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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가는 소설 -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순간의 표지 이미지

달려가는 소설

김홍, 이수정, 김기태, 최아현, 김유담, 장류진, 김혜나 (지은이) 지음
창비교육 펴냄

나고야 아시안게임으로 인해서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요즘, 이 소설은 야구부터 요가까지 7가지 종목을 통해 '일'이 아닌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에 열정을 쏟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냈습니다.

"재능 없는 어린아이가 스포츠를 통해 승리를 거머쥐는 뻔한 이야기겠지?" 하셨다면 오산입니다! <달려가는 소설>이라는 책은 제목만 보고 어떤 스포츠일지 추리하는 재미부터, 가슴 찡한 위로와 강렬한 동기부여까지 선사합니다.

김홍 「인생은 그라운드」
"우리가 잃어버린 건 야구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과 울고 웃던 기억 전부였다."
야구 펀드 사기로 프로 야구가 사라진 근미래. 부동산 사기로 파산한 화자가 혼자 야구를 시작해 쫓기면서도 끝내 놓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프로 야구가 붐인 요즘, '프로 야구가 사라진다면?'이라는 파격적인 설정이 단연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했습니다. 첫 번째 오프닝작부터 머리를 쾅 치는 듯한 몰입감을 줍니다.

이수정 「숨이 차 오를 때」
"누군가에게 편안히 안긴 느낌이었다. … 오죽하면 물속에 더 있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린 시절 호수에서 익사할 뻔한 공포를 안고 살던 '유정'이 마라톤 대회 중 쓰러진 엄마의 수영 강습권을 양도받아 수영장에 발을 들이는 이야기입니다. 물속 깊이 나아가 수면 위로 올라올 때 막혀 있던 숨과 눈물이 터져 나오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세한 해방감이 느껴졌던 작품입니다.

김기태 「무겁고 높은」
"들지 못하던 것을 들면 물론 기뻤다. 하지만 버리는 기분은 더 좋았다. 더 무거운 것을 버릴수록 더 좋았다."
쇠락해 가는 탄광촌을 배경으로, 팀에서 '덤' 취급을 받던 역도부 3학년 '송희'의 이야기. 100kg를 끝내 들지 못하지만 바벨을 쥐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비유나 상징이 아닌 100kg의 차가운 쇳덩이 그 자체. "어쨌든 들 거야"라며 바벨을 쥐는 송희의 모습에서 '버리기 위해 먼저 들어야 하는' 삶의 무게를 깊이 깨닫게 됩니다.

최아현 「충분한 실수」
"몸이 잘못되었음을 알고도 뻗은 것은 분명한 실수였지만. 만족스럽다는 생각이 미연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자발적으로 고립되어 살던 '미연'이 우연히 풋살 대회에 나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너무 잘하고 싶은 마음 따윈 없던 이가 경기 중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내뱉은 욕과 함께 마주한 해방감! 마흔 줄에도 자신에 대해 새로 알게 되는 순간이 찬란하게 다가왔어요.

김유담 「핀 캐리」
"무언가를 지고하게 사랑한다는 것은,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그것에 매달릴 각오가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오빠(소문난 아마추어 볼링 선수)의 수첩을 읽고 분노로 볼링장을 찾은 동생 '인숙'의 이야기로 최선을 다해 굴려도 결국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볼링공처럼, 묵묵히 제 삶을 살아냈던 오빠의 궤도가 묵직하게 마음을 울립니다.

장류진 「동계올림픽」
"사실 나는 전혀 잘나지 않았다. 똑똑하지도 않았다. 난 그걸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쇼트트랙 1000m 결승 당일, 선수의 자택을 취재하러 나섰다가 잘못된 주소로 역대급 한파 속 골목을 헤매는 비정규직 인턴 기자 '선진'의 이야기로 승자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스포츠의 현실과 청년의 불안한 삶이 기막히게 오버랩됩니다. 그 속에서 타인이 건네는 온기가 유난히 따뜻했던 장류진 작가 특유의 공감 만렙 소설!

