약한 영혼들을 마음대로 부리는 방식이기도 하지. 인간과 달리 고양이는 스스로의 행동 을 책임질 줄 알고 자유를 두려워하지도 않아.
•인간혐오
물론이야. 자신이 가진 걸 소중히 여길 줄 알면 행복 하고 자신이 갖지 않은 걸 갖고 싶어 하면 불행하지. 난 원하는 걸 다 가졌어.
나는 내 능력을 충분히 못 쓸까 봐 두렵지 다른 건 아 무것도 두렵지 않아. 나머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 니니까. 비가 오고 날이 개고 천둥이 치고 무지개가 뜨고 전쟁이 일어나고 평화가 찾아오는 건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야.
•배고픔
네 적들과 네 앞에 나타나는 장애물들은 너의 저항력 을 알게 해줘, 심각해 보이는 문제들도 사실은 네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기회일 뿐이야.
너를 둘러싼 것이 네가 누구인지 알고자 하는 욕망에 서 비롯됐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너는 불평을 하지도 부당하다고 느끼지도 않을 거야. 네 영혼이 너의 진화를 위해 그런 시련들을 선택한 이유를 알려고 애쓸 거야. 혹 시라도 네가 잊어버릴까 봐 이 메시지는 밤마다 꿈으로 너를 찾아올 거야. 믿기지 않으면 나처럼 해봐. 눈을 감고 꿈을 꾸는 거야.
고양이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열린책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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