김혜나 「가만히 바라보면」 (요가)
"요가는 타인을 따라가는 길이 아니야. 지금 너보다 나은 사람처럼 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바로 너 자신이 되려고 하는 거야."
부상으로 일을 잃은 요가 강사가 파타야에서 무용수 '잠'을 만나며 겪는 내면의 변화가 돋보입니다. 화려한 아사나를 뽐내던 과거를 내려놓고,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수련의 과정을 통해 깊은 평온과 단단한 여운을 선물해 주는 피날레 같은 작품입니다.

<달려가는 소설>은 단순히 스포츠를 다룬 책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사람인지’를 되묻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고, 책을 덮고 나면 나도 모르게 가슴에 뜨거운 열정이 차오르는 기분이 듭니다. 열정을 충전하고 싶고, 진한 공감과 동기부여가 필요하신 분들이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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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 그 잔혹한 온도차와 감정에 대하여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의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는 서로 다른 온도로 살아가는 두 남녀의 10년을 그린다. 붉은색(Rosso)의 아오이가 품은 서늘한 침묵과, 푸른색(Blu)의 쥰세이가 쏟아붓는 집요한 기억의 열기는 소설 속에서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낭만으로 승화된다.

소설 속 쥰세이처럼 언제나 진심을 다해 마음을 건네는 사람은 늘 관계의 ‘을’이 된다. 나의 온도는 끓어넘치는 열정이었으나,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돌아온 것은 지독하리만치 서늘한 냉정뿐이었다. 배려라는 이름으로 건넨 관심은 읽씹과 안읽씹이라는 무관심의 벽에 부딪혀 침몰했다. 진심으로 다가가면 늘 결말이 비참해지는 이유는 명확했다. 상대방은 애초에 나와 관계의 온도를 맞출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작은 눈부셨다. 상대는 나를 향해 “매력적이다”, “재밌다”, “신기하다”며 호기심 어린 열정을 보였다. 하지만 관계가 시작되고, 상대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에 한 걸음 더 조심스러워지고 더 깊이 배려하기 시작하자 잔인한 표변이 일어났다. 소중해서 아껴주려던 나의 배려와 조심성은 어느새 ‘시시함’과 ‘재미없음’, ‘지루함’이라는 냉소로 격하되었다. “노력하라”는 상대의 차가운 평가는, 진심을 바친 마음에 씻을 수 없는 흉터를 남겼다. 열정을 쏟아부은 대가가 고작 무자비한 품평이었던 셈이다.

현실의 비대칭은 훨씬 잔인하다. 그것은 그리움이 아니라 감정의 착취다. 내가 힘들고 무너져 내릴 때 상대는 차가운 벽 뒤로 숨어 손길 한 번 내밀지 않았지만, 자신이 외롭고 흔들릴 때면 어김없이 나를 찾아와 기대었다. 그 순간 나는 사랑받는 연인이 아니라, 상대의 불안과 허기를 받아내는 ‘감정 쓰레기통’에 불과했다. 필요할 때만 피어오르는 상대의 온기는 결코 열정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피난처 찾기였다. 상대를 곁에 두고 자존감을 채우는 수단으로 삼고 싶지만, 온전한 관계를 지탱하는 무게와 책임은 지기 싫다는 비겁함. 나의 열정을 값싼 연료처럼 태우면서 정작 본인은 단 한 방울의 에너지도 쓰지 않겠다는 그 얄팍한 계산이 마음을 무참히 난도질했다.

남는 것은 까맣게 타버린 재와 깊게 파인 자괴감, 그리고 “진지하게 다가가면 언제나 끝이 나쁘다”는 비참한 상처뿐이다. 상대의 서늘한 냉정 앞에서 내 열정을 억지로 불태우며 ‘을’의 자리를 자처할 이유는 이제 없다. 재미와 자극만 좇으며 배려를 지루함으로 매도하는 미성숙함, 필요할 때만 찾는 이기적인 관계의 끈을 내 손으로 끊어내야 한다. 상대의 시혜 같은 안부와 편의적인 기댐에서 벗어나, 이제는 내 쪽에서 먼저 단단하고 단호한 ‘냉정’을 찾아야 한다. 나를 소모품 취급하는 관계에서 기꺼이 등을 돌리는 차가움, 그것이야말로 내 안에 남은 마지막 존엄을 지키는 가장 뜨거운 방법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여전히 기도한다. 언제나 을의 자리에 서서 상대의 냉정을 배려로 덮어주려 했던 그 시간들이, 사랑이 아니라 서서히 자신을 갉아먹기만 했던 유예는 아니었기를.

나의 잔인했던 경험과는 달리 소설 속 두 주인공은 10년의 세월을 돌아 결국 같은 장소에서 마주하며 서로의 오해를 풀고 사랑을 확인한다. 대학생 시절 이 소설을 처음 읽었던 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언제나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서 마주하는 기적 같은 사랑을 꿈꿔왔다. 그리고 깊은 상처를 지나온 지금도, 내게 온전히 닿아줄 그런 온도의 사랑이 언젠가 찾아올 것이라 여전히 믿고 싶다.

냉정과 열정 사이

츠지 히토나리 외 1명 지음
(주)태일소담출판사 펴냄

👍 달달한 로맨스가 필요할 때 추천!
12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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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이상한 지구'에 대한 기사가 나오는 요즘이다. 세계 곳곳에서는 이상 고온 현상이 관찰되고, 남반구 일부 지역에서는 이상 한파가 지속되며 폭설이 내리기도 했다. 녹아내리는 빙하와 사라지는 생물종은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되지 못한다. 우리나라 역시 때 아닌 여름 홍수와 겨울 가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혔다.

창비에서는 친환경 가치에 익숙한 MZ세대를 위해 지구와 생명을 테마로 한 단편 소설 8편을 엮은 「숨 쉬는 소설」이 출간 했다. 이 책에서는 독성 화학 물질, 기후 위기, 플라스틱 문제, 다른 생 명과의 교감, 신체 가치에 대한 고민, 육식 문화, 인간을 거부하는 지 구, 광활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최진영, 김기창, 김중혁, 김애란, 임솔아, 이상욱, 조시현, 배명훈 작가는 각자의 시선으로 지구 생태계의 현재와 미래를 그려 낸다.

임솔아의 <신체적출물>
불의의 사고로 발가락 하나를 절단하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는 결론 없 는 드라마를 본 것처럼 허망하고 두렵고 무서웠다. 소설 속에서 '무서움'도 '욕망'의 일종이라며 '손해비용을 치르려하지 않는 욕망'을 보며 '각자의 애원은 각자의 것을 지키려는 욕망, 애원도 욕망의 일종'이고, '각자의 내부에서만 공명할 것'이라는 표현들로 지구의 환경과 인류의 미래를 위해 그 누구도 손해비용을 치르려 하지 않는 지구촌 국가 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우울하게 느껴졌다.

이상욱의 <어느 시인의 죽음>
인간 고기의 맛에 반한 외계인 '가브'는 인간을 식재료로 사용하겠다고 선언하고 이에 각국 대표는 인류 종말을 막기 위해 '더 맛있는 인간'을 공급하겠다는 불평등 조약을 맺게 된다. 정리해고를 당한 대수는 아내의 유언인 딸 수희를 위해 인간 식재료 계약의 수수료가 필요하고 주유소 알바로 살아가던 왕따이면서 전교 꼴찌인 용천은 가족에게 거액의 연금을 지급한다는 계약 조건으로 고민하는데 이 소설을 보면서 용천 이 가진 시인으로서의 가능성이 무시된 채 가능성 없는 인간으로 평가 받으며 식재료로 전락해버린 용천의 모습과 '가브'의 약화를 위해 독성 주사를 주입한 용천의 시체가 그저 우리가 햄과 같은 가공육류를 먹을 때 살짝 데쳐서 사용하면 되는 그런 취급을 받는 모습에서 허망하면서 도 겁나는 느낌에 무서움이 들었다. 이 소설은 마치 김동식님의 소설을 읽는 듯 했다.

조시현의 <어스>
인간의 몸에서 미세 플라스틱과 중금속이 꾸준히 검출되었고 마침내 죽은 인간의 몸이 지구의 땅을 황폐화시킨다는 연구 결과로 죽은 사람의 시체가 산업쓰레기로 분류되어 매장이나 화장을 금지하는 법이 시행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다. '안나'는 병으로 죽기 전 유언으로 '나'에게 땅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는데 먼 미래의 지구에서 인류에게 '찾아갈 곳, '돌아갈 곳'조차 허락되지 않는 현실을 경고하는게 안타까우면서도 정신이 번쩍들게 하는 이야기였다.

배명훈의 <조개를 읽어요>
조개들의 말을 연구하는 화자를 통해 '파도 하나까지 기억하는' 조개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광활하고 아득한 자연의 모습을 다정하게 그려 낸다. "태어나서 평생 죽을 때까지 딱 한마디만 하는" 조개들의 말을 연구하는 '나'는 자신의 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것 봐. 얼마나 멋지냐고. 아라비아해를 따라 넓게 펼쳐져 있는 이 모래밭이 내 일터라고. 여기 얼마나 좋아. 낙원이 따로 있나. 동네 어디를 가도 파도 소리가 들려!“
"재밌어. 이 일이 좋아. 큰 욕심 같은 건 버리게 돼.”
"이 일을 하다 보면 그런 큰 성공보다는 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순간이 더 좋거든."

아마 인류가 만나 본 적 없어도 본능적으로 그리워하는 정면과 분위기 일 것이다. 우리가 아직 이 풍경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여기 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계속 존재할 수 있도 록, 우리 다음 세대와 그 다음 세대, 또 그 다음 세대까지 그 아름다움 을 느낄 수 있도록 오늘 우리는 우리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될 것이다.

모든 생명들이 살아 숨 뒤는 더 나은 지구를 상상하면서 우리가 아끼는 모든 것이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도록 이 곳에서 다음 그 다음, 또 그 다음 새싹을 미래 세대에게 전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필요한 이 여덟가지 이야기를 반드시 읽어보시기를.....

숨 쉬는 소설

최진영, 김기창, 김중혁, 김애란, 임솔아, 이상욱, 조시현, 배명훈 (지은이), 곽기영, 권태윤, 김욱, 이승영, 정수진, 최미진 (엮은이) 지음
창비교육 펴냄

5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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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고 세상과 마주할 아이들에게

얼마 전 마이스터고 입시 설명회장에 다녀왔습니다.
입시설명회와 마이스터고를 견학하면서 떠올랐던 책이 있습니다. 이전 학교에서 만났던 허태준 작가님의 책이었습니다.
당시 작가님을 뵈었을 때 참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단단하고 건강한 가치관, 그리고 책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다정한 눈빛이 참 따뜻했거든요. 특히 아이들과 함께 글쓰기 수업을 하실 때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서툴고 거친 문장 속에서도 아이들 각자가 품은 빛나는 가능성을 먼저 알아채고, 다정하지만 묵직하게 생각을 틔워주던 그 지도 방식이 참 좋았습니다.

책과 사람을 그토록 아끼던 그분이 쓴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가 절실하게 생각나 서가에서 책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다시 펼친 책 속에는 여전히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라는 울타리를 넘어 거친 산업 현장으로 나아간 열여덟·열아홉 청춘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책장을 넘기며 자연스레 독립영화 〈3학년 2학기〉가 겹쳐졌습니다.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들이 교복을 벗기도 전에 기름때 묻은 작업복과 헐렁한 안전모를 쓰고 나선 현장실습. 영화 속 아이들이 느끼는 막막함과 고단함은 허태준 작가의 문장과 소름 돋을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특히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대목은 바로 '경계에 선 아이들의 혼란'이었습니다. 교복을 벗었으니 마냥 학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온전한 대우를 받는 직장인도 아닌 애매한 위치. 캠퍼스의 낭만을 이야기하는 또래 친구들과도, 거친 현장에서 묵묵히 버텨내는 베테랑 어른들과도 온전히 섞이지 못한 채 "나는 지금 대체 무엇일까" 방황하는 그 정체성의 혼란이 너무나 아프게 와닿았습니다. 아직 삶의 뿌리를 단단히 내리기도 전에, 어중간한 어른으로 내몰린 아이들의 쓸쓸한 그림자였습니다.

그리고 책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가장 비극적인 현실, '어린 노동자의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배우러 간 현장에서 제대로 된 안전망조차 없이 홀로 위험에 노출되다 스러져간 수많은 아이들의 이야기.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차가운 기계 틈에서, 열악한 작업장에서 목숨을 잃어야 했던 그 비극 앞에 책장을 넘기는 손이 몇 번이고 멈춰 섰습니다. 배움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노동력을 값싸게 소비하고, 위험마저 가장 어린 노동자에게 떠넘겨온 어른들의 부끄러운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단순한 비극의 나열이나 분노의 고발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학교에서 마주했던 작가님 특유의 건강하고 따뜻한 시선이 문장 바닥에 단단히 깔려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허태준 작가님은 구조적인 부조리와 참혹한 현실을 그저 담담하게 적어 내려갑니다. 땀 흘려 기술을 익히고 정직하게 일하는 청춘들의 노동 그 자체를 결코 불쌍한 동정의 대상으로 격하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일구어가는 정직한 땀방울과 자부심을 누구보다 온전하게 존중하고 응원합니다.

글쓰기 수업에서 아이들에게 자기만의 언어로 당당하게 말하는 법을 가르쳐주셨던 작가님처럼, 이 책 역시 세상의 편견과 침묵 속에 갇혀 있던 직업계고 아이들에게 가장 따뜻하고 힘 있는 자기 목소리를 돌려주고 있습니다.

책을 다시 읽으면서 우리 아이들이 영화 속 주인공처럼 외로운 작업장에 홀로 방치되지 않기를, 경계의 불안 속에서 스러지지 않고 안전하고 존중받는 노동 속에서 온전한 어른으로 자라나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교복 위에 작업복을 덧입고 세상이라는 거친 파도로 나설 준비를 하는 모든 아이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등을 든든히 지켜주어야 할 우리 모두에게 이 책을 다시 한번 깊이 권하고 싶습니다.

<<마음에 남는 구절>>
“수험생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광고 문구는, 거리 가득한 축제 분위기에서 자꾸만 우리를 소외시키는 것 같았다. 입시를 준비하지 않았던 열아홉의 나는 수고하지 않았던 걸까? … 열아홉 할인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공장에서 일하던 나에게.”

우리 사회가 보편적인 10대의 통로로 여기는 '입시'와 '대학'이라는 정해진 레이스 밖에서, 교복을 채 벗기도 전에 거친 일터로 뛰어들어야 했던 청년 노동자의 솔직하고도 뼈 아픈 심경을 대변합니다. 그러면서도 사회가 호명하지 않던 이름 없는 시절의 노고를 ‘열아홉 할인’이라는 소박하고도 쓸쓸한 비유로 표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땀 흘리던 모든 청소년과 청년 노동자의 존재를 깊이 있게 일깨워줍니다.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허태준 (지은이) 지음
호밀밭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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